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1화 (271/687)

271화

“제국에는 수많은 짐승들이 있지. 순한 녀석, 광포한 녀석, 소심한 녀석, 용맹한 녀석... 이 모든 짐승들의 특징을 다 외우는 건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영리한 마법사는 요령껏 행동할 줄 알지. 바로 습성을 파악하는 거다.”

한 몬스터의 행동양식이나 약점을 알고 있다면 그 몬스터와 비슷한 계열의 몬스터도 어느 정도 유추 가능했다.

뛰어난 탐험가들은 이런 식으로 비슷한 계열의 몬스터들이 가진 습성을 파악해 미리 대비하곤 했다.

‘케르베로스의 습성을 어떻게 파악하란 거지?’

물론 저 방법도 가끔 통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었다.

‘...케르베로스를 다른 개나 늑대 계열 몬스터처럼 다뤄도 되나?’

케르베로스의 턱을 손으로 긁어주는 순간 덥석 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너희들이 지금 당장 습성을 파악하기는 무리겠지? 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짐승들이라면 통하는 방법.”

번개걸음 교수는 부츠 끝으로 솥단지의 밑을 툭툭 찼다.

“바로 먹이다.”

곳곳에서 학생들이 숨을 들이쉬었다. 기쁨과 깨달음보다는 당혹과 걱정에 가까웠다.

‘케르베로스 먹이를 주라고?’

‘먹이 주려다가 먹이가 되는 거 아니야?’

“지금까지는 먹이 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

“예???”

마구간에 갈 때마다 말한테 박치기당하고 침을 얼굴에 맞는 수모를 겪은 학생들은 기겁했다.

그러나 번개걸음 교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말들은 비교적 먹이 투정이 적고 이것저것 잘 먹는 편이지. 하지만 제국에는 말만 있는 게 아니다. 다음 학기 때 만나게 될 짐승들을 상대하려면 먹이 주는 법은 꼭 익혀둬야 할 거다.”

이한은 차마 다음 학기 때 무슨 짐승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묻지 못했다.

“자, 그러면... 시작해라! 완성되는 순서대로 케르베로스한테 먹이를 주도록!”

교수의 호령이 떨어지자 학생들은 서둘러 솥 앞으로 달려갔다.

가운데 공터에는 몇몇 짐승의 고깃덩이부터 시작해서 당근, 감자, 양파, 배추 등 여러 평범한 야채들. 그리고 이름도 짐작가지 않는 희귀한 과일이나 버섯, 향신료까지 있었다.

학생들은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무슨 재료를 골라가야 할지 웅성거렸다.

“삼두견은 무슨 요리를 해줘야 좋아하지? 나, 요즘 양파 수프에 자신 생겼는데 양파 수프로 가볼까?”

‘삼두견도 따지고 보면 개인데 양파를 먹여도 되나?’

이한은 의아해하며 재료를 챙겼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한도 개가 좋아할 법한 재료들을 고르고 있었다.

사과 같은 달콤한 과일 좋아할 거고, 고기나 생선류도 좋아할 거고...

“고구마 없나? 가이난도. 고구마 못 봤어?”

“왜 나한테 물어봐?”

가이난도는 왜 자기한테 묻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고구마 좋아하잖아.”

“...잠깐. 설마 지금 내가 다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해서 물어본 거야?”

이한은 대답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가이난도는 울컥해서 그 뒤를 쫓아갔다.

“흠. 고구마 없나보군.”

“야!”

‘어쩔 수 없나.’

이한은 외투 주머니 속에서 종이에 포장된 고구마를 꺼냈다.

우레걸음 교수의 텃밭에서 캐낸 걸 잘 구워서 껍질을 벗기고 자른 다음 말려낸 고구마였다.

멀리서 보고 있던 번개걸음 교수는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대체 왜 주머니에 말린 고구마를 갖고 다니는 거냐?”

“조난당하면 먹으려고요?”

“......”

번개걸음 교수가 할 말을 잃은 사이 이한은 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케르베로스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만큼 복잡하거나 까다로운 요리는 하기 힘들었다.

‘최대한 간단하고 단순하게, 여러 음식으로 가보자.’

이런저런 재료들을 조리해서 가져다줬을 때 상대가 반응을 보이는 재료들을 확인해 둘 생각이었다.

