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51화 (251/687)

246화

하도 황당해서 그런지 분노보다는 감탄이 나왔다.

‘이런 방법이?’

학생들에게 ‘내 학파의 마법은 이런 장점이 있단다’하고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학생들을 강제로 제자로 납치하면 되는 것이다.

모르툼 교수에게 알려주면 무릎을 칠 기발한 해결책!

“교, 교수님? 저는 치유 마법을 배울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한 개를 전공하고 있는데 두 개를 전공하면... 어떻게 따라가란 겁니까!”

“지금도 힘들어 죽겠어요!”

“......”

친구들의 순진무구한 항의가 이한의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었다.

이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조용. 제가 대신 설명해줄게요.”

가르시아 교수가 나섰다.

“치유 마법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유 마법.

제국의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마법을 꼽으라면 치유 마법이 들어갈 것이다.

접할 일도 많았고, 쓰임새도 많았으며, 그렇기에 치유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들은 존중받았다.

흑마법사와 치유 마법사가 마을에 찾아갔을 때 각자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이런 만큼 당연히 치유 마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려는 마법사들도 많았다.

‘흑마법도 아닌데 이렇게 강제로 학생들을 데리고 올 이유가 있나?’

불사조 탑 사제들 대다수가 치유 마법을 배우려고 할 테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상당수가 치유 마법을 배우려고 할 텐데...

“지금 치유 마법사가 너무 적어.”

다크 엘프 교수가 피곤하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숫자를 늘린다.”

“???”

학생들이 더 혼란에 빠지기 전에 가르시아 교수가 뒤이어 설명했다.

치유 마법은 마법사가 한 사람 몫을 해낼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마법이었다.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만큼, 다른 마법과 달리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배우고 있는 마법사를 동원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마법을 익히는 난이도도 복잡하고 어려워서, 마법을 배우겠다고 들어오는 학생들은 많아도 그 이탈률이 보통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작년에 페시안 지역에서 전염병이 돌았을 때 치유 마법사가 부족해서 문제가 됐었죠.”

그래서 치유 마법 교수, 라그린데 가문의 알카시스 교수가 황제 폐하와 해골 교장한테 직접 허가를 구했다.

치유 마법사의 숫자가 적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배우는 학생들의 숫자를 (강제로라도) 늘리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숫자를 대폭 늘린다면 이탈자가 많이 나오더라도 전체적인 치유 마법사의 숫자는 증가할 것 아닌가.

그래서 오늘 이렇게 학생들을 간단하게 테스트해서 치유 마법에 조금이라도 적성이 있어 보이면...

“...이렇게 마법을 배울 기회를 주는 거죠. 다들 이해가 되셨나요?”

“...어... 강제인데 왜 기회에요?”

가르시아 교수는 못 들은 척했다.

가끔 교수들은 비겁해지는 법.

알카시스 교수가 피곤하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조용. 바쁘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금지. 꼭 필요한 질문만 해라.”

“교수님. 저는 지금 소환 마법을 전공하고 있어서 치유 마법은...”

필요한 질문을 하던 학생 한 명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교수의 침묵 마법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깨달은 학생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러게...”

‘저 정도면 그냥 마법학교 평균 아닌가?’

학생들이 경악해서 소곤거리는 것과 달리 이한은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냥 ‘아 교수님이시구나’정도?

“지금 몇 시지?”

“세 시 반이요.”

가르시아 교수의 대답에 알카시스 교수는 건조한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 후에도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었기에 시간을 확인해 둬야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밖에 나가세요? 설마 저번에 말 나왔던 크롱뒬 길드 내분 건인가요?”

알카시스 교수는 피곤한 나머지 대답도 말로 하지 않았다. 눈만 깜박이자 가르시아 교수는 탄식했다.

“저런... 모험가들이 자기들끼리 패싸움을 벌이다니요. 그것도 도시 안에서. 정말 용서할 수가 없네요. 손이 없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래서 3학년까지 데리고 가려고. 물 좀.”

“여기요.”

알카시스 교수가 물통을 한 번에 빠르게 비우는 동안 가르시아 교수는 마저 물었다.

“3학년들까지 데리고 가다니...”

“2학년들은 데리고 가봤자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2학년들 왜 안 데리고 가냐는 질문은 아니었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한도 질린 표정으로 들었다.

