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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7화 (277/687)

277화

‘젠장. 철벽같군.’

이한은 실망했다.

하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제국의 관료들은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소문이 난 만큼 이런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같은 탑 출신이니만큼 뭔가 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제가 관직에서 일한다면 어떤 자리가 어울리신다고 생각하십니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한은 노골적으로 물었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겠지만 그만큼 욕심이 났던 것이다.

물론 이운라데는 세상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이한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농담이었습니다.”

“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까지 청렴하고 강직할 줄이야.

괜히 에인로가드에 파견되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워다나즈 학생... 오늘 상담에 친절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선배로서 워다나즈 학생이 어깨에 조금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이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워다나즈 학생을 말릴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재능이 있는 자에게 시련은 축복이자 선물 아닙니까?”

이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역시 졸업하신 분답게 미친 소리를 자연스럽게 하시는군.’

*         *         *

이운라데가 황제 폐하와 제국 관료들이 받을 충격을 염려하고 있는 동안, 다른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험가, 킬베덱은 소매로 땀을 훔치며 동료를 쳐다보았다.

“어떻지?”

“아직 좀 부족한 것 같다.”

“지랄하지 마라! 이 정도면 충분해! 내가 폭주한 동굴 트롤을 사냥하러 갔을 때도 이렇게 준비하지는 않았다!”

“화내지 마라.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니까. 너도 그 미친 마법사가 수긍하지 않을 거란 걸 알잖나.”

“......”

킬베덱은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모험가라 하더라도, 위험천만한 임무에 같이 발을 담그면 빠르게 친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킬베덱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한테 사기를 치려다가 붙잡혀서 끌려온 상황!

-에인로가드의 마법사인 줄 알았다면 당연히 이런 사기를 치지 않았을 거다!

킬베덱을 포함한 다른 모험가들은 그렇게 울부짖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미치광이 마법사는 속임수를 쓴 모험가들에게 일을 도울 것인지 제국 법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인지 물었고...

모험가들은 당연히 ‘일을 돕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말이 제국 법에 따른 합당한 처벌이지, 고위 마법사들에게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후자를 골랐다가는 남몰래 생매장당할 수도 있었다.

-대체 우리에게 뭘 시키려는 거지?

-에인로가드의 부지가 광활하다던데, 재료를 구해와야 할 일이 있는 것 아닐까?

-던전을 공략해야 할지도...

-허튼소리. 에인로가드에 소속된 마법사가 왜 우리 같은 모험가를 부르겠나?

-그, 그러면?

-생체실험... 생체실험 하려는 것 아닐까?

붙잡혀 온 모험가들은 벌벌 떨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합을 맞추도록.

-예?

-침입자 한 명을 가정하고, 제압할 수 있게 합을 맞추도록.

-...!

재료를 채집하는 것도,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마법을 위해 육체를 내주는 것도 아니었다.

미치광이 마법사는 모험가들이 힘을 합쳐 침입자 한 명을 제압해주길 원했다.

-그 정도야 지금도 가능합니다!

-제 명성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건 압니다만, 나름 서부에서 수십 건의 의뢰를 해결한 사람입니다!

-알겠다. 시험하지.

그리고 미치광이 마법사는 합공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무력화시킨 다음 모험가들을 흠씬 두들겨 팼다.

-다시. 제대로 준비하도록.

-끄... 끄윽... 끄으으윽...

미치광이 마법사는 모험가들을 두들겨 패고 다시 준비시켰고, 또 두들겨 패고 다시 준비시켰다.

어떤 애원이나 사정, 회유나 매수도 통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험가들이 두려워하던 미치광이 마법사 그 자체였다.

모험가들 사이에 도는 ‘마법사와 엮이지 마라’란 격언이 왜 나왔겠는가.

마법사 같은 고급 인력이 파티에 있으면 그렇게 유용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사와 엮이지 마라’라는 말이 나오는 건 바로 이 미치광이 마법사 같은 존재 때문이었다.

한 번 잘못 엮이면 죽을 때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사악한 존재!

“...다시 준비해보겠다.”

킬베덱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침을 뱉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그럴 수도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마법사가 만족할 때까지 준비할 뿐.

“지하실 문을 여는 순간 화살을 날리는 건 좋은 것 같다. 다만 그 뒤의 공격이 좀 애매해.”

“문 앞에 밟는 함정을 설치하는 건?”

“좋아. 좀 더 추가해보자. 옆에서 한 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을 날려보자고.”

“타이밍을 맞출 수 있겠어?”

“썅... 이렇게 된 이상 해봐야지.”

“좋아. 그러면 나도 쇠뇌를 당긴 다음에 앞으로 뛰어들겠어.”

“물약은?”

“걸어놨어. 당기면 바로 날아갈 거야.”

모험가들은 열정적인 태도로 지하 공방 문을 열고 들어올 침입자를 격퇴할 계획을 짰다.

킬베덱뿐만 아니라 다른 모험가들도 모두 이렇게까지 전력으로 준비하는 건 처음이었다.

모험가라고 남는 시간에 부족한 훈련을 받고 다음 임무를 미리 준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방탕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부류가 더 많았다.

위험한 직업인데다가 크게 벌어서 크게 쓰는 직업인 만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미치광이 마법사 덕분에 모험가들은 모두 전력으로 일치단결해서 자기 자신의 능력을 200%, 300%까지 뽑아내고 있었다.

“창대를 바꿔보는 건 어때? 길이를 늘려보자고.”

“나쁘지 않을지도... 좋아. 방패도 좀 덧대볼까.”

“내 톱니칼과 네 철퇴. 같이 휘두르면 효과가 쏠쏠할 거다. 손발을 맞춰보자고.”

쾅!

“!!!!”

