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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97화 (297/687)

297화

‘망했나?’

이한은 각오를 다졌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제국의 미치광이 마법명가로서 두려워하는 반응이...

“아주 훌륭한 가문 출신이네요.”

“!”

요아넨의 반응에 이한은 반색했다.

“가문의 명성에 따라가지 못해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럴 리가요. 워다나즈 가문에서도 이런 인재는 드물 것 같은데요.”

훈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이한은 요아넨의 속마음까지는 읽지 못했다.

요아넨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데도 저렇게 배려심이 있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마법밖에 모르는 미치광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요네르를 만나러 가죠. 따라오세요.”

요아넨이 먼저 공방을 나서고 이한과 랫포드가 그 뒤를 따라가려고 하자, 칼준인이 잠시 이한을 불렀다.

“저...”

“?”

“고맙소. 덕분에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소.”

연금술사 칼준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스스로 자신 있는 물약을 만들어서 메이킨 가문에 보여주고 나니 새삼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기본에 관한 이한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칼준인은 절대로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한과 랫포드에게는 그저 칼준인은 좀 당황스러운 사람일 뿐이었다.

‘뭐라는 거지 이 사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줄 잘못 서서 이상한 곳으로 끌려 온 사건에서 대체 무슨 깨달음을?

*         *         *

‘으으으으으으으으으...’

닐리아는 귀족이라면 내지 않을 소리를 속으로 으르렁대며 하녀의 시중을 받았다.

하녀들은 숙련된 솜씨로 닐리아의 옷을 한 겹씩 차례대로 입혀갔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처음에 요네르의 저택에 초대받았을 때만 해도 닐리아는 두근두근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처음 맞이하는 방학에 처음 찾아가는 친구네 집. 거기에 처음 들어가 보는 귀족의 저택 아닌가.

<그림자 순찰대>와 같이 북부 산맥을 오갈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었다.

-귀족들의 저택에는 뭐가 있을까?

-흐음! 저번에 한 번 저택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아주 커다란 몬스터 머리와 가죽이 있더구나. 정말 기막히게 박제된 놈이었지.

-...그런 거 말고... 동화에나 나올 법한... 여기 귀족들만 그런 거 아니야?

-무슨 소리냐? 귀족들은 다 사냥을 좋아한다.

-맞아. 닐리아. 북부만 그럴 리가 없잖아. 다른 지역 귀족들도 다 사냥감을 전시해놓고 살 거라고.

-그런 거 말고! 그림이나 조각품! 음악이나 간식 같은 거!

-저번에 저택 들렸을 때 봤었잖느냐? <벌거벗은 일곱 사냥꾼의 유혈 낭자한 사냥>...

-사냥 북 연주 좋지 않았나?

-아! 그런 거 말고 진짜!!!

-닐리아가 왜 저러는 거죠?

-네가 눈알을 먼저 먹어서 화난 게 분명하다. 그러게 눈알은 어린애부터 먼저 줘야지.

제국 북부 사람들은 꿈이라고는 없었지만 닐리아는 달랐다.

분명 제국 어딘가에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귀족들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 삶은...

‘숨막혀!’

...생각보다 귀찮았다.

처음에 저택 들어갔을 때는 즐거웠다.

분주하게 오고가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저택 부지를 요네르와 같이 산책하고, 이름도 잘 모르는 요리들이 가득 올라온 저녁을 잔뜩 즐기고.

그리고 그 다음부터 슬슬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목욕 시중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뭐? 싫어! 혼자 할 수 있어요!

-저, 저희가 무슨 잘못을...

-...알겠어요... 그냥 해주세요...

충격 받은 표정으로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하는 하녀들을 거절하기에는 닐리아의 마음이 그렇게 모질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주무실 때까지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무슨 오던 잠도 달아날 끔찍할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저, 저희가 무슨 잘못을...

-...그냥 해주세요...

수면 시중.

