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미, 미안하네.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군.”
오고닌은 부끄러웠다.
다른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도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했지만, 환상 마법사는 특히 더 그랬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마법사가 어떻게 타인의 감정을 조절하겠는가.
“명심하게. 절대 자네가 모자란 게 아니라는 걸.”
“아. 예. 알겠습니다.”
이한은 진지하게 칭찬하는 오고닌의 모습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리 저렇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정확하게 감이 오진 않았다.
‘그래서 정확히 어느 정도란 거지?’
보통 환상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들에 비해 어떻다, 보통 여기까지 오는 데에 얼마 정도 걸린다, 이 정도는 말해줘야 감이 올 것 아닌가.
오고닌의 칭찬은 정보값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모자란 게 아니란 건 알겠는데...
“돌아가면 계속해서 불안감 마법을 연습해보게.”
반복훈련으로 마법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긴 했지만, 오고닌은 그것 때문에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상대만 달라진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오고닌이 보기에 지금 이한이 <오고닌의 차오르는 불안감>을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상대가 고나달테스라서!
아마 다른 학생들 상대로 시전해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필이면 저 작자 때문에...’
오고닌은 초조했다.
가끔 재능 있는 마법사들도 처음에 저지른 실수들로 자신감을 잃곤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실수 때문에 재능 있는 마법사가 그런 늪에 빠진다니.
오고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환상 마법의 적통을 이어갈 마법사에게 그게 무슨 손해란 말인가.
문제는 지금 이한도 그런 불신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어!’
“어. 그런데 오고닌 님.”
“무슨 일이지?”
“제가 이걸 연습하려면 친구들한테 시전해야 하잖습니까?”
“그렇겠지.”
“친구들이 열심히 과제하고 시험 공부하는데 불안하게 만드는 건 좀...”
이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안감 마법이라는 건 결국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마법 아닌가.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에게는 좀 미안한 짓이었다.
“확실히 그런 점이 있긴 하지.”
오고닌은 이한의 말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한은 안심했다.
‘해결 방법이 있으신가보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안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예?”
감안해야지.
이한은 둘이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고닌과 해골 교장은 매우 진지했다.
마법을 위해서 친구들이 좀 희생을 해줘야 하지 않나?
‘...미친 마법사들 같으니...’
이한은 정색하고 거절했다.
“그건 안 됩니다.”
“아니... 어째서인가?”
친구들의 심장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불안하게 만드는 건데 왜 그러는 거냐? 그거 불안하다고 마법 공부에 소홀히 할 놈이라면 바람만 불어도 소홀히 할 놈일 텐데?
“안 된다니까요.”
이한의 단호한 거절에 오고닌은 당황스러워했고 해골 교장은 투덜거렸다.
그러나 이한은 뜻을 바꾸지 않았다.
에이... 알겠다. <오고닌의 충만한 만족감>으로 연습해라. 이건 어떻지?
“하지만 그것보다 불안감 마법이 더 연습하기 좋을 텐데...”
“아닙니다. 만족감 마법으로 연습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불안감 마법이 더 연습하기 좋을 텐데...”
“......”
이한 안에서 오고닌의 평가가 조금 더 내려갔다.
‘음. 해골 교장하고 사이가 안 좋다고 꼭 선량한 사람은 아니군.’
경력이 긴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미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오늘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 * *
벌써 저녁이군. 오래도 가르쳤다.
“예... 뭐...”
주말이 통째로 날아간 이한은 씁쓸함을 참고 표정을 관리했다.
이미 날아간 시간을 어쩌겠는가.
남은 시간에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 탑에 돌아가서 마법 열심히 공부하고...
“잠깐! 잠깐!”
?
해골 교장은 멀리서 달려오는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눈동자를 가늘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칠칠맞게 뛰어오나?
“마력량으로 간이 아티팩트 지속 시간을 늘렸다면서?”
그랬지.
“......”
이한은 너무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그보다 해골 교장은 나하고 같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그걸 알고 계십니까?”
“데스 나이트들이 말해주던데?”
