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해다.
“오해라니요! 제가 오는 걸 알고 계셨으면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이운라데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의 실태를 조사하는 데에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가 가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학교 출신 마법사들이 에인로가드에 방문하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만이 에인로가드의 독특한 교육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제국 관료로서 방문할 때에는 에인로가드 측도 좀 배려를 해줘야 했다.
에인로가드가 가끔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날 때가 있긴 했지만 그 사고가 꼭 제국 관료가 방문할 때 일어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해라니까. 내가 벌인 일이 아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벌이지 않으셨다면 이걸 누가 합니까? 설마 1학년 학생들이 스스로 했다는 겁니까?”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물어보던가 해라.
“......”
해골 교장은 사악하고 심술궂고 비열하고 잔악한 마법사였지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마법사는 아니었다.
이운라데는 불사조를 붙잡고 있는 학생들 중 리더처럼 보이는 학생에게 물었다.
“혹시 정말로 불사조를 잡으려고 한 겁니까? 1학년 학생들끼리?”
“예.”
“그리고 잡은 겁니까?”
“예.”
대답을 들은 모험가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
원래 에인로가드에 관한 소문들은 대부분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운라데였지만, 이번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 * *
미리 예상한 일이긴 했지만, 불사조를 포획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본관에 불사조를 가둔 건 시작일 뿐.
“일단 붙잡는다. 불사조를 끌어들여!”
“어떻게?”
“마법으로 유도를...”
다행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본관에 들어온 불사조가 신이 나서 이한에게 달려든 것이다.
■■■■! ■■■■!
불사조는 지금 상황을 놀이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양옆에서 험악한 얼굴로 달려드는데도 날개를 퍼덕거리며 이한에게 달라붙었다.
황당하긴 했지만 어쨌든 기회는 기회였다. 불사조를 유혹할 수고를 던 것이다.
“다들 붙잡아!”
■■■■■...
“......”
불사조가 지저귀었다.
저번에 탑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보다 훨씬 더 크고 선명한 울음소리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친구들은 모두 홀린 것마냥 털썩 앉아서 입을 헤벌린 채 불사조를 쳐다보았다.
‘젠장. 정신 방어 마법도 걸어놨어야 했나!’
이한은 속으로 한탄했다.
작정하고 불러대는 불사조의 노래는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어지간한 각오나 결의도 그냥 묻어버릴 정도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뒤늦게 들어온 해골 교장이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한을 제외한 친구들이 전부 탈락한 이 상황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계속 노래 부르지는 않을 테니, 멈출 때까지 혼자서 버티면 됩니다.”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해골 교장이 놀리든 말든 이한은 무시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었으니까.
“나와라, 샤르칸!”
이한은 샤르칸을 부르고 스켈레톤 전사들을 불러냈다. 그런 뒤 불사조가 도망치지 못하게 단단하게 붙잡았다.
불사조는 자기가 붙잡히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갯짓하며 장난쳤다.
푸드득, 퍼드득!
“이한 학생. 마법을 퍼부어요! 불사조의 체력을 더 소모시키려면 그것밖에 없어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던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얼음과 번개가 날아들자 불사조는 그걸 맞고 더욱 더 신나했다.
샤르칸은 황당하다는 듯이 불사조를 물고 발톱으로 할퀴었다. 불사조는 부리로 샤르칸을 앙증맞게 깨물었다.
누가 보면 애완동물과 장난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불사조의 화염 때문에 주변이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않았다면.
교활한 녀석! 불사조를 마력으로 꼬드기다니.
불사조가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고 계속 놀아주자 해골 교장은 이한을 비난했다.
물론 이한은 불사조와 레슬링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듣지도 못했다.
“...이한 학생이 노리고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가르시아 교수가 대신 변명했다.
지금 무슨 공격을 해도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놀아주는 불사조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한의 마력에 흠뻑 빠진 건 사실 같았다.
