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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82화 (282/687)

282화

“...훌륭합니다. 만점을 주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제자리에서 세 번 회전한 다음 공중제비.

마지막으로 우아한 발레까지.

다행히 고나달테스는 무리하다면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는 이한의 명령을 친절히 들어주었다.

“고맙다. 고나달테스.”

스켈레톤 전사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

“돌아가도 좋...”

펑!

자리에 돌아온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이상한데.”

“스켈레톤이 발레를 추는 게?”

가이난도는 ‘이제 와서?’하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아니. 교수님 표정이.”

이한은 정령의 감정을 읽어낸 것처럼 교수의 감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사실, 교수가 정령보다 더 쉬운 편이었다.

교수가 좀 더 노골적이었으니까.

“그야 당연하지.”

“?”

“스켈레톤 전사 이름을 그렇게 붙였잖아.”

친구들도 공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의아해했다.

“처음 들으신 것도 아니신데?”

“그런 건 여러 번 들어도 적응 안 되시지 않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가이난도의 차례가 왔다.

“가이난도. 조심해.”

“맞아.”

긴장한 얼굴로 나가려던 가이난도는 친구들의 응원에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무리하다가 사고치지 말고 적당히 포기하고 이쪽으로 와.”

“너 혼자 잘나가려는 생각은 하지 마. 넌 워다나즈가 아니야.”

“......”

자기들은 이미 1차 시도에서 실패했다고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친구들의 모습에, 가이난도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패배자 놈들!”

“가이난도... 넌 이쪽으로 오게 될 거다...”

“가이난도. 너는 지팡이를 휘두를 때 시계 방향으로 휘둘렀어, 아니면 반시계 방향으로 휘둘렀어? 한 번 떠올려봐.”

이한은 감탄했다.

하라는 마법은 못 하는 놈들이 방해하는 솜씨는 일류였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이미 방법을 깨달았다.”

가이난도는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앞선 친구들이 힌트가 되어준 덕분이었다.

정령을 다루는 데에 성공한 닐리아.

언데드를 다루는 데에 성공한 이한.

닐리아가 친밀감으로 따뜻하게 접근했다면, 이한은 엄격하고 단호하게 접근했다.

가이난도도 언데드를 다루는 만큼 후자를 따라하는 게 맞았다.

“들어라! 내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네놈을...”

스켈레톤 전사는 바로 달려들어서 가이난도의 뺨을 후려갈겼다.

분노한 가이난도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스켈레톤 전사와 멱살을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포기하고 이쪽으로 오라고 했잖아.”

“가이난도! 다리를 부러뜨려! 놈의 다리를 부러뜨려!”

*         *         *

검술 강의 시간.

학생들은 다른 기말고사처럼 긴장하며 기다리진 않았다.

검술 강의는 다른 강의처럼 그 자리에서 직접 시험을 보는 게 아니었으니까.

“너희는 뭘 갖고 왔지?”

“그걸 왜 묻나? 그러는 너희는?”

“그리 쉽게 알려줄 리가 없잖아.”

학생들은 서로 견제하며 눈치를 봤다.

산맥에서 가능한 강력한 사냥감을 쓰러뜨리고 그 증거를 갖고 오는 시험.

성적을 떠나서 다른 학생들이 자기보다 더 강한 사냥감을 사냥한다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그래서 저렇게 서로 물어보는 거다. 이한.”

“그렇군. 더르규. 하지만 내가 보기엔 성적을 떠나면 안 될 것 같다.”

이한은 냉정하게 말했다.

기말고사 시험인데 성적을 떠나서 자존심 싸움을 한다는 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그냥 성적이 더 중요하지!

“그,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흰 호랑이 탑 내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서.”

“더르규. 헛소리 하지 말고.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갖고 온 건 안 들켰지?”

더르규나 모라디는 흰 호랑이 탑 소속인 만큼 다른 학생들과 부딪칠 일이 많았다.

모라디야 자기 몫을 확실하게 챙길 줄 아는 성격이니 절대로 들키지 않았겠지만, 더르규는 좀 허술하고 호구 같은 부분이 있었다.

