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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99화 (299/687)

299화

황족끼리 만나는 건 다른 가문의 형제자매들이 만나는 것과 그 의미가 달랐다.

그래도 같은 가문의 형제자매들은 어느 정도 친밀함이라도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황족들은 어지간해서는 서로 만날 일도 없었다.

당연히 황족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길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만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이 벌어졌다.

어느 누가 더 뛰어난 황족인지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그래도 다행인 게, 가이난도네 저택이잖아. 손님으로 온 이상 지나친 소리는 못하겠지.”

이한은 위로하듯이 말했다.

남의 가문 저택에 초대 받은 손님들인 만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건방지게 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초대 받은 주제에 예의도 모르는 놈으로 몰릴 테니까.

“게다가 어머니도 계시잖아.”

어떤 분인지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요네르가 말하는 걸 보니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가문의 힘까지 생각해봤을 때 감히 그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 잠깐 나가셨는데?”

“......”

“...애들아. 잠깐 모여 봐라.”

이한은 잡지를 내려놓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회의 주제는 <황족들 모임 동안 가이난도를 어떻게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였다.

*         *         *

이한의 걱정과 달리 사실 황족들은 가이난도에게 시비를 걸 생각이 없었다.

일단 다른 가문 저택에 초대 받았는데 그 가문의 일원을 모욕할 정도로 황족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문의 힘을 생각해봤을 때 괜히 적을 만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황족들이 시비를 걸 생각이 있는 상대는 바로 서로였다.

“보가준. 오랜만이군. 저번에 클드란 마을 역병 사건을 실패한 건 참 안타까웠는데.”

까득!

“주드란타스... 걱정해줘서 고맙다. 나도 널 걱정 많이 했지. 네 호위기사가 뇌물 사건에 연루될 줄 누가 알았겠냐.”

까드득!

저택을 향하는 황족들은 말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황족의 추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빈틈만 기다리며 매섭게 노려보았다.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황족들은 언제나 자신의 명성을 제국에 알리려 노력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제국의 대소사에 끼어들어 해결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해결이 언제나 좋게 풀리지는 않았다. 실패도 많았고, 가끔은 하기도 전에 자기 추종자 중에서 사고를 치는 경우도 나왔다.

그러면 이제 다른 황족들이 매우 신나서 ‘이야 어떡하냐’하며 걱정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개새끼가.’

‘저번에 뒤졌어야 했는데.’

“두 분께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제국의 미래가 어찌 밝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하하하하하.”

저택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황족과 추종자들만 있지 않았다. 그들과 어울리는 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관람객이자 심판 역할을 했다.

모임에서 황족들 중 누군가 사고를 치면 제국 사교계에 ‘황족 누가 사고를 쳤다더라’소문을 퍼뜨리고, 황족들 중 누군가 뛰어난 업적을 해내면 또 소문을 퍼뜨리고...

만약 이들만 아니었다면 벌써 욕이 몇 마디는 오갔을 것이다.

“참으로 추하기 그지없군요.”

“맞습니다. 진정 아름다운 보석은 늪 밑바닥에 가라앉아도 빛을 발하는 법. 아덴아르트 님에 비하면 하찮은 자들입니다.”

아덴아르트의 추종자들은 다른 황족을 보며 혀를 찼다.

무릇 황족이라면 묵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서로 만나자마자 추하게 다투는 꼴을 보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하. 에인로가드에 입학한 것 말고도 다른 업적이 있나?”

“에인로가드에 입학하지도 못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마법에는 관심이 없으실 뿐이다. 황자님께서는 마법사를 부릴 위치지, 직접 마법을 써야 할 위치는 아니시거든.”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거겠지.”

“자. 다들 잠시 조용히 해주십시오.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황족의 파벌에 끼지 않은 귀족들이 중재에 나섰다.

정문을 지나고 나서도 말싸움을 계속하면 그건 저택의 주인을 무시하는 일이 됐다.

싸우던 추종자들은 입을 다물고 저택의 정문을 통과했다.

그랑덴 시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호화로운 저택...

화아아악-

“!?”

“!”

들어오던 사람들은 저택을 휘감고 빛의 등불을 토해내는 드래곤의 환영에 놀랐다.

한 눈에 봐도 제법 실력 있는 마법사가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한이 버두스 교수에게 (강제로) 배웠던 <아지르모 소환 부여> 마법이었다.

“가이난도. 빨리 인사해라.”

“나도 스켈레톤 소환하는 게 낫지 않나?”

“뼈다귀로 맞고 싶지 않으면 빨리 인사해라.”

“그렇게 화낼 건 없잖아...”

이한이 으르렁거리며 화를 내자 겁먹은 가이난도가 헛기침을 하며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저택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계단 위에 서있는 가이난도와 친구들의 모습은 손님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가이난도 황자도 에인로가드에 입학했다고 들었는데...”

“벌써 이 정도 마법을 쓸 줄이야.”

“자기가 혼자 시전한 게 아니잖습니까? 다른 친구들의 힘을 빌려서 시전했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단합니다. 저 환영 마법을 보십시오.”

손님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던 가이난도의 평가를 조금 올렸다.

자기가 시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저 정도 마법을 시전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대단한 일인 것이다.

가이난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건 이한이 혼자 시전한...”

“쉿. 닥치고 있어.”

“......”

자기 저택인데 주인을 입 다물게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가이난도는 볼을 부풀렸다.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가이난도. 기억하고 있지? 넌 세 가지 말만 하는 거다. ‘예’, ‘아니오’ ‘후후’. 알겠지?”

“예...”

