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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79화 (279/687)

279화

앙라고는 결국 복도로 끌려갔다.

멱살 잡힌 채로 앙라고는 사과했다.

“켁, 켁... 워다나즈. 미안하다. 나도 속았어.”

“속았으면 이 자식아 너도 과제를 냈어야지. 넌 안 냈으면서 뭘 속아?”

으르렁거리는 이한의 모습에 앙라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너니까 낼 수 있는 거고...!’

앙라고도 정말 기간 연장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앙라고는 이한처럼 급히 만들어서 낼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같이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여기 우정 있는 벗들이 있으니 나는 아무렇지도 않네’하고 있었는데...

“그, 그래도 교수님께서 좋게 평가하셨잖아.”

“교수님께서 좋게 평가해주셨으니까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넌 지금 복도가 아니라 지하실로 끌려갔을 거다.”

방금 이한이 낸 과제는 말이 좋아서 배짱과 임기응변이지 안 좋게 보면 억지였다.

알펜 교수가 좋게 봐줘서 잘 끝난 거지 만약 안 좋게 봤으면 이한 혼자 미친놈 되는 것 아닌가.

이한은 앙라고의 멱살을 몇 번 더 흔들고 놓아주었다.

어쨌든 과제는 성공했으니 이 정도로 끝내주는 거였다.

아니었으면 아까 볼라디 교수가 알려준 지하실로 끌고 갔을 터.

“애초에 너희 흰 호랑이 탑 놈들은 헛소문에 너무 휘둘린다. 알고 있나? 애초에 소문이란 건 들었을 때 무작정 믿는 게 아니라...”

“......”

앙라고는 헛소문을 전달한 대가로 이한과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면서 숨막힐 듯한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잠깐 숨도 돌릴 겸 멈출 법도 했는데 워다나즈는 조금도 쉬지 않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듣고 있나?”

“어, 으응.”

“기사는 원래 명예를 알고 무겁게 행동해야 하잖나. 그런데 소문에 그렇게 휘둘리다니. 저번에도 그랬다. 웬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내가 무슨 사악한 비전에 통달했다고 헛소문을 지껄이던데.”

‘그건 근거가 있는 것 같...’

“그런 헛소문을 들으면 같은 탑 친구로서 단호하게 끊으란 말이다. 알겠나? 듣고 있나?”

“어어. 듣고 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지 말해봐라.”

“......”

앙라고는 다시는 헛소문을 퍼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잘못된 소문은 한 학생의 영혼을 파괴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         *         *

“고맙다. 워다나즈.”

“내게도 책임이 있는 일이니까.”

이한은 강의실로 돌아와서 친구들의 제작을 다시 도와줬다.

받은 은화의 양을 생각해보면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학년 수석으로서의 책임감을 말하는 거구나.”

“아닌데? 무슨 헛소리를...”

“아니야?”

감동 받았던 아산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옆에서 물약을 넣을 진열장을 조립하던 요네르는 잠깐 손을 멈추더니 물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저번에 내가 마법만으로 해결 볼 거냐고 물었을 때는 아니라면서?”

“가이난도. 집중 좀 해.”

이한은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렸다. 망치를 잡고 눈 뜬 채 졸던 가이난도는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알았어!?”

“......”

뒤에서 요네르가 빤히 쳐다보았다. 이한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뭘로 고민하는 거지?”

학생들 몇몇이 모여서 상의를 하고 있는 모습에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보니 과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기 좋군.’

방금 가이난도가 졸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역시 학생의 본분은 공부에 있...

“아. 워다나즈 님.”

네블렌과 로웨나가 대화하던 걸 멈추고 이한을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낯이 익었다. 몇 번 본 적 있는 황녀의 추종자들이었다.

“뭐지?”

이한은 살짝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황녀 전하께서 제출하신 설계도의 원안대로 가야 할지, 아니면 빠듯해진 지금 상황과 타협을 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

‘차라리 졸고 있던 가이난도가 낫겠군.’

이한은 경멸과 한심의 시선으로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녀의 추종자들은 매우 진지하게 논의를 계속했다.

