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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8화 (278/687)

278화

쉴 틈 없이 난사되는 뼛조각이 산탄처럼 주변을 휩쓸고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어떻게든 마법사가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버티고 버티던 모험가들은 슬슬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 이상하다!!’

팍!

방패로 몸을 가리고 있어도 완전한 방어는 불가능했다.

뼛조각에 맞은 모험가 한 명이 비틀거리며 사각지대에서 몸을 내밀자 이한은 바로 물 구슬을 날렸다.

단단하게 갑옷을 갖춰 입고 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갑옷 사이 빈틈으로 꽂히는 묵직한 충격에 모험가는 그대로 쓰러졌다.

-이대로 가면 다 쓰러지게 생겼다!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마법사 앞으로 뛰쳐나가겠단 거냐?!

남은 모험가들은 서로 수신호를 보내며 필사적으로 대화했다.

지금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아까 창문 밖으로 봤을 때는 분명히 귀하게 자란 귀족 가문 도련님 같았는데...

‘오기 전에 무슨 물약을 마신 거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법사가 지하실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준비해놨던 온갖 함정들이 연계되어서 발동되고, 그 틈을 타 모험가들도 같이 합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 마법사는 마력 강화 물약을 얼마나 들이킨 건지 쉴 틈도 없이 마법을 연사하며 지하실 안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함정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저렇게 마법을 난사해대니 벌써 몇몇 덫은 파괴된 상태였다.

1초가 1시간 같은 괴로운 인내.

순간 지하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끝났나!?’

모험가들은 뼛조각이 더 이상 날아들지 않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뼛조각이 다 소모됐든 마력이 다 소모됐든 저 마법사의 공격이 끝난 게 분명...

퉁, 퉁퉁, 퉁퉁퉁퉁-

이번에는 물 구슬들이 미친듯이 날아들었다. 뼛조각처럼 압도적인 물량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숨이 막히는 숫자였다.

게다가 무차별로 난사하던 아까와 달리 모험가들이 버티고 있는 사각지대로 정확하게 휘어서 들어왔다.

방금 1차 공격으로 마법사가 모험가들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한 게 분명했다.

“크아아악! 미친 마법사 새끼야!”

결국 모험가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뼛조각과 물 구슬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아낸 탓에 들고 있던 나무방패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빠르다!’

킬베덱은 생각보다 빠른 동료의 속도를 보고 순간 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원래 마법을 시전하는 마법사 앞에는 달려들지 말라는 격언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상대 마법사는 물 구슬을 지하실 전체에 난사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고 모험가는 전투 전에 마신 각종 물약으로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된 상황.

질풍처럼 달려 나가는 저 속도면 마법사의 허를 찌르기에는 충분했다.

주문 시전 속도는 언제나 마법사의 약점 아니었던가.

“번쩍여라!”

그러나 마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팡이를 휘둘러 주문을 갈겼다.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물 덩어리들은 계속해서 물 구슬로 바뀌어서 날아들었고, 그 사이에서 벼락이 쏘아져 나와 모험가의 방패를 날려버렸다.

“...!”

방패가 날아간 모험가는 자신의 상황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정도로 마법사의 반응속도가 빨랐다.

“뭐...”

“번쩍여라, 번쩍여라, 번쩍여라!”

모험가는 각종 물약으로 신체능력이 강화된 상태였다. 그 동체시력으로 지팡이 끝을 보고 회피동작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예상했다는 듯이 세 방을 거의 동시에 날렸다. 어느 방향으로 피하든 간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파지지지직!

감전으로 몸이 마비되자 물 구슬들이 늑대 떼처럼 달려들었다.

남은 모험가들은 이제 미치광이 마법사들을 상대할 때보다 더 겁에 질렸다.

미치광이 마법사는 그냥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 모험가들의 함정을 하나씩 해체해나가며 제압했다면, 지금 계단 위의 어린 괴물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그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항...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퍽!

양손 들고 달려나간 동료가 물 구슬 맞고 그대로 쓰러지자 킬베덱은 경악했다.

