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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96화 (296/687)

296화

“갑시다! 능력을 보여주러!”

연금술사는 잔뜩 각오가 선 얼굴로 말했다.

이한은 살짝 당황해서 물었다.

“음. 메이킨 가문의 요네르를 만나고 싶은데...”

“아. 마침 잘 됐소. 오늘 평가해줄 사람이 바로 메이킨 가문의 요네르 님이시니. 따라오기만 하면 되오.”

연금술사의 말에 이한은 반색했다.

메이킨 가문의 사람들이 하도 정신없어서 일을 중지시키고 부르기 미안했는데, 연금술사의 말을 들어보니 그냥 이대로 가면 요네르를 만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랫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워다나즈 님. 이해가 안 가는 게... 메이킨 님도 저희와 같은 1학년 아닙니까? 연금술에 뛰어나신 건 알지만, 새로이 만들어지는 물약까지 평가할 수 있습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군.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게 아닐까?”

귀족 가문에서는 자제들의 명성을 위해 종종 실적을 몰아주곤 했다.

옆에 가문의 연금술사들이 조언을 해주고 요네르의 이름으로 평가를 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과연. 귀족 가문들은 참 흥미롭습니다.”

“그렇지? 이런 것들도 다 배워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야. 랫포드.”

“감사합니... 으응?”

랫포드는 의아해했다.

어디에 쓸모가 있다는 거지?

‘도둑질 하라는 건가?’

*         *         *

“기본 재료는 왼쪽에, 추가 재료는 앞에, 특수 재료를 원하신다면 오른쪽에 쪽지를 남겨주시고, 필요한 연금술 도구가 있으시다면 따로 말해주십시오! 안에서 크게 사고를 일으키시면 책임을 지게 할 수 있으니, 불안하시면 감시관을 불러주시고요!”

메이킨 가문의 하인은 다다다다 쏟아내듯이 외쳤다.

얼굴에는 빨리 여기 작업을 끝내고 다음 작업을 하러 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번쩍였다.

“잠깐. 귀족 분 아니십니까? 어째서 여기에?”

하인은 그제야 이한과 랫포드의 옷차림을 알아챘는지 당황스러워했다.

귀족 가문 출신이라면 저택 앞에 줄을 선 사람들과 같이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가문의 이름으로 사람을 보내고 약속을 잡은 다음 따로 만나면 될 텐데?

그러자 연금술사가 대신 엄하게 말했다.

“귀족이라도 아쉬우면 기다려야 하는 법이오.”

“그게 무슨...? 아니, 알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하인은 괜히 손님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무례를 범하느니, 그냥 내버려두기로 결심했다.

언제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법이었다.

“자. 그러면 시작하도록 할까.”

연금술사는 이한을 보며 씩 웃었다.

방금까지는 같은 목적으로 온 동료였지만, 이제는 경쟁자나 마찬가지.

“메이킨 가문의 사람은 언제 오는 거지?”

“물약을 다 만들면 오지 않겠소?”

이한은 잠깐 고민했다.

일이 복잡해지는데, 그냥 지금이라도 나가서 하인 붙잡고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하면서 사정을 설명해야 하나 싶었다.

‘음. 괜히 미안해지겠는데.’

하지만 그랬다가는 아까 문지기부터 시작해서 길을 안내해 준 하인까지 곤란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다른 귀족 가문의 손님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다는 건 꽤 큰 잘못이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서로의 체면이 섰던 것이다.

“랫포드. 아무래도 아까 정문에서 그냥 신분을 밝혔어야 했던 것 같다.”

“......”

랫포드는 이한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역시 그게 맞았던 겁니까? 아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이신데...”

“그러게 말이다. 다들 줄 선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줄을 서게 되더군.”

“아까 들어올 때라도 밝혔다면...”

“저 연금술사가 먼저 외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하긴 그 때 밝혔어도 소란이 일어났겠군.”

이한은 뺨을 긁적이다가 결정을 내렸다.

