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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3화 (273/687)

273화

‘확실히 교수님의 말씀이 맞을지도 모른다.’

텃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서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불사조가 학업 집중도를 미친듯이 떨어뜨리고 있긴 했지만, 여기에 얽매이는 건 오히려 실수일지도 몰랐다.

막으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막으려고 하면 괴롭기만 할 뿐.

차라리 불사조를 해골 교장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고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워다나즈!! 워다나즈!!!”

오두막 쪽에서 걸어오는 이한을 향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달려왔다.

주변에 인기척이 드물었기에 이한은 경고부터 했다.

“잠깐. 거기서 말해라. 더 다가오지 말고.”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따라와!!”

“더 수상한데.”

“...아! 진짜 아니라고!! 믿어달라고오!!!”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악을 쓰며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 추한 모습에 옆에 있던 친구마저 경악했다.

“...그, 그래. 앞장서라.”

저게 연기라면 만약 함정이라 하더라도 가줘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절실한 연기였다.

*         *         *

“......”

“......”

이한은 경악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먼저 와서 모여 있던 각 탑의 학생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화르르륵!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기말고사용 과제를 모아 놓은 창고가 불에 타고 있었다.

“...창고는 방염(防炎)이 되어 있을 텐데? 어떻게 불에 타고 있는 거지?”

“불사조가 창고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대.”

“......”

창고 외벽에 방염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하더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서 뒹굴면 버텨낼 도리가 없었다.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성했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학생부터 시작해서 엉엉 울며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학생들까지.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기말고사가 순식간에 불타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들 불부터 끄자.”

“어? 어... 어어.”

“지금 끄는 건 무리 아닌가?”

학생들이 웅성거렸지만 이한은 행동으로 말했다.

허공에서 물을 불러와서 던진다.

간단한 마법이었지만 불사조가 지른 화염 앞에서 거대한 물 덩어리를 연속으로 불러오는 건 이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십 번 정도 반복하자 불이 잦아들었다. 이한은 잿더미가 된 창고 안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안 되겠다.”

“???”

“불사조부터 잡고 공부하자.”

“워다나즈...!”

이한의 말에 학생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불사조를 잡을 생각이란 말인가?

“함께하겠다!”

“내 검을 네게 바치겠다. 워다나즈!”

“이렇게 된 이상 기말고사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어!”

“그건 아니지.”

“으, 으응.”

*         *         *

물론 아무리 분노했다고 하더라도 이한은 친구들만 데리고 불사조를 잡으러 갈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교수님. 혹시 불사조를 사냥하시는 걸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가르시아 교수는 황당해했지만 학생들을 말리거나 거절하진 않았다.

“물론 이런 경험들이 마법사를 성장시켜주는 거긴 하지만 불사조 사냥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른 교수님들에게도 도와달라고 할 생각입니다.”

이한의 말에 가르시아 교수는 머뭇거렸다.

‘안 될 것 같은데.’

보통 마법학교의 교수들은 학생들을 도와주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스스로 탐구해야 성장한다는 오래된 지론도 지론이었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사실 그보다 학생들의 일을 하나하나 도와주는 게 귀찮아서 아닐까 의심했다.

“저. 이한 학생. 사실 교수님들이 생각보다 바빠서요...”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을 상처주지 않고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한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원래 학생들에게 일을 시키는 존재였지 학생들의 일을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

쾅!

“버두스 교수님! 저희 신입생 좀 도와주십시오!”

“뭐? 싫어!”

성각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망치와 끌을 들고 한창 작업 중이던 버두스 교수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한은 당황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도와주신다면 저도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좋아!”

버두스 교수는 의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본 가르시아 교수가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저. 이한 학생? 버두스 교수님은 교수님들 중에서도 상당히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인데...”

아무리 버두스 교수의 도움이 필요해도 그렇지, 섣불리 저런 약속을 하는 건 위험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무슨 일인지 정하지 않았잖습니까. 간단한 일만 해치우고 핑계를 대면 됩니다.”

“......”

가르시아 교수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 그러니까 속이는 건가요?”

“아닙니다. 교수님. 속임수가 아니라 교묘한 화술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동의해주실 겁니다.”

“......”

가르시아 교수는 과연 인성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쾅!

“배그렉 교수님! 불사조를 사냥하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십시오!”

앉아 있던 볼라디 교수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모인 학생들을 발견하고 살짝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일대일로 상대하는 게 아니었나?”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         *         *

처음에는 괜찮을까 싶었던 가르시아 교수였지만, 버두스 교수에 배그렉 교수까지 합류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물론 에인로가드의 교수들은 학생들을 ‘적절한’ 수준에서만 도와줘야했다.

학생들이 불사조 퇴치해달라고 해서 그냥 퇴치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도움도 여럿에게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리고 보는 눈도 없는데 조금 더 도와준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

좋다! 나도 합류하겠다!

“......”

“......”

교수들과 함께 화기애애하던 1학년 학생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해골 교장이 왜 그러느냐는 듯이 물었다.

다들 왜 그러지?

“교장 선생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사실에 감격한 것 같습니다.”

녀석... 괜찮다. 다 이해한다.

