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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80화 (280/687)

280화

잘못된 질문으로 인한 순환의 고리.

예지 마법사에게는 악몽 같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황 자체에 발을 들이밀지 않는 것이지.’

약간 어이없는 답이었지만 이게 정답이었다.

대뜸 예지 마법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질문에 담긴 함정을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것.

예지 속에 자기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징표를 남겨서 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거나, 강제로 예지의 시점을 더 먼 미래나 더 앞으로 틀어버리는 고급 기술까지는 신입생들에게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질문에 담긴 함정을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에 비해 가장 안 좋은 반응은 대뜸 예지 마법을 시도하는 거였다.

신입생이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함정 질문에 뛰어들었으니, 순환의 고리에 빠져서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허우적거리다가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그랬는데...

이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팡이를 휘둘러 예지 마법을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파셀레트 교수도 순간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대체...?’

*         *         *

앞에서 교수가 곤혹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걸 눈치 채지 못한 채 이한은 다시 한 번 예지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모습도 눈앞에 보이지 않자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법을 취소했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탈출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력이 적잖게 소모되긴 했지만 이한에게는 별 영향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문제가 아니었나?’

“으으으어억.”

“!”

이한은 옆에서 들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교수가 환영의 장막을 쳐놓은 탓에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이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마법에 크게 실패했을 때나 들리는 괴로운 소리였다.

“크억.”

“케에에에엑.”

털썩!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로만 끝나지 않고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까지.

볼라디 교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은 덕분에 이한은 시각이 막혀 있어도 다른 오감을 활용해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질질 끌려가는 소리가 나고 더 이상 신음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니...

‘시험보다가 탈락까지?!’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무슨 볼라디 교수의 시험도 아니고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설마...’

이한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이번 예지 마법의 문제는 단순한 시험이 아닌, 안에 담긴 함정을 파악하는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그 함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대뜸 덤벼들었다가는 지금 끌려 나간 친구들처럼 쓰러질 수 있었다.

...물론 이한은 이미 몇 번 시도하긴 했지만!

‘운이 좋았다. 마력이 많아서 버틸 수 있었던 모양이군.’

이한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지 마법에 소모된 마력을 생각해보면, 다른 친구들은 쓰러졌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제 좀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알아차린 건가?’

파셀레트 교수는 이한이 마법을 멈추자 눈썹을 치켜세웠다.

한 박자 늦긴 했지만 저렇게 반응한 걸 보니 이 시험의 진짜 의미를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그래. 예지 마법은 이제 멈추고, 이 시험에 담긴 함정을 지적... 아니!’

이한은 다시 예지 마법을 시전했다.

파셀레트 교수는 아까보다 더욱 당황했다.

어째서!?

함정인 걸 알아차렸는데 왜 저런 짓을 한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시도를 아낄 필요가 없군.’

이한이 다시 예지 마법을 시전한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해보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마력은 넘쳐났으니까!

이한은 계속해서 예지 마법을 시전하면서 이 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뚫을 방법이 없나 고민했다.

사실 예지 마법을 시전하지 않고 그냥 고민해도 됐지만 이한은 마력도 남겠다 자연스럽게 시도를 반복했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파셀레트 교수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무슨 저런 무식한...’

문제가 이상하단 걸 알아차린 건 좋은데, 그러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지 힘으로 뚫어버리려고 하다니.

그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교수님.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

계속 시도하던 이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파셀레트 교수는 놀라워하면서도 대답을 들을 준비를 했다.

“말해보도록.”

“제 생각에 답은 문제에 담긴 함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질문은 함부로 예지 마법을 시도해서는 안 됩니다.”

“정답이다.”

파셀레트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답이었다.

문제는...

‘그러면 대체 왜 예지 마법을 계속 시전한 거지?’

원래라면 아까 알아차렸을 때 바로 대답을 했어야 했는데, 그 뒤로도 계속 예지 마법을 시전하다가 대답을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셀레트 교수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대답을 알아낸 거지? 논리적인 추측인가?”

“논리적인 추측도 하긴 했습니다만... 예지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살짝 답답해진 파셀레트 교수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주어진 질문으로는 답을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시점을 더 먼 미래로 잡았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의 시점을 예지해서 답을 알아냈습니다.”

“......”

파셀레트 교수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 설마의 방법을 해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하거나, 혹은 순환의 고리보다 더 먼 미래를 보고 그걸 단서삼아 알아차리는 것도 방법이긴 했지만...

그건 신입생한테 기대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일단 시간이 멀어질수록 예지의 불확실성은 올라갔다.

게다가 질문과 상관없는 미래인 만큼 거기서 단서를 찾아내 질문의 정답을 알아내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련한 예지 마법사나 할 줄 아는 기교인데...

‘설마...!’

파셀레트 교수는 깨달았다.

이한이 깨닫고 나서도 왜 그렇게 연속으로 예지 마법을 사용했는지.

“설마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예지 마법을 시전한 건가?”

“그렇습니다.”

이한은 교수가 자신이 사용한 방법을 알아차리자 순수하게 감탄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역시 괜히 교수가 아니었다.

대화 몇 번 했다고 이한이 어떻게 답을 알아냈는지까지 맞히다니.

“......”

파셀레트 교수는 이 말도 안 되는 제자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작 당사자는 ‘혹시 잘못된 게 있습니까?’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게 더 두통을 강하게 만들었다.