“...!”
해골 교장과 이한이 나눈 대화를 들은 데스 나이트가 다른 데스 나이트한테 전하고, 다른 데스 나이트가 또다른 데스 나이트한테 전하고...
그 결과 해골 교장은 가만히 있었는데 버두스 교수의 귀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소름끼치는 에인로가드의 소문 전파 구조였다.
‘이게 무슨 지옥도 아니고.’
수다스러운 데스 나이트들의 모습에 이한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언데드 정화 마법을 배워서 보일 때마다 퇴치했어야 했나??
자네가 신난 건 알겠는데 지금 달려와서 물어볼 이유가 있나?
“응?”
버두스 교수는 당연한 질문을 왜 하냐는 듯이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그야 지금 데려가서 시험해보려고... 저기 저 이동식 대형압축마석...”
누구?
“아니, 워다나즈 학생.”
‘방금 사람을 이동식 대형압축마석이라고 하지 않았나?’
자신을 무슨 휴대용 마나 배터리 취급하는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교수님. 지금 저녁인데요.”
“괜찮아. 불 켜줄게.”
“...제가 해야 할 과제가 여럿이고 내일 강의도 있습니다만.”
“괜찮아! 내일 아침 전에는 끝나겠지!”
...내가 정말 어지간해서는 마법을 접할 기회를 막진 않지만, 이건 안 되겠군. 안 돼!
해골 교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버두스 교수에게 말했다.
버두스 교수는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깜짝 놀라서 대꾸했다.
“왜!?”
이유는 방금 말했잖나! 다시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면서.
어지간하면 해골 교장도 ‘마법사는 원래 좀 고생 하면서 크는 거다’라고 등을 떠밀었을 텐데, 버두스 교수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성격상 내일 아침 강의 시간이 찾아와도 보내주지 않고 붙잡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불도 켜주고 내일 아침 강의 전에 보내준다니까!?”
그래. 나도 황제 폐하 앞에서는 언제나 학생들을 행복하고 웃음짓게 만들어준다고 약속하곤 하지. 퍽이나 그러겠군! 넌 돌아가라. 가는 길에 이상한 교수한테 붙잡히지 말고!
“...예... 감사합니다.”
이한은 해골 교장한테 ‘이게 다 당신이 불러내서잖아’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얌전히 돌아가기로 했다.
괜히 이상한 교수를 더 만날까봐 진지하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 *
“푸른 용의 탑 녀석들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그러게...?”
“설마 기말 전 과제를 주말에 다 끝낸 거 아니야?”
“터무니없는 소리!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하지만 워다나즈가 있잖아. 워다나즈가 주말에 계속 기숙사에 틀어박혀 과제를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설, 설마.”
다른 탑 학생들은 두려움 섞인 시선으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말에 과제를 다 끝냈다고?
그게 사람이 가능한 영역이란 말인가?
“이한. 이한. 나 한 번만 더 걸어줘.”
“...아니.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아니야! 한 번만 더!”
“나도 한 번만 더!”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고 <오고닌의 충만한 만족감>을 걸어달라고 부탁하자, 이한은 단호하게 결심했다.
“아니. 이제 안 돼.”
“으... 어째서...!”
“이 행복을... 왜...!”
친구들은 화를 내고 싶어도 만족스러워서 잘 화를 내지 못했다.
‘마법이 제대로 걸리긴 했는데.’
원래라면 마법 연습을 제대로 해내서 만족스러워야 했는데 지금 꼴을 보니 더 이상 연습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환상 마법이 좀 위험한 것 같아.’
“워다나즈. 워다나즈.”
검은 거북이 탑의 살코가 이한을 불렀다.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워지는 마법을 받고 싶은 모양이군. 딱 한 번만 걸어주고, 그 다음부터는 안 걸어준다. 중독이 될 수 있거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살코는 당황스러워했다.
“아니었나? 왜 부른 거지 그러면?”
“당연히 알려줄 게 있어서지.”
살코는 먼저 감사 인사를 했다.
