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2화 (272/687)

272화

다행히 화재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이한이 한 발 앞서 나선 덕분에 학생들은 창문을 닫고 서둘러 불을 끌 시간을 벌었다.

“내... 내 과제...”

“저택에 돌아가면 불사조 동화책 다 갖다 버린다!”

혼비백산한 학생들은 거센 숨을 내쉬며 창문 밖을 힐끗 쳐다보았다.

불사조는 뭐가 잘못됐냐는 듯이 이쪽을 쳐다보며 날갯짓했다.

탁탁!

“왜 저러는 거야? 왜 저러는 건데!”

“창문 열어달라는 거 아니야? 창문 가리키잖아!”

“동, 동화에서 불사조의 부탁을 들어준 마법사가 커다란 보상을 받지 않았나?”

“절대 열어주지 마!”

가이난도의 말에 친구들이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두 번 속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세 번 속으면 그건 마법사 자격이 없었다.

■■■■■■...

갑자기 불사조가 지저귀기 시작했다. 지저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노래에 가까운 울음소리였다.

불사조의 노래는 방금 자기 과제가 불탄 학생의 분노도 사그라뜨렸다.

“...열어줘도 되지 않을까?”

빡!

“악!”

“정신 차려라.”

이한은 지팡이로 친구의 명치를 때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놀랍게도 학생들 모두 분노가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뭐지? 정신에 간섭하는 효과가 있나?’

아무리 노래가 아름다워도 불탄 과제로 인한 분노를 달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마법적인 힘이 분명했다.

몬스터들 중에는 소리로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만약 불사조의 노래에 그런 힘이 있다면...

“귀 막아라.”

이한은 친구들의 귀에 손수 솜을 넣어주었다. 그러자 방금 분노를 가라앉힌 학생이 다시 폭발했다.

“저 새 새끼가 날 갖고 놀아?!”

‘노래가 원인이었군.’

학생들은 귀를 막고 기다렸다. 노래가 끝나자 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끝났군.”

“워다나즈! 지시를 내려줘!”

불탄 과제를 든 학생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말했다.

“지시를?”

“그래!”

“뭐든지 하겠어!”

친구들의 뜨거운 외침에 이한도 비장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앉아서 다시 공부하자.”

“......”

“...어?”

“뭘 ‘어’야? 앉아서 다시 공부하라고.”

“아, 아니. 불사조 잡을 거 아니었어?”

“내가 불사조를 어떻게 잡아?”

이한의 질문에 친구들은 말문이 막혔다.

어라?

‘그러게?’

‘확실히 그러고 보니...’

무심코 워다나즈가 잡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잘 생각해보니 불사조는 1학년 학생들이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난 왜 워다나즈가 잡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나, 나도.”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 빨리 앉아라.”

외투를 걸치던 학생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외투를 걸어놓았다. 황녀는 상자에서 꺼냈던 화염 저항의 물약을 남몰래 다시 갖다놓았다.

“그래도 밝아져서 집중하기 좋군. 그렇지 않나?”

‘내 친구지만 진짜 가끔 미친놈 같아.’

가이난도는 그렇게 생각하며 깃펜을 잡았다.

*         *         *

몇몇 친구들(사실은 그보다 더 숫자가 많았지만)의 기대와 달리 이한은 불사조를 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실, 불사조를 잡으려고 해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떤 공격을 받아도 다시 부활하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환수를 어떻게 1학년 학생이 잡는단 말인가.

그러나 아침 강의 들으러 가는 길을 불사조가 막아서자 진지하게 ‘잡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

불사조는 지저귀면서 학생들 앞을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장난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한 바퀴 돌 때마다 밑에 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걸 보자 웃을 수가 없었다.

“이, 이건 강의를 듣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야!”

“헛소리하지 마라. 모두 흩어져! 놈의 시선을 끈다!”

교수들은 절대로 지각을 이해해주지 않는 법.

오는 길에 세상이 멸망했어도 참작해주지 않는 게 교수들인데, 고작 불사조 하나 갖고 이해해줄 리 없었다.

“얼어붙어라!”

“잠깐. 워다나즈. 지금 얼음 마법은 불사조 때문에...”

쩌저적!

“...매우 효과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

“너 방금 불사조 때문에 얼음 마법 안 나간다고 하려고 했지?”

“내, 내가 언제.”

얼음 조각이 허공에 생겨나는 걸 본 푸른 용의 탑 학생은 말을 돌렸다.

요네르가 다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한. 괜히 자극하면 너만 위험해질 수도 있어.”

비교적 현실주의적인 요네르는 불사조를 잡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 건 이제 머리에 두뇌 대신 톱밥을 넣고 다니는 친구들이나 할 생각이고...

“확실히 맞는 말이야. 워다나즈. 시도를 하더라도 만약을 대비해서 미끼를 세워두자. 불사조가 쫓아갈 다른 미끼.”

가이난도는 아산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물었다.

“미끼는 어떻게 세우게?”

“그야...”

“?”

이한은 둘이 싸우기 전에 대화를 막았다.

“공격하려는 게 아니야. 시선을 끌려는 거다.”

말과 함께 얼음 조각들이 공중을 맴돌기 시작했다. 학생들 앞을 가로막고 놀아달라는 듯이 투정을 부리던 불사조는 얼음 조각에 흥미를 보이며 쫓아갔다.

“달려!”

얼음 조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이한은 다음 얼음 조각을 날려서 불사조의 시선을 끈 뒤 달렸다.

가이난도는 헉헉대면서 외쳤다.

“왜, 공부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

같이 달려 나가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들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았어요. 이번 학기에는 여러 학파의 마법들을 배웠다면, 다음 학기에는 학파에 속하지 않는 기초적이고 실용적인 마법들을 배우게 될 거에요.”

