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같은 양의 마력이라 하더라도 그 마력은 절대로 똑같지 않았다.
어떤 마력은 화염의 속성을 조금 더 강하게 갖고 있을 것이고, 어떤 마력은 음의 속성을 조금 더 강하게 갖고 있을 것이며, 어떤 마력은 불순물이 많아서 탁할 수 있었다.
불순물이 적고 순도가 높은 마력은 같은 양으로도 훨씬 더 강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당연히 마법사라면 가장 순수한 마력만을 몸에 담고 다니고 싶겠지만...
...그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생명이 살아간다는 건 쇠락하고 죽어간다는 것.
숨만 쉬어도 불순물이 생겨나는데 살아 있는 존재라면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한 마력을 몸에 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법사는 각종 비전으로 자신의 마력을 갈고 닦고, 주문으로 그 순도를 높였다.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
그런 걸 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순도 높은 마력을 타고난 마법사들이 있었다.
눈앞에 있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조금 많이 높긴 했지만...
-비블레한테는 말하지 말도록.
-당연하죠.
해골 교장과 가르시아 교수는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눴다.
버두스 교수가 이 사실을 알면 더 귀찮게 굴 게 뻔했던 것이다.
“왜 그래?”
가만히 좀 있게. 왜 그렇게 촐랑거리나?
해골 교장은 버두스 교수의 시야를 가린 뒤 힘으로 목을 돌려버렸다. 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버두스 교수의 목이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가르시아 교수는 남은 마력을 빠르게 흩어버렸다. 버두스 교수가 보고 눈치 채지 못하도록.
빨리 주문이나 걸게.
“잠깐. 목이 좀 아픈데.”
나중에 치료하게. 받은 마력 사라지기 전에 해야지.
“알겠어. 알겠어.”
버두스 교수는 투덜거리면서도 할 일은 했다.
지팡이를 몇 번 휘두르고 탁탁 두드리자, 자리에 있는 학생들 모두에게 방염 마법이 걸렸다.
준비가 끝나자 해골 교장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불사조의 체력을 소모시킬 생각이냐?
“먼저 두 분께서 도와주십시오.”
?
해골 교장은 이한이 자신과 볼라디 교수를 가리키자 의아해했다.
감히?
내가 친절하게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놈.
‘도와주신다면서요...’
학생들은 황당해했지만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원래 저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도와주실 것 아닙니까?”
교수로서 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예. 그 정도만 부탁드릴 생각입니다.”
그래서 뭐지?
* * *
......
해골 교장은 뚱한 눈빛으로 불사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볼라디 교수에게 말했다.
그러게 왜 받아들인 건가?
“?”
방금 전.
이한은 이렇게 부탁했다.
-두 분께서는 불사조를 몰아주십시오.
-뭐라고? 마법으로 불사조를 몰아달라니. 그건 교수로서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일이지.
-마법을 써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가까이만 다가가 주십시오.
-......
해골 교장은 이한이 머리를 잘 썼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써서 불사조를 몰아붙이는 것과 달리, 그냥 가까이 다가가는 것 정도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불사조 같은 환수들은 초감각에 가까운 예리한 본능을 갖고 있었다.
해골 교장처럼 불사조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는 피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해골 교장이 말한 게 있어서 거절할 수는 없었는데...
-좋다. 하지만 여기 배그렉 교수는 그런 일을 내켜하지 않을...
‘대신 거절해라. 배그렉 교수.’
-알겠다.
-!?
볼라디 교수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수락했다.
해골 교장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언제부터 마법학교 일에 이렇게 협조적이었다고??
“가르침에 필요한 일이잖습니까.”
......
해골 교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오욕칠정을 버리고 해탈의 경지에 오른 대마법사였지만 볼라디 교수의 말은 해골 교장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저... 저 놈...!’
만약 가르시아 교수가 저런 말을 했다면 해골 교장은 충분히 납득했을 것이다.
알펜 교수나 모르툼 교수가 저런 말을 했어도 어느 정도는 납득해줄 수 있었고.