“저번에도 말했었지만, 다시 한 번 고맙다.”
“뭘. 돈 받고 도와준 일인데. 돈이나 잊지 마라.”
살코는 이한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하는 줄 알고 웃었다.
“하하하...”
“...왜 웃지? 돈 잊지 말라고 했는데?”
“아... 아니. 당연히 돈은 줄 거다.”
이한이 보여주는, 생각보다 진지한 돈에 대한 집착에 살코는 살짝 당황했다.
돈은 그냥 도와줄 핑계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뭘 알려주려는 거지? 저번처럼 무모한 시도라면 관둬라. 지금 쌓인 과제가 몇 개인데.”
“걱정 마라. 간신히 회복했는데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할 리가 있겠나.”
살코도 이번에 단단히 교훈을 얻었다.
동급생 중에 싸움 잘하는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외곽 지역을 함부로 쏘다니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넌 예전부터 본관 상층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지?”
“그랬지. 다들 그렇지 않나?”
밤의 산책을 즐기는 1학년 학생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본관의 이곳저곳을 탐사하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든 위로 올라가든 각종 숨겨진 방과 창고, 통로와 공간 등은 학생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됐던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본관 상층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았다.”
“...자세히 말해봐라.”
주말에 본관 건물이 이리저리 뒤흔들리고 섞이며 재배치를 펼치는 사이, 검은 거북이 탑 학생 한 명이 <붉은 순무> 식료품 창고를 털다가 기묘한 걸 목격했다.
“붉은 순무 식료품 창고? 거긴 어디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
“당연히 중요하지.”
‘먹을 것도 많은 놈이...’
살코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 탑 학생들 중 가장 풍족하게 먹고 지내는 건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었다.
남들은 끼니 계산할 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아 오늘 디저트 별로였다’ ‘워다나즈도 디저트 선택에 실패할 때가 있는 거야’같은 재수없는 대화를 나눴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풍족함은 어느 학생 한 명이 목숨 걸고 돌봐줘서라는 걸, 살코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게으른 새끼들을 그렇게 먹여봤자 남는 게 뭐가 있나 싶었지만...
“여기다. 됐나?”
“그렇군. 고맙다.”
“적당히 털어가라. 우리도 챙겨가야 하니까. 그리고 경험상 너무 많이 털어 가면 창고가 바뀌더군.”
“하긴 그렇겠지. 계속해봐라.”
식료품 창고를 털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뒤쪽의 막힌 벽이 열리더니 새로운 통로로 변하는 걸 보았다.
이 놀라운 일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은 통로에 발을 디디려고 했지만...
상층 지름길
이 길은 결계로 보호되고 있으니, 실력 없는 자는 돌아가시오!
벽에 새겨진 문구만 남기고 학생은 그대로 튕겨나갔다.
침입자를 방지하는 결계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한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집중해서 들었다.
‘확실히 흥미롭다.’
상층 지름길이라고 나와있는 걸 보니, 저 길은 최근 둘러봤던 길들 중 가장 짧은 지름길이 될 수 있었다.
재배치 기간이 이런 행운을 불러올 줄이야.
“너라면 결계를 뚫을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서 알려주러 왔다. 여기 지도를 받아라.”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살코.”
“역시 그런가?”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다. 뛰어난 환상 마법사한테서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있었거든.”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대단하군! 그 분은 누군가?”
“발도르오른 님이시지.”
“과연. 발도르오른...”
살코가 감탄하는 사이 이한은 뒤늦게 떠올라서 말했다.
“참. 오고닌 님에게도 따로 배우긴 했다.”
“그렇군.”
원래 사람은 뒤에 덤으로 붙여주는 물건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마련.
살코도 그랬다.
발도르오른이라는 이름에만 집중하고 오고닌이라는 이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오고닌이 누군지 뒤늦게 떠올랐을 때, 이미 워다나즈는 자리를 비운 뒤였다.
“잠깐. 워다나즈. 오고닌 님이라면 설마... 워다나즈?”
“워다나즈 아까 갔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