항복했는데 어째서!?

‘항, 항복 같은 건 받아주지 않겠다는 건가?!’

“아. 죄송합니다. 항복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항복하시겠습니까?”

“...예!! 예!!! 항복하겠습니다!”

“무기 버리시고 양손 올리신 다음 천천히 나오시면 됩니다.”

어린 마법사의 목소리는 너무 친절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킬베덱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마법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

“혹시 속임수 같은 걸 준비하진 않으셨겠죠?”

“안 했습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강하게 부정하시니 더 수상한데... 알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시면 됩니다.”

킬베덱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모험가가 눈치를 보다가 살짝 손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저, 그런ㄷ...”

퍽!

“아. 이런.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물 구슬을 맞고 뻗어버린 동료의 모습에 킬베덱은 양손을 더욱 높게 들었다.

저 마법사는 말은 친절했지만 하는 행동은 미치광이 마법사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다.

*         *         *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매우 실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건 이한에게 실망한 게 아니라 모험가들에게 실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패했군.”

“죄, 죄송합니다. 마법사 님.”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볼라디 교수는 어지간히 실망했는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모험가들에게 보수로 은화 주머니를 하나씩 날려준 뒤 정문 쪽을 가리켰다.

축객령의 뜻을 알아차린 모험가들은 쭈뼛거리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돌아서면 미치광이 마법사가 공격 마법을 날릴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반면에 기말고사를 날로 먹은 이한은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물론 모험가들은 이한이 안내해준다고 해서 안심하거나 하진 않았다.

“감... 감사합니다. 마법사 님.”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직 배울 게 많은 학생의 신분인데요.”

겸양의 말에도 불구하고 모험가들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그, 그러시군요. 몇 학년이십니까?”

“1학년입니다.”

“......”

“......”

모험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 오늘 대체 무슨 일이었던 겁니까?”

절반쯤 걸었을 때 모험가 중 한 명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다른 모험가들은 ‘너는 목숨이 두 개냐’ ‘왜 우리까지 같이 죽이려는 거냐’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질문은 나온 뒤였다.

“아. 기말고사 시험이었습니다.”

“예?”

“기말고사 시험이요. 교수님께서 설명을 안 해주셨습니까?”

“아...”

모험가들은 입을 벌리고 동시에 ‘아...’소리만 반복해서 냈다.

그리고는 퍼뜩 정신을 차린 표정으로 외쳤다.

“아닙니다! 해주셨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다행입니다. 설마 안 해주셨나 했는데. 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정문이 보이시죠?”

앞서가는 이한의 뒷모습을 보며, 모험가들은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오늘 무사히 이 에인로가드의 정문을 나서게 된다면 은퇴하겠다고.

‘조용하고 사람 적은 마을에 정착해야겠군.’

‘마법사가 없는 마을로 가야지.’

진심으로, 더 이상 미치광이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         *         *

‘시작이 좋군.’

이한은 흐뭇한 얼굴로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에 줄을 그었다.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기초 마법 인성 교육

물론 아직 많은 강의들이 남아 있었지만, 기말고사 시작을 이렇게 끊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징조였다.

“워다나즈. 큰일났다!”

“?”

“내가 들었는데,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과제는 더 이상 기간 연장이 없대! 오늘 그대로 제출하래!”

“!!”

앙라고가 호들갑을 떨며 속삭이자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된다!’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기말고사 전 과제로는 설계도를, 기말고사 과제로는 실제 제작을 하는 강의였지만...

...문제는 불사조가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가 안의 과제들을 전부 다 태워버렸다는 점이었다.

과제를 다 태워버렸는데 어떻게 예정대로 화요일에 제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학생들은 다들 ‘기간 연장이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기간 연장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안일했다. 여긴 에인로가드였는데!’

이한은 자신의 방심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물론 알고 있었어도 불사조를 잡느라 시간을 거의 내지 못했을 테지만, 뼈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워다나즈. 방법이 있다.”

“무슨 방법이지?”

