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그러니까 말이죠.”
가르시아 교수는 뛰어난 교수답게 짧고 간단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요점만 잡아서 설명했다.
하지만 가끔은 설명을 아무리 잘해도 상대를 설득시키기 힘들 때가 있는 법.
너무 내용이 터무니없을 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학생인데 아까 말한 대로 강의들을 많이 듣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 듣는 강의마다 소질이 너무 좋아서, 교수님들이 꽤나 아끼고 있어요. 그러니까 알카시스 교수님께서도 치유 마법에 소질이 있다고 너무 많이 부르진 마시고 적당히 배려해주세요. 다른 교수님들도 있으니까요.
“...이러지 마라 진짜.”
알카시스 교수가 피곤에 찌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이러지 말라고. 누가 시켰어? 교장 선생님인가?”
알카시스 교수는 해골 교장이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다고 확신했다.
에인로가드에서 가장 피곤하고 바쁜 알카시스 교수에게 이런 장난을 칠 수 있는 건 해골 교장밖에 없었다.
나머지 교수들은 진짜 죽을 수도 있었기에 이런 장난을 치지 못했다.
“아뇨아뇨아뇨... 장난 아니에요!”
“......”
알카시스 교수는 두통이 올라와 얼굴을 찌푸렸다. 가르시아 교수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진통 마법 걸어드릴까요?”
“마법 많이 걸어봤자 안 좋아... 그래서 장난이 아니라고?”
“네.”
알카시스 교수는 방금 들은 이야기들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학생 한 명이 강의를 조금 많이 듣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가다 한 번 정도는 나오는 일이었다.
당장 가르시아 교수도 학창 시절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가 후회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 학생은 조금 수준이 아니긴 했지만...
“아까 몇 개였지? 듣는 강의가?”
“소환 마법, 환상 마법, 부여 마법, 예지 마법, 변환 마법...”
“그리고 흑마법도 있었잖아?”
“아차. 모르툼 교수님한테는 비밀로...”
“내가 가서 말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 것 같아? 어쨌든 지금 말한 강의들에서 다 평가가 좋다고?”
‘수석인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수석이라고 말하려다가 눈치를 보고 멈칫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는데 괜히 거짓말처럼 느껴져서였다.
“네...”
“...말이 되나???”
“그러게요...”
가르시아 교수도 새삼 느꼈다.
이게 옆에서 하나씩 볼 때는 미처 눈치를 못 챘는데 다른 사람한테 요약해서 말하자 조금 많이 이상했다.
“워다나즈 가문이라...?”
“워다나즈 가문하고 무슨 상관인데? 워다나즈 가문 못 만나봤어?”
“만나봤죠...”
가르시아 교수는 시무룩해졌다.
알카시스 교수한테 학창 시절 혼나던 기억이 떠올라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닌데.’
“후. 알겠어. 알겠다고. 그래. 가끔 그런 천재가 나오기도 하는 법이지.”
“가끔은 너무 넉넉하게 잡으신 것 아닌가...”
“조용히 해.”
“넵.”
“그런데 배려해주라는 건 무슨 소리지?”
알카시스 교수의 눈썹이 조금 더 기울어졌다.
학생 한 명을 특별대우하는 건 알카시스 교수 성격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설령 그 학생이 황제의 핏줄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게. 다른 교수님들도 가르칠 게 많은데 알카시스 교수님이 오래 붙잡고 계시거나... 밖에 데리고라도 나가시면... 아시잖아요.”
모든 마법이 그렇다지만, 치유 마법은 특히 더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필요한 지식량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분야까지.
빨리 쓸만한 치유 마법사로 만들겠다고 혼자 붙잡고 있으면 다른 교수들이 분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치유 마법 같은 경우에는 학생들을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물론 알카시스 교수는 매우 어이없어했다.
아무리 인원이 부족해도 그렇지 1학년 학생을 데리고 나갈 생각은 없었다.
이건 재능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역천의 재능을 갖고 있어도 그렇지,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에 1학년 학생을 데리고 가겠는가.
