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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6화 (276/687)

276화

흰 호랑이 탑 학생의 말에 이운라데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이건 푸른 용의 탑 선배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맞았다.

“...아마 나눠서 같이 하고 있을 겁니다.”

일단 선배로서 이운라데는 후배들을 감쌌다.

흰 호랑이 탑 학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사람인 이상 안 도와줄 리가 없죠. 아마 좀 과장된 걸 겁니다. 나눠서 하겠죠. 아니면 워다나즈한테 좀 특혜가 있던가. 저희 흰 호랑이 탑에서는 식재료를 구해온 친구한테는 특별대우를 해준다구요.”

“......”

부끄럽다 진짜!

이운라데는 화제를 돌렸다.

“흰 호랑이 탑 소속이시니 검술 강의를 듣고 있겠습니다?”

“네. 듣고 있어요.”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학생이 있습니까? 혹은 누군가를 암살하고 싶어하는 학생이나?”

해골 교장을 암살하고 싶어하는 건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외의 인물을 암살하고 싶어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뛰어난 검사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암살자였는데, 여기에 마법까지 익히면 도시 하나에 피바람을 불고 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암살하고 싶어하는 학생은 잘 모르겠습니다.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이라면... 모라디나 더르규가 뛰어나긴 하지만 역시 워다나즈가.”

“...???”

이운라데는 귀를 의심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 두 명 있나?

“아까 말한 워다나즈 학생 맞습니까?”

“예.”

“검술도 듣습니까?”

“그런데요?”

이운라데는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눈앞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너무나도 태연하게 있었던 것이다.

“그, 그러게요?”

그제야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워다나즈 놈은 대체 왜 검술까지 듣는 거지? 성적 때문은 아닐 테고.”

“죄송합니다. 학생한테 물어볼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듣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요.”

흰 호랑이 탑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워다나즈에게 무슨 사악한 계획이 있는 게 아닐까요?”

“어떤 계획 말입니까?”

“모든 마법에 검술까지 익혀서 교장 선생님을 쓰러뜨리고 학교를 장악하려고 한다거나...”

‘그건 별로 사악한 계획이 아닌데.’

이운라데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자기가 말하고도 제법 그럴듯하다고 판단했는지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교수님들은 물론이고 다른 탑 놈들한테도 지지를 받고 있잖습니까.”

“그야 그렇게 음식을 구해오면 아무리 다른 탑이라도 지지를 받겠죠. 제가 학교 다녔을 때도 음식 잘 구해오는 친구는 인기가 많았습니다. 교수님들이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좋아하시기 마련이고요.”

“어어... 듣고 보니 또 그러네요.”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교장 선생님을 쓰러뜨리는 건 무리입니다.”

“워다나즈 정도면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저도 지금 당장 한다는 건 아니고 몇 년 정도 뒤의 이야기였어요.”

“......”

보통 아무리 뛰어난 친구라 하더라도 ‘몇 년 정도 지나면 해골 교장 이기지 않을까’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 법이었다.

이운라데는 새삼스럽게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 행동하고 다녔길래...

*         *         *

“괜찮아?”

친구들의 질문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친구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들 휴식을 취하는 동안 이한은 거의 혼자서 불사조를 상대했던 것이다.

지쳐서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신나게 논 불사조는 이한의 손등에 문양 하나를 남기고 만족스럽게 자기 차원으로 돌아갔다.

다른 정령들이 남긴 문양 위에 남겨진 불사조의 문양에서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지만...

“교수님한테 물어서 지우는 방법을 찾아보자.”

“맞아. 미친 새 새끼가 다시 소환되면 어떡해.”

“이번에 소환되면 워다나즈 네 방을 태워버릴지도 몰라!”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매우 냉정하고 단호해진 뒤였다.

불사조의 소동이 학생들의 마음을 차갑게 얼려버린 것이다.

이제 앞으로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은 축제들은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리라.

“아니... 됐다. 안 지워도 괜찮아.”

“아니야! 워다나즈! 불사조가 꿈에 나와서 널 죽일지도 몰라!”

“맞아. 그 새 새끼는 은혜라는 걸 기억하지도 못할 거라고!”

친구들의 격렬한 반응과 달리 이한은 불사조 문양에서 딱히 위험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교수들도 별 말 안 하고 샤르칸도 별 말 안 하고 이한 본인도 딱히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이상, 이건 그냥 정령의 문양 같은 것에 가까웠다.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손해는 아닐 터.

“워다나즈. 네 차례다. 들어오래.”

“지금 가지.”

먼저 들어간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나오더니 이한을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한은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이한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해줄 말이라도 있나?”

“...워다나즈. 혹시 네가 정말로 푸른 용의 탑에서 식사를 전부... 아니다. 잊어라. 내가 괜한 말을 했군. 그럴 리가 없는데.”

“??”

*         *         *

이운라데는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에인로가드를 졸업하고 제국 관료로서 나름 경험을 쌓은 자신이 고작 1학년 학생을 상대하면서 이렇게 긴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인로가드가 제국의 천재들을 모아놓는 곳이라지만, 그 천재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천재는 나오기 마련.

그리고 그런 천재는 그 이하의 눈으로는 감히 파악조차 힘든 괴물이었다.

