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55화 (255/687)

255화

이한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워다나즈!”

“모르는 일이라고 했잖나.”

“그게 아니라 지시를 해달라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하냐!”

라파드엘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자 가이난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 기사 가문 출신이잖아! 지금 같은 상황은 네가 나서야지!”

“닥쳐! 황자 놈아! 넌 그럼 왜 황족인데 그 모양이냐!”

“아니...!”

너무 터무니없는 억지에 가이난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분노했다.

“야! 내가 황자인 것과 뭔 상관인데! 너 기사 출신 맞기나 하냐?! 뭔 기사가 이래!”

“황족이면 황족답게 능력을 보여주기나 해라! 같은 탑의 황녀 전하는 우리 탑에도 추종자가 있는데 넌 뭐냐?”

“이미 능력 보여주고 있거든?! 우리 탑은 다 내 능력 알거든?! 이한! 내 능력 알지?!”

가이난도는 상대가 푸른 용의 탑 상황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추한 억지를 부렸다.

“이한??”

이한과 이미르그는 둘을 두고 저 멀리 후퇴하고 있었다.

가이난도는 기겁해서 외쳤다.

“이한!! 그랄 저 놈만 버려야지! 나는 왜!!”

“빨리 달리기나 해라. 쓸데없이 싸우는 거 보니 여유 있나 했지.”

가이난도와 라파드엘은 서로를 욕하며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며 이미르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내...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저래도 괜찮을까???”

“괜찮아. 원래 이렇게 해야 서로 정신을 차리고 사이가 좋아지지.”

“...?!”

이미르그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었지만 이한의 얼굴이 너무 진지했다.

‘워... 워다나즈라면 무슨 생각이 있는 거겠지...?’

‘저 놈들은 한 번 잡혀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군.’

*         *         *

불운하게도 둘은 잡히지 않았다. 헉헉대며 언덕으로 올라왔다.

“여, 헉헉. 여기 괜찮을까? 그냥 출구까지 가는 게... 헉헉.”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그냥 가는 건 위험해. 한 번 처리하고 가자.”

언데드들의 진정한 강함은 그 한계가 없는 끈기에 있었다.

다른 몬스터들이 지쳐서 추격을 포기할 때에도 언데드들은 끝없이 몰려올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빠르다고 섣불리 도주를 시도했다가 괜히 포위라도 당하면 더 불리해졌다.

“여기는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데.”

라파드엘은 불안한 표정으로 신전 유적 폐허를 둘러보았다.

다른 차원이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세계는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흘러온 잡동사니들과 폐허들이 있었다.

언데드 계에는 무덤이나 묘지, 폐허 직전의 건물들이 자주 보이기 마련.

지금 넷은 무너져가는 신전 유적 폐허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아무것도 없이 벌판에서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전 유적 폐허는 너무 약해보였다.

“이 벽... 밀면 무너지는 거 아닌가? 언데드들이 밀어붙이면...”

“그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보강도 할 생각이고.”

“어떻게?”

이한은 대답 대신 지팡이를 휘둘렀다.

“모여라, 흙이여!”

폐허 벽 뒤쪽에 흙이 쌓였다. 그걸 본 라파드엘은 머뭇거렸다.

“벽 뒤에 흙더미를 쌓아놓으면 도움이야 되겠지만 이 정도로는...”

“모여라, 흙이여. 모여라, 흙이여. 모여라, 흙이여...”

이한은 숨 쉴 틈도 없이 폐허 안쪽 곳곳에 흙더미를 쌓아서 벽이 무너지지 않게 보강해버렸다.

그러자 방금까지만 해도 꽤 허술해보이던 신전 유적 폐허가 제법 괜찮은 급조 요새가 되었다.

사방이 벽과 흙으로 막혀 있는 만큼 안쪽 넓은 공간에서 버티기 수월한 급조 요새.

신전 입구 통로를 제외하면 어지간해서는 적이 들어올 수 없어보였다.

“됐다.”

