235화
이한은 다시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실은 저번 주말에 침입자들의 습격을 겪은 탓에...”
됐다. 사과할 필요 없다니까. 자네도 헛짓거리 그만하고 변신이나 바꾸게.
가짜 가이난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습을 순식간에 뒤바꾸었다.
이제까지 이한이 본 사람 중 가장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봤... 아.’
이한은 깨달았다.
저건 해골 교장의 생전 모습이었다.
자네. 나한테도 두들겨 맞고 싶나?
“고(孤)의 이름으로 유감을 표하겠네. 고나달테스.”
교수는 사과하고 다시 모습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중년 앵무새 수인족 남성이었다.
으음... 작년하고 너무 비슷한 것 아닌가?
“그렇소?”
조금 산뜻한 맛이 부족하군.
다시 교수의 모습이 바뀌었다.
젊은 카멜레온 수인족 여성이었다.
“어떻습니까?”
재작년에 한 거잖나.
“겹치는 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겹쳐도 되지 않나...”
교수는 중얼거리더니 몇 번 변신을 더 시도했다.
-별로군.
-자네는 창의력이란 게 없나?
-1학년 무쇠대가리도 발전을 하는데 어째서?
물론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건 어떻습니까?”
교수는 이번에는 스켈레톤 전사로 변했다. 그러자 해골 교장이 감탄했다.
훌륭하군!
“크헷헷. 감사합니다.”
“......”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한은 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반응이 무엇인지 빠르게 고민했다.
“정말로 훌륭하십니다. 학생들 모두 강의에 집중할 겁니다.”
녀석. 마법 실력만큼이나 눈이 뛰어나구나.
* * *
변환 마법을 맡은 교수, 욘라모 르지 교수는 놀랍게도 도플갱어였다.
종족 중에서 가장 희귀한 축에 꼽히는 도플갱어를 본 이한은 놀랐다.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군. 이 학교!’
하긴 변환 마법을 가르치기에 도플갱어만한 전문가가 또 어딨겠나 싶었다.
종족 특성으로 변신을 타고난 이들이니...
그런데 르지 교수가 변장했단 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냐?
“어... 가이난도는 절 워다나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크흐흐. 그게 문제였다니.”
간사한 목소리로 원통해하는 스켈레톤 전사를 본 해골 교장과 이한은 멈칫했다.
...바꾸라고 할까?
누가 가르쳤는지 아주 잘 가르쳤군.
“배그렉 교수 칭찬을 모처럼 하시는군요?”
르지 교수가 눈치 없게 말했다.
해골 교장은 뼈를 소환해 르지 교수의 발목을 붙잡아서 넘어뜨렸다.
쿠당탕!
난 이만 가보마. 르지 교수가 멍청한 실수를 하긴 했어도, 변환 마법에 있어서는 뛰어난 사람이다. 잘 배우도록 해라.
“예.”
그러고 보니 연금술을 배우고 있었지? 변환 마법은 연금술과도 상당히 인연이 깊은 마법이다. 배우면 도움이 될 거다.
“충고 명심하겠습니다.”
해골 교장이 사라지고 나서 이한은 멈칫했다.
...어?
어쩌다보니 변환 마법 배우는 게 확정이 된 느낌이었다.
‘이상하다?’
“크헷헷. 잘 부탁하네. 워다나즈 군. 실력에 기대가 많아.”
르지 교수는 어깨에 팔을 두르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이한은 머뭇거리며 르지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코뼈가 뚝 하고 떨어져나갔다.
“아차. 아까 맞은 부분이...”
“...죄송합니다!”
“크헤헤. 아니야. 아니야. 들킨 놈이 잘못한 거지. 교장 선생님 말이 맞아.”
르지 교수는 떨어진 뼈를 뚝하고 맞췄다.
그 모습을 보자 이한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자기가 코를 날린 교수 앞에서 어떻게 ‘변환 마법을 배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 *
“교수님. 어디 가서 맞고 왔어요?”
