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04화 (304/687)

304화

검술을 보는 것만으로 따라할 수 있다면 제국의 검술 길드와 검술 사범들은 전부 다 칼을 내려놓아야 했다.

물론 정말 뛰어난 검객이라면, 검을 섞는 것만으로도 검술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긴 했다.

그렇지만 정말로 ‘어느 정도’의 수준이지, 복잡하고 심오한 검결까지 다 읽어낼 수는 없었다.

당장 엥게 가문의 흡검 같은 경우도 그런 계열에 속했다.

검을 맞대는 순간 상대에게 끌려가며 균형을 잃게 만드는 검술은 그냥 마력의 성질 변환만 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마력의 성질 변환부터 시작해서 검술 초식의 어느 순간에 쓸지 정교하게 계산해야 최적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그냥 경험으로 깨닫고 알라르롱과 대련하는 도중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키다니.

‘마법의 재능이란 게 이런 식으로도 적용이 될 수 있는 건가?’

알라르롱은 혼란스러웠다.

이한이 마법에 뛰어나다는 건 가주로부터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 천재인 만큼 마력의 성질 변화를 저렇게 본 것만으로 해내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걸 대련에 쓸 정도로까지 발전시키다니...

발라르롱은 눈앞의 도련님을 에인로가드가 아니라 기사단에 보냈어야 했나 싶었다.

“혼자서 수련하신 것치고는 훌륭하셨습니다. 갈고 닦으면 더욱 좋아지실 겁니다.”

“그래? 응원이 되는군.”

이한은 검으로 체중을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학기 내내 고생을 한 만큼, 알라르롱이 인정해준 게 기쁠 수밖에 없었다.

‘쓸만하긴 한가보군.’

“워다나즈 님. 손님이 왔습니다.”

“누구지?”

하인이 이한을 부르며 다가왔다. 이한은 친구들 중 한 명이 왔거나 아직 돈을 갚지 않은 친구들 중 한 명이 먼저 찾아왔나 싶었다.

“사제님이신데요? 곧 교단의 행사가 있는데, 워다나즈 님께서 관심이 있으실 것 같아 찾아왔다고...”

“!”

이한은 반색했다.

프리싱가 교단의 티질링 사제가 말해준 적 있었다.

방학 때 교단의 행사가 있다고.

말이 행사였지 저주 받은 아티팩트들을 모아서 파기하거나 처리하는, 일종의 중고장터였다.

학기 때부터 이한은 이 행사에 참가해서 한몫 챙겨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티질링 사제. 고맙다.’

“옷 갈아입고 바로 가겠다. 행사에 참석할 테니,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달라고 전하도록. 참. 신전에 방문할 때 갖고 갈 수 있게 간식거리 좀 챙겨줄 수 있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

이한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한 옆에는 티질링 사제가 아니라 니기소르 사제가 있었다.

탁탁 타오르는 불꽃을 옆으로 흔들어내며 니기소르 사제가 말했다.

“역시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관심이 있으실 줄 알았소.”

“그렇지... 나는 아프하 교단을 좋아하니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프하 교단은 좋은 교단이었다.

특히 화염 원소를 다루는 데에 약점을 가진 이한을 많이 도와준 교단 아닌가.

그런 교단과 친분을 유지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프리싱가 교단인 줄 알았는데.’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괜히 기대하면 실망만 더한 법.

저주 받은 아티팩트로 한몫 챙길 생각을 했던 이한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프하 교단의 행사는 뭘 하는 거지?”

“먼저 짚 인형 태우기가 있소. 한 해의 액운과 불운을 담은 짚 인형을 불살라 버리고 행운을 불러오는 것이오.”

“과연.”

생각보다 멀쩡한 행사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사제들과 도시의 화염 마법사들을 불러서 제국 안전 수칙을 강의하오.”

“...음?”

이한은 당황했다.

그런 게 있나?

“그런 것도 있었나?”

“아무래도 화염 원소를 주로 다루는 마법사들은 작은 사고에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으니 말이오. 어렸을 때부터 교육 받는 사제들과 달리, 스스로 독학한 마법사들은 위험한 사고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소.”