-일어나셨습니까? 아침 세안 시중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어푸푸. 어푸푸푸. 푸헉푸헉.

복장 시중.

-옷을 입혀드리겠습니다.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껴입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아하하하!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

-역시 마법사 님이셔!

-......

식사 시중.

-잘라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제가 자를래요. 그보다 어제 저녁 때는 이렇게 옆에서 안 계셨잖아요.

-요네르 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셔서...

-그, 그럼 오늘도 특별히 그래도 되지 않아요?

-저, 저희가 무슨 잘못을...

-......

닐리아는 포기하고 식사 시중을 받았다.

고기를 손에 잡고 먹으려는 순간 하녀들이 기겁해서 달려오고, 잔에 물을 떠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하녀들이 또 기겁해서 달려오고, 뺨에 소스가 조금이라도 튀는 순간 하녀들이 또 또 기겁해서 달려오고...

이게 식사인지 하녀들 훈련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요네르는 언제 와요?

-요네르 님은 아직 주무시는 중이십니다. 혹시 기침을...

-아, 아니요. 자게 내버려둬요.

그리고 식사 끝에는 다시 복장 시중.

-옷을 갈아입혀드리겠습니다.

-아침에 했잖아요!?

-네? 점심 옷을... 저, 저희가 무슨 잘못을...

-......

그리고 지금.

똑똑똑-

닐리아는 검게 죽은 얼굴로 비틀거리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요네르가 거기 서있었다.

“미안. 늦잠을 자서...”

닐리아는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며 요네르를 와락 껴안았다. 요네르는 당황했다.

“?!”

있었던 일들 설명을 다 듣고 나자 요네르는 매우 미안해졌다.

“내가 말해뒀어야 했는데.”

“아냐! 나... 나름 즐거웠어!”

“정말?”

“으, 으응.”

‘그냥 말해둬야겠다.’

닐리아가 시선을 피하면서 즐거웠다고 말하자 요네르는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돼? 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

닐리아의 귀가 쫑긋거렸다.

절대로 이 천국 같은 저택에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 나도 같이 할 수 있을까?”

“응? 그래도 되긴 하는데... 재미없을 걸?”

“아냐! 친구하고 같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재미있을 거야!”

닐리아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러자 요네르도 살짝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재미없는 일이 맞았다.

-오늘의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산고리아 꽃의 산지인 제국 남부 해안가의 정치적 불안정이 심해지고 있을 때, 연금술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가?>입니다.

“......”

닐리아는 순간 귀족들이 다른 언어를 쓴 줄 알았다.

“이... 이게 뭐... 뭔...?”

“가문에서 종종 하는 거야.”

요네르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대귀족 가문 중에서 상업과 후원에 적극적인 메이킨 가문은 내부에서도 꾸준한 경쟁을 추구했다.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주제문이었다.

가문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이 주제문에 대해 해결책을 써서 제출할 수 있었다.

“좋은 의견으로 뽑히면 포상도 있어.”

“...으, 으응.”

닐리아는 주변의 눈치를 봤다.

다들 엄숙하게 깃펜을 잡고서 종이만 뚫어져라 노려보는 모습이, ‘우리 그냥 사냥하러 가면 안 돼?’라고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닐리아는 속으로 한숨을 참고 깃펜을 붙잡았다.

뭐라도 쓰자!

북부에는 할 일 없는 사냥꾼들이 많은데 이들을 남부 해안가로 보내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니까 몬스터 대처도 잘 될듯... 몬스터가 잘 잡히면 사람들도 행복해지고 정치적 불안정도 줄어들고... 죄송합니다...

“요네르.”

닐리아와 요네르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누가 봐도 요네르의 언니 같은 사람이 요네르를 부르고 있었다.

“친구 왔어.”

“!!!”

닐리아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친구 왔대! 보러 가자!”

“닐리아. 이거 하기 싫었구나...”

“아, 아니야. 그런 건 아니구...”

