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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39화 (239/687)

239화

“다들 왜 그러십니까? 설마 돈이 없기라도 하신 겁니까?”

불안함을 느낀 상인 한 명이 분위기를 깨기 위해 농담 삼아 말을 던졌다.

“예...”

“죄송합니다... 학교 규칙이라...”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쭈뼛거리며 대답하자 상인들은 경악했다.

아니 무슨 그런 교칙이??

엄격하게 가르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건...

“그, 그게 말이 됩니까? 학교에 돈을 가지고 오지 못한다면... 외출은 어떻게 하고요?”

‘너무나 타당한 지적이군.’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나.”

“그, 그렇지. 그런... 음...”

상인들이 당황스러워하자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의견을 냈다.

“혹시 방학 때 갚으면 안 되겠습니까? 가문의 이름을 걸고...”

-어딜 신성한 에인로가드의 땅에서 감히 외상을 시도하는 것인가? 자네는 명예도 없고 자부심도 없나? 그러고도 마법사인가?

“......”

옆에 있던 데스 나이트들이 무자비하게 비난을 퍼부어댔다.

말 한 마디 잘못 꺼냈다가 졸지에 파렴치한 놈으로 몰린 흰 호랑이 탑 학생은 그대로 쭈그러들었다.

“아... 아니. 데스 나이트님. 저희는 괜찮...”

-아닐세! 학생은 오냐오냐 키워서 좋을 게 없네. 엄하게 가르쳐야 하는 법이야. 옛날이야기에도 나오지 않나. 방탕한 자식들은 가문의 재산이 자신의 재산인 줄 알고 날려먹는 법이지.

“재료 좀 산다고 재산이 날아갈 것 같진 않습니다만...”

상인들이 중얼거렸지만 데스 나이트들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아무리 봐도 해골 교장이 보낸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외부에서 상인들이 들어오는데 해골 교장 성격에 쉽게 허락해줄 리 없었다.

아마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들여보낸 것이리라.

데스 나이트들 시켜서 외상 금지도 하고!

“음. 일단 제 것만 먼저 사가도 되겠습니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자 이한이 입을 열었다.

상인들은 깜짝 놀랐다.

“지금 돈이 있으십니까?”

“예.”

“어떻게... 아니... 있는 게 사실 당연하긴 한데... 그래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래도 돈 있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상인들은 반색했다.

“어? 워다나즈가 돈이 있으면... 워다나즈한테 빌리면 되는 거 아닌가?”

-어딜 신성한 에인로가드의 땅에서 감히 친구 사이의 돈거래를 하려는 것인가? 자네는 우정이 부서질 게 두렵지도 않나? 그러고도 마법사인가?

“잘... 잘못했습니다.”

‘저런 멍청한 놈.’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을 보며 혀를 찼다.

빌릴 거면 데스 나이트들 안 보는 곳에서 몰래 빌려야지 저렇게 대놓고 빌리려고 하다니.

“왜 그러고 서있어?”

버두스 교수는 학생들이 우물쭈물거리며 서있자 의아해하며 다가왔다.

“...교수님. 저희는 돈이 없습니다. 혹시 잊으셨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렇겠지. 학교 안으로 은화 갖고 들어오는 건 금지잖아.”

버두스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더욱 더 의혹에 빠졌다.

알고 있는 사람이 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그냥 학생들이 좌절하고 고통 받는 게 보고 싶었던 건가?

교장 선생님을 생각해보면 꽤 그럴듯한 가설일지도...

“일해서 때워. 너희 선배들도 그랬어.”

“예?”

“일하라고. 일. 몰라?”

“......”

“......”

상인들과 학생들 모두 생각치도 못한 방법에 당황해했다.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법사는 제국에서 손꼽히는 고급 인력이었으니까.

능력 있는 마법사는 부르는 게 값이라, 돈이 있다고 부릴 수 있지도 않았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이라면 1학년이라 하더라도 시중에 돌아다니는 어중이떠중이들보다 훨씬 나았으니...

“정, 정말 괜찮습니까?”

“괜찮아. 뭐든 시켜.”