“크헤헤. 넘어졌어요.”
“그런데 왜... 스켈레톤 전사를? 분명 이번 해 하기로 하신 게...”
“크헷헷. 이게 더 좋더라구요.”
‘아닌 것 같은데.’
가르시아 교수는 강의실에 들어온 르지 교수를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도플갱어인 만큼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한 해의 관례였지만, 스켈레톤 전사는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보라!
학생들이 ‘저 교수님은 대체 왜 저러시는 거지?’하고 의아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교수님의 선택이니까... 존중해드리자.’
가르시아 교수는 르지 교수의 취향을 존중했다.
르지 교수가 이번 해는 스켈레톤 전사로 돌아다니고 싶다면, 그건 르지 교수의 자유인 것이다.
“자. 오늘은 변환 마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기 위해 르지 교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르지 교수님께서는 타고난 변환 마법사시죠.”
가르시아의 말이 끝나기 전에 르지 교수는 네 번 변신했다.
가르시아 교수로, 볼라디 교수로(이한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알펜 교수로, 번개걸음 교수로.
그 모습에 탄성이 튀어나왔다.
방금까지 당황스러워하던 학생들 모두 눈빛이 달라졌다.
“변환 마법은... 물질 속에 담긴 신비를 이해하고 그 물질 속으로 침잠해 담긴 진리를 이해하는 마법이에요. 뛰어난 연금술사들은 변환 마법에 능하고, 뛰어난 변환 마법사들은 연금술에 능하죠. 연금술을 듣고 있는 학생들은 변환 마법을 듣는 걸 추천해요. 아. 이한 학생은... 꼭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가 원망스러웠다.
르지 교수가 옆에서 보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거절을 한단 말인가.
“아닙니다. 교수님.”
“진짜 괜찮아요?”
“...진짜 괜찮습니다.”
옆에 있던 가이난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가르시아 교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한에게는 다행히, 변환 마법은 여러모로 유용한 마법이었다.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마법사에게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었다.
비싼 재료들을 직접 구하지 않고 싸구려 재료들로 어떻게든 대체할 수 있다니.
마법사들에게는 혁명 그 자체인 일이었다.
“그냥 금화 주고 사면 되지 않나?”
“그러게...?”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모습에 이한은 가슴이 아팠다.
지금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다니.
이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요네르와 눈이 마주쳤다.
요네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끄덕!
깨어 있는 두 학생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뿐만 아니라 마법사 본인을 변환시키고, 주변 환경까지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저도 공방을 새로 꾸밀 때는 르지 교수님의 도움을 받곤 해요.”
가이난도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걸 본 르지 교수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가이난도는 흰색 쥐로 변했다.
찍찍찍찍찍!
“오... 오오오오!”
“저, 저런!”
학생들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명예, 학문, 탐구, 진리 등 고결한 가치에 뜻을 두고 있는 학생들이었지만, 가끔은 옆의 친구를 쥐로 변신시키고 싶은 욕망이 들었던 것이다.
“르지 교수님...!”
가르시아 교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피식자의 오금을 얼어붙게 만드는, 살기 섞인 소리였다.
르지 교수는 다급하게 지팡이를 다시 휘둘렀다.
“크헤헤. 장난친 거야. 장난. 그렇지? 괜찮지?”
-예! 괜찮습니다!
“괜찮대!”
가이난도는 자기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내는 르지 교수의 모습에 황당해했다.
아니...!
“대단한 교수님이신데.”
“저 마법, 배우고 싶다.”
“이런 야만인들아!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말이 되냐!”
가이난도가 친구들에게 화를 냈지만 이미 다들 절반쯤 넘어간 상태였다.
* * *
“젠장. 속았어.”
“기대했는데.”
“내가 말했잖아!”
가이난도는 투덜거리는 학생들을 타박했다.
친구를 쥐로 바꾸는 마법을 알고 싶었던 학생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당연히 친구를 쥐로 바꾸는 마법이 낮은 서클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고학년이 되어서야 배울 수 있는 마법이었다.