이한이 고기를 갈아서 막대 형태로 반죽하는 동안, 몇몇 겁없는 학생들이 먼저 나섰다.

“오, 위대하신 삼두견이시여! 당신을 위한 음식을 여기에 갖고 왔습니다!”

-컹!

케르베로스의 왼쪽 머리가 화답하듯이 짖었다. 학생들은 잘 구워진 돼지갈비를 그릇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가만... 가만...”

“진, 진짜 공격 안 하는 거 맞지?”

아무리 각오를 했어도 여섯 개의 커다란 눈동자가 빤히 쳐다보면 온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벌벌 떨며 구운 고기를 케르베로스에게 바쳤다.

덥석!

케르베로스의 왼쪽 머리가 구운 고기를 한입 크게 깨물었다. 그리고 몇 번 우물우물 씹더니 옆으로 뱉었다.

“?!?”

“아, 아니?!”

옆에 있던 번개걸음 교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녀석을 그냥 야생의 몬스터처럼 생각하면 큰 코 다칠 거다. 좋은 것만 먹고 자라서 입맛이 까다롭거든. 게다가 여기 오기 전에 간식을 먹여서 배가 절반 정도 찬 상태지.”

“...그러면 뭘 줘도 안 먹는 거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일 수 있어야 뛰어난 마법사지.”

“......”

치이이익-

학생들의 말수가 줄어들고 고기 굽는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기 잘 구워다 주면 맛있게 먹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큰일이군. 나도 저렇게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 양념이나 조리법은 오히려 쓸 수 없었다. 향이 너무 강하기라도 하면 먹지도 않고 뱉을 수도 있었다.

말 수인, 리치몬드 가문의 샤일스가 이한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워다나즈.”

“무슨 일이지?”

“너한테만 알려줄 게 있다.”

샤일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한의 손에 작은 병 하나를 쥐어주었다. 안에는 복잡한 색깔의 가루가 들어있었다.

“이건 우리 가문에서만 사용하는 비전의 가루다. 동물들이 먹으면 아주 좋아하는 비전의 가루.”

제국에서 손꼽히는 마차 운송 사업을 굴리는 가문답게 샤일스는 동물을 다루는 데에 능했다.

“저번에 날 도와줬으니, 이번에는 내가 널 도와주지. 받아라. 요리에 섞으면 아주 좋아할 거다.”

“이런 귀한 걸... 고맙다. 샤일스.”

이한은 진심으로 말했다.

게다가 저번에 도와준 것도 사실 은화 받기로 하고 도와준 건데!

샤일스는 눈을 찡긋거리더니 자기 그릇에 수프를 담고 일어섰다. 그러자 다른 탑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무슨 생각이지? 방금 싫어하는 걸 못 봤나?”

“아니야. 리치몬드잖아. 뭔가 생각이 있을 거야!”

샤일스의 친구들은 기대감이 살짝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 기대감에 부응하듯이 샤일스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케르베로스는 다가오더니 킁킁 냄새를 맡았다.

퉷!

케르베로스의 머리 세 개가 동시에 샤일스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침으로 철퍽철퍽해진 샤일스가 이한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미안하다. 워다나즈. 안 통하나봐.”

“......”

샤일스까지 박살나자 더 이상 나서는 학생들이 없어졌다.

그러나 번개걸음 교수는 엄격했다. 시간이 되자 차례대로 학생들을 떠밀기 시작했다.

“자. 시간이 됐다. 만든 음식을 갖고 앞으로!”

“잠, 잠시만요! 교수님!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예상한 대로 학생들은 추풍낙엽이었다. 케르베로스는 앞발로 그릇을 치고 콧김으로 엎고 다양한 방식으로 퇴짜를 놓았다.

어느새 이한의 차례도 다가왔다. 만든 요리들을 담고 있던 이한은 갑자기 자신이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의 길은 이런 게 아닌 것 같은데...’

-컹!

케르베로스의 왼쪽 머리가 짖었다. 아까 학생들에게 보여준 반응과 비슷했다. 이한은 지팡이에 손을 가져다댔다.

침이 날아올 경우 방패를 쳐서 막을 생각이었다.

찹찹찹찹-

“...?”

