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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87화 (287/687)

287화

“이건 진검승부. 교수님께서도 이해하실 거다.”

이한은 그렇게 말했다.

우레걸음 교수도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냈고, 이한도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풀었다.

서로 공정한 승부.

이런 승부에는 뒤끝 하나 남지 않아야 하는 법이었다.

‘이해하시는 표정이 아닌 것 같은데.’

우레걸음 교수의 표정은 절대로 제자의 승리를 이해해주는 스승의 표정이 아니었다.

씨근대며 분해하는 모습이 마치 ‘다음 학기 시험 때 두고 보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요네르는 사람이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말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진짜 괜찮은 걸까?’

이러다가 2학기 때에는 현자의 돌을 만들어야 할지도...

순간 이한이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일부러 못 만들 수는 없잖아.”

“......”

요네르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친구를 쳐다보았다.

이한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던 것!

*         *         *

플뤼워크 교수는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며 살짝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어쩌죠? 다른 교수님들과 달리 제 시험은 재미없을 텐데.”

“무... 무슨 시험인데요?”

플뤼워크 교수는 대답 대신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학생들의 책상 위에 시험지와 깃펜, 잉크병이 나타났다.

“아주 전통적인, 문제를 풀고 답을 쓰는 시험이죠?”

“우... 우와아아아아아!”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밖에 없습니다!!”

“!?”

플뤼워크 교수는 학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깜짝 놀랐다.

대체 왜?

“이한이 앉아서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거라고 말한 게 이거였구나.”

가이난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험이 아니라 차분하게 앉아서 깃펜만 놀리면 된다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학생들이 자리에 앉자 시험지가 뒤집어졌다.

1번. 다음 글의 내용이 참일 때, 반드시 참인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시오.

-제국 마법사 타딩고는 다섯 악마를 소환해서 계약하려고 한다. 이 때 악마 제르클루오는 악마 볼우다보다 먼저 계약하지 않으면 계약이 불가능하다...

이한은 빽빽한 문제를 보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다른 친구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과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군.’

“이, 이한에게 속았어. 말 타는 게 더 낫잖아.”

옆에서 가이난도가 울먹였지만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         *         *

지식과 학문을 숭배하는 시센자 교단의 사제, 무하딘은 가볍게 기도하고 깃펜을 붙잡았다.

자랑하지 않아서 쉬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불사조 탑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평균 성적이 높았다.

사제들인 만큼 자기가 관심이 없는 강의는 가차 없이 버리는 편인데도 이 정도니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학생들 중에서도 무하딘은 박식하고 명석한 것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무하딘에게 있어서 이런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시험 같은 건 그리 어렵지 않은,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다른 시험들도 이랬으면 좋으련만.’

무하딘은 말을 타고 날아오는 마법을 피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환된 정령들을 제압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무하딘은 그저 앉아서 읽고 공부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무하딘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이런 시험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이건 3번인가. 흐음... 아. 너무 빨리 풀고 있나?’

무하딘은 벌써 시험 문제의 절반을 풀었다는 걸 알고 스스로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앞에 놓인 모래시계가 남은 시간이 넉넉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 더 천천히 풀어도 될...’

탁-

이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시험지를 앞에 제출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 학기 동안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감사는 워다나즈 학생처럼 뛰어난 학생을 만난 제가 감사해야죠.”

플뤼워크 교수는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한은 살짝 감동했다.

“관료 분들은 제국의 노고를 도맡아하시는,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이십니다.”

“아이 참. 무슨 그렇게까지... 그냥 허드레꾼이죠! 워다나즈 학생이 관심 가질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이한은 살짝 어두워진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기분이 좋아진 덕분에 플뤼워크 교수는 강의실 분위기가 달라진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하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너무 느리게 풀고 있나보다!’

*         *         *

흰 호랑이 탑 출신, 제이 가문의 듀크마는 친구와 시선을 교환했다.

-준비됐나?

-물론.

그들이 한 준비는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시험 준비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커닝 준비였지만, 커닝 준비도 어떻게 보면 시험 준비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강의에서는 커닝해봤자 별 의미가 없었지만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같은 시험에는 충분히 효과적.

‘적어도 한 강의는 커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했는데 드디어!’

이한이 들었다면 ‘한심한 새끼들아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되잖나’라고 했겠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진지했다.

다행히 플뤼워크 교수도 크게 대비를 한 것 같지 않은 상황.

천금 같은 기회였다.

‘자연스럽게 워다나즈 뒤에 앉는 데에 성공했다.’

‘남은 건 들키지 않게 훔쳐보는 것뿐.’

시험이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듀크마는 슬슬 때가 됐다는 걸 느꼈다. 품속에서 푸른색 렌즈가 달린 작은 망원경을 꺼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한테 거금을 주고 구매한 아티팩트였다.

이걸 사용하면 워다나즈의 시험지도...!

탁-

이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시험지를 앞에 제출해버렸다.

두 학생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

“???????”

‘다 풀었다고??’

‘벌써??’

‘뭐 이런 놈이...?!’

‘안 돼! 돌아와!!’

둘이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이한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이난도는 둘의 시선을 느끼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들! 내 시험지를 엿보려고! 교수님! 이 자식들이 제 시험지를 엿보려고 해요!”

“아, 아니야!”

“그냥 놀란 거야! 그냥 놀라서 쳐다본 거라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눈물을 머금고 커닝 시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워다나즈가 사라진 이상 옆에서 베낄 상대가 가이난도밖에 없었으니, 베껴봤자 별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         *         *

“아주 나쁜 놈들이라니까! 그 자식들이 내 시험지를 훔쳐보려고 했어!”