‘난 이게 더 마음에 드는데.’
이한은 오늘 르지 교수가 가르쳐 준 <성분 감지> 마법을 연습하기 위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친구를 쥐로 만든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 남겠는가?
그에 비해 지팡이 하나로 물질의 성분을 탐구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유익했다.
“큭큭큭. 물질을 변환시킨다는 건 그 물질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이해한다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다들?”
“예. 교수님.”
이한은 스켈레톤 전사의 간사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목소리는 적응이 안 됐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상당히 중요했다.
물질의 성질을 바꾸거나 형태를 바꾸는 건 겉으로 보면 간단해보여도 그 안에는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소환 마법이 시약 하나 던지고 편하게 소환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로는 수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처럼, 변환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 알아냈습니다.”
“알아냈어요.”
“알아냈습니다.”
곳곳에서 쇠막대기의 구성 비율을 알아낸 학생들이 손을 들고 나왔다.
‘다 아는 얼굴들이군.’
아무래도 연금술을 듣는 학생들이 적성에 맞아서 그런지 성적이 좋았다.
르지 교수는 반갑다는 듯이 뼈로 된 손바닥으로 박수를 쳤다.
“크헷헷. 다들 훌륭합니다. 그러면 간단한 마법 하나를 더 해볼까요.”
망토가 펄럭이더니 책상 위에 사뿐히 가라앉았다. 교수가 손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이 망토는 양의 털로 만들었습니다. 부드럽고 푹신하죠.”
지팡이가 휘둘러졌다. 순간 망토가 단단한 쇳덩어리로 변했다.
“!”
“...!!!”
책상 근처에 모인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들 연금술이나 변환 마법에 진지하게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라, 친구를 쥐로 바꾸는 마법보다 이런 마법에 더 열의를 보였다.
간단한 마법이었지만 이 마법은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철이 아니라 다른 재료로 변화시킨다면?
혹은 다른 형태는? 아니면 더 깊게 들어가서 양모 자체가 가진 성질을 뒤바꾼다면?
‘변환 마법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이 날 안타깝게 하는군.’
이한은 혼자 다른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이 알려진 마법이라 대책도 많았다. 가짜 은이나 금을 만들어서 부자가 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헷헷헷. 다들 열정적이라 좋습니다. 그러면 연습해보도록 하지요. 충고를 하나 하자면, 처음에는 무작정 마법을 거는 것보다 양모의 성질부터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충고대로 자기의 망토를 만지고, 냄새를 맡고, 성분을 감지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황녀는 빙글 돌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망토의 질감이 단단한 금속처럼 변했다가 풀렸다.
“지속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변환 마법이 원래 그렇습니다. 학생. 부여 마법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스켈레톤 교수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마법사의 의지대로 엮인 마력을 물질에 불어넣어서 형태를 변화시키는 계열의 마법인 만큼, 그 마법은 대체로 오래 가기가 힘들었다.
“지속시간은 집착할 필요 없습니다. 제대로 거는 방법만 익히면 조금씩 늘어날 겁니다. 중요한 건 정확한 통제로 원하는 물질을 구현해내는...”
르지 교수는 설명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성분 파악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고, <강철 망토 변환> 마법에 도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때? 강철 같아?”
“으음... 약간 강도가 부족한 거 같은데.”
“한 번 휘둘러보자.”
요네르는 한 손에는 망토,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변환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고는 이한이 들고 있는 망토를 향해 세게 내리쳤다.
캉!
“아까보다 나은 거 같군.”
“좋아. 다시 해볼게. 잠깐만. 물약 좀 마시고.”
“그래. 천천히 해.”
서로 도우며 마법을 연습하는 훈훈한 모습에 르지 교수는 해골을 딱딱거리며 흐뭇해했다.
“...?”
그러다가 문득 이상함을 눈치 챘다.
망토를 향해 내리쳤는데 왜 저런 소리가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