“당연히 원안대로 가야지! 그대들은 황녀 전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인가?”

“이 말이 맞습니다. 황녀 전하께서 설계도를 제출하신 이상, 그 설계도대로 제출하지 않는다면 명예와 긍지에 흠집이 갈 것입니다.”

‘미친놈들이군.’

이한은 빠르게 깨달았다.

설계도를 제출했어도 상황 따라 조금 바꿀 수도 있지, 그거 바꾼다고 무슨 명예와 긍지에 흠집이 간단 말인가.

그럼 설계도의 내용을 전부 생략한 이한은 파렴치한이란 말인가?

원래 미친놈들과는 어울려서 좋을 게 없는 법.

이한은 조용히 뒷걸음질치려고 했다.

그러나 사악한 황녀의 추종자들은 이한이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

“워다나즈 님. 워다나즈 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아. 워다나즈 님께서도 한 말씀 해주십시오.”

이한은 무심코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아쉽게도 가이난도는 매우 집중하고 있었다. 트집을 잡으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젠장. 평소에나 집중하지.’

“너희들끼리 결정을 내도 될 것 같군.”

“아닙니다. 워다나즈 님께서 말해주신다면 반대하는 사람도 납득할 겁니다.”

보아하니 황녀의 추종자들은 평화로운 설득으로 만장일치를 만드는 걸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대다수가 ‘원안대로 가자’였지만...

놀랍게도 제정신인 추종자도 한 명 있었던 것이다.

검은 거북이 탑 출신 학생으로, 혼자서 ‘상황이 달라졌으니 타협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추종자들 중에 멀쩡한 사람도 있었군.’

이한은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볼, 볼캣.”

“그래. 볼캣. 네 주장은 뭔가?”

“난 이게 지금 시간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해. 황... 황녀 전하의 능력은 존경하지만, 황녀 전하께서는 다른 시험도 준비하셔야 한다고. 난 입학하기 전에는 길드의 직공으로 일했어. 이건 시간 안에 완성시키기가 불가능해.”

“과연.”

이한은 감탄했다.

멀쩡한 사람답게,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타당한 설득을 하고 있었다.

“볼캣! 네 능력과 가문은 존중하지만, 황녀 전하의 능력을 그렇게 한정하는 건 인정할 수 없어!”

“맞아! 황녀 전하께서는 충분히 하실 수 있다고!”

‘하지만 상대가 미친놈들이군.’

이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볼캣의 죄는 저 미치광이 집단과 같이 어울렸다는 것이었다.

그 죄 때문에 지금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설득이 가능한 상대가 있고 불가능한 상대가 있는 법.

“음. 나는 잘 모르겠군. 하지만 이렇게 의견이 평행선을 달린다면, 이번만은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누군가 이한의 외투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

이한은 말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황녀가 책상 아래로 양쪽 검지손가락을 필사적으로 교차시키고 있었다.

“......”

얼굴과 눈빛은 무표정했지만 손동작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가이난도라 하더라도 저기서 ‘좀 말려줘 제발!’이란 신호를 이해했을 것이다.

이한이 멈칫하자 듣고 있던 네블렌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다수결로 결정하라는 거죠?”

“틀렸다. 네블렌.”

“어? 방금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마법에는 옳고 그름이 있을 뿐 다수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한은 조각 같은 얼굴을 활용해서 억지를 부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자 황녀의 추종자들은 순간 ‘아니 당신이 말했잖아요’라고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내가 마법등을 제출한 걸 봤나?”

“보, 보긴 봤습니다만...”

“그걸 보고도 아직 눈치 못 챈 건가? 황녀 전하의 추종자들이 이래서야.”

이한은 말을 하면서도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어떤 그럴듯한 궤변을 늘어놓아야 이 추종자들을 가이난도처럼 속여 넘길 수 있을까?

‘모르는 척 할 거 그랬나.’

하지만 그냥 무시하기에는 황녀를 이용, 아니, 대접해서 두둑히 챙긴 은화들이 마음에 걸렸다.

도둑 길드도 저 정도로 은화를 지불한 고객은 특별대우를 해줄 터.

