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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98화 (298/687)

298화

“왜 그래? 요네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 참. 우리 이제 나가보려구...”

요네르는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자수정 안경 너머로 요아넨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가려고?”

“으응.”

“어디 가게?”

“친구들 보러.”

“언제 돌아와?”

“글... 글쎄...?”

“여기 이 워다나즈 가문의 친구분은?”

“이, 이한은 바빠서... 왜?”

“연금술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으시던데.”

“아, 아니야. 그렇게 관심 있지 않아.”

“연금술 수석이시던데?”

“......”

요네르는 이한과 랫포드를 노려보았다.

그 짧은 사이에 그걸 또 말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랫포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이한이 대단한 사람이란 걸 요네르의 언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요네르... 설마 내가 네 친구를 공방의 다른 연금술사들처럼 대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런 건 아니지?”

“아, 아니야.”

“그렇지?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이한은 ‘공방의 다른 연금술사들을 어떻게 대하시는데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마법학교 학생이라면 방학 때 공부도 할 텐데... 내 공방이 연금술을 배우기 적합하지 않은 곳이니?”

“아, 아니야. 언니의 공방은 그랑덴 시 최고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한이 정말로 바빠서...”

요네르가 버티자 요아넨은 이한에게 화살을 돌렸다.

“공방에 한 번 방문해보지 않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언제 방문하시겠어요?”

‘정말 버두스 교수가 맞구나!’

바로 일정 구체적으로 잡으려는 솜씨에 이한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아넨은 이한의 경계심을 눈치 챘는지 당근으로 방향을 돌렸다.

“요네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좀 과장된 말이에요. 가끔 일이 바쁠 때가 있는데, 하필 그 때 요네르가 공방에 왔다가 구경을 한 거거든요.”

“그, 그렇군요.”

다른 사람이면 선량한 요아넨의 표정에 속아 넘어갔겠지만 이한은 아니었다.

원래 악마는 언제나 선량하게 미소 짓는 법.

“제 공방이 그래도 연금술을 방학 동안 공부하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에요. 질 좋은 재료들을 아낌없이 쓸 수 있고, 일하는 분들은 넉넉하게 일급을 받아가죠. 도시의 뛰어난 연금술사 분들도 자주 찾아오는 만큼 인맥을 쌓기도 좋을 거예요.”

‘다 왔어. 이한. 조금만 더 거절하면 언니도...’

요네르의 그런 간절한 바램도 소용없이, 이한은 즉시 반응했다.

“혹시 연금술사 분들도 봉급을 받아갑니까?”

“물론이죠. 아하. 혹시 봉급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에인로가드 학생에 동생의 친구이니만큼...”

요아넨은 은밀하게 손가락을 3개 폈다. 흰 장갑에 감싸여진 손가락에 이한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 배라니.

“이한...!”

요네르는 안타깝다는 듯이 속삭였지만, 요아넨은 이한이 뭘 원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안 그래도 방학 도중에 연금술을 꼭 배우고 싶었습니다.”

요아넨은 우아하게 이한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환영해요. 언제든지 오세요. 참. 잠시만 동생하고 따로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이한과 친구들이 먼저 나가자 요아넨은 요네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요네르는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친구 잃으면 언니 책임이야...”

“정말 안 쓰러지게 할게. 약속. 그보다 꽤 특이한 사람이더라?”

“아. 응. 특이한 사람이지.”

“거절할 줄 알았는데 봉급 때문에 받아들이다니. 설마 워다나즈 가문인데 금화를 좋아해서는 아닐 테고. 혹시 빚이라도 지신 건가?”

“아냐. 그냥 금화를 좋아해.”

*         *         *

“가이난도 만나러 가는 건 좀 걱정이 되는군.”

이한도 어지간한 대귀족 가문은 그냥 방문해도 되는 신분이었지만, 황족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기본적으로 엮여서 서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제국의 귀족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황족 중 뛰어난 사람을 지지하는 충성파.