“일단 물약 만들어서 요네르 부르자. 요네르만 만나면 조용히 수습이 되겠지.”

“알겠습니다.”

“후후. 이제야 결정을 했나보군. 무슨 물약을 만들기로 했소?”

“하급 체력 회복 물약.”

“하급 체력 회복 물약을 만들 겁니다.”

“?!”

연금술사, 칼준인은 둘의 말에 당황했다.

메이킨 가문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당연히 자신이 직접 개발한 비범한 물약을 120%로 만들어도 모자란 상황인데?

“그래도 되겠소?”

랫포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에인로가드에서 혹독하게 단련된 이한에게 숨쉬듯이 쉬운 순간이었다.

“가끔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위대할 때도 있는 법이지.”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위대하다?”

“한 가지 물약을 천 번 만든 연금술사가 있고, 천 가지 물약을 한 번 만든 연금술사가 있다면, 과연 어느 연금술사가 더 뛰어나겠나?”

“...!”

칼준인은 이한의 말에 번개가 관통하고 지나간 듯한 충격을 받았다.

확실히 그럴듯했다.

‘그런가? 내가 너무 쓸데없는 욕심을 내고 있었나?’

칼준인은 자신이 가진 실력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과욕이었다.

메이킨 가문의 뛰어난 연금술사들이 그런 허세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지 않은가.

“과연...!”

칼준인은 깊은 깨달음을 얻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자신도 없는 물약을 만드느니,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물약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랫포드가 감명 받은 표정으로 속삭였다.

“방금 해주신 이야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 근데 대충 던진 거니까 너무 귀담아듣지 말고.”

“......”

세 연금술사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물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재료를 다지고, 돌절구에 넣어 빻고, 솥 밑에 불을 올려서 물을 끓이고, 지팡이를 휘둘러 주문을 외우고...

“색이 좀 탁한 것 같다? 1분 정도 더 끓여.”

“알겠습니다.”

랫포드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그런데 이거 시험 아니잖습니까?”

“기왕 하는 거 잘 만들면 좋지. 공부해서 남 주는 거 아니잖아?”

“그, 그렇죠.”

학년 수석의 잔잔한 광기가 느껴지자 랫포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렇게 공부를 즐겨야 학년 수석을 하나 싶었다.

*         *         *

요아넨 메이킨은 자수정 안경을 꼼꼼하게 닦은 뒤 다시 착용했다.

그리고는 하인에게 물었다.

“지금 서관에?”

“예. 세 명입니다.”

“어때보였지?”

“감히 제가 평가 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 아. 두 분은 귀족 출신 같았습니다.”

“으으응?”

요아넨은 붉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다시 물었다.

“어느 출신이라고?”

“귀족 출신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서관에서 기다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인이 당황스러워하자 요아넨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긴 상대가 그냥 기다렸다는데 하인이 뭐라고 말하겠는가.

“가문의 이름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 받고 싶었던 걸까?”

“아!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자세네. 가자.”

“괜찮으십니까? 수면을 좀 더 취하셔야 할 것 같은...”

“사람은 하루에 한 시간만 자면 충분해.”

“......”

하인은 ‘이래도 되나’싶은 마음으로 요아넨의 뒤를 쫓았다.

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간 요아넨은 손님용 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에 들어서자 안에 있던 연금술사들이 인사하려고 일어섰다. 요아넨은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밀고 물약부터 확인했다.

“새로운 물약을 만들어 온 게 아니라 이 감람석 물약을 만든 이유는? 그렇게 어려운 물약이 아닐 텐데?”

칼준인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원래는 저만의 물약을 만들어서 제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완벽하게 만들 수 없는 물약을 억지로 보여드리는 것보다 제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물약을 보여드리는 게 낫다고 느꼈습니다.”

“과연. 쓸데없는 허세가 없는 점이 좋네. 잘 생각했어.”

“감사합니다!”

“다음은...”

다음 물약을 본 요아넨은 살짝 황당해했다.

