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잠깐. 뭡니까?”
“네?”
“망토 맞습니까?”
“아. 변환시켰습니다.”
이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한도 <강철 망토 변환>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다른 학생들과 조금 달랐다.
“언제?”
“한 몇 분 된 것 같은데...”
“...이상한 점을 못 느꼈습니까?”
욘라모 르지 교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이한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교수님. 부여 마법 때도 지속시간이 길었습니다.”
“맞아요. 이한은 마력량 때문에 마법지속시간이 길더라구요.”
요네르도 옆에서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면서 거들었다.
욘라모 교수는 당황했다.
...너무 반응이 평화로웠던 것이다.
‘나만 놀라운가? 나만 놀라고 있는 건가?’
부여 마법이나 변환 마법 모두 지속시간이 짧은 축에 속하긴 했다.
그러나 굳이 비교한다면 변환 마법이 부여 마법보다 훨씬 더 짧은 편이었다.
물질 위에 마법을 걸어서 성질을 바꾸는 것과, 물질 자체에 마법을 걸어서 성질을 바꾸는 것.
후자가 더 마력 소모가 심하고 지속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변환 마법을 처음 걸었는데 몇 분 이상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이쪽 학파에서는 경천동지할 재능이었지만...
“워다나즈. 나도 좀 테스트해봐도 되나?”
“해봐라.”
“좋아. 꽉 잡고 있어.”
“실수로 빗나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겠지?”
“...그,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긴장되잖아.”
다른 학생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아보였다.
심지어 이한의 망토를 상대로 자기 망토에 마법이 잘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욘라모 교수는 황녀를 보며 물었다.
“워다나즈 학생의 마법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딱히 안 듭니다. 동작은 이게 맞습니까?”
“시계 방향이 아니라 반시계 방향이 더 나을 겁... 정말 안 듭니까?”
“???”
황녀는 교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다.
욘라모 교수는 순간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을 느껴야했다.
바보들의 나라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바보인 법.
“가르시아 교수... 가르시아 교수 어디 갔지?”
“가르시아 교수님께서는 마법 연습하기 좋은 망토를 가져다주신다고 잠깐 나가셨습니다. 교수님.”
이한은 매우 예의바르게 말했다.
아까 교수의 코뼈를 날려버렸던 만큼 교수에게 점수를 따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한의 선의는 욘라모 교수에게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 그렇군... 고맙습니다.”
욘라모 교수는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옛말에 틀린 말이 없었다.
유유상종.
원래 같은 무리끼리는 서로 가까이 지내는 법.
그러고보니 이한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해골 교장이나 볼라디 교수 같은 이들이었다.
물론 이한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흑색선전입니까? 강의를 들으니까 만나는 거지 그게 왜 같은 무리가 됩니까?’하며 격분할 생각이었지만, 적어도 욘라모 교수가 보기에는 그랬다.
해골 교장이나 볼라디 교수 같은 괴짜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도 경계할 요소였는데, 방금 보여준 모습이 쐐기가 됐다.
저렇게 미친 재능을 갖고 있는데 겸손하고 예의바르기까지 하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마어마한 야심!
에인로가드 교장 자리 정도는 가볍게 노릴 야심이 없다면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라.
재능이 있지만 오만한 천재들은 별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놈들은 겉과 속이 똑같은 놈들이었다.
그렇지만 재능이 있고, 겸손하고, 해골 교장을 비롯해 다른 마법학교의 교수들 모두와 친목을 다지는 천재라면...
그쯤이면 걸어 다니는 야망 그 자체라고 봐도 됐다.
물론 이게 나쁜 건 아니었다.
어릴 때 원대한 목표를 꿈꿔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문제는 ‘가늘고 길게’가 신조인 욘라모 교수 입장에서는 조금 많이 부담스러운 제자라는 것!