‘여기도 만만찮게 지옥이군.’

해골 교장이나 볼라디 교수나 버두스 교수가 만드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지옥.

이건 교수 잘못이 아니었다.

제국의 잘못이었다.

다치고 죽는 사람은 많은데 치유 마법사들의 숫자가 적으니, 치유 마법사들의 업무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는 것이다.

지금 3학년 학생들도 데리고 나간다는 말을 들으니...

“교수님. 저는 정말 치유 마법에 관심이 없...”

“예외는 없다.”

“교수님. 저는 이미 두 개나 전공을 듣고 있습니다! 두 개나요!!”

“말했듯이 예외는 없다. 조용히 해라.”

알카시스 교수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암석처럼 단단히 말했다.

교수라고 해서 치유 마법에 관심이 없고 다른 마법을 듣느라 힘든 학생들한테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제국의 병자들을 위해서 더 많은 치유 마법사가 필요했으니까.

알카시스 교수는 비정해지기로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했다.

어떤 핑계도 알카시스 교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교수님! 여기 이한은 지금 흑마법, 소환 마법, 환상 마법, 부여 마법, 예지 마법, 변환 마법... 또 뭐가 있지?”

가이난도는 대신 따지다가 세는 걸 멈추고 이한에게 물어보았다. 이한은 친구가 창피해서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렸다.

“하여간 이걸 다 듣고 있어요! 너무하잖아요!”

“거짓말하지 마라.”

“진짜에요! 다른 교수님들한테도 물어보세요!”

“......”

알카시스 교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잘못한 게 하나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잘못한 기분을 받아야 했다.

‘누가 보면 내가 일부러 다 듣는 줄 알 거 아니야?’

몇 분 정도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알카시스 교수는 마침내 뱉듯이 말했다.

“...예외는 없다. 조용히 해라.”

“너무해...!!”

“그만해 좀.”

이한은 가이난도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침묵 저주를 빨리 배우던가 해야지.’

*         *         *

모르툼 교수도 상당히 기침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지만(아마 탑의 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알카시스 교수도 그에 못지않게 말이 끊기는 사람이었다.

말하다가 비틀거리고, 입 안이 바짝 마르는지 콜록거리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의자에 잠시 앉아서 쉬기까지 하자 보다 못한 가르시아 교수가 대신 나섰다.

“기초 설명은 제가 할게요. 괜찮죠?”

“...부탁하지.”

“자. 여러분. 방금 화분의 새싹을 연결했었죠? 이 새싹은 마력 감응이 수월하게 되도록 품종이 개량된 식물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쉽게 치유를 할 수 있었죠. 그렇다고 해서 원리가 크게 다르진 않아요. 이런 식으로 다치고 부서진 부분을 복구하고 복원하는 건 치유 마법의 핵심 분야거든요.”

강제로 듣게 되었지만 학생들은 의외로 집중해서 들었다.

사실, 치유 마법이 워낙 인기 있는 만큼 강제로 듣게 하지 않았어도 학생들은 제법 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열 몇 명 더 늘린다고 인원 부족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치유 마법의 분야가 이런 회복만 있지는 않아요. 중독 같은 각종 상태 이상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치료 물약을 제조하기 위해 연금술. 환자가 각종 시술과 비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부여 마법. 예후를 미리 확인할 수 있게 예지 마법... 필요하다면 다른 학파의 마법들도 아낌없이 배우는 게 치유 마법의 특징이죠.”

‘흑마법은 없지 않았나?’

이한은 흑마법이 빠졌다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물어봤자 흑마법 배우는 학생들만 슬퍼질 것 같았다.

“어... 그러면 그걸 다 배워야 하나요?”

학생 중 한 명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가르시아 교수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물론 아니죠. 필요할 때만 배우면 된답니다.”

“아, 역시... 다행이네요!”

듣고 있던 이한이 무언가 이상해서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 치유 마법사들은 숫자가 적어서 환자들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데, 그러면 사실상 방금 말하신 걸 모두 익혀도 모자란 거 아닙니까?”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말을 못 들은 척 넘어갔다.

이래서 영리한 학생은!