하지만 교육 관해서는 비블레 버두스 교수를 뛰어넘을 정도로 유아독존인 볼라디 교수가 저딴 소리를 지껄이니 분통이 치솟았다.
이제까지 해골 교장이 ‘아무리 그래도 계속 제자가 0명이면 조금 생각을 바꿔보는 건 어떤가’라고 넌지시 운을 띄웠을 때는 어디 있었단 말인가?!
저... 저...!
“?”
...아무것도 아닐세.
해골 교장은 볼라디 교수에게 말하는 걸 포기했다.
에인로가드에 오래 있으면서 느끼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벽을 보고 말해봤자 스스로의 입만 아플 뿐이라는 것.
비블레나 볼라디 교수 같은 이들은 해골 교장이 말한다고 설득되는 이들이 아니었다.
‘워다나즈 놈이 강의를 못 듣게 막았어야 했나...’
해골 교장은 존재하지도 않는 속이 쓰려왔다.
지금쯤 볼라디 교수는 ‘내가 만든 커리큘럼을 통과한 제자가 나온 걸 보니,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아닌가.
그걸 생각하니 두통이 몰려왔다.
몰기나 하자고.
해골 교장은 불사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하늘에서 빙글거리며 뛰놀고 있던 불사조가 퍼뜩 놀라서 지저귀었다.
■■■! ■■■! ■■■■ ■!
닥쳐라. 고작해야 잘 타는 재주밖에 없는 새대가리 놈아. 내 정원에서 노는 걸 허락해줬으니 건방떨지 마라.
겁에 질린 불사조는 바로 방향을 돌려서 해골 교장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쪽에는 볼라디 교수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해골 교장과 마찬가지로 공중 부유 마법으로 떠있던 볼라디 교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불사조를 쳐다보았다.
‘지나칠 수 있지 않을까?’
해골 교장은 불사조가 볼라디 교수를 지나치지 않을까 기대했다.
영혼에서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해골 교장과 달리, 볼라디 교수는 고대부터 살아온 괴물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볼라디 교수는 경지에 오른 전투 마법사.
감정을 조절하고 드러내지 않는 데에는 경지에 오른 마법사였다.
그렇다면 불사조도 위협을 느끼지 않고 지나칠 수도...
푸드득!
불사조는 바로 방향을 돌려서 날아갔다.
해골 교장은 황당함에 눈을 깜박였다.
...혹시 저 불사조를 공격한 적이라도 있나?
“잡으려고 했습니다만.”
......
해골 교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멀리 도망친 불사조가 마법학교의 본관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닫아!”
불사조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이한은 학생들에게 외쳤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본관의 정문이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불사조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놀아달라는 듯이 학생들에게 날아들었다.
“워다나즈!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붙잡아야지.”
“붙잡은 다음엔?”
“지칠 때까지 버텨야지.”
“...어? 그, 그게 다야?”
* * *
영광스러운 제국의 관료, 이운라데는 웃으면서 호위들에게 말했다.
“다들 걱정할 거 없습니다. 에인로가드는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니까요.”
“그, 그렇게 말하셔도...”
“제 동료가 예전에 에인로가드로 가는 관료분의 호위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 뒤부터 에인로가드에 대한 말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호위로 고용된 모험가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경험 많고 노련한 모험가들은 제국에서 어디가 비교적 안전하고, 어디가 위험한지 꿰고 있었다.
...그리고 에인로가드는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제국에서 손꼽히는 위험지역이었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가졌거나 강력한 몬스터들이 출몰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 중에 워낙 괴팍한 마법사들이 많아서였다.
그런데 그 에인로가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긴장을 안 하려고 해도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다들 참 걱정이 많으십니다. 제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지만, 사실 제가 에인로가드 출신입니다.”
이운라데는 모험가들에게 자신의 출신 학교를 밝혔다.
그래야 불안함을 달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역효과였다.
“...!!”
“에, 에인로가드 출신이래!”
“이 의뢰 잘못 받은 거 아닌가?”
“그... 그래도 제국의 의뢰인데 설마 우리들을 에인로가드에 바치기라고 하겠나?”