마력을 주식으로 삼는 환수들이 마력을 탐하는 건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변덕스러운 불사조가 저런 장난을 계속 받아주면서 떠나지 않고 붙어있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그 사실을 이한에게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안 그래도 힘든 학생한테 ‘네 마력 때문에 불사조가 널 쫓아다녔단다’같은 진실은 지나치게 가혹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활한 수작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정말 묻고 싶진 않지만... 어째서인가요?”
알다시피 불사조는 변덕스럽지. 지금이야 마력에 취해 얌전히 있지만...
“얌전히는 아니죠.”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귓가에 깃털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불사조를 보며 말했다.
...질리면 슬슬 떠나려고 하겠지. 그 때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나? 아쉽지만 준비가 부족했군.
‘확실히.’
가르시아 교수는 해골 교장의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생들마저 노래에 나가떨어진 지금 이한 혼자서 불사조를 막는 건 힘들어보였다.
불사조가 싫증을 내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고 한다면...
......
“......”
해골 교장과 가르시아 교수는 가만히 서서 이한과 불사조가 노는 꼴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골 교장은 벌컥 화를 냈다.
저 불사조 놈 왜 저렇게 인내심이 강해!?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도 노래에서 깨어나 참가했다.
“도와줄게, 워다나즈!”
“이미 다 잡아놨지만!”
“쉿. 조용히 해.”
친구들이 참가한 덕분에 이한은 잠시 쉴 시간을 벌 수 있...
■■■■! ■■■■!
“워다나즈! 불사조가 도망가려고 해!”
“워다나즈!! 어떡하지?!”
“......”
이한은 쉬려다가 다시 돌아와서 불사조를 붙잡았다. 불사조가 기뻐하며 푸득였다.
“간, 간식 먹여줄까?”
“그래. 부탁하지.”
그야말로 무식할 정도의 끈기였다.
계속 버티면서 불사조를 잡아 누르는 그 모습에 해골 교장은 연신 투덜댔다.
그렇게 힘으로 잡을 거면 왜 마법사를 하나?
* * *
상황 설명을 듣고 드디어 납득한 이운라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납득이 좀 되었나?
“아니요!”
왜지?
“제가 오는 걸 아셨으면 당연히 저런 건 말려주셨어야죠! 교장 선생님께서 대신 퇴치해주실 수도 있었잖습니까! 하물며 기말고사 기간인데!”
그럴 순 없네. 어떤 상황에서라도 원칙은 지켜져야지.
이운라데는 기가 막혔다.
자기 편할 때는 원칙 무시하시는 분이!
‘기말고사 기간에 학생들 한 번 도와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저도 모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있었던 일을 아예 없애지는 못합니다.”
...흥. 상관없네.
해골 교장의 타오르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아마 머릿속으로 예산이 얼마나 깎일지 계산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 * *
“한 명씩 들어오십시오.”
짐을 정리하고 온 이운라데는 1학년 학생들부터 사정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에인로가드에는 여러 학년 학생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1학년 학생들만큼 힘들고 괴로운 학생은 없었다.
이운라데 본인도 에인로가드의 학생이었으니 1학년이 처음 입학했을 때의 충격이 얼마나 클지 잘 알았다.
시종이나 하인, 노예들은 성문 밖에 둔 채 허름한 옷을 입고 탑으로 들어가야 하다니.
무시무시하게 생긴 리치 대마법사는 덤이었다.
탑의 생활이 편안하기라도 하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불행히도 탑의 생활은 혹독하고 괴로웠다.
딱딱하게 굳은 검은 빵과 주먹밥만 먹으며 지독할 정도로 많은 과제와 공부를 해내야했다.
‘내가 다 마음이 아프군.’
푸른 용의 탑 학생이 들어오는 걸 본 이운라데는 슬픔이 북받치는 걸 느꼈다.
본인도 푸른 용의 탑 출신이었던 만큼 이운라데는 눈앞의 학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수 있었다.
1학년 학생들은 모두 힘들었지만, 그 중에서 푸른 용의 탑은 특별히 더 힘든 편이었다.