백 명도 넘어가는 황족들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비웃으며 대립하는 귀족파.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파.

워다나즈 가문은 대표적인 중립파에 속했다. 사실 워다나즈 가문은 중립파를 떠나서 칩거파나 외톨이파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한이 황족 저택에 공식적으로 방문했다가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황족 A 지지?> 하면서 헛소문이 돌기 딱 좋았다.

“괜찮아. 이렇게 여럿이서 가면 학교 친구들이 다 같이 방문한 게 되니까.”

요네르는 이한의 걱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적당한 명분이 중요했다.

“사실 그건 너희들하고 같이 가면 되는 문제라 크게 걱정 안 했어. 그보다는 가이난도네 저택에 있을 사람들이 걱정인데.”

달카드 가문과 메이킨 가문을 방문하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귀족 가문들의 저택은 차이가 심했다.

이제 가이난도 저택에서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가이난도네 저택의 분위기는 어떻지?”

“가이난도네 저택? 평범한데. 우리 가문처럼 시험보거나 하는 것도 없어. 손님들 숫자도 적은 편이고.”

가이난도의 저택에 방문하는 손님들은 황족인 가이난도를 보려고 오기보다는 가이난도의 어머니 때문에 오는 것에 가까웠다.

일단 가이난도 어머니의 가문인 크라하 가문이 제국에서도 어마어마한 부자 가문이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재산이 많으면 없던 능력도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손님들이 못 찾아와서 안달이었다.

그러나 가이난도네 저택의 손님들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가이난도 어머니께선 손님을 맞이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거든.”

“어째서지? 손님이 많이 방문해야 가이난도 명성을 홍보하기 좋을... 음. 아니다.”

손님을 자주 맞이해야 가문의 소문이 돌고 명성이 올라간다지만 가끔은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자주 맞이할수록 안 좋은 소문만 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한은 화제를 바꿨다.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시지?”

만약 또 다른 착한 버두스 교수 같은 사람이라면 방문을 조금 미룰 수도 있었다.

“친절하고 상냥하신 분이셔. 그리고...”

“그리고?”

“정말 엄청나게 아름다운 분이셔.”

“그, 그렇군.”

이한은 뜬금없는 말에 당황했다.

“처음에 만나게 되면 아마 얼굴을 직접 쳐다보기 힘들 거야.”

“어째서?”

“정말 아름다우셔서 뒤에서 후광이 뿜어져 나오거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그건 그냥 정령이나 천사 쪽 핏줄이 섞이신 것 아닌가?”

“맞아. 빛의 정령 쪽 피가 좀 섞이셨다고 들었어.”

이한은 ‘빛 때문에 얼굴이 안 보이는데 아름다운지 안 아름다운지 어떻게 아느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요네르가 워낙 존경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참. 가이난도하고 친하게 지내면 정말로 용돈을 주시나?”

“응.”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가장 친한 편이지?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랫포드와 닐리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         *         *

“삼십 분만 기다려주십시오.”

“아. 손님이 먼저 와있습니까?”

“그... 죄송합니다. 삼십 분만 기다려주십시오.”

“??”

이한과 친구들은 휘황찬란 호화스러운 가이난도네 저택 정문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이 먼저 와있으면 잠시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정문 밖에서 기다리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저택 안에서 뭔가 보여주면 안 되는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뭐지?”

빰빠빠빠빠-

펑! 퍼퍼퍼퍼펑!

거대한 관악기 합창 소리와 함께 마법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무슨 축제라도 열렸나 싶어서 깜짝 놀란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이게 대체...”

“저택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택에 오신 걸...”

“환영...”

“환영...”

“환영...!”

안에서 들리는 합창 소리.

이한은 갑자기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게 무슨 소란이랍니까?”

“크라하 가문 저택에서 황자님이 손님을 환영하는 모양이랍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요란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들인가 봅니다.”