“......”

라파드엘은 새삼 경악했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법 관해서 저 워다나즈 놈이 보여주는 능력은 정말...

대마법사가 되는 놈은 저런 놈인가 싶을 정도였다.

“입구를 아예 다 막을 순 없나?”

“나중에 치우기도 곤란하고, 괜히 다 막아버리면 언데드 놈들이 이상한 곳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입구에서 유인한 다음에 하나씩 처리하는 게 낫지.”

“그렇군.”

“자. 그러면 유인해와라.”

“...뭐라고?”

“입구에서 유인해오라고.”

이한은 지팡이를 흔들었다.

안쪽 공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입구 통로를 통과하는 순간 마법을 날려 적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이한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대신 입구에서 적들을 끌어들일 사람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맡아줄 사람은 역시...

“네가 기사잖나. 설마 검도 제대로 못 다루는 친구들을 시킬 생각인가?”

“......”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왠지 매우 열이 받았다.

라파드엘은 속으로 이한을 욕하며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         *         *

콰직!

“그렇지!”

또 하나의 언데드가 입구 통로를 지나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긴장한 표정으로 목검을 겨누고 있던 라파드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슬쩍 밖을 보니 아까 몰려왔던 언데드들의 숫자도 한 1/4 정도로 줄어 있는 상태.

이 정도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한. 그런데 저번에 교수님께서 그러지 않았어?”

여유가 돌아온 가이난도는 이한에게 속삭였다.

저번에 분명, 이한의 마력이 흘러나가서 다른 언데드들을...

“가이난도. 지금 밖에 언데드들이 밀고 들어오는데 한가한 모양이구나. 네가 유인할래?”

“아... 아니. 아니야.”

가이난도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더 몰려오진 않겠지.’

마력 때문에 언데드들이 몰려오는 건 그렇다 쳐도, 저번보다 더 많이 나타난 건 좀 찜찜한 일이었다.

우연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혹시나...

‘저번에 근처까지 왔던 놈들이 이번에 더 몰려온 거라면...’

저번에 근처까지 왔지만 이한을 보지 못한 언데드들이,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모여드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앞으로 들어오면 들어올 때마다 더 많은 언데드들이 꼬인다는 것 아닌가.

정령계에 들어가면 정령들이 피하고, 언데드계에 들어가면 언데드들이 습격하는 거라면 앞으로 소환 마법이 상당히 고달파질 게 분명했다.

이한은 만약 그럴 경우 라파드엘과 가이난도는 꼭 같이 데리고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 쓰러뜨린 것 같은데.”

라파드엘은 주저하며 말했다.

통로 밖에서 더 이상 언데드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가서 확인해봐야겠군.”

“작작 좀 시ㅋ... 아. 네가 하려는 거였군.”

“......”

“.....”

나가려던 이한과 가이난도는 딱하다는 듯이 라파드엘을 쳐다보았다.

라파드엘의 얼굴이 붉어졌다.

“잘못 들었을 뿐이다!”

“그, 그래.”

이한과 가이난도는 통로를 지나 고개를 내밀었다.

아까 그 많던 언데드들은 사라졌고, 남은 건...

“으헉!”

가이난도는 기겁해서 이한 뒤로 피했다. 언데드가 아직 하나 남아 있었던 것이다.

뒤쪽에 위치한 탓에 늦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걱정 마라. 한 마리 정도면 그냥 쉽게 처리할 수 있...”

-■■■■!

아직 공격이나 별다른 제압도 하지 않았는데 가까이 접근한 스켈레톤 전사가 엎드렸다.

그 모습에 이한과 가이난도는 할 말을 잃었다.

“어. 이럴 거면 그냥 아까 싸울 필요 없이 기다려도 되지 않았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언데드들은 뭉칠수록 난폭해져서 절대 이렇게 쉽게 굴복하지 않았을 거다.”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         *         *

언데드 무리를 해치운 다음 넷은 추가로 언데드들을 찾아 계약에 성공했다.