친구들이 간절히 부탁하면 실수로 정보를 흘릴지도 모르는 성격!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한. 아무도 우리가 갖고 온 걸 모를 테니까.”

“그래. 다행이군.”

이런 상대경쟁 시험에서 자신의 패를 들키지 않는 건 상당히 중요했다.

알려지는 순간 괜히 경쟁만 과열되고 서로 피곤해질 것 아닌가.

이한은 그런 식의 서로 상처만 남는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알겠지, 더르규? 우린 친구들을 배려해주는 거야.”

“맞아. 초이. 명심하고 있으라고.”

“......”

더르규는 복잡한 표정으로 이한과 지젤을 쳐다보았다.

둘이 더르규만 집중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에서 뭔가 수상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         *         *

제이 가문의 듀크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둘라크 가문의 가토노가 핀잔을 줬다.

“다른 놈들 눈치 채겠다. 가만히 있어.”

“미, 미안하다.”

꿀꺽-

둘은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며 앞을 쳐다보았다. 같은 파티에 소속된 다른 학생이 물었다.

“그런데 이쯤 왔으면 말해도 되지 않나?”

“안 돼! 최대한 조용히 제출하는 거야. 괜히 다른 놈들 자극해서 좋을 게 없어.”

“아무리 그래도 지금 와서 역전이 가능하다고?”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되물었다.

기껏해야 한두시간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그 사이에 새 사냥감을 찾아서 쓰러뜨린단 말인가.

“워다나즈 미친놈은 그럴 수도 있어.”

“맞아. 워다나즈 그 놈 괜히 자극하지 마!”

“......”

질문을 던졌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다른 두 친구의 말에는 진심 어린 박력이 있었다.

가토노는 배낭 속에 손을 뻗었다.  천으로 꽁꽁 싸맨 단단한 질감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이건...

거인이 신던 신발이었다.

‘아무도 우리만큼 대단한 사냥감을 갖고 오지는 못했을 거다!’

가토노는 확신했다.

아무리 워다나즈나 더르규, 모라디가 뛰어난 검술을 갖고 있어도 이건 무리였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인을 잡으려다가 그 망신과 고생을 겪었는데 어느 누가 다시 거인을 잡으려고 했겠는가.

하지만 가토노와 친구들은 달랐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엣세 님. 저희는 거인을 상대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황무지 별잡이 소속 사냥꾼인 그엣세는 계속해서 찾아온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애초에 학생들에게 가르침과 도움을 주려고 온 만큼,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온 학생들이 기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마음, 아주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한 번만 도와드리도록 하지요.

-정말이십니까!?

-대신 해내느냐 해내지 못하느냐는 여러분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거기까지 도와줄 수는 없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가토노와 친구들은 의욕적으로 외쳤다.

지금 기분으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저 짐승 우리를 기어가서 거인이 벗어 놓은 신발을 갖고 오시면 됩니다.

-어... 거인과 직접 싸우지는 않습니까?

-당연하죠. 1학년 학생이 거인과 직접 맞서 싸우려는 걸 허락할 리가 없잖습니까.

-......

-......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거인과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거인이 신던 신발만 하더라도 충분한 증거가 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시험은 사냥감을 쓰러뜨리고 증거를 갖고 오는 거잖습니까?

-누가 남몰래 접근해서 신발을 가져가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건 그 자체로 패배나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저희 황무지 별잡이에서는 그렇습니다.

-그... 그런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사냥꾼의 논리에 솔깃했다.

사실 거인과 직접 싸우지 않아도 되는 만큼 훨씬 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잠깐. 그엣세 님. 저기 짐승 우리는 완전히 진흙탕인데요.

-그러니 더욱 좋습니다. 진흙이 냄새를 숨겨줄 테니 거인이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여차하면 돼지 밑으로 숨을 수도 있습니다.

-...기어가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거인과 직접 상대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흰 호라이 탑 학생들은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옷을 벗어던지고 진흙탕을 기어갔다.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며칠 내내 씻어도 코를 찔렀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거인이 신던 신발이라니.