아프하 교단은 불을 숭배하는 교단이었지 방화를 권장하는 교단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벌써 제국에 현상금이 걸렸을 것이다.

아프하 교단은 오히려 화염에 관한 안전을 철저히 신경 쓰는 교단이었다.

규모가 조금 되는 마을이라면 다들 아프하 교단의 신전을 마을에 놓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잠깐. 니기소르 사제는 세상을 태우고 싶어 하지 않았나?’

이한은 떨떠름한 시선으로 옆에서 걸어가는 사제를 쳐다보았다.

아프하 교단은 도시의 화염 마법사도 마법사지만 니기소르 사제부터 더 관리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마법사들이 말을 듣나?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니기소르 사제는 고개를 저었다.

“제국 안전 수칙을 듣고 나면 교단의 이름으로 수료증을 발급하오. 도시 내에서 화염 마법을 쓰고 싶을 때 꽤 요긴한 물건이니, 꽤 많은 마법사들이 참석하오.”

“!”

다른 마법과 달리 화염 마법은 고용주도 아무나 부르지 않았다.

자칫 잘못 시전했다가는 주변을 다 태워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꼭 받아야겠군.”

“...???”

의욕을 불태우는 이한의 모습에 니기소르 사제는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걸 어디에 쓰려고?

*         *         *

아프하 교단의 신전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신전 곳곳에 설치된 석상에서 피어오르는 불길, 신전에 찾아온 화염 마법사들이 뿜어내는 불길...

니기소르 사제의 말대로 마법사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도시의 화염 마법사들은 대부분 찾아온 모양이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지팡이 가게 가봤나? 동백나무를 재료로 써서 만든다던데. 화염 마법에 어울릴지 모르겠군.”

“난 역시 능금나무 지팡이가 나은 것 같네. 괜히 지팡이를 바꿨다가 통제라도 실패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싸움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금속 갑옷에 벨트에는 단검을 몇 개씩 매달고 있는 모험가 같은 사람까지.

“화상이 심하군. 설마 마법이 역류했나?”

“그래. 자네도 건물 안에서는 조심하게.”

“......”

그리고 흉흉한 대화도 있었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화염 마법 진짜 조심해서 써야겠군.’

“어이.”

“?”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물론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시비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여기는 신전이었다.

‘뭐지? 도시 감옥 가는 걸 즐기는 놈인가?’

“1학년이지? 고개 숙이고 이쪽으로 따라와.”

놀랍게도 말을 건 것은 같은 에인로가드 학생이었다.

에인로가드의 문양을 살짝 보여주며 다시 외투의 앞깃을 여미는 모습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에인로가드 학생... 맞으십니까?”

“그래. 2학년. 목소리 죽이고 따라오라고.”

정체불명의 2학년 선배는 이한을 끌고 신전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여기서는 그렇게 ‘나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다’티를 내서 좋을 게 없어. 여기 도시에서 마법 좀 배웠다 하는 놈들은 에인로가드 출신을 질투하거나 이용해먹으려고 하거든. 괜히 귀찮아지기만 하지.”

선배는 침을 퉤 뱉더니 부츠로 슥슥 문질렀다.

“같은 흰 호랑이 탑 출신이라 조언해주는 거야. 알겠어?”

“...어떻게 제가 흰 호랑이 탑 출신인 걸 아셨습니까?”

이한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선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누가 봐도 ‘나 검 좀 잡았다’라고 외치는 몸인데 못 알아보면 병신이지. 반갑다. 알파 가문의 발가로다.”

1학년 흰 호랑이 탑 학생, 앙라고와 같은 가문 출신의 기사였다.

이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아예 없는 가문을 꺼내면 의심받을 수 있고, 그렇다고 있는 가문을 꺼냈다가 실제로 아는 사이라면...

“...모라디 가문의 가이난도라고 합니다.”

“모라디 가문? 모라디 가문 같진 않은데?”

“방계라서 그렇습니다.”

