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91화 (291/687)

291화

‘아쉽군.’

이한은 속마음을 해골 교장에게 들키자 아쉬워했다.

용의자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라 입을 놀릴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한다니.

해골 교장은 파란 안광을 가늘게 만들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수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하긴. 쓸데없는 소문 낼 시간도 없겠지. 방학 잘 보내라.

해골 교장이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포기하자 이한은 괜히 찜찜해졌다.

‘뭐지? 방학 때 언데드라도 보내려는 건가?’

마법학교 안이니까 야밤에 언데드를 보내서 탑을 습격해도 넘어갈 수 있는 거지, 대도시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제국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해골 교장.

이한은 떨떠름해하며 물러섰다.

‘설마 아니겠지.’

*         *         *

주말 동안 방학 준비를 끝낸 학생들은 짐을 바리바리 짊어진 채 정문으로 걸어갔다.

무겁고 불편해도 학생들은 모두 싱글벙글이었다.

“폰리그. 고맙다.”

이한은 책 한 보따리를 등에 올린 폰리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폰리그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발굽을 탁탁 두드렸다.

“아차. 이것도 갖고 가야하는데. 혹시 이 책들도 올려도 괜찮나?”

-푸히힝.

“고맙다. 잠깐. 이 책도...”

-......

폰리그가 살짝 이한을 째려봤다.

그러는 사이 옆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에인로가드. 에인로가드. 너무 좋다네.”

아산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기초 음악> 강의 과제로 작곡한 노래였다.

“따뜻한 식사와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 에인로가드.”

“따뜻한 식사와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 에인로가드.”

원래라면 ‘푸른 용의 탑 놈들아 가짜 노래 부르지 마라’라고 핀잔을 줬을 다른 탑 친구들도 어지간히 기분이 좋았는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후배들도 곧 들어와서 이 천국을 즐기겠지. 에인로가드.”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군.”

“2학기 때는 후배들 안 들어오잖아.”

“젠장. 왜 안 들어오지?”

‘어제 선배들 욕하던 놈들 맞나?’

“한 존귀한 황자가 있었다네...”

“......”

“왜? 나도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부를 거야.”

가이난도의 말에 학생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한 정령, 두 정령, 세 정령, 네 정령...”

“언제나 식사를 차려주는 명예로운 마법사가 있었다네...”

“사악한 리치가 습격해오자 기사들은 나팔을 불어서...”

‘난장판이군.’

방금까지 합창이 이어졌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노래가 섞이고 박자가 엉켰다.

이한은 폰리그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흥얼거렸다.

“에인로가드. 에인로가드. 너무 좋다네.”

“따뜻한 식사와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 에인로가드.”

노래하며 정문으로 향하는 1학년 학생들의 모습을, 해골 교장과 교수들은 흐뭇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가르시아 교수는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해골 교장은 버두스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왜 나한테는 안 알려줘?”

자네가 앞으로 내 말을 잘 듣는다고 약속하면 어디에서 머무는지 알려 줄 수 있지.

“약속할게!”

대충 말고!

“저. 교장 선생님?”

아. 가르시아 교수.

가르시아 교수가 다가오자 해골 교장은 하던 대화를 멈췄다.

“방금 무슨 대화를 하고 계셨던...?”

별 것 아닌 이야기였소.

“나한테만 워ㄷ...”

버두스 교수가 말하려고 하자 해골 교장은 거대한 나무껍질을 소환해서 교수의 입에 물려버렸다.

그래서 무슨 일로?

“아.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으셨다고요.”

해골 교장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게 어떻게 나 혼자만의 공이겠소. 다른 교수들 모두...

버두스 교수와 볼라디 교수가 눈에 들어오자 해골 교장은 하던 말을 멈췄다.

...모두는 아니고, 하여간 가르시아 교수도 참 고생 많았소.

“그렇습니다. 정말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기말고사를 위해 찾아온 제국 관료, 이운라데도 동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학생일 때는 그냥 교수들이 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졸업해서 찾아와보니 역시 교수들이 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들 이 에인로가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이운라데의 생각을 읽었는지 해골 교장은 싱긋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소.

“아참. 교장 선생님.”

이운라데는 해골 교장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지금 기분이 좋은 걸 보니 꺼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길래?

“그... 어제 연락이 왔습니다만. 황제 폐하께서 교장 선생님을 독대하고자 하십니다. 가능한 빨리 수도로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

해골 교장의 영혼이 일렁거리자 주변의 기온이 내려가고 순식간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눈 돌아간 대마법사에게 에인로가드 뒷산 산맥에 끌려가 묻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운라데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저... 는 별 말 안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별 말 안 했는데 왜 독대하려고 하시지? 난 이해가 안 가는군. 지금이 만날 때도 아닌데? 솔직하게 말해보게. 정말 아무 말도 안 했나?

“그건 저도 잘... 교장 선생님! 제가 졸업한지 몇 년인데 징벌방에 넣으실 수는 없습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하. 오해가 있는 것 같소. 제국 관료를 징벌방에 넣을 리 없지 않소.

해골 교장의 인자한 말에도 불구하고 이운라데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아직 결정된 게 아니잖습니까! 포상을 내리시려고 부른 걸 수도 있습니다!”

포상 같은 소리 하고 있군. 그럴 리가 있나.

해골 교장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보통 황제와 만나서 할 이야기는 에인로가드 졸업한 마법사가 사고를 쳤거나 에인로가드 재학 중인 마법사가 사고를 쳤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포상이란 말인가.

해골 교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놈이 무슨 사고를 쳐서 얼마나 예산이 깎일지 생각하니 벌써 영혼이 시려왔다.

“괜... 괜찮으실 겁니다.”