“가르시아 교수. 알고 있을 텐데. 지금 이렇게 하는 것도...”
학생들을 반강제로 붙잡고 치유 마법을 배우게 하고 있었지만, 알카시스 교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 중에서 배우지 않을 놈은 아무리 밀어붙여도 배우지 않을 거라고.
당연했다.
마법사만큼 고집 센 놈들이 없는데, 관심 없는 마법을 배우라고 한다고 계속 배우겠는가?
다만 억지로라도 가르쳐놓으면 인력이 부족할 때 동원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하는 일이었다.
치유 마법을 하나도 모르는 마법사와, 그래도 조금은 배운 마법사는 전혀 달랐다.
물론 핵심적인 역할까지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억지로 가르쳐놓고 핵심적인 역할까지 기대하면 그건 진짜 양심 없는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문제가 생겼을 때 보조적인 역할만 기대하는 거였는데...
“억지로 듣는 학생들한테는 한 사람 몫도 기대 안 해. 반 사람 정도만 해줘도 잘 하는 거라고. 그런데 무슨 오래 붙잡고가 나오고,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게 나와?”
어떻게든 인원 부족을 해결하려고 최소한만 가르치려고 하는데 ‘다른 교수들도 있으니 너무 수제자처럼 대하진 마세요’같은 말을 들었으니, 알카시스 교수가 황당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죠? 죄송해요. 제가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봐요.”
가르시아 교수는 머쓱해져서 사과했다.
교수들이 자꾸 이한을 볼 때마다 팔이나 다리 한쪽을 붙잡고 자기 마탑으로 잡아당겨서 걱정이 됐던 것이다.
사람은 원래 그런 식으로 잡아당겨지면 찢어졌다.
“교수님들이 자꾸 좀...”
“알겠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그리고 미안하지만 저 워다나즈는 치유 마법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어.”
“네?”
가르시아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잘 하던데?’
알카시스 교수가 살짝 눈짓을 보냈다.
“시늉만 내고 있잖나. 마력이 안 줄어.”
“...아 그게 그러니까...”
가르시아 교수는 아까 설명하다가 남은 마지막 부분을 마저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 * *
“...그런 거죠! 별로 안 놀랍죠?”
정말 놀라운 건 먼저 말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알카시스 교수는 대답이 없었다.
“교수님?”
“......”
“교수님??”
“마력이 정확히 얼마나 많다고?”
“교수님. 아까 관심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냥 물어본 거야.”
알카시스 교수는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이건 좀 불공평한데. 난 바빠서 다른 교수들이 이야기할 때 자리에 없었잖아.”
“아 왜 그러세요 진짜.”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팔다리가 끌려가는 상상을 애써 밀어내며 말했다.
“그리고 이한 학생 치유 마법에 그렇게까지 소질 있지도 않아요.”
“...이걸로 해봐라.”
알카시스 교수는 이한 앞에서 밧줄을 치우고 뼈를 던졌다.
다른 학생들은 기겁했지만 이미 흑마법으로 적응이 끝난 이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뼈를 받아들였다.
콰득!
뼈를 부러뜨린 이한은 즉시 그 뼈를 다시 붙였다.
놀라운 속도였다.
뼈에 대한 이해, 타고난 마력량, 섬세한 운용 능력까지.
정확한 건 더 가르쳐봐야 알 수 있었지만, 저것만 봐도 치유 마법에 특출난 재능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이한 학생이 흑마법을 열심히 배워서 그래요.”
가르시아 교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가르시아 교수. 마력이 많으면 얼마나 유익한지 알잖나.”
“그 이야기 어제는 버두스 교수님이 하셨고 그저께는 크라어 교수님이 하셨고 그끄저께는 모르툼 교수님도 하셨거든요...”
“...하여간 아까 한 말은 취소.”
“아 진짜 왜 그러세요!”
* * *
“해체 말고는 재밌었지?”
“사실 해체도 좀 재밌지 않았어?”
“...그, 그래. 다가오지 마.”
“?!”
