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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61화 (261/687)

261화

“왜 그러지?”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그리폰 위에서 비틀거리자 의아해했다.

이한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교수님께서 옆에 계신 줄 몰랐습니다.”

“관찰력을 더 기르도록.”

볼라디 교수는 이한의 부주의함을 가볍게 질책했다.

뛰어난 전투 마법사는 언제 어디서나 방심하지 않고 일정 이상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법.

그리고 그 집중력에는 관찰력도 포함됐다.

첨탑 마구간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을 때도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혹시 교수님 아닐까?’같은 의심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명심해두겠습니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충고를 뼛속 깊숙이 새겼다.

마법학교에서는 상대방의 걸음걸이만 보고서도 누군지 알아맞힐 수 있어야 했다.

그 정도도 못하는 학생은 살아남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 계셨으면 말을 걸어주시지 그랬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말을 걸지 말던가.’

이한은 왜 미리 안 걸고 그리폰 위에 타고 있을 때 말을 걸었나 싶었다.

혹시 이한을 추락시키려는 의도였나?

볼라디 교수의 눈썹이 살짝 휘었다. 교수는 천천히 말했다.

“마구간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

마법학교에는 맞는 말을 할 때 더 얄미운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볼라디 교수였다.

평소에는 할 거 다 하는 사람이 예의범절을 이야기하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1학년을 던전에 데리고 가지 말라는 예의범절은 제국에 없나?’

“그... 그렇군요.”

이한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볼라디 교수의 등장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생각을 정리해보니 그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볼라디 교수는 다른 교수들과 달리 이한의 규칙 위반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교수님. 혹시 제가 밖에 나온 걸 비밀로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지.”

볼라디 교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이한은 깊이 감동했다.

‘미친 교수들도 가끔 장점이 있구나!’

이렇게 흔쾌히 들어줄 줄이야.

앞에서 날아가던 아무르가 둘의 대화를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은 거 맞소?”

“괜찮습니다. 아무르 님. 친한 교수님이라 비밀을 지켜주실 겁니다.”

“그렇소? 훌륭한 스승을 만났구려.”

아무르는 이한의 말에 안도했다.

운 없게 다른 마법사에게 들킨 줄 알았는데, 사정을 알아주는 스승이었다니.

흉흉하고 살벌한 소문만 들려오는 에인로가드에도 한 줄기 따뜻한 정(情)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르는 흐뭇함에 코밑을 쓱 훔쳤다.

“꼭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건 배우는 제자로서 행운이라 할 수 있소.”

아무르는 볼라디 교수를 칭찬했다. 볼라디 교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눈이 부릅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양심이 없으시...군!’

이한이 볼라디 교수를 칭찬할 수는 있어도, 볼라디 교수가 저 칭찬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니.

해골 교장이었다면 차라리 낫지 볼라디 교수는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법사님은 무슨 일 때문에 외출하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소?”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아하.”

“아하. ...?”

같이 고개를 끄덕이던 이한은 멈칫했다.

어라?

“하긴 교수님들은 단순히 마법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고민해야 하겠구려. 참으로 힘들겠소.”

“음.”

볼라디 교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고함을 지르고 싶은 걸 견뎌내야 했다.

양심이...!!

“어떤 게 필요하시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괜찮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소.”

볼라디 교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이 열렸다.

“화염, 물, 번개 속성에 면역을 가지고 있고, 강한 마법 저항력을 가졌으며, 시속 60km 이상의 속력을...”

“잠, 잠깐.”

당황한 아무르는 예의도 잊고 볼라디 교수의 말을 끊었다.

“그런 몬스터가 왜 필요한 것이오?”

“대련을 위해서.”

“...잠시만... 기말고사 준비라고 하지 않았소?”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진실을 깨닫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설... 설마...”

“아마 지금 생각하시는 게 맞으실 겁니다.”

이한이 속삭였다.

아무르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 혹시 고학년들의...”

“아닙니다.”

“...아니...”

이한은 아무르의 당혹스러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 가장 충격을 받아야 하는 건 이한이었다.

‘어쩐지 재수가 좋더라니.’

볼라디 교수가 휴강한다고 즐거워 할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뭘 하나 했더니 밖에 나가서 이한하고 싸울 몬스터를 데리고 올 준비를...

막아야했다.

반드시!

이한은 아무르에게 다시 속삭였다.

“혹시 집에 손님 한 명 더 초대해도 괜찮습니까?”

“물론이오.”

아무르는 이한이 빠져나올 경우 자신의 집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해준 적이 있었다.

추가로 허락을 받은 이한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교수님.”

“?”

“마을에 도착하면 어디에서 묵으실 겁니까?”

“여관.”

“괜찮으시다면 여기 아무르 님의 집에서 같이 묵으시죠. 굳이 여관까지 가시기도 귀찮잖습니까.”

볼라디 교수의 장점은 고개를 잘 끄덕인다는 점이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이한은 결심했다.

볼라디 교수를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겠다고.

...누가 들으면 독살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독살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붙잡아놓겠다는 뜻에 가까웠다.

“슬슬 비행에 집중해야 할 것 같소.”

“!”

아무르가 앞을 가리켰다. 이한은 놀란 눈으로 앞에 생겨난 장애물들을 쳐다보았다.

불타는 화염의 고리들이 하늘 곳곳에 생겨나있었다.

“저게 대체...??”

“허락 받지 않은 출입자들을 걸러내는 함정이오. 오늘은 가장 왼쪽의 고리를 통과하면 되오.”

“그, 그렇군요.”

이한은 화염의 고리를 통과하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했다.

‘전에 이런 꿈을 꿨던 것 같은데?’

*         *         *

거대한 마구간 근처에 위치한 아무르의 집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튼튼하고 안락한 집이었다.