“후... 잘했다. 잘했는데... 몇 가지 조금 더 배워야 할 게 있는 것 같네.”

“아. 그렇습니까.”

“다음 주에...”

“다음 주는 방학인데요.”

이한은 갑자기 불길함을 느꼈다.

설마 방학에 마법학교로 나오라는 개소리를 하시진 않겠지?

‘그런 소리를 하신다면 정말로 황제 폐하한테 투서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다음 학기에.”

“아. 네. 그 정도야.”

“꼭 나와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꼭 나와야 한다고. 알겠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맹세하도록.”

“......”

파셀레트 교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교수를 쳐다보는 이한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제자가 없으신가?’

모르툼 교ㅅ, 아니, 제자가 적은 교수들은 새로 생긴 제자들이 도망치는 것에 매우 민감한 편이었다.

학생이 새 학기 초에 그냥 안 듣기로 결정하면 교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사실 많지 않았다.

물론 각종 협박과 설득을 할 수야 있겠지만, 마법사가 한 번 마음을 굳히면 그리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제자가 넉넉한 교수들이야 ‘듣기 싫으면 말어라 나는 상관 안 한다’같은 느긋한 태도를 보여줘도 됐지만, 제자가 적은 교수들은 정말 그랬다가는 아무도 안 들을 수도 있었다.

물론 가끔 제자가 한 명도 없어도 당당하게 강의실에 앉아 있는 교수도 있었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 했고.

‘어차피 들을 테니 배려해드려야지.’

기왕 듣는 이상 교수의 입장을 배려해줘서 나쁠 게 없었다.

이한은 친절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교수님. 제가 왜 안 나오겠습니까?”

“이미 흑마법, 소환 마법, 환상 마법, 부여 마법, 변환 마법, 치유 마법을 다 듣고 있으니까.”

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과연 뛰어난 예지 마법사답게 매우 날카로웠던 것이다.

‘확실히 맞는 말이시군!’

*         *         *

디레트는 졸음을 참으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곧 흑마법 기말고사를 보는 후배들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놔야 했다.

같은 학년의 코홀티도 지팡이를 휘둘렀다.

“다 됐지?”

“다 됐어. 그런데 뼈 숫자가 너무 적은 거 아니야? 더 갖고 와야 하지 않아? 독약 병도 좀 적은 것 같은데.”

“됐어. 이번에 흑마법 배우는 신입생 다섯 명도 안 되더라.”

“......”

디레트의 대답에 코홀티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꼭 후배들이 많아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자기 자신이 배우는 마법에 후배가 너무 적으면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복잡했던 것이다.

“왜 다들 흑마법에 관심을 안 가지는 거지?”

“저번에 복도에 서리거인의 왕 소환시켜서 그런 거 아닌가?”

“그, 그건 흑마법하고 상관없는 유물의 문제였다니까!”

코홀티는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디레트는 흑마법이 인기 없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인기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만약 디레트는 제국 신문에서 <젊은 흑마법사들 점점 증가... 흑마법, 제국 마법의 유행을 선도하나?> 같은 기사를 본다면 ‘제국이 멸망하는 건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마법의 모든 점이 다 인기가 없을 법한데...

“앗. 들어온다.”

1학년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오자 4학년 학생들은 급히 강의실 뒤로 피했다.

인식 저하의 마법진이 걸려 있는 곳으로, 1학년 후배들은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으으음.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

코홀티는 1학년 후배들을 보니 갑자기 걱정이 됐는지 그렇게 말했다.

이번 흑마법 기말고사 시험은 1학기 때 배운 것의 총집합이었다.

저주, 독, 뼈.

이 세 가지의 기본기를 모두 다 확인하는 시험.

간단하다면 간단하게 들렸지만 원래 이런 시험이 더 어려운 법.

세 분야의 흑마법을 모두 다 정공법으로 부딪쳐야 하니, 하나라도 부족하면 대신할 방법이 없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저번에 교수님하고 이야기할 때 같이 정해놓고서 왜 이제와서 그래.”

“아니... 다섯 명도 안 되는데 더 줄까봐...”

“......”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디레트는 코홀티가 모처럼 맞는 지적을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지만...

탁-

문이 열리고 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들어온 학생은 저주 마법용 허수아비들에게 연달아 저주 마법을 날려 쓰러뜨린 뒤, 책상 위에 놓인 뼛조각을 던져 뼈 마법을 시전했다.

널찍한 강의실 중앙에 뼈의 폭풍이 불고 뼈 마법용 허수아비들이 나뒹굴었다.

쿠당탕탕탕!

여기까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상황.

코홀티는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신입생은 그걸로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바로 허공에서 독을 불러오더니 독약 병에 집어넣었다.

제대로 만들어진 독과 반응한 독약 병이 연기를 뿜어냈다. 질 좋은 독을 담을수록 짙은 연기를 뿜어내는 독약 병은 강의실 전체를 가릴 정도로 지독한 연기를 뿜어냈다.

“너, 너무 쉬... 쉬웠나? 어어? 이상하다? 신입생들 수준이...?”

“아니. 그냥 한 명만 이상한 거야.”

뒤늦게 낯익은 후배의 얼굴을 알아본 디레트가 냉정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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