학생들이 갖고 있는 고귀한 혈통이나 명석한 두뇌 같은 것들은 1학년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흰 호랑이 탑이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속이 좁고 치졸해서 푸른 용의 탑을 이유 없이 싫어하곤 했다.
슬프게도 사냥이나 채집에 재주가 없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쫄쫄 굶는 수밖에 없었다.
“앉으십시오.”
푸른 용의 탑 학생이 자리에 앉자 이운라데는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많이 힘드실 겁니다.”
“헉. 어떻게 아셨죠?”
가이난도는 깜짝 놀랐다. 이운라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또한 에인로가드를 졸업한 마법사입니다. 그리고 푸른 용의 탑 출신이고요.”
“선배님이셨군요!”
“맞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말해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대부분은 잘라낼 겁니다.”
제국에서 관심이 있는 건 에인로가드 학생 중에 세상을 불태우고 싶어하거나 대악마를 소환해서 제국을 뒤집고 싶어하는 학생이 있느냐였지, 학생들이 배고픈지 안 배고픈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1학년 학생들은 편하게 털어놓아도 됐다. 해골 교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식사는 어떻습니까?”
“좀 아쉽긴 해요.”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그 검은 빵과 식은 주먹밥은 정말 적응하기가 힘들죠. 졸업할 때까지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네? 앗. 저 그거 안 먹어요.”
“예?”
가이난도의 말에 이운라데는 멈칫했다.
검은 빵과 주먹밥을 먹지 않는다니, 그러면 이슬이라도 먹는단 말인가?
“그러면 뭘 드셨습니까?”
“어... 아침으로는 베이컨 오믈렛을 먹었구요, 점심에는 참치, 달걀, 옥수수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어요. 저녁에는...”
“잠깐. 잠깐. 잠깐.”
이운라데는 귀를 의심하며 가이난도의 말을 멈추게 했다.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겁니까?”
“예? 제,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가이난도는 벌컥 화를 내는 선배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주눅이 들었다.
그제야 이운라데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신을 차렸다.
“죄, 죄송합니다. 순간 화를 내버렸습니다. 농담인 줄 알아서...”
“농담 아니에요! 여기 디저트도 있다구요!”
가이난도는 항변하듯이 배낭에서 쿠키를 꺼냈다.
진흙과 풀을 섞어서 구운 쿠키가 아니라 밀가루와 설탕, 버터를 넣어서 만든 제대로 된 쿠키였다.
아무리 봐도 1학년 학생이 감히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아니었다.
“...이게 어디서 난 겁니까?”
“이한이 밖에서 갖고 왔어요. 안에서 재료를 구해서 만들기도 하구요.”
“......”
가이난도는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이한이 어떻게 재료를 구하고, 어떤 식으로 요리를 해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먹이는지.
그 풍요로운 식생활을 듣는 이운라데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자기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한 반응이었다.
“...아주... 행운을 만나셨습니다.”
“그쵸??”
이운라데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후배들이 고생하면 슬픔이 북받쳤지만, 후배들이 너무 호사를 누리면 분노가 치솟는다는 것을!
‘설마 이래서 다른 탑 놈들이 우리를 싫어했던 건가!’
* * *
다른 푸른 용의 탑 학생들에게 물어도 답변은 비슷했다.
혹시나 싶었던 이운라데는 잘 먹고 사는 후배들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지내면 마법사로서의 실력이 어떻게 늘겠는가! 우리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운라데는 자기 자신이 해골 교장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 뒤로도 상담은 계속됐다.
처음에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 때문에 치를 떨었지만, 다른 탑 학생들과도 상담하자 이운라데의 감정은 놀라움으로 변해갔다.
“그러니까 워다나즈란 학생이 소환 마법, 환상 마법, 부여 마법, 예지 마법, 변환 마법, 치유 마법... 하여간 이걸 다 듣고 있단 말입니까?”
“예. 그럴걸요?”
“그런데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의 식사도 담당하고 말입니까?”
“어? 푸른 용의 탑 놈들이 나눠서 하는 거 아니었어요? 미친놈들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