그러는 사이 체력을 회복한 알카시스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저 설명하겠다. 방금 가르시아 교수가 말한 것처럼, 치유 마법사는 한 방향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전방향적인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마법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공부도 그렇지. 여기 뼈가 부러진 환자가 있다고 가정해봐라. 이 환자의 뼈를 아물게 하려는데, 그 환자의 뼈 구조를 모른다면 아물게 할 수 있을까?”

알카시스 교수는 손으로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물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방향으로 낫게 하겠지? 그럴 거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치유 마법사는 육체의 구조를 꿰고 있어야 한다.”

불사조 탑 사제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홀린 듯 들었다.

관심이 더 많았던 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게다가 육체의 구조라니.

불사조 탑 사제들이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서 자신이 있었다.

“갖고 들어와.”

문이 열리더니 교수만큼 피곤하고 힘들어 보이는 학생 두 명이 들어왔다.

두 선배들은 그냥 들어오지 않았다. 뒤에 사람 하나 들어갈 크기의 관을 질질 끌고 들어왔다.

벌컥!

놀랍게도 관의 문을 열자 안에는 꽁꽁 묶인 사람이 있었다.

“사슬.”

교수의 명령에 두 선배는 죄수의 사슬을 풀고 입마개도 치웠다. 그러자 죄수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빌어먹을 마법사들아! 내가 아무리 사람을 몇 명 죽였어도 이딴 식으로... 크헉.”

이한은 깜짝 놀랐다.

알카시스 교수가 죄수의 목과 팔다리에 검들을 꽂아서가 아니라(사실 그것도 좀 놀랍긴 했다), 그 솜씨가 너무 번개처럼 재빨라서였다.

허공에서 검들을 불러낸 다음 하나씩 붙잡아서 죄수의 몸에 꽂아 넣는 솜씨가 보통 쾌검이 아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교수의 검술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술렁이고 있었다.

‘치유 마법사로 오래 활동하면 검술에도 능숙해지는 건가?’

죄수의 몸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꽂힌 검이 피를 전부 흡수해버린 것이다.

“열어.”

두 선배는 죄수의 가슴팍을 열었다. 생생한 장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학생 몇 명이 충격에 기절했다. 알카시스 교수는 시니컬하게 말했다.

“깨워라. 인체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한다. 잘 들어라.”

“우... 우욱!”

가이난도가 토를 하려고 했다. 이한은 재빨리 <오고닌의 충만한 만족감>을 시전했다.

“고, 고마워. 이한.”

“나... 나도. 나도!”

*         *         *

알카시스 교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신체를 해체하는 뛰어난 검술 솜씨와, 그걸 뒷받침하는 인체 구조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의 괴로움이 덜어지진 않았다.

알카시스 교수가 강의를 일단락하고 죄수를 다시 회복시키자 학생들은 평소 보지 못했던 사람의 내밀한 모습과 복잡한 정보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창문을 열고 물었다.

“다들 괜찮아요?”

“......”

“......”

학생들은 배신감과 상처가 가득한 시선으로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았다.

가르시아 교수는 매우 미안해졌다.

“이론 설명은 대충 끝났다. 모두 앞에 놓인 끈을 들어라.”

식물의 섬유로 꼬아 만든 끈이 학생들 앞에 생겨났다.

“끊고 마법으로 이어라.”

“했습니다.”

“계속 반복해라.”

“......”

학생들은 스스로가 멍청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끈을 끊고, 잇고, 다시 끊었다.

약간 좀 멍청해 보이긴 해도 이건 효과적인 훈련이었다.

가장 쉬운 식물의 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의 끊어진 혈관은 어떻게 잇겠는가.

반복하면서 숙달되는 건 물론이고 마력 사용에 있어서 낭비도 줄어들었다.

온갖 부위를 치료해야 하는 치유 마법사에게 마력 낭비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

이런 반복으로 마력을 소모시키면 알아서 쓸데없는 낭비가 줄어들게 되어 있었다.

“제대로 해라.”

“?”

자르고 잇고 자르고 잇던 이한은 교수의 지적에 의아해했다.

방금 한 게 틀렸나?

“...아참. 교수님. 잠시만 이쪽으로 와보세요.”

가르시아 교수가 알카시스 교수를 옆으로 끌고 갔다.

생각해보니까 워낙 바쁘셔서 교수들끼리 떠들 때 안 계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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