괜히 친해졌다가 ‘교수님 제가 마법학교 조교가 될 수 있게 회의에서 지원해주십시오’ ‘교수님 제가 마법학교 교수가 될 수 있게 회의에서 지원해주십시오’ ‘교수님 제가 마법학교 교장이 되려는데 반란 좀 도와주십시오’같은 부탁이라도 받는다면...
‘생각만 해도 속이 따끔거린다.’
욘라모 교수는 저 야심 넘치는 제자와 너무 친해지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괜히 거리를 어설프게 뒀다가는 원한을 살 수 있으니, 그것도 최대한 조심하고!
* * *
“교수님이 날 좀 피하시는 거 같지 않았어?”
“그랬나?”
“기분 탓 아니야?”
친구들은 이한의 말에 의아해했다.
“네가 잘 해서 그런 거겠지. 학년 수석!”
“맞아. 감탄하셔서 그런 걸 거야.”
“...?”
그런 위로에도 이한은 찜찜함을 느꼈다.
‘설마 내가 주먹을 날린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어떤 교수도 자기 코뼈를 박살낸 제자를 좋아하진 않을 테니까.
“그럼 워다나즈. 다음에 보자.”
-그래. 워다나즈. 다음에 보자.
“......”
이한은 복도 옆에 서있던 데스 나이트가 날리는 친근한 인사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음. 나름 경험이 많다고 자부했는데... 이 상황은 어렵군.’
교수 밑에서 수련하는 제자로서 겪는 모든 상황에 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상황은 이한에게도 어려웠다.
코뼈를 박살낸 교수와 다시 친해지는 방법은?
“안녕하십니까.”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작게 까딱거리며 앞을 가리켰다. 빨리 앉으라는 신호였다.
그 모습을 보니 이한은 갑자기 억울해졌다.
‘나는 내 코뼈를 박살내려는 교수와도 친하게 지내는데.’
그럼 교수도 제자가 자기 코뼈를 박살내는 것 정도는 용서해줘도 되지 않나?
“<단풍나무의 뱀>과 싸웠다고?”
“예.”
“운이 좋았군.”
볼라디 교수의 말에도 이한은 부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행운이 따라준 싸움이었다.
상대가 이상한 착각이나 오해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덤벼들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다.
“운이 좋아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잠깐. 설마 만난 게 행운이란 소리는 아니었겠지?’
“뭘 느꼈지?”
교수의 질문에 이한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모험가들은 강하더군요. 전투력을 떠나서, 전투 마법사도 저렇게 여러 상황을 미리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단풍나무의 뱀> 모험가들은 단순히 검을 잘 휘두르고 오러를 뿜어낼 줄 알아서 강한 게 아니었다.
마법사를 만나면 마법사의 약점을.
사냥꾼을 만나면 사냥꾼의 약점을.
온갖 상황을 다 겪은 모험가들은 만약을 대비해 각종 수단들을 구비하고 다니는 것이다.
당장 이한도 운이 좋아서 상대의 공격을 견뎌냈지 평범한 마력이었다면 처음 스크롤 터졌을 때 쓰러졌어야 정상이었다.
“잘 파악했군.”
볼라디 교수는 희미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자 이한은 아차 싶었다.
‘젠장. 뿌듯해하고 계시군.’
생각해보니 지금 이한이 한 말은 ‘볼라디 교수님 저는 교수님의 교육방침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가르쳐주십시오!’로 들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코뼈는 볼라디 교수님이 부서져야 하는데...’
“마법사들은 마법 때문에 쉬이 오만해지지. 하지만 잊지 마라. 전장에서 적들은 마법사부터 노린다는 것을.”
“예. 이번에 실감했습니다. 그래도 교수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
이한은 갑자기 볼라디 교수가 말이 없어지자 당황했다.
‘아부가 너무 노골적이었나? 오늘 좀 쉽게 강의하자는 뜻이 읽혔나?’
이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들키다니.
같은 학년 학생들하고 어울리다보니 아부하는 솜씨가 녹슨 모양이었다.
“!”
고개를 든 이한은 경악했다.