강의가 끝났을 때 학생들의 평가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반강제로 배우게 한 것과 강의 도중에 사람을 해체한 것까지 감안하면 아주 긍정적인 결과였다.
“치유 마법을 더 배우고 싶은 사람은... 이쪽으로...”
알카시스 교수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바삐 상층 첩탑으로 사라졌고, 교수 밑에서 배우는 고학년 학생들이 남아 1학년들을 불렀다.
반강제로 듣게 된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 중에 치유 마법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학생들도 꽤 될 터.
그런 후배들을 도와줘야 하는 게 선배들의 역할이었다.
...사실 원래라면 교수가 해야 할 일이긴 한데 알카시스 교수는 너무 바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야...”
“네, 네?”
기운차게 인사를 한 학생은 선배의 시큰둥한 반응에 당황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목소리 좀 낮춰... 잠을 못 자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아...”
“......”
“......”
‘치유 마법 들으려던 학생들도 도망칠 것 같은데.’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티질링 사제.”
“괜찮으십니까?”
“뭘 말하는 거지?”
“치유 마법까지 들으셔도...”
“아.”
이한은 잠깐 멈칫했다.
사실 강의 때문에 놀랐다기보다는 불사조 탑 학생들도 알고 있어서 놀란 것이었다.
“이제 와서 하나 추가된다고 뭐 달라지겠어. 그리고 강제로 들어야 하는 이상 공부 안 해놓으면 나만 손해잖나.”
“진지하게 건강이 걱정됩니다만...”
불사조 탑 사제들이 걸어가면서 이한을 보고 수군거렸다.
-누군가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귀족의 명예와 자존심이 있는데 어찌...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지!
‘이 자식들이 안 들리게 말할 것이지 찜찜하게.’
이한은 괜히 찜찜해졌다.
사제들이 진지하게 이한의 수명을 걱정하면서 떠들자 없던 불안함도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이한을 보고 수군거리는 건 불사조 탑 사제들만이 아니었다.
“쟤가... 교수님이 말하신... 맞지?”
“그래... 치유 마법의... 장점을... 알려주고... 끌어들여야...”
채찍과 당근.
이 오래된 전술은 마법 교육에서도 사용됐다.
반강제로 앉혀서 마법을 배우게 하는 게 채찍이라면, 그 마법의 장점을 알려주는 것이 당근.
안 그래도 이탈자들 많아서 자기들 일이 늘어나고 있는 치유 마법 전공 고학년 학생들은 후배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알카시스 교수가 떠나기 전에 급하게 남기고 간 말까지.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알겠지?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잘 키우면 열 사람 몫을 해낼 재목이다. 치유 마법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하지만 교수님... 어떻게요? 요즘 1학년들은 영악해서 다 눈치 챘을 거라구요.
당장 교수부터가 피로로 쓰러져 죽을 것 같은데 어떤 장점을 느낄 수 있겠는가.
-괜찮다. 사람마다 우선시하는 가치가 다르니까. 보아하니 안락함이나 편안한 삶에 가치를 두는 성격은 아니다. 다른 강의 다 듣는 거 보니 가르시아 교수 같은 성격이야. 학구열로 타오르는. 알겠나?
-아. 알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걸로 잘 설득해라.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물론입니다. 교수님. 교수님보다 저희가 더 후배를 원합니다!
“치유 마법에... 쿨럭. 커헉. 쿨럭쿨럭. 관심이 있나?”
“...괜찮으십니까?”
선배가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말을 걸어오자 이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건조해서... 건조해서 그런 거다. 어쨌든! 치유 마법에 관심이 있는 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오는 거잖아?”
“어... 아직 잘 모르는 게 많아서, 궁금한 정도입니다만.”
이한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싫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두 선배는 전혀 기분 상하지 않았다는 듯이 즉시 대답했다.
“그게 바로 관심이지.”
“아주 놀라운 일이야. 치유 마법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있다니. 나는 처음 보는 것 같아.”
“예?”
이한은 뒤의 사제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기 뒤의 사제들이 보이는 관심에 비하면 이한의 관심은 보름달 앞의 반딧불 수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