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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03화 (303/687)

303화

살코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푸른 용의 탑 학생들만 보면 인상 찌푸리면서 상대도 안 하려는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가문의 돈을 빌리지 않으려는 건가?”

“그런 셈이지.”

“워다나즈. 넌 진정한 귀족이다.”

살코는 칭찬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한은 별로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가문의 돈을 빌릴 수 있으면 이러지도 않았지 이 자식아.’

따로 자금을 모아서 수익을 올리려는 이한 입장에서 가문의 이름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배움에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지원이 나오지 않을 테고, 짭짤한 일자리를 찾아와달라고 해도 ‘예? 왜 그런 일을?’같은 반응이 나올 테니...

“그런데 살코. 넌 길드에서 일 안 하나? 샤일스는 바쁘던데.”

“운송 길드와 달리 우리 석공 길드는 비수기가 있지.”

“그렇군. 시간을 활용해서 다른 일자리를 구한 건가.”

“그렇지.”

이한과 살코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일에 미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이었다.

“와라. 워다나즈.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해 줄 테니까.”

살코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자, 살코 패거리들이 끼어들었다.

“잠깐. 투탄타.”

“무슨 일이지?”

“나 워다나즈한테 은화 좀 갚고.”

“나, 나도.”

“나도...”

“......”

살코는 황당하다는 듯이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들이 모르는 사이에 대체 얼마나 워다나즈한테 구걸을...

*         *         *

의자에 앉아서 상자를 열고 상자 안에 든 시약이 나오면 그 시약에 든 마력의 양을 감지한다.

원본 시약과 마력의 양이 다르거나, 마력의 질이 다르거나, 혹은 기타 다른 문제가 있으면 그 시약을 제외한다.

확실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한 지루한 일일 뿐.

“이거 제법 괜찮은 훈련이 되겠어. 안 그래? 가이난도? 재료를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도 좋고.”

“......”

가이난도는 친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답하는 대신, 살코가 도움을 요청해 이한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다른 친구들에게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미쳤어! 이한이 미쳤나봐! 이걸 재밌어하고 있어!”

“응? 그럭저럭 괜찮지 않아?”

요네르는 시약을 상자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나중에 자기 힘으로 몇 가지 사업을 굴려보고 싶은 요네르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은화를 모아놓아서 나쁠 게 없었다.

“...너희는?!”

“뭐? 이렇게 쉽게 일하고 그만큼이나 받아가면 감사히 여겨야지.”

닐리아는 가이난도의 질문에 어이없어했다.

북부 산맥에 있을 때는 사흘 내내 짐승을 쫓아서 잡아도 사냥꾼들끼리 나눠 갖느라 제국 동화 몇 닢만 챙겼는데, 여기 창고는 몇 시간만 앉아서 시약 분류를 하면 은화가 손에 들어왔다.

‘이래서 마법사를 해야 하는 거구나’싶을 정도로 좋은 조건이었다.

“맞습니다. 여기 정리가 끝나면 더 이상 은화를 못 받는다는 게 아쉬울 정도입니다.”

“그렇지. 나도 그게 너무 아쉬워.”

닐리아와 랫포드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런 일자리가 한 번 하고 나면 끝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렇게 좋은 일자리가 계속 있을 리가 없잖아.”

“맞습니다. 급한 일이니까 이렇게 잘 쳐주는 거겠죠?”

“미... 미쳤어 다들... 달카드! 달카드!”

가이난도는 마지막 남은 친구인 아산을 불렀다.

그러나 아산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건 좋은 기회지.”

“...미쳤냐?! 왜 그래! 정신 차려! 너까지 왜 그래!!”

가이난도는 몰랐지만 아산은 이미 설득당한 상태였다.

-아산. 생각해봐라.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은화를 모은다면? 너의 형님과 누님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과, 과연...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모은 은화로 선물을 해드리면, 아무리 형님이나 누님이라 하더라도 날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선물을 하란 소리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요점은 그런 거지.

“가이난도. 언제까지 가문의 힘에 의존할 거냐?”