출구로 돌아오자 밀레이 교수가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혹시 언데드 계에 들어갔다가 나온 겁니까?”

“아. 네. 과제 때문에요.”

“이틀 정도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군요.”

밀레이 교수는 단안경의 위치를 살짝 바로잡으며 말했다.

“다른 차원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합니다. 지금 들어갔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헉! 저희 당했습니다!”

가이난도는 알겠다는 듯이 외쳤다.

“안을 돌아다니는데 언데드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서 덤벼들었거든요! 그게 그래서...!”

“?”

밀레이 교수는 듣다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갸우뚱거렸다.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하면 언데드들의 성질이 달라지거나 행동양식이 달라지지, 안전장치가 있는데도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서 덤벼드는 건 전혀 다른...”

“과연. 마력의 흐름이란 참으로 놀랍군요. 앞으로 들어갈 때 안전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들어가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빠르게 화제를 전환시켰다.

“교수님. 저희가 계약한 언데드들을 확인해주시겠습니까?”

“한 번 보도록 하죠.”

밀레이 교수는 제자의 사악한 속셈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 마법의 기말 전 과제인 소환수 계약.

학생들은 언제나 강하고 멋진 소환수들을 찾아서 계약하고 싶어 했지만, 교수들의 평가 기준은 조금 달랐다.

강력하고 희귀한 소환수를 찾는 건 고학년이 되고 나서 해도 됐다.

지금 중요한 건 소환수를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는가였다.

같은 소환수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충성을 받는 계약이 있고, 거의 통제가 불가능한 계약이 있는 만큼 주의해야 했다.

물론 밀레이 교수도 1학년 학생들이 복잡하고 철저한 계약으로 소환수들을 휘어잡길 기대하진 않았다. 그건 1학년 수준에서는 무리였다.

교수가 기대하는 건 간단한 약식 계약밖에 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통제하는 모습이었다.

“돌아서게 해보세요.”

“돌아서. 돌아서봐. 돌아서줘. 야. 제발...!”

가이난도가 한 10번쯤 말하자 스켈레톤 전사는 슬금슬금 느릿느릿 돌아섰다.

밀레이 교수는 알았다는 듯이 깃펜을 놀렸다.

“아까는 좀 더 친했는데 오늘 좀 힘들어서 이런가봐요.”

가이난도는 스켈레톤 전사와 친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어깨에 팔을 둘렀다.

스켈레톤 전사는 귀찮다는 듯이 팔을 밀어냈다.

“이번에는 숫자 4를 손가락으로 표현해보도록 하세요.”

“숫자 4... 숫자 4...”

가이난도뿐만 아니라 라파드엘이나 이미르그도 비슷했다.

계약은 했지만 세세한 지시는 생각보다 소환수들이 성가셔했다.

이한의 차례가 되자 밀레이 교수는 기대감을 감추기 위해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중간고사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학생인 만큼, 소환수를 어떤 방식으로 설득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엎드리게 해보세요.”

“엎드려.”

철푸덕!

스켈레톤 전사는 즉시 엎드렸다.

언데드에게 기강이 잡혀 있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어도, 지금 그 표현만큼 어울리는 단어도 없었다.

“...숫자 4를 손가락으로...”

“숫자 4를 표현해봐.”

스켈레톤 전사는 바로 손가락 네 개를 접었다.

밀레이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소환 마법의 달인인 만큼 지금 이한이 어떤 방식으로 언데드를 통제하고 있는지 당연히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언데드를 위압해서 명령을 듣게 하고 있다니?’

결과적으로 틀린 방법은 아니었지만 황당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강력한 존재들을 만나 계약할 때를 대비해 다루는 법을 배우라고 내준 과제였는데, 그냥 힘으로 제압하다니.

“...잘했습니다. 만점이군요.”

황당하긴 했지만 밀레이 교수는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저것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였으니까.

“고생했다. 고나달테스.”

“......”

밀레이 교수는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하기로 결심했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