어느 누가 이런 걸 갖고 왔겠는가.

가토노는 스스로에게 취한 나머지 뒤에서 다른 학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탁!

다른 파티 학생 한 명이 다가와서 재빨리 가토노의 손을 쳤다.

그러자 안에 있던 거인의 신발이 굴러 나왔다.

“...!!”

“거, 거인이 신던 신발 아니야 저거?! 거인이 신은 신발 같은데?!”

“친구들아! 이 자식들이 약속을 어기고 거인을 상대했어!”

수상하다 싶어서 접근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거인의 신발을 보고 경악했다.

같이 거인을 노리지 않기로 해놓고, 이런 치사한 수작을?

“비겁한 놈! 너희가 그러고도 기사냐!”

“난 떳떳하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한 점 없다! 그 때 한 약속은 위험하니까 거인을 상대하지 말자는 거였지. 우린 거인을 상대할 자신이 있어서 찾아간 거다. 그게 뭐 잘못된 거냐?”

“거짓말! 우리도 거인을 노릴까봐 숨겨놓은 주제에!”

“부러우면 부럽다고 밝혀라. 추하게 질투하지 말고!”

“지금 말 다했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말다툼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좀 떨어진 곳에서 모라디, 더르규와 함께 앉아 있던 이한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어리석긴. 약속을 어기고 친구들 몰래 거인을 상대하다니.”

“...이, 이한. 그런데 우리도 거인을 상대했잖나.”

“우린 안 들켰잖아.”

“우린 안 들켰지.”

“......”

*         *         *

잉걸델 교수는 그림자 순찰대 소속 사냥꾼, 바이샤다와 황무지 별잡이 소속 사냥꾼, 그엣세에게 감사를 표했다.

“두 분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아, 아닙니다. 교수님.”

“사냥꾼으로서 어린 마법사들을 가르친 일 자체가 제게는 영광입니다.”

‘말 정말 잘 하네.’

바이샤다는 그엣세의 언변에 감탄했다.

괜히 제국 신문에 많이 실리는 황무지 별잡이 소속이 아니었다. 그림자 순찰대 사냥꾼들과는 차원이 다른 화술이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학생들이 사냥해 온 걸 보도록 할까요?”

두 사냥꾼은 교수와 같이 앉았다.

검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차례대로 상대한 사냥감의 증거를 제출했고, 두 사냥꾼은 그 때마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흡혈그늘박쥐! 이 시기에는 동굴 안에서 잘 안 나올 텐데 용케...”

“걸어다니는 화염 버섯을 잡다니. 마법사는 마법사인 모양입니다. 사냥꾼들도 까다로워서 피하는 놈인데.”

“덩굴사냥꾼의 열매를 갖고 오다니. 대단한데요?”

그러던 도중 가토노와 친구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거인의 신발이 올라오자 잉걸델 교수도 같이 감탄했다.

“거인이 신고 있던 신발을...! 용케 가지고 왔습니다!”

한쪽 눈에 멍이 든 가토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인을 쓰러뜨리진 못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쓰러뜨리지 못했는데도 갖고 온 게 더 대단한 거니까요.”

잉걸델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 그엣세를 쳐다보았다.

“그엣세 씨.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지혜로운 건 아셨지만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엣세 씨께서 조언해주지 않으셨다면 1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거인을 상대할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엣세는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에 바이샤다는 속으로 부러워했다.

명성에, 인기에, 실력에, 마법사들까지 가르치는 뛰어난 조언 능력까지 다 가지다니.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다음은 이한과 친구들이었다.

이한이 거인, 이쿠루샤의 머리털을 제출하자 잉걸델 교수와 그엣세는 마시던 물을 콜록거리며 뱉었다.

그리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바이샤다를 쳐다보았다.

바이샤다는 기겁해서 외쳤다.

“아니, 아니, 아니... 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압니다. 바이샤다 씨.”

“아시는군요!”

“원래 가르치는 쪽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죠. 하지만 배우는 쪽에서는 그 한 마디가 커다란 깨달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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