“벌써 할 필요는 없었지만 적극적인 자세가 좋군. 바로 그거야.”

이한은 가이난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모임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됐다. 그러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터.

“반갑습니다. 보가준이라고 합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

“잘 부탁합니다. 주드란타스입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

방문한 황족들은 이한의 가문 소개를 들을 때마다 탐욕스럽게 눈빛을 빛내며 쳐다보았다.

‘내가 금화를 쳐다볼 때보다 더 탐욕스럽게 보는군.’

물론 이한은 상대가 왜 저러는지 잘 알았다.

마법명가인 워다나즈 가문 출신에 에인로가드 학생이기까지 하니, 미래에 크게 될 마법사의 재목이라고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황족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밑에 인재를 끌어 모으는 걸 좋아하는 이들.

“워다나즈 가문의 이름은 많이 들었습니다. 마침 저택에 새로운 마도서가 하나 들어왔는데, 괜찮다면 와서 한 번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안 감사합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번에 아티팩트를 하나 구했는데...”

“감사합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괜히 엮이면 인생이 피곤해졌다. 이한은 한 치의 빈틈도 보여주지 않고 완곡하게 질문을 쳐냈다.

이한이 빈틈을 보여주지 않자 황족들은 닐리아와 랫포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메이킨 가문은 가이난도와 친척 관계인만큼 포섭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다른 둘은 아직 몰랐던 것이다.

“혹시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이번에 새로...”

황족과 황족의 추종자들이 이한과 닐리아와 랫포드를 둘러싸고 괴롭히는 사이, 손님 중 한 명이 궁금하다는 듯이 가이난도에게 물었다.

“가이난도 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저 마법은 누가 시전한 겁니까? 제가 마법에 조금 조예가 있습니다. 저 마법은 다른 마법사가 도와줄 수 있는 마법 같지가 않은데요.”

“후후.”

가이난도는 이한이 시킨 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손님이 다시 물었다.

“황자님께서 시전하셨습니까?”

“아니오.”

“그러면 혹시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이 시전했나요?”

“예.”

“......”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황족들의 질문에 돌려서 대답하고 있던 이한은 속으로 한탄했다.

‘그냥 입을 꿰매버렸어야 했는데.’

“워다나즈 님이 시전하셨던 겁니까? 정말 들어보고 싶군요! 언제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저희는 언제든 시간을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께서 오신다는데...”

방금까지는 그래도 좀 부드럽게 제안하던 추종자들이 눈빛을 희번득거리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한을 추종자 모임에 초대하겠다는 열망이 이글거렸다.

가이난도는 요네르에게 투덜댔다.

“저택에서 같이 놀 시간도 없는데 왜 자꾸 사람을 초대하려는 거야?”

“넌 제발 좀 닥치고 있어...”

*         *         *

저택 앞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서야 찾아온 손님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각자 홀에 앉아 차분하게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아까 가이난도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던져서 이한을 귀찮게 만든 손님은 이한 앞에 앉았다.

“정말 놀랐습니다. 워다나즈 님. 참. 저는 졸바브덴이라고 합니다.”

손을 내미는 엘프의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욕했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에인로가드가 뛰어난 마법학교란 건 알고 있었지만, 1학년 학생이 저 정도 마법을 보여주실 줄이야...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른 황족 분들의 표정을 보십시오.”

‘당신 때문이잖아.’

졸바브덴이 ‘아니! 이 마법은 혼자서 시전한 것!’이란 소리만 안 했어도 황족들이 저렇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지는 않았으리라.

원래 돈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선호하는 이한이었지만 황족들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금화 좀 뜯어내겠다고 어울렸다가는 더 많은 걸 지불해야 하는 이들 아닌가.

괜히 독이 든 성배를 마실 필요가 없었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돈을 벌겠다.’

이한은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오늘 황족 분들이 모여서 뭘 하는 겁니까?”

“아. 이제 곧 수수께끼가 나올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황족들이 모이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쟤보다 잘났다’를 다른 귀족들 앞에서 증명하기 위해서.

당연히 그런 증명을 위해서는 기회도 필요한 법.

때문에 황족들의 모임에는 귀족들이 돌아가면서 자그마한 수수께끼를 하나씩 갖고 오곤 했다.

쿵!

투명한 유리 케이스 안에는 독특한 무늬를 가진 알이 있었다.

유리 케이스를 가지고 온 귀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지혜로운 분들. 과연 이 알이 어떤 생물의 알인지 알아맞히실 수 있으실까요?”

이한 옆에 있던 졸바브덴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브로돈 님께서는 재치가 넘치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워다나즈 님?”

속으로 ‘저딴 거 하고 싶으면 에인로가드 입학하지 그러냐’하고 생각하고 있던 이한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참으로 재치 넘치는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참. 워다나즈 님께서도 한 번 풀어보시면 어떻습니까?”

‘미쳤나?’

이한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물론 졸바브덴은 순수한 마음으로 재능 넘치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제국 사교계에 띄워주려고 하는 거였다.

아무리 위대한 핏줄을 타고 태어나도,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어도, 그것을 퍼뜨리고 다녀줄 사람이 없다면 그 존재를 아무도 알지 못할 것 아닌가.

졸바브덴은 제국 사교계의 귀족으로서 재능 넘치는 인재들의 이름을 널리 퍼뜨리고 다니는 게 스스로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한 입장에서는 그냥 민폐였다.

황족들이 지금 서로 풀고 싶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저기에 왜 낀단 말인가.

“짐작 가는 게 없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이한은 멈칫했다.

이상하게 저 알이 낯익었던 것이다.

어디서 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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