게다가 황녀는 인맥이 지나치게 넓었다.

혹시라도 방학 때 황녀가 밖에 나가서 ‘도와달라는데 워다나즈가 안 도와주더라’라고 가볍게 한 마디 하면 그게 이제 헛소문으로 부풀려질 수도 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하고 있었던 가벼운 마찰 때문에 학기 내내 악의적인 음해에 시달리는 이한인 만큼, 이 부분에서는 조심스러웠다.

“지혜를 주십시오. 워다나즈 님.”

“저희가 뭘 놓친 겁니까?”

“그러니까... 나이튼 교수님께서는 배짱과 임기응변도 이 강의에서 평가하시고 계신다. 난 그걸 알았기에 설계도를 대폭 생략해서 제출한 거고.”

“!!”

황녀의 추종자들은 깜짝 놀랐다.

과연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워다나즈 같은 학생이 설계도를 대폭 생략해서 제출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알겠나? 원래라면 황녀 전하도 강의의 취지에 맞게 대폭 생략해서 제작을 했겠지. 하지만 너희들이 부끄러워할까봐 차마 말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 그런!”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저희가 알아챘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됐군.’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사과를 받고 있던 황녀는 이한을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탈출시켜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였다.

이한은 싱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나중에 은화로 갚으십시오.’

그걸 본 황녀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신경 쓰지 말라는 건가?!’

이런 도움을 줬는데도 괜찮다고 넘기다니.

학기 초에 워다나즈를 오해한 스스로가 다시 한 번 부끄러워졌다.

황녀는 손가락으로 작게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역시. 제국에 천재로 명성이 드높은 게 허명이 아니군.’

이한은 흐뭇해했다.

가이난도와 달리 황녀는 이해가 빨랐다.

감사는 원래 물질로 표현하는 게 가장 직관적인 법!

*         *         *

“안녕하세요. 교수님.”

예지 마법 교수, 파셀레트 크라어 교수는 시험을 보기 위해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대답했다.

“오늘 내 인격은 30분쯤 후에 난폭하고 위협적인 인격으로 바뀔 테니, 가능하면 말 걸지 말도록.”

“...네!”

학생들은 질색하며 거리를 벌렸다.

가끔 잊을 때가 있었지만 이 마법학교의 교수들은 하나같이 정상인이 없었다.

“다 앉았나? 그러면 기말고사 시험을 시작하지.”

파셀레트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칠판 위에 글씨가 생겨났다.

예지 마법 기말고사 시험으로 무엇이 나올지 예지하시오.

“??????”

“시작.”

파셀레트 교수는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학생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금이 기말고사 시험인데, 기말고사 시험으로 뭘 나올지 예지하라니.

마치 자기 자신을 삼키는 뱀처럼 이상한 문제였다.

‘그래도 눈치 빠른 녀석들이 있군.’

파셀레트 교수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혼란에 빠져서 머리를 싸매 쥔 학생들도 있었지만 깊은 생각에 잠긴 학생들도 있었다.

이 모순 섞인 문제에 담긴 뜻을 유추해보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예지 마법사는 예지를 얼마나 잘하는지 보다 예지를 얼마나 삼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역설적으로 들렸지만 사실이었다.

미래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쾌감에 빠져버리는 마법사는 예지 마법사로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예지 마법사로 오래 버틸 수 있는 마법사는 예지의 두려움을 알고 예지를 최대한 삼가는 마법사.

그리고 기말고사 문제는 바로 그런 점을 알려주는 문제였다.

문제에 예지하란 말이 있다고 대뜸 예지 마법을 시도했다가는, 끝이 없는 순환의 고리에 빠져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갇히게 됐다.

‘저 워다나즈도 눈치 챈 모양이군.’

파셀레트 교수는 이한을 쳐다보았다.

첫 강의 때부터 무시무시한 잠재력을 보여줬던 만큼, 제자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 파셀레트 교수라 하더라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학생이었다.

과연 그 잠재력답게 문제에 담긴 함정을...

“?!?”

파셀레트 교수는 깜짝 놀랐다.

이한이 예지 마법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멈추지 않고 계속!

‘분명히 갇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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