가르시아 교수는 학기 마지막 강의까지 학생들의 머릿속에 지식을 쑤셔 박는 대신,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기초 원소 마법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기초 원소 마법을, 기초 환상 마법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기초 환상 마법을, 기하학과 산술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기하학과 산술을...

정말 진정한 교육자였다.

“교수님.”

“물어보세요.”

“강의실 밖에 불사조가 와있는데 어떻게 쫓아내요?”

“불사조 때문에 어제 잠을 못 잤습니다!”

피해자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만 있지 않았다.

다른 탑 학생들도 어제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불사조의 장난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자려고 해도 대낮같이 환한 불빛으로 깨우고, 강의를 들으러 가는데 나타나서 놀아달라고 달려들고...

이한처럼 영리하게 따돌리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경우였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불사조 때문에 30분이나 늦게 나와야 했다.

니기소르 사제가 의아해했다.

“왜 다른 학우 분들이 저러는 것이오? 밤이 낮처럼 밝아지고 추위가 그 모습을 감췄는데 불사조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

“쉿. 조용히 하세요.”

“입 다물게 해.”

눈치 빠른 사제들이 니기소르 사제의 입을 막았다.

다들 평생 신전에만 있었다고 해서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저런... 다들 어떡하죠? 불사조를 퇴치하는 건 여러분들 수준에서 무리일 텐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안타까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워다나즈가 있어도요? 워다나즈를 써도 무리인가요?”

앙라고의 질문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워다나즈가 니 검이라도 되냐?

“이한 학생이라도 무리죠 당연히...”

‘감사합니다. 교수님.’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대꾸하는 가르시아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감사함이 차올랐다.

다른 교수들도 저런 모습을 좀 배워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불사조가 난폭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퇴치하기 쉬운 몬스터도 아니에요.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 않거든요.”

가르시아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러 창문 밖에 있는 불사조에게 암석 창을 날렸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암석 창이 불사조를 관통했지만, 암석 창은 순식간에 불타서 사라지고 불사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 날갯짓했다.

창에 관통 당했는데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걸 보니 고통 자체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보셨죠?”

“그... 그러면 저희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평, 평생은 아니고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예요. 다른 차원에서 나타난 환수들은 현실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거든요.”

“언제쯤요?”

“마력이 다 떨어지면요?”

“......”

*         *         *

단 이틀도 걸리지 않아 불사조는 1학년 학생들을 노이로제에 걸리게 만들었다.

자면 깨우고, 강의 들으러 밖에 나가면 놀아달라고 달려들고, 햇빛 쬐면서 공부라도 하려고 하면 종이 태워버리고...

탑 내에서는 새로운 규칙이 생길 정도였다.

-이번 달의 금지 단어-

불사조

축제

뜨겁다

따뜻하다

불사조는 학생들에게 확실한 교훈을 주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철없는 행동만으로 어떤 재해가 닥칠 수 있는지!

설마 축제 좀 소소하게 기념했다고 이렇게 찾아올 거라고 어느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불사조는... 무리지.”

이한은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구고 기름과 버터를 두른 뒤 텃밭 근처에서 캐낸 버섯을 던져 넣었다.

기름과 버터를 빨아들인 버섯은 바삭바삭하고 촉촉해지기 마련.

그러나 이런 뇌물에도 불구하고 번개걸음 교수는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내일부터 주말인데, 주말에도 이러면 다음 주 시험은 큰일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소환한 거 아닙니까 저거?”

“흥미로운 음모론이지만 교장 선생님이 너희들 시험을 방해하고 싶었다면 좀 더 싼 방법으로 했을 거다. 불사조 소환이라니. 인공적으로 했다면 어마어마하게 비싸겠군.”

번개걸음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버섯을 집어먹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눈앞의 제자가 가진 가장 천재적인 재능은 마법이 아니라 요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불사조 피하는 요령은 확실히 붙지 않았느냐?”

“그렇긴 한데, 불사조 피하는 요령을 살면서 쓸 일이 또 있습니까?”

“밖에 나가면 없겠지만 마법학교에서는 한두번 정도 더 생길지도 모르지.”

“......”

“농담이다.”

이한이 정색하자 번개걸음 교수가 달래듯이 말했다.

“내가 일부러 안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그렇다. 불사조는 일종의... 자연재해에 가까운 환수거든. 가뭄이나 홍수를 막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한다면 대답하기가 궁하지. 배그렉 교수가 물어봤을 때도 대답해주지 못했는걸.”

“과연... 예?”

듣던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볼라디 교수가 나와서 당황한 것이다.

“배그렉 교수님이 뭘 물어보셨습니까?”

“불사조를 포획해서 전투용으로 쓰고 싶어 하시던데. 아무래도 무리지 그건.”

“......”

이한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을 뻔한 위험을 넘긴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배그렉 교수도 납득하더군. 그래서 케르베로스를 빌려갈까 하셨는데...”

“...예!??!”

이한의 눈동자가 배신감으로 흔들렸다.

기껏 실한 버섯으로 요리를 해드렸는데 이런 배신을?

“저 케르베로스는 아무래도 좀 귀하게 큰 녀석이라 전투용으로는 무리라고 말씀드렸지.”

“...정말 감사합니다. 맥주 드시겠습니까?”

“좋지? 그런데 왜 갑자기?”

이한은 우레걸음 교수가 숨겨놓은 비밀 바닥문을 열고 술통을 꺼냈다.

“참. 우레걸음 교수님은 오늘 안 오십니까?”

“아... 걔는 좀 바쁠 거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기말고사 어렵게 만들겠다고 머리 굴리고 있거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안주도 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이한은 우레걸음 교수가 숨겨놓은 다른 비밀 바닥문도 열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