볼라디 교수가 미소짓고 있었던 것이다.
희미한 미소는 몇 번 봤었지만 저렇게 웃는 건 처음이었다.
워낙 인상이 차가운 사람이라 미소보다는 미친 마법사의 살인경고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미소는 미소.
‘...통한 건가?’
“그렇게 말하니 기쁘군. 강의를 시작하지.”
볼라디 교수는 말과 함께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갑자기 허공에서 처음 보는 화염 창들이 쏟아져 내렸다.
“?!”
“잘못 열었군. 지금 꺼낼 게 아닌데.”
볼라디 교수는 화염 창들을 원래 있던 공간 주머니로 다시 집어넣었다.
물론 이한에게는 이미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방금 지금 꺼낼 게 아닌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언제 꺼내지는 거지?
“사과하지. 만족감에 실수를 했군.”
“아닙니다.”
이한은 다시는 볼라디 교수에게 아부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 아부하면 뿌듯함에 이한을 마계로 데리고 갈지도 몰랐다.
* * *
여러 학파 마법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가능한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긴 했지만 어쨌든 볼라디 교수가 이한의 목표로 (강제로) 제시한 경지였다.
그런 만큼 오늘 강의는 변환 마법이 주제였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 들어왔을 때 변환 마법은 부여 마법과 함께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학파 중 하나다. 차이점이 있다면, 부여 마법은 시전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전에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변환 마법은 그 반대지. 그만큼 순발력이 요구된다.”
이한은 깃펜으로 메모하며 물었다.
“욘라모 르지 교수님을 아십니까?”
“그래.”
“혹시 뭘 좋아하는지도 아십니까?”
“아니.”
“그러면 욘라모 르지 교수님과 비교적 친한 분이라도 아십니까?”
“아니.”
볼라디 교수는 대답한 다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이 친할 지도 모르겠군.”
‘음. 이 사람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했군.’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정신나간 대답을 듣고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절대 물어봐서는 안 될 사람이었던 것이다.
“<강철 망토 변환>을 배웠나, <강철 목도리 변환>을 배웠나?”
“<강철 망토 변환>을 먼저 배웠습니다.”
볼라디 교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은 진도가 빠르면 <강철 망토 변환>을, 진도가 느리면 <강철 목도리 변환>을 먼저 배우곤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고...
“완벽히 익혔겠지. 다음으로 넘어간다.”
“아니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한은 어이가 없어서 순간 대꾸해버렸다.
“다 못 익혔나?”
“다 익히긴 했는데...”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망토를.”
이한은 볼라디 교수에게 망토를 건넸다. 그러자 볼라디 교수가 망토를 흔들어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
“익숙한 물건으로만 변환 마법을 쓰지 말도록.”
생전 처음 보는 다른 망토가 허공에서 날아왔다.
볼라디 교수는 날카로운 단검 형태의 마력을 허공에 띄우기 시작했다.
“...구슬 아니었습니까?”
“구슬은 망토를 상대할 때 비효율적이지.”
“효율적인 것 같... 강철로 화(化)해라, 망토여!”
이한은 대답하면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단검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피하지 말고 막도록.”
볼라디 교수의 말에도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이제 대답할 여유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쐑!
‘젠장. 이 망토 재질이 뭐지?’
변환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갖고 다니는 장비나 아이템들에 대해 해박했다.
재질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있어야 변환 마법을 빠르게 시전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이런 파악 없이 직감만으로도 변환 마법을 쓸 수 있길 원했다.
양심 없는 수준이 거의 도둑놈이었다.
“방패여, 펼쳐져라...”
이한은 물 방패로 시간을 벌려고 했다. 볼라디 교수는 바로 방패를 치워버렸다.
이한은 투명 망토로 눈속임을 하려고 했다. 볼라디 교수는 바로 시전을 저지했다.
이한은 스켈레톤 전사들을 소환하려고 했다. 볼라디 교수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너무 다재다능하게 가르쳤나?
막으라는 망토로 안 막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