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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62화 (262/687)

296262화

밤이 늦은 만큼 이한은 식사 후 정리를 마치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마음이 심란해서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워낙 피곤해서 그런지 머리를 대자마자 눈이 감겼다.

그리고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드래곤을 데리고 오는 악몽을 꾸었다.

-이건 진짜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 상소하겠습니다.

-폐하께서도 허락하셨다.

-말도 안 돼!

*         *         *

아침에 일어난 이한은 한숨을 내쉬며 주전자에 든 커피를 잔에 따랐다.

볼라디 교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걸어 나왔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커피를 보며 멈칫하는 걸 알아차렸다.

“차가 좋으십니까?”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찻잎을 잔에 넣었다.

만약을 몰라 모든 경우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 다 일어나셨소? 아. 커피는... 아니오. 잘 마시겠소.”

“아닙니다. 혹시 따뜻한 우유가 좋으십니까?”

“그렇긴 하오만...”

아무르는 이한이 바로 우유를 잔에 따르는 걸 보며 놀랐다.

마법인가?

“마법으로...?”

“그냥 다 준비해놓은 건데요.”

“...??”

찻잔을 홀짝이던 볼라디 교수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출발하지.”

“예.”

“행운을 비오.”

아무르는 이한에게 말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해했다.

“감사합니다.”

“행운을 비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행운을 비오.”

“...그만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서서 볼라디 교수와 같이 나가는 이한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         *         *

“그런데 교수님. 어디에서 그런 희귀한 몬스터를 구매하시려는 겁니까?”

이한은 볼라디 교수에게 물었다.

필로네 마을이 도시처럼 번화하고 드넓은 곳은 아니었지만, 마을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크고 번영한 곳이었다.

근처에 제국 최고의 마법학교가 있는 만큼 온갖 관련자들이 마을을 드나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희귀한 몬스터를 파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애초에 일반적인 마을에는 아무르 마구간 같은 곳도 없었다.

‘내가 모르는 곳인가?’

나름 몇 번 나와서 돌아다닌 만큼 이한은 필로네 마을을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희귀한 몬스터를 파는, 이한이 모르는 곳이 있나?

“판매자를 불렀지.”

“!”

볼라디 교수는 그냥 쉰 게 아니었다.

쉬는 날 제국 곳곳에 희귀한 몬스터를 구한다고 연락을 보낸 것이다.

광대한 제국 각지에 위치한 모험가들이나 탐험가들 중에는 이런 의뢰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마 지금쯤 상당수가 포획한 몬스터들을 데리고 필로네 마을에 도착해 있을 터.

설명을 들은 이한은 속으로 욕했다.

‘모험가 놈들이 괜히 욕을 먹는 게 아니군.’

누군가 비싸게 의뢰를 건다고 낼름 받아먹지 말고 그 의뢰를 왜 걸었는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미치광이 마법사가 제자한테 그 몬스터를 던지면 어쩌려고!

‘용서하지 않겠다.’

이한은 다시 한 번 이 거래를 파토내겠다고 다짐했다.

“이야! 여기입니다, 여기! 마법사님! 반갑습니다!”

멀리서 오크 모험가가 손을 휘둘렀다. 전신에서 ‘나는 노련하다’라고 외치는 듯한 복장을 하고 있는 오크 모험가였다.

그 뒤에는 거대한 금속 우리가 있었다. 검은 천으로 꽁꽁 덮여 있었지만 안에 뭐가 있을지는 짐작이 갔다.

“안녕하십니까. 편지로 말씀드린 킬베덱이라 합니다. 잠깐. 옆의 분은 누구십니까?”

“제자.”

“아하.”

킬베덱은 멈칫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제가 포획해 온 몬스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을 걷지 않고 설명하는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두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모험가는 한 박자 쉬고 목소리를 올려서 외쳤다.

“제가 포획해 온 몬스터는... 바실리스크입니다!!”

“!”

이한은 놀랐다.

그리고 저 앞의 오크 모험가를 공격하더라도 이건 정당방위가 아닐까 고민했다.

“바실리스크! 마법사님들이라면 당연히 아시겠죠. 뱀들의 왕이자 지독한 석화의 사안(邪眼)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화염과 물, 번개에도 지지 않고 혓바닥 한 번 날름거릴 시간에 땅 끝에서 반대 끝까지 달려버릴 민첩함...”

“허튼 소리 그만 하십시오!”

이한은 단호하게 끼어들었다.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서 꺼지게 해야 했다.

“그쪽의 속셈은 뻔히 보입니다. 많고 많은 강력한 몬스터들 중에 굳이 바실리스크라니! 검은 천으로 가릴 핑계가 필요했던 거겠죠. 천을 치웠다가는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고 우겨야 하니 말입니다! 바실리스크를 가둘 수 있는 사람이 안대는 채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분명 저 안에는 덩치가 비슷한 가짜가 들어 있을 겁니다!”

“그...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지적을 당한 킬베덱은 말을 더듬었다. 이한은 미안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저 분의 복장을 보십시오. 분명 비싸고 오래 사용한 것 같은 복장이지만, 손은 속일 수 없습니다. 상처나 흉터 하나 없는 손 아닙니까!”

이한은 대충 보이는 대로 우기기 시작했다.

사실 손에 상처나 흉터가 없어도 노련한 모험가일 수 있었다. 치유 마법으로 회복한 걸 수도 있고 실력이 좋아서 안 다친 걸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분위기였다.

상대가 열이 받아서 ‘이 거래는 못하겠소!’라고 할 때까지 트집을 잡아야 한다!

“...잘못했습니다! 크흑흑!”

“?!?!”

갑자기 오크 모험가는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제가 감히 마법사님들의 눈을 속이려고 하다니...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나봅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빚 때문에...!”