해골 교장은 너그럽게 말했다. 이한은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젠장. 데스 나이트들의 눈을 어떻게든 가렸어야 했는데.’

해골 교장이 그냥 도와주러 왔을 리 없었다.

아마 교수들이 도와준다는 말을 데스 나이트들에게 전해 듣고 방해하러 온 게 분명했다.

정말 치졸하다!

자. 그래서... 불사조를 어떻게 잡을 생각이지? 말해봐라. 설마 에인로가드의 학생이 아무 생각 없이 교수에게 의존하려고 한 건 아니겠지?

“아닌데요.”

쉿!

가르시아 교수가 말하자 해골 교장은 재빨리 그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하게. 비밀 암호로 서로 대화하는 건 허락하지 않겠네!

“그런 거 없어요...”

가르시아 교수가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해골 교장은 철저했다.

여기 교수들 중 이한을 도와줄 사람은 가르시아 교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교수님들은 안 막으시나? ...음. 막을 필요 없겠군.’

이한은 버두스 교수와 볼라디 교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보니 해골 교장이 안 막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당연히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어떤 공격을 받아도 공격이라고 여기지도 않는, 무적의 재생력을 가진 불사조를 잡는다는 건 얼핏 보면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모든 생물은 약점을 갖고 있기 마련. 불사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먼저 불사조의 재생력을 깎고 타격을 입혀서 제압하는 방법.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 내 수준으로는 무리다.’

어떤 고위 마법을 써야 불사조 정도 되는 존재의 재생력을 깎을 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또 다른 하나는 불사조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불사조의 마력이었다. 환수인 불사조는 스스로가 가진 거대한 마력을 동력원 삼아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이 마력을 최대한 소모시키면 환수인 불사조는 다른 차원으로 역소환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력을 소모시키는 겁니다.”

나름 생각을 하긴 했군. 무모하긴 하지만.

해골 교장은 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방법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좋은 방법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무식했던 것이다.

거대한 마력을 가진 환수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지치게 만든다니.

말은 좋아도 사람이 먼저 나가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지금 1학년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는 그나마 이 방법밖에 없긴 했는데...

“그러면 진행해보겠습니다. 버두스 교수님. 학생들에게 방염(防炎) 마법을 걸어주십시오.”

“어? 여기 인원 다?”

가만히 있던 버두스 교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싫은데? 마력 아까워.”

마법사의 마력은 소중한 자원이었다. 하물며 하루에 남는 시간 없이 아티팩트에 몰두하는 버두스 교수 같은 사람은 더더욱.

물 쓰듯이 낭비하는 마법사가 이상한 거였지 저렇게 철저하게 관리하는 게 보통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르시아 교수님!”

“듣고 있어요. 이한 학생.”

“제 마력을 흡수해주십시오.”

“알겠... 뭐라고요?”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해골 교장도 뜨악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혹시... 전에 마력을 흡수한 적이 있나?

“아니요?!”

가르시아 교수는 기겁해서 말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마력은 생명 같은 것인 만큼, 마력을 멋대로 흡수하는 행동은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제자인 만큼 더욱 더 조심해야 했다.

“제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하긴. 비블레도 아니고 자네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지. 미안하네.

“난 그런 짓 안 했어!”

버두스 교수는 툴툴댔다. 그걸 본 이한은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잠깐. 볼라디 교수 내 마력 흡수하려고 한 적 있었지 않나?’

마력 많아서 쇠구슬 컨트롤 못한다고 마나 드레인 시도하지 않았었나?

이한은 황당함에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볼라디 교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일대일로 대결하고 싶나?”

“...아닙니다.”

“그렇군.”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 마력을 흡수해서 버두스 교수님에게 드리면 됩니다.”

“꼭 그래야 할까요?”

가르시아 교수는 매우 하기 싫은 표정을 지었다.

꼭 그래야 하나?

해골 교장도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 버두스 교수가 무슨 마력 부족으로 뒤지기 직전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챙겨줘야 하나 싶었다.

버두스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내밀었다.

“빨리 마력 줘.”

자네는 제발 좀 닥치고 있게.

*         *         *

피를 수혈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듯이 마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마법사의 내면은 또 하나의 세계.

그 세계의 질서를 이루는 요소를 넘기는 것인 만큼 충돌이 없을 수 없었다.

당연히 가르시아 교수 정도 되는 마법사는 그 충돌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허공에 마력이 응축된 구(球)가 생겨났다. 사람의 머리 크기 정도 되는 구체였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마력의 양은 심상치 않았다. 각종 속성과 사념들이 걸러지고 정제된, 순수한 성질의 마력이 압축된 구체였다.

“이한 학생. 힘들면 말해요.”

“괜찮습니다. 교수님.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앞으로는 그냥 힘든 척 해요.”

“?!”

이한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그럼 연결합니다.”

마력의 구체에서 선이 뻗어져 나오더니 버두스 교수에게 연결되었다.

“힘이... 힘이...!”

좀 조용히 받게.

해골 교장은 핀잔을 주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벌써?

“응! 충분해.”

버두스 교수는 탐욕을 부리면 부렸지 제자를 위해 억지로 빨리 끝낼 사람이 아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해골 교장과 가르시아 교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력의 순도가...’

‘...얼마나 높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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