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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88화 (288/687)

288화

‘모든 학파 마법을 다 배우려는 녀석답군.’

칠은 안타까움과 감탄이 반반 섞인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사실 칠은 ‘흥미가 있으면 미리 한 번 연습해 봐도 좋아’라고 말하면서도 이한이 정말로 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이한도 곧 1학년 기말고사를 볼 텐데, 당장 자기 시험에 집중해야지 2학년이 보는 기말고사를 왜 연습한단 말인가.

흥미가 있어도 나중에, 기회가 될 때 해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천재의 사고방식은 범인(凡人)과는 다른 법.

설마 했는데 저 모든 학파 마법을 다 배우려는 후배는 정말로 자기 시험이 앞에 있는데도 연습해보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응원할 뿐.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너 곧 시험도 있잖아.”

“감사합니다.”

아직도 2학년 기말고사인 걸 모르는 이한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만약 진상을 알았다면 선배고 뭐고 멱살부터 잡았을지도 몰랐다.

‘선배가 친절로 베풀어 준 기회. 절대 놓칠 순 없다.’

다리를 다쳤는지 엎드려서 일어나지 못하는 소가 구슬픈 눈길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해보겠습니다.”

“그래.”

칠은 이한 옆에 섰다.

만약 이한이 실수로 소의 부상을 악화시킬 경우 바로 자신이 나서서 수습할 생각이었다.

‘소를 너무 아프게만 하지 마라.’

1학년 후배한테 연습 기회를 주는 것이니만큼 칠은 이한이 완치시키는 걸 기대하지 않았다.

원래 1학년 학생이 살아 있는 생물을 치료하는 것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2학년 시험이 아니었다.

칠이 기대하는 건 이 뛰어난 후배가 소의 부상을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이상하게 들렸지만, 치유 마법을 배우는 저학년 기준으로는 정말로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게 맞았다.

부상을 악화시키는 게 평범.

부상을 악화시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

부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한다면 무조건 손발에 수갑 채워서 치유 마법의 탑으로 끌고 가야 했다.

그 정도로 치유 마법은 초반 난이도가 높았다.

“부어 있고, 열감(熱感)이 느껴지는 걸 보니 골절된 것 같습니다.”

“훌륭해. 잘 파악했다.”

대뜸 치유 마법을 시전하는 대신 상대의 상태부터 파악하려는 모습에 칠은 점수를 높게 줬다.

치유 마법사는 마법사로서 가져야 할 모든 덕목을 갖고 있어야 했다. 특히 그 중 신중함은 무조건이었다.

“떠올라라. 감정이여. 눌렀을 때 아파하는 걸 보면 이쪽 부위가 골절된 것 같은데...”

마법까지 써서 골절 부위를 찾자 칠은 입가가 올라갔다.

후배들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선배 입장에서 뛰어난 치유 마법 재능을 가진 후배를 보면 기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긴 하지만 후배들은 또 다른 후배들을 찾아서 데리고 오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 그래. 아주 잘 하고 있어.”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이한은 그렇게 말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책에서 배운 지식과 마법으로 얻은 정보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뼈가 붙는 이미지를 상상하고 집중한다. 침착하게. 흰 호랑이 탑 놈들한테도 해본 적 있으니...’

이한은 이 동물들을 치료하는 건 그렇게까지 난이도가 높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이도가 높았다면 1학년 시험으로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한도 분명 해낼 수 있을 수준이리라.

“붙어라!”

집중이 끝나자 지팡이가 휘둘러지고 강력한 마력이 방출됐다.

방금까지 구슬픈 울음을 내뱉고 있던 소가 눈을 끔벅거리더니 방실 웃었다.

“...????!???!?”

그리고 칠은 기절할 뻔했다.

‘뭐야?!?!?’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떠도 1학년 후배가 소의 골절을 낫게 한 게 맞았다.

대체???

“선배님? 선배님?”

“어? 어어?”

“그, 확인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잘 된 것 맞습니까?”

“완, 완벽해.”

“그렇습니까?”

이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선배님께서 채점을 하신다면 만점을 주실 것 같습니까?”

“아니... 당연히... 만점이고... 낫게 안 해도 만점이지...”

칠이 너무나도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자 이한도 슬슬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낯익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낫게 안 해도 만점이라니요?”

“악화만 안 시켜도 잘 한 거거든.”

“...아.”

이한은 놀랐다.

생각해보니 그런 식의 평가 기준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젠장. 그걸 먼저 물어봤어야 했나.’

치유 마법이 워낙 부작용이 많은 만큼 악화만 시키지 않아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이한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까지 1학년 중에 낫게 한 학생이 없지는 않죠?”

“없지.”

“예?”

“그야... 이거 2학년 시험이거든.”

“......”

이한은 오랜만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미친 사람인가?’

대체 이한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2학년 시험을 해보라고 권한 것인가?

이한은 상대를 공격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꾹 참고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걸 왜 저한테 권하신... 겁니까?”

“어? 네가 관심 있는 것 같아보여서.”

“......”

물론 이한이 관심 있는 기색을 보이긴 했다.

1학년 시험인 줄 알았으니까!

1학년 후배가 관심을 보이면 ‘이건 근데 2학년 시험이야. 후배. 너는 1학년 시험에 집중해야지’라고 따끔하게 말해줘야 하는 게 선배의 역할 아닌가?

‘나이를 잘못 드셨거나 혹은 토해내신 게 분명하다.’

이한은 이를 악물고 침착을 유지했다. 그리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가 오해했군요.”

“그런데 너 이거 정말 대단한...”

“선배님. 이번 일은 저희만의 비ㅁ...”

벌컥!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필은 이한과 칠이 소 앞에 서있는 걸 보고 물었다.