해골 교장이 조금 진정한 것 같자 이운라데는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다면 예산이 삭감될 경우 급료를 에인로가드에 기부하도록.

“제... 제 급료는 대양(大洋)에 비하면 물방울 하나 수준이라...”

됐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해골 교장은 혀를 끌끌 찼다.

이운라데가 정말로 억울해하는 걸 보니 보고서 때문 같지는 않았고...

혹시 모르는 사이 에인로가드 졸업생이 사고라도 친 것 아닌가 싶었다.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황제 폐하를 뵙고 와야겠군.

“그러면 저희 학파 연구 예산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새 아티팩트에 필요한 보석들이...”

“전투 훈련을 위한 몬스터가 필요합...”

......

이 상황에서 자기 마법부터 신경 쓰는 교수들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진저리를 쳤다.

누가 가르쳤는지 참으로 지독한 자들이었다.

*         *         *

해골 교장의 언데드 군세는 정문을 통과한 학생들을 호위하며 따라붙었다.

그랑덴 시까지 학생들을 무사히 호위하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만큼 호위 없이 가는 건 무리였...

...지만 이미 정문 앞에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이쪽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검소하셔도 그렇지 이런 거적때기를 입고 계시다니!”

“얼굴이 반쪽이 되셨잖습니까!”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각 가문의 호위들이 달려왔다.

순식간에 씻기고 벗기고 갈아입히고 간식까지 입에 물려주는 모습에 다른 탑 학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럴 거면 왜 에인로가드를 다니는 거지?”

“맞는 말이다. 에인로가드의 교훈을 파괴하는 행동이지.”

“이한 님. 모시러 왔습니다.”

늙은 기사 알라르롱이 호위들을 데리고 이한을 부르자 이한은 못 들은 척 했다.

“이한 님?”

“쉿. 크게 부르지 말도록. 경.”

이한은 알라르롱의 입을 막았다. 알라르롱 뒤에는 낯익은 가문 출신 기사들이 말을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도 갖고 왔나?”

“마차 말입니까? 너무 과하다고 생각해서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아니. 괜찮아. 갖고 오지 않아서 고맙군.”

아마 이 행렬 그대로 그랑덴 시까지 가게 될 텐데, 마차에 들어가 있으면 유독 눈에 띌 것 같았다.

같은 탑의 다른 친구들이야 신경 안 쓴다지만...

“이한! 태워줄까?”

벌써 휘황찬란한 마차 안에 들어가서 쿠션 깔고 누운 가이난도가 손짓하며 이한을 불렀다.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이한 님 친구분 아니십니까?”

“모르는 사람이야. 마을에 구했던 저택이 그랑덴 시로 옮겨졌다고 들었는데, 맞나?”

“그렇습니다. 학교 쪽에서 사람이 나오더군요.”

알라르롱은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근처 마을에 학생들이 방문해도 돈을 구하지 못하도록 저택들을 전부 다 도시로 보내버리는 에인로가드의 배려심!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에인로가드도 참 그렇군. 구한 저택을 좀 볼 수 있나?”

“그리 좋은 곳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알라르롱은 도시 지도를 펼치며 손가락으로 위치를 짚었다.

도시 중앙 귀족 구역에 위치한, 한 눈에 봐도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저택이었다.

‘이게 좋은 곳이 아니라면 대체 알라르롱 기준의 좋은 곳은 뭘까?’

이한은 이 저택 살 돈을 아껴서 그냥 자신한테 주면 안 되냐고 물으려다가 참았다.

알라르롱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학교생활은 어떠셨습니까?”

“예상과는 좀 많이 다르더군.”

이한의 말에 알라르롱이 넉넉한 웃음을 흘렸다.

“어느 학문이든 배움의 장소는 다 그런 법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에인로가드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이한이 제국의 모든 교육 시설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에인로가드보다 괴팍한 곳이 있을 거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들으셨던 강의 중 마음에 드신 강의가 있으십니까?”

“으음. 반강제로 듣게 된 게 많아서.”

“하하하... 저도 예전에 기사단에서 지낼 때 그랬습니다. 검만 휘두르고 싶었는데, 기사로서의 품위와 긍지를 지켜야 한다고 칠학(七學)을 배우게 하더군요.”

“그것과도 좀 다른데...”

이한은 말끝을 흐렸다.

기사로서 시와 음악, 춤 같은 걸 배우는 것과 에인로가드에서 강제로 마법을 배우는 건 조금 달랐다.

“참. 경에게 배운 덕분에 검술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 고맙군.”

“검술 강의가 있었습니까? 하긴, 기사 가문은 물론이고 다른 귀족 가문 자제분들도 검술은 교양 삼아 익히실 테니...”

‘나 빼고는 전부 다 흰 호랑이 탑이었는데.’

“기사 가문 출신들이 많아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 생각보다 괜찮던데.”

“과연... 하긴, 다들 기사 가문 출신인 만큼 이한 님을 배려했겠군요.”

“...?”

이한은 멈칫했다.

배려를 했나?

“......”

“......”

옆을 지나가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안 그랬는데...

“음. 굳이 따지자면 배려를 한 것 같기도 하고.”

“훌륭합니다. 기사라면 무릇 그래야지요. 검술을 조금 더 많이 배웠다고 그걸로 상대를 짓밟으려고 한다면 그건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겁니다.”

이한은 지나가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분이십니까?”

“아니. 모르는 사람이군.”

“그렇습니까. 이한 님은 1학년 때 무슨 학파의 마법을 전문적으로 익히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직 못 정했군.”

이한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오해한 알라르롱은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직 남은 시간은 넉넉하니, 듣지 못한 강의들을 더 들어보시면 결정을 내리실 수 있을 겁니다.”

“굳이 그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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