사람들이 흥미롭게 떠드는 소리에 이한과 친구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망토여, 나를 삼켜라.”

“같, 같이 들어가! 나도!”

넷은 에인로가드에서 배운 마법을 쏠쏠히 사용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대리석 계단 위에 있던 가이난도가 넷을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여기!”

“빨리 노래 중지시켜!”

“어? 왜? 아직 1악장밖에 안 연주됐는데.”

“시끄럽고 노래나 중지시켜!”

“빨리 중지시키십시오!”

친구들이 화를 내자 가이난도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손짓했다.

그러자 저택 부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연주자들이 악기에서 손을 뗐다.

“왜? 노래가 별로였어?”

“노래의 문제가 아니야.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이한과 친구들은 가이난도를 질질 끌고 저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가이난도는 투덜거리며 끌려왔다.

“연주 다 듣고 들어가도 되잖아.”

“나중에 들을게.”

“정말?”

“...언젠가. 그보다 가이난도. 잘 지냈지. 별 일 없고?”

이한은 화제를 돌렸다. 가이난도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별 일이 있긴 했는데.”

“!”

이한은 놀랐다.

설마 아산이 달카드 가문의 잘난 형제들에게 당한 것처럼, 가이난도도 잘난 황족들에게 핍박을 받거나 한 것일까?

“누가 시비라도 걸었나?”

“아니. 어제 새 마법사 카드를 넣었는데도 졌어.”

“......”

“......”

요네르는 순간 가이난도의 뒤통수를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렸다.

닐리아가 황급히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면 ‘짝’소리가 났을 것이다.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마법사 카드 말고는 별 일 없고? 누가 찾아와서 시비 걸거나 하진 않았지?”

“응? 아무도 안 찾아왔는데.”

“......”

아무도 안 찾아왔다고 말하니 그건 그거대로 좀 슬프게 느껴졌다.

이한은 친구들과 안타까운 시선을 슬쩍 교환했다.

“우리가 이렇게 왔으니까 됐지.”

“그래서 연주 준비했는데 너희들이 도중에 끊었잖아.”

가이난도가 다시 투덜댔다.

요네르가 붙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올리자 닐리아가 그 손도 황급히 잡았다.

“그보다 이한. 방학 때 같이 놀러가자.”

“뭐하고 놀 생각이지?”

“가게 돌아다니면서 새 카드도 좀 사고, 장난감도 좀 둘러보고, 학교 다니는 동안 쌓인 잡지도 사고...”

이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극단적인 소비 위주의 생활을 하다니.

까딱하면 거지가 되기 좋은 생활이었다.

“가이난도. 그것도 좋지만 더 재밌는 게 있다.”

“뭐? 진짜?”

“날 따라오면 알게 될 거다. 나중에 같이 가자.”

땀 흘려서 버는 은화만큼 즐거운 것도 없었다. 이한은 그 즐거움을 가이난도에게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요네르가 속삭였다.

“가이난도 성격에 그런 거 하기 싫어할 거 같은데.”

“괜찮아. 도망치지 못할 상황에 말해주면 된다.”

“......”

“아참. 빌린 돈 갚아야지.”

가이난도가 하인을 불렀다. 이한은 의외의 모습에 놀랐다.

“먼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엄마가 돈 안 갚으면 쓰레기라고 하셨거든.”

“그, 그렇군.”

가이난도의 방은 마차 몇 대는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각자 적당히 흩어져서 흥미로워 보이는 걸 붙잡고 놀았다.

잡지연재소설을 흥미롭게 읽던(개 수인족 탐정인 토베리즈가 예지 마법으로 범인을 찾고 있었다) 이한은 밖이 시끄럽다는 걸 눈치 챘다.

“오늘 무슨 약속 있나?”

“어? 어... 아. 맞다. 다른 황족들 방문한다고 했는데.”

“......”

“...그게 별 일이 아니면 뭐가 별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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