“우리와 같이 손을 잡고 교수님께 항의하자! 가장 우수한 학생인 네가 함께한다면... 야! 워다나즈! 함께하자니까!!”

이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저건 가능성 없는 개소리였던 것이다.

‘제출하려면 점심 전에 완성해야 한다. 방법이...’

다른 아마추어 학생들과 달리 이한은 준비된 프로 학생이었다.

아마추어들은 과제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그대로 포기하지만, 프로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제출하기 마련.

물론 그 과제의 질은 보장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한은 원래 마법등의 뼈대가 되어줬을 길쭉한 장대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모든 설계를 다 빼버리고 마법만으로 해결보려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요네르. 아직 안 그린 거야.

갑자기 머릿속에 요네르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설계고 제작이고 다 때려치우고, 이한이 마법을 건 다음 ‘어쨌든 오래 가지 않습니까?’하고 뻔뻔하게 우기는 방법.

요네르와 이야기했을 때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넘겼지만...

‘...시간도 없고 다른 방법도 없다.’

이한은 각오를 다졌다.

가끔은 실력보다 뻔뻔한 궤변이 더 필요한 법.

이대로 간다!

*         *         *

아직 알펜 교수가 오지 않았지만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정말 기간 연장이 없다고?”

“그렇다니까.”

“망했다...! 우린 망했다고!!”

“그래도 다행인데? 다 같이 망했잖아.”

“넌 눈치가 없냐?”

그리고 알펜 교수가 들어왔다. 알펜 교수는 학생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고 의아해했다.

“무슨 일인가?”

“교수님! 불사조가 창고를 태운 게 저희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물론 보초를 세우지 않은 저희 잘못이긴 합니다! 앞으로 보초를 세울 테니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기간을 연장해주세요!”

“알겠네.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네.”

알펜 교수는 선선히 대답했다. 학생들은 다 멈칫했다.

어?

“어? 기간 연장 없는 게 아니었... 나요?”

“불사조가 창고를 태웠는데 어떻게 기간 연장을 안 하겠나? 이번 주말까지 완성하게. 2, 3일 정도는 더 줄 수 있으니, 시간이 부족한 학생은 찾아오도록 하게.”

“......”

“...어떤 자식이 헛소문 퍼뜨렸냐?”

학생들은 일단 안심했지만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어떤 자식이 헛소문을??

쿵!

그리고 뒤늦게 이한이 마법등을 들고 들어왔다. 이한은 알펜 교수가 먼저 도착한 걸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반갑네. 워다나즈 군.”

“과제를 제출하겠습니다.”

“잠ㄲ...”

앙라고는 당황해서 이한을 말리려고 했다.

‘안 돼, 워다나즈! 상황이 달라졌다고! 헛소문이었어!’

그러나 알펜 교수가 먼저 대답했다.

“이건 뭐지? 실례되는 말일수도 있지만, 별도의 설계가 보이지 않는데.”

“예. 교수님. 저는 분명 설계도에 증폭 마법진과 그에 따른 재료들을 적어놨습니다. 하지만 고민해보니 그것 또한 비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비효율적이다?”

“예. 저는 제 마법만으로도 2일 이상의 지속 시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재료를 낭비하는 건 이 강의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낸 건가?”

알펜 교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예.”

“후회하지 않겠나?”

‘?’

이한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뭔가 내가 모르는 게 있나?’

그러나 이미 벌인 일이었다. 이한은 당당한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예.”

“솔직히, 감탄했네.”

알펜 교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배짱과 임기응변도 마법사의 덕목이지. 만약 말대로 2일 이상의 지속 시간이 유지된다면 만점을 주도록 하겠네. 들어가서 앉게. 아, 기말고사 과제를 이미 제출했으니 강의실을 떠나도 좋네. 다른 학생들은 다시 제작을 시작하게.”

“...????”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친구들이 감탄과 경탄의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앙라고 빼고.

“너 잠깐 나와봐라.”

“나, 나 제작해야 해. 워다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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