그러나 케르베로스의 반응은 예상과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이한이 차려놓은 음식, 정확히는 이한이 꺼내놓은 말린 고구마를 열심히 흡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왼쪽 머리가 먼저 고개를 들이민 탓에 다른 두 머리는 울상이 되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잠깐. 같이 먹어야지.”

-크르릉컹커컼컹엉!

-컹!

-왕!

뺏긴 머리는 격렬한 반응을 보였지만 다른 두 머리는 대만족했다. 이한은 번개걸음 교수에게 물었다.

“고구마가 정답이었습니까?”

“...아닌데??”

번개걸음 교수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꺼내놓지도 않은 재료가 정답일 리 없지 않은가.

케르베로스는 평소에 고구마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소화가 됐나? 그만! 고개 들도록!”

번개걸음 교수의 말에 케르베로스의 머리 세 개가 동시에 우뚝 멈추더니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한은 아래 내려놓은 그릇을 쳐다보았다. 고구마만 싹 사라져있었다.

“텃밭에서 기른 놈이었지?”

“예.”

“그게 맛있긴 했는데... 이 정도였나?”

번개걸음 교수는 신기해했다.

조카의 텃밭인 만큼 기른 채소들이나 야채들이 들어간 요리를 가끔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

싱싱하고 알찬 게, 정령이 도와줘서 생명력을 아주 강하게 흡수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케르베로스가 지금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니 무언가 또 다른 게 있나 싶었다.

“글쎄요?”

“다른 학생들도 먹었을 테니까 반응을 봤을 거 아니냐?”

“어... 뭘 줘도 잘 먹어서 말입니다.”

이한의 말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한이 냄비에 넣어서 끓여주기만 하면 재료고 뭐고 파악할 정신없이 귀신 들린 것처럼 정신없이 퍼먹었던 것이다.

아마 감자와 당근 대신 단추와 돌멩이를 넣었어도 잘 먹었을 게 분명했다.

“신기하군... 좋아. 한 번 더 확인해보자. 강의 끝나고 고구마를 캐서 말려봐라.”

“...교수님. 저 기말고사...”

학생으로 살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이한은 눈빛에 깊은 슬픔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우수에 찬 눈빛을 보자 번개걸음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확실히 지금 하기는 힘들겠군. 다음 학기 때 시험해보자.”

“감사합니다!”

-컹! 컹컹!

케르베로스의 머리 세 개가 옆에서 항의하듯이 짖어댔다.

마치 자기들은 방학 동안 어떻게 하냐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         *         *

밤.

이한은 피곤함이 몰려오는 걸 참고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괜찮나?”

“...으어.”

“어으어.”

“괜찮나보군.”

휴게실 곳곳에 앉아 있던 친구들의 대답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이한은 양철 잔에 뜨거운 커피를 부은 뒤 일어나서 탑의 창가로 걸어갔다.

쏟아질 듯한 별들이 보이는 마법학교의 캄캄한 어둠을 보다 보면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

‘...지는 않고.’

이한은 홀짝이며 눈을 깜박였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아직 한밤중인데?’

한밤중인데 갑자기 주변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마치 새벽이 찾아오고 있는 것처럼.

구울처럼 꾸벅거리던 친구들도 뭔가 밝아지고 있다는 건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뭐야?”

“무슨 일이지?”

거의 아침 수준으로 밖이 밝아지고 나서야 학생들은 상황의 전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불사조가 푸른 용의 탑 바로 앞에 와있었던 것이다.

“와... 와아아!”

신비로운 광경에 학생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한밤을 대낮처럼 밝게 만들다니.

과연 괜히 불사조가 아니었다.

“졸렸는데 잠이 확 깬다. 그치?”

“불사조가 나타나서 꼭 나쁜 건...”

“...창문 닫아!”

이한은 다급하게 외치며 움직였다. 친구들은 당황해하며 물었다.

“뭐, 뭐야?! 왜!?”

“창문 닫으라고! 불사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잖아!”

탑 안의 학생들을 발견한 불사조가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닫히지 않은 창문으로 깃털 몇 개가 날아 들어오자 휴게실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

“아, 안 돼! 내 과제! 내 과제!!”

“지금 과제가 중요한 게 아니야! 불부터 꺼!”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