“허. 닮지 않은 방계라서 고생 좀 했겠네. 모라디 가문 놈들, 지독할 텐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한은 긴 변명 대신 쓸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때로는 긴 변명보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게 더 설명하기 쉬운 법이었다.

그러자 발가로는 알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안 그래도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 방계 출신에 생김새까지 닮지 않다니.

“됐다. 내 앞에서는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선배님은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프하 교단의 허가장을 받으려고 왔지. 뭐하러 왔겠냐. 나는 화염 마법을 주로 쓰거든. 근데 허가장이 없으면 의뢰주는 물론이고 다른 모험가들도 좀 꺼림칙해한다고.”

“의뢰요? 혹시 모험가로 일하십니까?”

“일하지. 뭐야? 너도 다른 놈들한테 들었을 거 아냐. 왜 모르는데?”

“제가 방계라서...”

이한은 다시 쓸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그러자 발가로는 매우 미안해졌다.

“신경쓰지 마라. 널 따돌린 놈들이 쓰레기인 거다. 비열한 새끼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후배라고 기대한 것들이...”

기껏 2학년이 되어서 후배들을 만났는데, 그 후배들이 비겁한 짓이나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발가로는 분노했다.

“원래 흰 호랑이 탑은 방학 때 모험가로 자주 활동해. 생활비는 물론이고 기사로서의 감각도 잃지 않고 훈련할 수 있으니 말이야.”

“과연. 모험가로 활동하면 원하는 의뢰를 골라서 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흰 호랑이 탑과 어울리는 일자리였다.

마법사인 만큼 높은 보수에, 기사 가문 출신이니 어지간한 모험가나 용병들보다 훨씬 더 탄탄한 전투력을 갖고 있으니...

단기에 끝낼 수 있는 의뢰만 고른다면 수입적인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도 있었다.

‘이런 장점이 있었군. 비열한 흰 호랑이 탑 놈들. 자기들만 이득을 보려고 하다니.’

딱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숨긴 건 아니었지만 이한은 분노했다.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기사잖냐. 검은 거북이 탑 놈들이 하는 일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할 수는 없지. 아무리 은화를 많이 줘도 말이야.”

‘기사들은 지능이 떨어지는 훈련이라도 받나?’

“과연 맞는 말씀이십니다.”

이한이 발가로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이, 아프하 교단의 사제들이 거대한 짚 인형을 끌고 나타났다.

“먼저 오늘 자리에 모여주신 화염의 전령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짚 인형은...”

발가로는 하품을 하며 지팡이를 꺼냈다.

“너도 준비해라. 다 같이 화염 마법 쓴다.”

“!”

짚 인형은 그냥 태우는 게 아니었다.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모두 힘을 모아 같이 태우는 것이었다.

“저 짚 인형 얕보지 마라. 더럽게 안 타니까. 작년에도 혼자 하겠다고 나섰다가 망신 당한 놈이 있... 뭐하냐?”

찰칵, 찰칵, 찰칵-

이한은 화염 흡수의 반지와 팔찌, 목걸이를 몇 겹씩 착용했다.

“아티팩트를 착용했습니다.”

“야. 저게 아무리 안 탄다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 안 타면 사제들이 나선다니까.”

화르르륵!

사제의 설명이 끝나자 신전에 모인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불꽃이여...”

“타올라서 삼켜라!”

“화염이여, 구의 형태로...”

발가로도 마법을 준비했다.

“화염이여. 깃들어라.”

원래라면 검에 시전하는 부여 마법을 나무 장대 끝에 시전한 다음 짚 인형을 찌르자 불이 치솟았다.

그러나 치솟은 불은 금세 가라앉았다. 짚 인형의 강력한 마력이 화염 마법을 견뎌내고 있었다.

“봤지? 이게 진짜 안 타는...”

화르르르륵!

이한은 불꽃을 불러내 그대로 짚 인형에게 작렬시켰다. 불꽃은 짚 인형을 삼켜가며 격렬하게 타올랐다.

‘...얼마나 효과가 좋은 아티팩트인 거야?’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