“둘이 거기서 뭐하고 있어?”

“필! 이 소를 봐.”

“소가 왜... 골절이 나았잖아? 네가 했어?”

“아니. 여기 후배가.”

“?!?!?!?!?”

필은 아까 칠처럼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이한이 다시 설득할 기회를 잡지 못할 정도였다.

“선배님.”

“!!!!!!!!!”

“선배님. 선배님.”

필은 1분 정도 후에야 침착을 되찾았다.

“이걸 정말 네가 했다면 너는 타고난...”

쾅!

문이 다시 열리더니 세상에서 가장 피곤해 보이는 다크 엘프 교수가 들어왔다.

라그린데 교수는 거칠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뱉는 말 마디마디마다 지독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준비는 안 하고 여기서 뭐하고 있나?”

“교, 교수님!”

“후... 후배의 마법을 보고 있었습니다.”

필과 칠은 얼어붙었다.

라그린데 교수는 난폭하거나 잔인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낭비하거나 비효율적으로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환자의 몸을 잘 째고 빠르게 자르는 것만큼이나 적의 몸도 잘 째고 빠르게 자르는 사람이었다.

“후배의?”

신경질적인 교수의 얼굴이 순간 풀렸다. 호기심이 섞인 기색이었다.

그러자 두 선배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다급히 설명했다.

“예! 여기 소를 낫게 했습니다.”

“1학년치고는 정말 놀라운 솜씨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

라그린데 교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쓸데없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 교수였지만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안 도와줬고?”

“예!”

“그렇습니다!”

“......”

라그린데 교수는 소를 한 번 쳐다보고, 이한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소를 한 번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이한을 한 번 쳐다보더니 깊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2학기 때부터는 실습에 참관시켜.”

“교수님!?”

“잘, 잘 하긴 했지만 아직 1학년인...”

라그린데 교수는 차가운 눈동자로 두 선배를 쳐다보았다.

후배를 지키려던 두 선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생... 생각해보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소, 소를 낫게 했으니까 환자도 낫게 할 수 있겠죠?”

“......”

이한은 두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착잡해했다.

‘이런 권력 앞에서 비겁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살짝 믿었는데 바로 배신당하다니!

라그린데 교수는 피곤했지만 참고서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례적인 일이니만큼 제자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소를 완전하게 낫게 한 이상, 그 다음은 어차피 실제 사람이다. 괜히 쓸데없는 훈련만 시켜봤자 흥미만 떨어지겠지.”

이한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게 쓸데없는 작업을 참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능력이 없다면 시키지도 않는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데 1학년이라고 묶어놓는다면 그게 더 비효율적인 짓이지.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교수님.”

“저희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알겠다. 시험 준비 시작하도록.”

라그린데 교수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멍하니 있다가 2학기 난이도가 한층 뛰어버린 이한은 갑자기 가르시아 교수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잖아요. 어디 가서 흰 호랑이 탑 학생 발목 낫게 했다고 절대로 말하지 마요.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가르시아 교수님.’

“잘 부탁한다. 후배.”

“우리가 괜히 말리려는 꼴이 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오해하지 마. 네가 1학년이라고 텃세를 부리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 힘들어서 그런 거거든. 하하. 내가 무슨 말을... 후배 너라면 오히려 기대가 되겠지?”

필과 칠은 이한의 속을 뒤집어놓고 걸어 나갔다.

이한은 두 선배를 공격하려다가 참았다.

진짜 기말고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1학년 기말고사는 뭡니까?”

“시험지 풀기. 부상의 종류와 사람 몸의 구조에 대해 나와. 재미없겠지?”

“......”

*         *         *

“워다나즈 지금 되게 기분 더러워 보이지 않아?”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이난도. 너 무슨 짓 했냐?”

“안 했어!!”

가이난도는 울컥했다.

“시험 잘못 본 거 아니야?”

“물어봤는데 다 맞았다던데?”

“......”

“......”

말을 꺼낸 두 푸른 용의 탑 학생의 얼굴이 이한처럼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잘 봤으리란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만점일 줄이야!

‘만점 받았으면 뼈가 부러져도 웃어야 하지 않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시험이나 보러 가자.”

이한은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2학기는 2학기 때 걱정하고 일단 남은 시험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다들 안 가나?”

“...워다나즈. 우린 환상 마법 안 듣잖아.”

“나도 안 들어.”

“...그, 그래. 나만 갔다오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이한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고 느꼈다.

<기초 환상 마법>.

다행히 키르민 쿠 교수의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의실에 깔린 환상들을 구분하고, 잘못 만들어진 환상이 있다면 그 허점을 찾는 관찰력에 관한 시험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군.’

환상 마법에 대해서는 따로 배우기까지 하고 있는데다가 몇 번 몸으로 당한 적도 있는 만큼 이 정도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험에 집중하자 이한은 치유 마법 시험 때 겪은 분노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다 됐습니다. 교수님.”

“잘 했다. 워다나즈. 저번 중간고사보다는 점수가 내려가서 아쉽지만 말이야.”

“...?”

이한은 멈칫했다. 그리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점수가 내려갔습니까?”

“농담이다. 농담. 저번 시험에는 만점이었는데, 이번에는 1점 깎여서 농담 한 번 해봤다.”

키르민 쿠 교수는 당연히 이한이 웃으면서 넘길 거라고 생각했다.

1점 깎인다 하더라도 이미 압도적으로 1등이었으니까.

다른 학생들의 평균보다 수십 점 높게 나오는데 1점 깎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제가 1점 실수를 했단 말입니까?!”

“...워, 워다나즈. 내가 혹시 숫자를 잘못 말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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