“뭐라는 거야! 가문의 힘이 곧 내 힘이지!”

가이난도가 펄펄 뛰는 사이 이한이 자리에 돌아왔다.

이한은 가이난도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하냐?”

“잠... 잠시 운동을.”

“그렇군. 다시 앉자.”

“응...”

가이난도의 저항은 허무하게 끝났다. 가이난도는 다시 앉아서 정리를 시작했다.

‘흑흑. 집에 가고 싶어.’

*         *         *

창고에서 나오자 벌써 해는 저물고 저녁놀이 찾아오고 있었다.

창고 앞의 도시의 길목에서는 마법등이 하나씩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야경꾼들이 복장을 갖춰 입고 나오는 것도 보였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법사 님들.”

상단 직원들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봐도 귀족 가문 출신 같아 보이는 학생들까지 왔을 때는 ‘괜찮을까? 이런 지겨운 일을 하기 싫다고 소란이라도 피우는 거 아닐까?’하며 걱정했지만,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끝냈다.

마음 같아서는 다음에 일이 생겼을 때 또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실례겠지.’

귀족 가문 자제들한테 ‘다음에 일 생기면 불러도 될까요?’라고 말을 꺼냈다가는 ‘오 그래 저택으로 찾아와봐라 사지 멀쩡히 돌아가진 못할 테니까’란 답을 들을지도 몰랐다.

“저...”

“?”

“혹시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연락 좀 주십시오.”

이한은 귀중한 은화 하나를 상단 직원의 손에 찔러 넣어주면서 속삭였다.

십 년 넘게 일한 일꾼보다 능숙한 인맥 관리에 상단 직원은 경악했다.

‘대체 이 사람은...!?’

이한은 눈을 찡긋거리고 돌아섰다.

‘잘 풀린 것 같군.’

이 시대의 일자리란 건 결국 인맥이 중요했다.

한 번 일한 곳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 또 일자리가 나왔을 때 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연관된 다른 곳에서 일자리가 날아올 수도 있었다.

“다들 고생했다. 가이난도. 장난감 사러 갈까?”

이한은 가이난도를 보며 물었다.

다들 기지개를 펴는 동안 혼자서 은화 주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다.

설마 저택에 돌아가서 어머니한테 ‘흑흑 이한이 저를 데리고 건전한 땀을 흘리게 만들었어요’라고 이르는 건 아니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가이난도가 벌컥 소리쳤다. 평소 안 그러던 가이난도가 저러자 이한도 살짝 당황했다.

“아니. 장난감 사고 싶어했잖아. 카드가 좋나?”

가이난도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은화 주머니를 가슴 속 깊숙이 끌어안았다.

누구라도 주머니에 손을 대면 당장 지팡이를 휘두를 표정이었다.

“내가 이 은화를 어떻게 얻었는데... 절대 그렇게 쓸 수 없어! 방의 가장 깊숙한 금고에 넣어놓을 거야!”

“...그, 그래라.”

이한은 가이난도의 반응에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좋은 일 아닌가!

아산이 가이난도를 칭찬하려고 어깨에 손을 대려고 했다. 그러자 가이난도가 으르렁거리며 물려고 했다.

딱!

“야, 이 미친놈아!! 뭐하는 거야!”

“다가오지 말라고 했지! 내 은화에 가까이 오는 놈들은 모두 물어버릴 거야!”

“......”

이한은 요네르와 시선을 교환했다.

“괜히 데리고 왔나?”

“아, 아니... 그래도 한결 낫긴 해...”

*         *         *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것 같군.’

워다나즈 가문의 저택.

이한은 종이에 메모를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한테 ‘받아먹은 게 있으니 쓸만한 일자리 나오면 같이 하는 거다’하고 부탁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일자리 나오면 같이 합시다’부탁하고...

이 정도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다 들어오리라.

“이한 님. 돌아오셨습니까?”

알라르롱이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이한은 들어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괜찮으시다면 오랜만에 대련 어떠실지 여쭤보려 했습니다.”

“좋지. 고마워. 경.”