“?”

“??”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가이난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커닝하려고 했단 사실이 놀랍기보다는 그 상대가 가이난도라는 점이 좀 이상했다.

“왜 굳이?”

“글, 글쎄? 가이난도보다 공부를 안 한 것 아닌가?”

“그게 가능해?”

“몰라. 흰 호랑이 탑 놈들 공부 더럽게 안 하잖아.”

“정말 절박했나보군...”

“난 그럼 치유 마법 시험 보고 온다.”

“앗. 나도 같이 가. 워다나즈.”

“나도 가야 해.”

(강제로) 치유 마법을 듣게 된 학생들이 이한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강의실로 향하며 학생들은 가볍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강제적으로 듣게 하시다니. 시험도 봐야 하는데.”

“상상도 못할 일이야. 안 그래?”

이한은 친구들의 말에 대답하고 상처받는 대신 부드러운 미소만 보여줬다.

“아. 잠깐.”

“왜 그래?”

“탑에 갔다 와야겠군. 환상 마법 책을 두고 왔다.”

“무슨 소리야, 워다나즈? 지금은 치유 마법 시험이잖아?”

“응. 이번 시험 다음이 바로 환상 마법 시험이야.”

“......”

“...우, 우리가 가져다줄까?”

친구들의 배려는 넘기고, 이한은 혼자서 탑을 향했다.

‘사실 환상 마법 시험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데.’

지금 남은 마법 시험 중 가장 두려운 건 역시 부여 마법 시험이었다.

제출도 하필 가장 마지막에 위치해 있어서 기말고사 주간 내내 사람의 심장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에 비해 환상 마법 시험은...

‘합리적인 시험 그 자체지.’

탑에 가서 책을 꺼낸 이한은 본관 1층 서쪽 강의실로 향했다.

그 곳에서 치유 마법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유 마법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가르시아 교수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치유 마법은 실제 사람한테 쓰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과 연습을 필요로 했다.

그런 만큼 1학년 학생한테 나올 만한 문제도 한정될 터.

이한은 아마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처럼 시험지 형태의 문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잠깐. 거기서 뭘 하고 있어?”

“!”

낯이 익은 선배 두 명이 강의실 쪽에서 걸어왔다.

필과 칠, 치유 마법을 맡고 있는 두 선배였다.

원래라면 보이지 않아야 할 마법학교의 선배가 보인다는 건...

“시험 때문에 오셨습니까?”

“맞아.”

“놀랄 줄 알았는데 안 놀라네?”

“예?”

“신입생들은 원래 선배들 보면 놀라지 않나? 우리 땐 그랬는데.”

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2학년이 되고 나면 언제나 깜짝 놀라곤 했다.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선배들이 어슬렁거리며 지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따라와. 시험 장소가 바뀌었어.”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3학년이 시험 보다가 강의실 폭발시켰을 걸.”

“그건 다른 강의실 아니었나? 난 2학년 학생들이 만든 아티팩트가 폭발한 줄 알았는데.”

“......”

등골 소름 돋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한은 두 선배를 따라갔다.

이런 미치광이 학교 같으니라고!

“그러고 보니 다른 친구들은 먼저 왔는데 왜 혼자 늦게 왔지?”

“책을 두고 와서 갖고 왔습니다.”

“아. 그랬... 아차. 나도 두고 왔다. 잠시만.”

필은 미안해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칠은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했다.

“잠깐 기다리자. 미안하게 됐다.”

“괜찮습니다. 시간 넉넉합니다.”

이한이 복도에 서서 책을 꺼내려고 하자, 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강의실 하나를 골라 문을 열었다.

“서서 읽지 마. 앉아서 읽어.”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이한을 보는 칠의 눈빛은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

모든 강의를 다 듣는데 치유 마법까지 들어야 한다니.

세상의 모든 저주를 다 짊어져도 저렇게 괴롭지는 않으리라.

그런 후배를 위해 이 정도 친절도 베풀지 않는다면 그 선배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에 떨어져야 했다.

크르르릉...

키이익...

“?”

강의실 안에 들어간 이한은 웬 동물들의 신음소리가 나오는 것에 의아해했다.

둘러보니 우리들이 쌓여 있고 그 안에 동물들이 붕대를 감거나 아픈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뭡니까?”

“아. 주변 마을에서 구해 온 다친 동물들이야. 이번 기말고사 시험이지.”

“!”

이한은 놀랐다.

동물들도 동물들이지만 너무 시원스럽게 시험 문제를 공개해서였다.

‘이래도 되나? 별 차이가 없어서 그런가?’

좀 당황스러웠지만 곧 시험 시작인데다가, 치유 마법 특성상 괜찮나 싶어서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동물들을 낫게 하는 게 시험입니까?”

“그렇지. 흥미가 있으면 미리 한 번 연습해 봐도 좋아. 내가 봐줄 테니까.”

이한은 선배의 배려에 살짝 감동했다.

기말고사를 먼저 연습하게 해준다니.

개 같ㅇ... 아니, 난이도가 있는 학문에서 고통 받는 학생들에게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응. 어차피 시험 볼 학생들이 다 치료하지도 못해서 나머지 애들은 우리가 낫게 해줘야 하거든. 실수해도 내가 옆에 있으니 괜찮을 거고.”

칠이 이런 특혜를 베풀어 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건 1학년 기말고사가 아니라 2학년 기말고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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