문제는 식료품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음. 동물들의 먹이는 여기 넉넉히 있긴 하오만...”

“안 됩니다.”

이한은 순간 사료를 요리해서 교수님에게 대접해볼까 생각했지만 바로 제정신을 차렸다.

아직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근처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모아오겠습니다. 혹시 닭 기르십니까?”

“...식료품이 필요하다면 가서 사와도 되지 않소?”

아무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

이한은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여긴 차가운 무법의 땅이 아니라 질서와 규칙이 있는 제국의 마을이었던 것이다.

‘하긴 사오면 되겠군.’

아무르가 대충 끼니를 때우는 콩 통조림들은 교수를 대접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사실 볼라디 교수를 대접하기에 적합한 음식이 뭔지는 이한도 아직 잘 몰랐지만, 어쨌든 저건 아니었다.

‘최대한 먹고 마시게 하는 거다.’

푸짐하고 따뜻한 식사와 술을 마시다보면 교수도 사람인 이상 귀찮아져서 침대에 누울 것 아닌가.

그리고 일어나면 또 한 번 푸짐하고 따뜻한 식사와 술을...

“그러면 제가 사오겠습니다.”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소만...”

아무르는 이한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대귀족 가문 출신 같은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컸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뭐가 필요한지 제대로 고르기나 할까?

1시간 후.

아무르는 이한이 그리폰을 길들였을 때보다 더 놀랐다.

“아, 아니! 그리폰을 길들였을 때보다 더 놀라운 일이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열심히 셔벗과 머랭, 파이와 비스코티 등을 만들고 있던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리폰을 길들인 것보다 더 놀랍지는...

“두 분 먼저 앉아서 식사하시죠.”

“하지만 그럴 수는...”

“그게 절 도와주시는 겁니다.”

이한은 눈짓하며 말했다.

아무르는 ‘아!’하고 탄식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광이 교수의 심기를 달래려는 제자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괜찮겠지.’

사실 오해했다고 하더라도 크게 오해는 아닐 것이다.

강력한 몬스터를 제자하고 싸움 붙이려고 가져오는 교수는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마법사님. 준비한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먼저 드시는 게 좋겠소.”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사각형 모양의 널찍한 탁자 위에는 벌써 완성된 따끈따끈한 음식들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큼지막하게 갓 구워낸 흰 빵, 빵을 찍어먹을 벌꿀과 향신료, 기름진 음식을 먹기 전에 속을 달래줄 각종 채소로 된 찜과 죽과 수프, 거대한 고깃덩이를 통째로 양념한 뒤 연기로 구운 브리스킷, 마찬가지로 단단하게 훈제된 연어 구이, 가자미와 바지락을 넣은 뒤 와인으로 쪄낸 생선찜 등.

이한이 지금 만들고 있는 각종 과일들과 단 디저트가 없어도 충분히 풍성한 식탁이었다. 평소 끼니를 대충 때우는 아무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법사님. 여기...”

볼라디 교수에게 술을 권하려던 아무르는 놀랐다.

교수가 식탁 위에서 야채와 채소, 과일만 골라 먹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고기는 내키지 않으십니까?”

“좋아하지 않아서.”

이한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볼라디 교수의 취향을 알지 못하는 만큼 여러 가지 던져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군.’

뒤에서 순식간에 요리 방향을 전환하는 이한의 모습에 아무르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필로네 마을에서 십 년 넘게 일한 연금술사도 저렇게 한 점의 막힘없이 방향을 전환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한은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냈다. 그런 다음 바로 기름에 튀겼다.

단호박과 가지가 튀겨지자 치직거리며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났다. 이한은 가볍게 튀긴 야채들을 소스와 함께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어떻습니까?”

“맛있군.”

볼라디 교수가 잘 먹자 이한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토마토와 대파를 잘라 넣고 계란을 푼 다음 휘휘 저어 볶아서 내놓고, 아까 사온 아스파라거스의 껍질을 벗기고 살짝 데친 뒤 버터와 함께 볶았다.

앞에 쌓이는 접시마다 볼라디 교수가 잘 먹자 아무르도 안심하고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둘이 술을 마시는 소리가 들리자 이한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쿵!

누군가 이마를 박는 소리가 났다. 이한은 표정을 관리하며 돌아섰다.

“와인 샐러드도 드실...”

말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아무르는 얼굴이 불콰해져서 쿨쿨 자고 있었고, 볼라디 교수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

이한은 아무르를 욕하지 않았다. 아무르는 최선을 다해서 잘해준 사람이었다.

...볼라디 교수가 미친놈이어서 그렇지.

“음식은 충분한 것 같군. 슬슬 식사하도록.”

“...아. 예.”

취기 하나 없는 볼라디 교수의 목소리에 이한은 씁쓸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한은 고기에 칼질을 했다. 워낙 잘 만들어져서 그런지 고기는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이 와중에도 고기는 맛있군...’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하게 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가볍게 훈계했다.

이한은 포크를 던지려다가 말았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늦었으니 식사가 끝나는 대로 자는 게 좋겠군. 일어나는 대로 출발하지.”

“예? 어딜 말입니까?”

“몬스터를 거래하러.”

볼라디 교수는 대답하고서 의아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걸 보고 싶어서 식사를 대접한 게 아니었나?”

“...제 얄팍한 속마음을 들켜서 부끄럽습니다.”

“향상심과 호기심은 마법사의 덕목. 부끄러워할 건 없다. 앞으로는 그냥 말하도록.”

제자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대접을 받았지만, 볼라디 교수는 원래 이런 식으로 돌려서 말하는 걸 선호하지 않았다.

‘내가 무조건 파토낸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체면과 상관없이 진상 고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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