“요즘 외출이 잦으신데, 정말 도움이 필요 없으십니까? 무엇이든지 불러만 주십시오.”

“흠.”

이한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물었다.

“혹시 마법학교 학생이자 마법사의 신분으로서 많은 은화를 벌 수 있는 단기 일자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예?”

알라르롱은 당황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죄송하지만... 그런 게 왜 필요하신 겁니까? 마법에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지원을...”

이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이나 부딪치러 가지.”

“???”

알라르롱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혼란스러워하며 이한의 뒤를 쫓았다.

저택의 연무장.

알라르롱은 검을 뽑았다.

평소에는 인자한 노기사의 얼굴을 하고 있던 알라르롱이었지만, 검을 뽑는 순간 거대한 바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한도 검을 뽑았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검사에게만 주어지는 마스터의 칭호를 가진 기사, 알라르롱과 검으로 부딪쳐서 이길 가능성은 없었지만...

‘배운 걸 최대한 활용해보자.’

이한이 에인로가드에서 배운 검술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검에 마력을 불어넣는 기술.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저 기술은 숨 막히는 난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검 내부에 마력의 순환을 완성시켜 검과 육체를 합일시키는 위대한 기술이었고, 이한은 그냥 무식하게 마력을 팍팍 방출하고 낭비하는 식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불어넣는 건 맞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흡(吸)의 묘리.

검에 불어넣는 마력의 성질을 변환시키면 검술도 마법처럼 변화무쌍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가겠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땅-

이한은 목검을 놓친 채 연무장 바닥에 널브러졌다. 마력은 아직도 넘쳐났지만 온몸의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알라르롱은 땀을 닦으며 감탄했다.

“훌륭하십니다.”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군.”

이한은 온몸이 욱신거리는 걸 참으며 말했다. 그러나 알라르롱은 진지했다.

“그 짧은 사이에 마력을 그렇게까지 담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평범한 검사라면 수십 년을 수련해야 하는 경지입니다. 아마 마법에 재능이 뛰어나신 만큼 마력의 운용에도 뛰어나신 거겠지요. 다만 조금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뭐지?”

“마력을 운용하실 때 특수한 방법이라도 사용하신 겁니까? 위력이...”

알라르롱은 욱신거리는 손바닥을 펴며 물었다.

마력을 둘러 보호하지 않았다면 피투성이가 됐을 정도로, 눈앞의 도련님이 휘두른 검은 강검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좋았지만 그 깨달음이 몸을 해치는 방법이라면 검의 스승으로서 말려야 했다.

“아. 그거... 그러니까...”

이한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최대한 미친놈처럼 들리지 않도록 노력해가면서.

“......”

이야기를 다 들은 알라르롱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러니까... 마력을 검에 불어넣고 순환시키면서 유지하시는 게 아니라... 그냥 방출하신다고요?”

“그게, 평소에 그러는 건 아니고 필요할 때만.”

“......”

알라르롱은 이걸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다른 검사라면 한두번 휘두르고 마력 탈진으로 피를 토할 텐데, 이한은 또 마력이 넉넉해서 괜찮다고 하고...

“제가 제국의 수많은 검객들과 상대하면서 온갖 비결과 사이한 수법들을 겪어왔었지만 방금 이한 님이 말하신 것 같은 방법을 쓰는 검사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인가?”

이한은 살짝 풀이 죽었다.

한둘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일단은 괜찮습니다만, 주의해주십시오. 어쩐지 그래서 검이 계속... 참.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어보도록.”

“아까 분명히 마력의 성질을 변화시키셨는데... 흡검 아니었습니까? 흡검을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아. 엥게 가문의 검사와 겨룬 적이 있었지.”

알라르롱은 깜짝 놀랐다.

“엥게 가문의 검사가 가문의 검결을 알려줬단 말입니까? 대체 어째서?”

“아니. 알려준 건 아니고. 검을 부딪치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성질 변화가 가능해지더군. 그래서 그 때부터 써먹어보려고 노력중이야.”

“......”

알라르롱은 쓰러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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