“......”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는 사이 볼라디 교수가 옆에서 칭찬했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꺼지도록.”

볼라디 교수는 킬베덱에게 별다른 제재나 보복을 하지 않고 쫓아냈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 자가 사기꾼이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 하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지.”

볼라디 교수는 애초에 모험가들을 크게 믿지 않았다.

온갖 곳에 편지를 보내고 의뢰를 전달해 가능한 많은 판매자들을 불러모은 것도 그래서였다.

아무리 많이 불러봤자 열 중의 아홉은 사기꾼일 테니까.

“그, 그렇군요.”

“다음 사람을 부르도록 하지.”

‘제발 사기꾼이었으면 좋겠군.’

이한은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모험가 놈들이 전부 이런 식이라면...!

*         *         *

“어떻게 생각하나?”

“예?”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 선량하신 제국 모험가 아닙니까?”

처음에 이한이 오크 모험가의 수상함을 지적한 게 너무 뛰어났는지, 볼라디 교수는 다음 모험가가 와도 이한에게 똑같은 걸 요구했다.

당연히 이한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젠장. 대충 던진 거였는데.’

트집 잡은 게 전부 진짜일 줄 이한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좀... 수상하긴 합니다.”

“어떤 점이?”

“...먼저 희귀한 몬스터를 갖고 온 이상 저 모험가 분은 전혀 켕겨하거나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 분은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불안해하는 감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그냥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게 불안한 걸 수도 있었고 화장실이 급한 걸 수도 있었지만 이한은 무자비하게 트집을 잡아댔다.

“제기랄! 마법사 놈들은 이래서 싫다니까!”

“......”

또 한 명의 모험가가 있는 짐들을 다 버리고 후다닥 도망쳤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세 명의 모험가들이 사기를 치려다가 쫓겨났다(그 중 한 명은 평범한 토끼를 데리고 와서 악마도 두려워하는 몬스터인 알 미라즈라고 우겨댔다).

이한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이쯤 되자 이한은 제국 모험가들의 윤리성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제국 괜찮은 거 맞나?’

방학 기간에라도 모험가들이 에인로가드에 와서 해골 교장의 윤리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

이한은 안색을 굳혔다.

이번에 온 모험가들의 전신에서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뭐지?’

신경을 살살 건드리는 것 같은 기묘한 위화감.

이한은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인상을 찌푸렸다.

볼라디 교수가 옆에서 말했다.

“살기다.”

“예?”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것. 그게 살기다.”

“...!”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아까 사기꾼들과 달리 지금 다가오는 모험가들에게서는 진한 혈향이 풍겼던 것이다.

‘미친놈들인가?’

여기가 마법학교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를 건드리면 다른 마법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뻔히 알 텐데.

그러나 눈앞의 모험가들은 그런 논리적인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희귀한 물건을 가지러 온 마법사는 그만한 황금을 가지고 있을 테니, 무슨 수를 써서든 뺏는다!

‘뒷일’이나 ‘보복’같은 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크게 한탕하고 잡히지 않으면 그만이 생각의 전부였다.

“마법사님. 이리 오시죠.”

“가까이 오셔야 몬스터를 확인할 것 아닙니까.”

두 모험가의 살짝 쉰 듯한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탐욕이 일렁였다.

이한은 혀를 찼다.

“어리석은 놈들.”

“...!”

“지금 너희가 누굴 상대하는지 알고나 있는 건가?”

다른 마법사라면 모를까 상대가 볼라디 교수인 만큼 저 모험가들의 미래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시길래?”

상황이 약간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닫자 모험가의 목소리가 좀 더 거칠어졌다.

탁-

“?”

볼라디 교수가 이한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처리하도록.”

“예?”

볼라디 교수는 턱짓했다. 처리하란 뜻이었다.

이한은 갑자기 민망해졌다.

‘아니...’

상대한테 ‘너희가 누굴 상대하는지 아나?’라고 한 다음 볼라디 교수가 싸우는 걸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그냥 ‘내가 누군지 아나?’하는 미친놈 아닌가.

‘이걸 꼭 날 시키셔야 하나?’

“누구시냐고 물었잖나?”

“알 거 없다.”

이한은 말과 함께 지팡이를 뽑아들었다. 동시에 모험가들도 무기를 뽑아들었다.

이미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도이그, 그이도 두 형제는 마법사의 힘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마법사를 상대하는 걸 그리 꺼리지 않았다.

중요한 건 빠르기였다.

마법이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지만 그 강력한 힘도 발현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쓰기 전에 몸에 칼날을 꽂아 넣으면 그걸로 끝.

두 모험가가 무기를 뽑아들었다. 제국에서 현상금이 걸린 드워프 대장장이가 만든 살벌한 암기였다.

불과 바람의 힘으로 맹독 단검을 쏘아 보내는 암기.

단순히 마법사의 온몸을 멎게 만드는 독뿐만이 아니라, 단검의 칼날 또한 방어 마법을 관통할 수 있는 청록석으로 되어 있었다.

방어 아티팩트를 갖고 다니던 마법사들이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가슴팍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모습을 몇 번이고 봐왔던가.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이그와 그이도는 온몸이 불타는 충격과 함께 나뒹굴었다.

“...!”

이한은 상대가 번개 마법 한 방에 그냥 나뒹굴자 당황했다.

‘뭐야? 함정인가?’

“번쩍여라, 번쩍여라, 번쩍여라!”

이한은 방심하지 않았다.

볼라디 교수와 함께 던전을 돌면서 배운 건, 몬스터가 쓰러졌다고 절대 공격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

어차피 마력 아낄 필요도 없는데 이한은 마법을 연타로 날렸다.

“그만해도 된다.”

“...아. 정말 쓰러진 거였습니까?”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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