“아무리 잘 만들 수 있는 물약이라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 쉬운 물약 아닌가?”

“그게...”

이한이 말하기도 전에 요아넨은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물약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놀랐다.

‘이건?’

<하급 체력 회복 물약>은 제조법도 수십 가지가 넘을 정도로 유명한 물약이었다.

연금술을 배우지 못한 사람도 주워들은 풍문과 지식으로 만들어보려고 할 정도로.

하지만 당연히 제조법이 많다고 해서 품질까지 똑같진 않았다. 다양한 만큼 그 품질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이 <하급 체력 회복 물약>은 정말로 뛰어났다.

잘 다듬어진 제조법에 뛰어난 연금술사의 솜씨, 그리고...

‘마력을 얼마나 투입한 거지?’

연금술은 단순히 재료를 정확하게 넣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난이도 높은 제조법일수록 마법사의 마법 또한 같이 들어갔다.

뛰어난 연금술사는 뛰어난 마법사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물약은 다른 물약보다 몇 배로 마력이 강했다.

물약의 균형을 망가뜨리지 않고 마법사가 한계까지 마력을 과투입한 게 분명했다.

예술에 가까운 마력 통제 능력.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겠어. 합격. 뭘 원하지?”

요아넨은 물약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직 어린 학생 둘이 살짝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요아넨을 쳐다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 요네르 좀 불러주십시오.”

“...??!”

*         *         *

아무리 봐도 요네르가 아니라 요네르의 언니 같은 사람이 들어오자, 이한은 칼준인에게 물었다.

“메이킨 가문의 요네르가 평가한다면서?”

“아... 미안하오. 내가 긴장해서 착각한 모양이군. 요아넨 님이었소.”

“......”

에인로가드였으면 바로 주먹을 날렸을 테지만 여기는 아쉽게도 학교 밖이었다.

이한은 참고 요아넨의 물약 평가를 기다렸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겠어. 합격. 뭘 원하지?”

“저, 요네르 좀 불러주십시오.”

요아넨은 깜짝 놀랐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혹시 요네르 친구? 에인로가드 학생?”

“예.”

“귀족 출신 맞... 지요?”

“맞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싶어서?”

요아넨은 매우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한은 저택의 정문에서부터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요아넨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말 미안해요. 저택의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동생의 친구를 이렇게 소홀히 대접하게 되다니.”

“아닙니다. 제가 실수한 겁니다.”

“하인들을 배려해줘서 고마워요. 다들 아끼는 사람들이거든요.”

요아넨은 이한의 배려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보통 귀족 가문 출신이 다른 가문의 하인들을 위해 저런 배려심을 보여주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어느 가문 출신이죠?”

“참. 오늘 특히 바쁜 날인 모양입니다.”

이한은 슬쩍 말을 돌렸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름을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제국의 제일가는 마법명가로서 존중하는 반응.

다른 하나는 제국의 미치광이 마법명가로서 두려워하는 반응.

아직 요네르도 못 만났는데 반반의 확률에 걸고 싶지 않았다.

“오늘요? 아뇨. 오늘은 손님이 비교적 적은 편이죠.”

“예? 저택 앞에 사람이...”

“손님이 많을 때는 하루 정도는 기다려야 들어올 수 있을 정도에요.”

이한은 감탄했다.

메이킨 가문은 이한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부자인 게 틀림없었다.

“가문의 규칙이죠. 찾아온 사람이 어떤 인재일지 알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서 대접해야 한다. 실제로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찾아왔잖아요?”

“아닙니다.”

겸양의 뜻을 표하는 이한의 모습에 요아넨은 더욱 만족스러워했다.

동생이 친구를 잘 사귄 모양이었다.

그래도 친척이라고 멍청한 황족 놈을 돌보느라 괜찮은 친구를 못 사귈까 걱정했었는데.

“참. 그래서 어느 가문 출신이에요? 답을 못 들었는데.”

“...워다나즈 가문 출신입니다.”

“어디요?”

“워다나즈 가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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