이운라데도 그런 천재를 본 적이 있었다.

‘두 학년 위였지만, 정말 괴물 같은 사람이었지.’

그런 천재를 본 적 있었던 만큼 이운라데의 긴장은 한층 더해졌다.

과연 어떤 학생일까?

“안녕하십니까.”

이한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방 안에 들어왔다.

이한은 기본적으로 제국 관료 출신들을 매우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리 눈도장을 찍어놔서 나중에 손쉽게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뛰어난 마법사라면 어디든 불려가긴 했지만, 편하고 안정적이며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비범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이한은 단 한 점의 실수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불사조 때문에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강한 긴장감으로 해 매우 뚜렷했다.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고 말리라!

“앉으십시오.”

이운라데는 놀라움을 숨기며 말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데다가, 갖고 있는 재능이나 이룬 업적도 업적이라 매우 오만한 마법사를 예상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린 해골 교장 같은 마법사!

해골 교장의 마법 실력을 따라갈 수 있는 마법사는 제국에 몇 없었지만, 해골 교장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따라갈 수 있는 마법사는 생각보다 많았다.

마법사의 실력이 뛰어날수록 인성이 반비례한다는 말은 나름 제국 관료들 사이에서 도는 정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매우 공손했다. 이운라데는 앉은 이한을 보며 물었다.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지금 가능한 학파의 마법들을 전부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한은 ‘교수놈들이 미쳐서요’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우며 모범적인 대답을 했다.

“평소 마법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여러 마법에 호기심을 가지다보니 교수님들께서 배움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마침 가르시아 교수님 같은 뛰어난 교육자분이 계셨기에 제 롤모델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가르시아 교수님은 트롤의 피를 타고 나셔서 가능했던 것 아닌가?’

이운라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괜히 천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하긴 워다나즈 가문의 피라면 트롤의 피와 비교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강의를 들으면서 불편했던 점 같은 게 있었습니까?”

‘대표적인 함정 질문이군.’

이한은 속지 않았다.

지금 눈앞의 제국 관료가 뒤로는 해골 교장과 어떤 사악한 거래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순진하게 말해봤자 이한만 손해였다.

게다가 교수를 욕하는 제자는 인격적으로 좀 문제가 있어 보일 수 있었다.

“전혀 없습니다. 교수님들은 모두 열정적으로 가르침을 주시려고 노력하십니다. 배우는 입장에서 이래도 될까 싶은 호사입니다.”

‘세상에!’

이운라데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해골 교장을 처음 봤을 때도, 친구가 실수로 마법학교를 수몰시켰을 때도, 선배가 클럽 활동을 하다가 심장이 멎었을 때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대체 어떤 영혼을 타고 났기에 이 마법학교의 가혹한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저런 반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학생은... 인간이 아니다!’

이운라데는 경탄했다.

지독히 뜨거운 용암이라도 불사조에게는 그저 연못의 물처럼 느껴지듯, 마법학교의 가르침도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는 즐거움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놀랍습니다...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정 질문을 돌파하고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그러면 이번 학기에 있었던 일들을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예.”

이운라데는 다른 학생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의 시선으로 본 만큼 과장이 있을 수 있었다.

...아니, 틀림없이 과장이 있어야 했다.

“산맥에서 진흙 골렘을 만났다고요?”

“예.”

“그리고 그걸 쓰러뜨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군요...”

이운라데는 깃펜으로 메모했다.

에인로가드 진흙 골렘 퇴치(세 번 확인했음. 확실함.)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습격하셨을 때도 한 명도 끌려가지 않고 막아냈다고 들었는데?”

“친구들이 협력해준 덕분입니다.”

“지휘한 건 사실이고요?”

“예. 말씀드린 것처럼 친구들이 협력해서죠.”

이운라데의 깃펜이 슬슬 바빠졌다.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운라데는 덩굴괴물과 정령 황소, 록 드레이크와 백양목 기사단의 일들을 물었다.

이한은 자신이 무모해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을 위해서...”

“불사조가 과제를 불태웠습니다.”

이운라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놀랄 만큼 놀라서 더 이상 반응하기도 힘들었다.

“참. 습격자하고 싸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가르시아 교수님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무슨 소리죠? 제가 말한 건 학교 안에 침입한 모험가들 이야기였습니다만.”

이운라데는 멈칫했다.

‘아차. 착각했군.’

이한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이한이 허황된 사람이 됐다.

“사실 반마법주의자들이...”

“......”

이운라데의 깃펜이 미친듯이 빨라졌다.

반마법주의자들의 습격 이야기가 끝나자 이운라데는 천장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이 이 보고를 의심하진 않겠지?’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걸 이운라데도 잘 알았다.

이운라데가 받고 있는 신뢰는 단단했고, 제국의 관료들은 에인로가드에서 천재가 나오는 것에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정말 좀...

아무리 그래도 정말 좀...

황제 폐하께서 따로 부르시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휘황찬란한 업적이었다.

“저. 이운라데 님?”

“아. 말하십시오.”

“언제나 불철주야 일하는 제국의 관료분들을 평소부터 존경해왔습니다.”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영광이군요.”

자신의 보고가 제국 관료들에게 어떤 충격을 줄지 염려하느라, 이운라데는 눈앞의 소년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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