문 열리는 소리에 모험가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미치광이 마법사가 돌아온 것이다.

“조,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돌파가 시작하고 나면 미치광이 마법사한테 두들겨 맞을 걸 알고 있었기에 모험가들은 애걸복걸했다.

볼라디 교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얼마나 걸리지?”

“1시간... 아, 아니. 30분! 30분이면 됩니다!”

“알겠다. 30분 후에 시작하지. 상대는 학생이다.”

“감사합... 누구요?”

볼라디 교수는 두 번 대답하지 않았다. 준비하라는 듯이 손짓하고서 지하 공방을 나가버렸다.

남은 모험가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공방 창문에 달라붙었다.

...그러니까 저기 오고 있는 새파랗게 어린 학생을 우리가 공격해야 한다고?

미치광이 마법사보다는 나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방향으로 걱정이 됐다.

정말 공격해도 되나?

“우... 우리 잡혀가는 거 아니냐?”

“이미 잡혀왔잖나.”

*         *         *

볼라디 교수의 안내를 따라 으슥한 지하 공방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각오하고 있었다.’

기말고사 주간.

볼라디 교수가 저번에 모험가들을 관에 넣어서 학교에 배송시키는 걸 봤는데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이한은 에인로가드에서 살아남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전신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한의 모습에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훌륭한 전투 마법사의 태도였다.

“모험가들은 안에 대기하고 있다. 돌파해라.”

“알겠습니다.”

전투 마법사는 온갖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했다.

적들이 건물 안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을 때에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왜 1학년 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한은 반박하는 대신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가능한 모든 준비를 한다.’

각종 강화 마법을 걸고, 환상 마법으로 적들의 시야를 교란한 다음, 소환수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볼라디 교수가 모험가들을 데리고 왔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진 않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산전수전 겪은 노련한 모험가들이 작정하고 준비한 지하실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한이 철저하게 준비하더라도 질 수 있었다.

‘불사조나 케르베로스가 없다는 걸 행운이라고 생각하자.’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갑자기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보니 지하 공방 창문으로 모험가들이 이한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한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과연 모험가들이군.’

역시 모험가들이 쌓은 경험은 우습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벌써부터 이한의 전력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여기서 실수로 마법을 노출했다가는 바로 역으로 찔리리라.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 너무 두렵습니다.”

“?”

“제가 과연 이 안에 있는 모험가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혹시 머리가 아픈가?”

볼라디 교수는 짧고 간단하게 당황스러움을 표현했다.

*         *         *

창문 밖에서 학생이 겁먹고 불안해하는 소리를 든 모험가들은 심란해졌다.

이대로 공격해도 괜찮나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음모에 빠진 건 아니겠지.”

“대체 무슨 음모?”

“말 안 듣는 제자를 죽이고 싶었는데,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서 우리를 부른 걸지도 모르지.”

“......”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모험가들은 침묵에 빠졌다.

그 느슨해진 방심이 이한에게는 천금 같은 시간을 불러주었다.

쾅!

이한은 바로 지하 공방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안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푹, 푹-

미리 띄워 놓은 물 방패 위로 화살들이 꽂혔다. <공간 인지>를 포함한 여러 강화 마법을 미리 걸어 놓은 이한이었기에 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빛이여!”

이한은 들어가는 대신 지하 공방 안쪽으로 마력을 강렬하게 방출해 <빛 생성> 마법을 시전했다.

타오르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밝은 빛의 구체가 지하 공방 안에 떠올랐다.

“빛이여, 빛이여, 빛이여...!”

원래라면 고작 1서클짜리 마법에 이렇게 마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마력은 한정된 자원이었고 그 자원을 분배하는 것도 마법사의 실력이었으니까.

그러나 이한은 그런 계산 따위는 무시하고 공방 안에 빛을 퍼부었다. 광원이 있었다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모험가들은 일순 시야가 가려졌다.

“일어나라, 해골 전사들아!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

이한은 뼛조각을 던져서 스켈레톤 전사들을 소환했다.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들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모험가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언데드! 흑마법!”

“대비해!”

그 혼란 속에서도 모험가들의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었고 서로의 호흡은 끊기질 않았다. 이한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력 자체는 있나보군. 하긴, 실력이 없다면 감히 에인로가드 교수에게 사기를 치지는 않았겠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지하 공방 안.

소환된 스켈레톤 전사들이 환상 마법의 힘을 받아 열댓 마리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가들은 정확히 무기를 휘둘러 스켈레톤 전사를 쓰러뜨렸다.

그만큼 이 지하 공방 안에서 피나는 연습을 했던 것이다.

“잡, 잡았다!”

킬베덱은 자신이 스켈레톤 전사를 쓰러뜨리고서도 놀랐다.

“뼈여, 적을 붙잡아라!”

이한은 바로 다음 공격에 들어갔다.

애초에 빛을 터뜨리고 스켈레톤 전사들을 안에 들여보낸 건 공격이 아니라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다.

적들이 준비하고 있던 걸 이한에게 퍼붓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부서진 스켈레톤 전사들의 뼈를 이용해 이한이 뼈 마법을 닥치는 대로 날려댔다.

“뼈여, 적을 붙잡아라!”

신경 긁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뼛조각들이 뭉쳐 구속구가 생겨났다.

남은 모험가들은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피하며 외쳤다.

“어린 학생이 아니었어!!!”

“버텨라! 저렇게 마법을 쓰면 오래 못 간다! 곧 탈진이 온다!”

“크윽...!”

재수 없는 모험가 한 명이 뼈 마법의 난사를 맞고 쓰러졌다.

다른 모험가들은 끈질기게 버텼다. 미치광이 마법사의 시련이 그들을 성장시킨 덕분이었다.

‘곧 끝이 온다!’

‘마법사의 마력도 무한은...’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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