“아니...”

대답도 대신해주는 친절한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학생들은 감동했는지 말끝이 파르르 떨렸다.

버두스 교수는 이한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넌 왜 돈이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처음으로 버두스 교수의 마음에 공감했다.

“그게...”

“생각해보니 별로 안 궁금하다. 넌 내고 가. 빨리 아티팩트 만들어. 부유하는 강철 방패 기대된다.”

“벌써 그런 아티팩트를?!”

옆에서 상인들이 깜짝 놀랐지만 이한은 이제 해명할 기운도 없었다.

그리고...

“저도 그냥 일로 갚겠습니다.”

“예? 왜 그런...?”

상인들은 의아해했다.

데스 나이트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우정이지.

-명예로운 우정.

“아...!”

“워다나즈...!”

상인들도, 다른 학생들도 감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한은 계산을 해보았다.

‘저기 재료 가격이 대충...’

일로 때울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무엇하러 은화를 낭비한단 말인가.

‘이 자식 진짜 왜 일로 갚으려는 거지?’

지젤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당연히 우정 때문은 아닐 테고(지젤은 데스 나이트들처럼 머저리가 아니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 돈이 아까워서 저럴 리는 없을 테고...

대체?

“혹시 재료값보다 더 일을 많이 하면 환급도 됩니까?”

“예?”

“......”

*         *         *

“뭐?! 상인들이 학교에 찾아왔다고!?”

가이난도는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상인이 아니다. 가이난도.”

“맞아. 마법에 필요한 시약만 파시더라.”

“그래도 간식 하나쯤은 있지 않아?”

“없던데. 아. 짐승을 유인할 때 쓰는 먹이는 파시더라.”

하루가 지나자 상인들의 방문은 나름 화제가 되었다.

워낙 폐쇄적인 환경인만큼 밖에서 온 손님들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진상을 알게 된 학생들은 금세 흥미를 거뒀다.

“쓸만한 것도 없네.”

“미리 준비해놓는 게 좋을 텐데.”

이한은 친구들에게 충고했다.

“이제 곧 다른 강의들도 기말 전 과제가 나올 거다. 많이 쓸 것 같은 재료들은 미리 준비해놓는 게 좋을 걸.”

“...!”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교수들이 뭘 해오라고 과제를 내줄 때 재료까지 친절하게 주진 않았으니까.

“그런... 그런가?”

“미리 가서 사놓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설득에 넘어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상인들에게 찾아갔다.

1시간 후.

“...속았다...”

“워다나즈한테 속았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군.”

이한은 옆에 앉은 친구들을 타박했다.

처음에는 ‘아이고 저희가 어떻게 마법사님들을 부려먹겠습니까’하던 상인들이었지만, 생각보다 아주 잘 부려먹었다.

역시 프로는 철저한 법.

-제조 도중에 실패한 물약들입니다. 이 물약들을 최대한 분리해서 재료를 건지고 싶습니다.

-여기 있는 잡동사니들 중에 아직 마력이 남아 있는 물건이 있으면 골라내주시겠습니까?

-스크롤의 밑작업을 완성해주실 분이 필요한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수백 장 정도 되긴 하는데...

아까부터 앉아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퀭해진 얼굴로 손만 놀리고 있었다.

어렵지 않은 잡일이라고 안 힘든 건 아니었다.

물약 분리도 마력이 소모됐고, 잡동사니 중에 마력 있는 물건을 찾는 것도 집중력이 소모됐으며, 스크롤에 선을 그려 넣는 밑작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과제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사실 과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친구들이 피곤과 마력 부족에 비틀거리는 동안에도 이한은 혼자 쌩쌩했다.

“다 됐습니다.”

“아니, 벌써 말입니까?!”

“예. 다음 걸 주시죠.”

“좀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상인들은 이한을 말리려고 했다.

물론 이한은 아직 멀쩡해 보이긴 했지만, 다른 학생들이 비틀거리는데 그냥 계속 일을 시키는 건 역시 걱정이 됐다.