*         *         *

고작 며칠 못 봤는데 닐리아가 너무나도 반가워하자 이한은 좀 당황스러웠다.

“혹시 메이킨 가문의 저택에서 힘든 일이라도 있었나?”

“응?! 아니! 무슨! 어떻게 그런 말을... 누가 들으면 오해해!”

닐리아는 펄쩍 뛰면서 부정했다.

‘있었나보군.’

“요네르 성격에 괴롭혔을 것 같지는 않고... 아. 혹시 지나치게 신경을 써줘서 불편한가?”

“어떻게 알았어!?”

닐리아는 정말로 놀랐다.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한 본인도 경험한 적 있었던 것이다.

“그거 말 잘 해놓으면 될 텐데.”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울먹이는데 어떻게 강하게 말해...”

“안 불편하다면서.”

“......”

“돌려서 말하는 방법이 있어. 나중에 알려줄게.”

“오래 있을 거지? 오래 있어. 빨리 가지 마.”

닐리아는 이한과 랫포드의 소매를 붙잡고 약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한은 괜히 닐리아를 초대했나 미안해졌다.

“다른 곳도 가봐야 하는데... 그럼 같이 가겠어?”

닐리아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안에서 은화 주머니를 갖고 나온 요네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다른 곳 방문할 때 같이 가자고.”

“아. 역시 재미없었구나?”

“아니?! 재밌었는데!?”

닐리아는 화들짝 놀라서 양손을 내저으며 부정했지만, 이한과 요네르는 다 안다는 듯이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뭘 하고 있었길래?”

“가문에서 주기적으로 나오는 주제문에 대한 해결책 제시. 오늘은 <산고리아 꽃의 산지인 제국 남부 해안가의 정치적 불안정이 심해지고 있을 때, 연금술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가?>였어.”

“과연. 결국 불안정의 이유는 어획량 감소겠지.”

“맞아. 그쪽 길드들이 지나치게 해산물을 남획하는 바람에 바다의 마력이 거칠어지고 정령들이 분노했어.”

“길드들과 교섭해서 휴양기를 가지는 게 좋겠지만 그리 쉽지는 않겠지. 제국에서 마법사들을 지원해서 바다의 마력을 원래대로 돌리고, 그쪽 길드들 중 친제국파 길드들을 우선적으로 포섭해서 설득하는 게 좋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

이한과 요네르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닐리아는 연신 고개를 돌리며 혼란스러워했다.

이게 지금 같은 나이 학생의 대화가 맞나?

이야기를 나누던 요네르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물었다.

“잠깐. 왜 요아넨 언니가 왔어?”

보통 정식으로 찾아왔으면 하인들이 와서 ‘친구분 오셨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전했을 텐데?

“줄을 잘못 서서.”

“응?”

이한은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친절한 분이셔서 다행이야.”

“...어. 잠깐만.”

요네르는 보기 드물게 당황했다. 이한은 그 반응에 의아해했다.

“왜?”

“언니 앞에서 물약 만들었어?”

“응.”

“언니가 봤고?”

“응.”

“이한. 비블레 버두스 교수님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언니는 착한 비블레 버두스 교수님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요네르.”

이한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렇게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비블레 버두스 교수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애초에 착한 비블레 버두스 교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완전히 모순인 말 아닌가.

사교적인 볼라디 교수, 양심적인 해골 교장 같은...

요네르는 진지하게 말했다.

“빨리 저택을 나가는 게 좋겠어. 가자.”

“정말로?”

“난 이런 거 농담 안 해. 빨리. 닐리아도 나갈 준비 해.”

이한과 친구들은 허둥지둥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닐리아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어 했지만 요네르가 막았다.

“미안해. 그럴 시간 없어. 빨리 나가야 해.”

“힝.”

똑똑똑-

“혹시 대화 다 끝났어?”

“힉!”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미는 언니의 모습에 요네르는 딸꾹질을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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