“제국의 의뢰라고 무조건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
“......”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라는 사실에 모험가들이 더욱 더 겁을 먹어버린 것이다.
모험가들은 이운라데가 그들을 붙잡아 실험체로 넘길까봐 벌벌 떨었다. 이운라데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몇 시간을 써야 했다.
“...아시겠습니까? 절대로 실험체로 넘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제국 관료로서의 일을 하러 가는 겁니다.”
“그... 그렇군요...”
“일단 믿겠습니다...”
모험가들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운라데는 한숨을 참았다.
‘하여간 헛소문 때문에 일하기가 힘들다니까.’
제국 관료로서 마법학교 학생들의 실태를 확인하는 간단한 임무였는데, 모험가들이 이렇게나 겁을 먹을 줄이야.
하여간 헛소문들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에인로가드에 관한 소문들은 잘못된 게 많습니다. 섣불리 믿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예...”
“그, 그러면. 작년 제국 신문에 올라왔던, 에인로가드 주변 마을의 염소들이 전부 악마로 변한 사건도 헛소문이었습니까?”
“아. 그건 불행한 사고였죠.”
“......”
“......”
모험가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 번 더 물었다.
“혹시 재작년 제국 신문에 올라왔던, 에인로가드 출신 흑마법사가 기사단 묘지에 침입해서 시체를 훔치려고 했던 사건도 헛소문이었습니까?”
“그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긴 한데, 졸업생이 몇 명인데 사고치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나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 그렇죠!”
“맞는 말씀이십니다!”
모험가들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뒤에서 쑥덕거렸다. 눈빛과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지만 이운라데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시간 안에 도착하겠군.’
이운라데는 익숙한 길을 둘러보며 하늘을 확인했다. 아직 여명이 밝아 오고 있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새벽이 찾아올 시간이었다.
이번 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할 테니 늦지 않게 도착한 셈이었지만...
“자! 다들 힘을 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마법사 님.”
“은화를 받은 이상 저희는 저희 일을 철저하게 완수합니다.”
모험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랜턴을 휘두르며 길을 열었다.
잘 닦여진 제국 가도(街道)라지만 이렇게 어두울 때는 조심해야했다. 근처 풀숲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
“전투 대형으로!”
갑자기 굉음과 함께 거대한 몬스터가 뛰쳐나오자 모험가들은 기겁해서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러나 이운라데는 모험가들을 말렸다.
“싸울 필요 없습니다.”
“예???”
“어깨에 새겨진 글자를 보십시오. 마법학교에서 도망친 키메라입니다.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게 금제가 걸려 있습니다.”
“......”
“......”
모험가들은 수많은 감정이 진하게 담긴 눈빛으로 이운라데를 쳐다보았다.
이 어둠 속에서 어깨에 새겨진 글자를 알아차리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마법학교에서 키메라가 도망쳤는데 이렇게 태연할 일인가?’
“그... 마법사 님. 경비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 정도 일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얼마나 지났을까.
마법학교의 거대한 성벽과 정문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정문을 열자마자 근처에서 웬 괴물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데굴데굴 굴러왔다.
“■■■■! ■■! ■■■■ ■■■!”
“?!??”
“다시 전투 대형...”
“싸울 필요 없습니다.”
“예???”
“변신 마법에 실패한 4학년 학생입니다. 곧 돌아올 겁니다.”
“......”
“......”
모험가들은 더 이상 놀라는 걸 포기했다.
이제 뭘 봐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끼이이익-
본관 문이 열렸다.
그러자 안에서는 웬 어린 학생들이 퀭한 얼굴로 불사조를 꽉 누른 채 헐떡이고 있었다.
모험가들은 이번에는 놀라지 않겠다는 듯이 이운라데를 보며 말했다.
“이건 마법학교의 행사인가 보군요?”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저런 게 필수인가 봅니다?”
“...저, 저, 저게 대체 뭐하고 있는 겁니까 교장 선생님?!?!”
이운라데는 기겁해서 해골 교장을 보며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