“아닙니다.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이 정도 일하셨으면 재료 가져갈 정도는 된 것 같...?”

“아닙니다. 실패할 수도 있으니, 대비해서 더 많이 일하려고 합니다.”

남으면 은화로 받아가고!

옆에서 지나가던 버두스 교수가 물었다.

“네 실력을 봤을 때 이 정도는 그냥 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그냥 해도 될 것 같...”

“아닙니다. 부족합니다.”

“그냥 해도 된다니까!”

“부족합니다!”

“...두, 두 분. 싸우지 마십시오.”

상인들은 스승과 제자가 싸우는 모습에 당황했다.

대체 왜 저런 걸로 싸우는 거지?

*         *         *

“다들 기말 전 과제 때문에 힘든가보군요.”

잉걸델 교수는 시체 같은 학생들의 모습에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좋은 소식 하나를 들려줘야겠습니다. 제 강의에서는 기말 전 과제가 따로 없습니다.”

“!!”

“잉걸델 교수님. 교수님은 진정한 교육자이십니다!”

“이런 걸로 칭찬 들어봤자 별로 기분 좋진 않습니다만... 이제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들 너무 마음 놓고 있지 마십시오. 과제 몇 번 하면 찾아올 테니 말입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차례대로 몰아치고 있는 기말 전 과제의 폭풍이 끝나고 나면 눈 떴을 때 기말고사가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2,3주 남았다고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말고사 내용은 먼저 말해주려고 합니다.”

“!”

“교수님...! 그렇게까지...!”

‘이건 좋은 게 아닌데.’

감동하는 친구들과 달리 이한은 긴장했다.

잉걸델 교수가 다른 미치광이 교수들보다는 조금 이야기가 통하는 것처럼 보여도, 잉걸델 교수 역시 에인로가드의 교수였다.

절대 학생들에게 관대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저 산맥 보이십니까?”

잉걸델 교수는 검 끝으로 본관 뒤편의 산맥을 가리켰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저기서 고생 한두번씩은 한 만큼, 마법학교 내의 산맥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저기서 셋이 한 조로 사냥해오는 게 기말고사 시험이 될 겁니다.”

“오...”

“뭘 잡습니까? 멧돼지? 황소?”

“마음대로 잡아오십시오. 강한 사냥감을 잡아올수록 높은 성적을 주겠습니다.”

“......”

“......”

학생들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담합하면 안 되나?’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곧바로 포기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표정을 보니 절대 담합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손을 잡았다가는 바로 뒤통수치고 자기가 더 강한 사냥감을 찾아내리라.

특히 검술 강의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자존심 아닌가.

‘우리 서로 무리하지 말고 같이 좋은 점수를 받자’란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친구들. 잘 생각해봐라. 우린 지금 기말 전 과제도 많다. 기말고사도 있는데 여기서 무리하게 경쟁심을 불태워봤자... 됐다. 내가 말해봤자 뭐하겠나. 알아서들 해라.”

이한은 말하다가 포기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         *

파란만장한 주중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강의들은 학생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같은 필수 교양 강의에서도 기말 전 과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울렁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참. 워다나즈 군. 부유하는 강철 방패를 만든다고?”

알펜 나이튼 교수는 호기심 섞인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어쩌다보니...”

“간이 아티팩트라지만 계산이 만만치 않을 걸세. 완성된다면 한 번 보여주게. 어느 정도로 완성시킬지 궁금하군.”

“...예.”

‘이 학교는 교수들이 서로 대화를 못하게 해야 하는데.’

볼라디 교수부터 시작해서 버두스 교수, 마지막으로는 나이튼 교수까지 부유하는 강철 방패 언제 만드냐고 관심을 보내기 시작하자 이한은 슬슬 숨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진짜 바로 시작해야겠군.’

이쯤 되면 과제 주제를 바꾸고 싶어도 바꾸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교수들이 ‘다시 해보지 그러나?’ ‘아쉬운데 다시 해보지?’ ‘조금만 더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던져오는 걸 상상하니 현기증이 났다.

...이걸 최우선으로 두고, 무조건 이번 주말 안에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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