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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06화 (306/687)

306화

선배의 전문인 부여 마법이면 모를까, 원소 통제와 조종에 관해서는 이한은 솔직히 2학년 선배한테 질 것 같진 않았다.

2학년 선배는 미치광이 교수한테 맞아가면서 배우진 않았을 테니까.

“선배. 아까 제가 시험 통과한 것 때문에 착각하신 것 같은데, 제가 원소 조종에 약한 게 아니라 집중을 놓으면 이 신전을 모두 불태울 수 있어서 그런 겁니다.”

“...어... 어. 그, 그러냐?”

발가로는 이 1학년 후배가 왜 친구가 없는지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 미친 허세를?

“됐습니다. 자신 없으면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조언을 들었으니 갚아야죠.”

“야! 안 된다니까! 차라리 내가...”

발가로가 말리기도 전에 이한이 나섰다.

“여기 선배가 상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좋소.”

오티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언제나 무식하면 용감한 법.

오티로는 에인로가드 학생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저학년, 그것도 발가로보다 후배인 걸 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화염 원소 조종은 몇 번이고 해왔었다. 어린 학생한테 지지는...’

1서클 마법을 개조해서 4서클처럼 흉내 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꾸준히 화염 원소를 조종해 온 오티로는 상대가 에인로가드 학생이라 하더라도 불꽃 조종으로 승부라면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수십 개의 불꽃이 순식간에 허공에 떠오르기 전까지는.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오티로는 바로 넙죽 엎드렸다.

보는 순간 정신이 번뜩 든 것이다.

이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불꽃에 집중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수십 개의 불꽃을 통제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집중을 잃고 불꽃을 폭발시키는 건 큰 문제였다.

때문에 말도 짧게 나갔다.

“뭘 잘못했지?”

“예??”

“뭘 잘못했는지 말하도록.”

이한은 다시 불꽃의 힘을 유지하는데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 찡그린 표정을 다른 뜻으로 오해한 오티로가 허겁지겁 외쳤다.

“다, 다른 마법사들을 속이려고 한 것... 다른 마법사들을 속이려고 한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알량한 재주가 생기고 나니 욕심이 생겨서...”

“저... 저 놈이!”

“감히 우릴 속이려고 해!?”

당연히 옆에 있던 마법사들은 분노했다.

내기는 물론이고 더 크게 속을 뻔했으니 분노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대충 마무리 됐나?’

분위기가 더 이상 뒤집힐 것 같지 않자 이한은 불러낸 화염을 하나씩 해제하기 시작했다.

실수로 터뜨려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너... 너...!”

마법사들이 험악한 얼굴로 둘러싸고 오티로에게 한 마디씩 던지는 것과 별개로, 발가로는 경악한 얼굴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방금 같은 마법을 봤는데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건 마법사로서 재능이 없는 것이다.

‘아차.’

이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 불꽃을 가능한 한 불러왔는데, 그 탓에 들키다니.

“...너, 화염 마법 천재였구나!”

“...선배는 정말 흰 호랑이 탑 그 자체십니다.”

“어? 왜 갑자기 칭찬하냐?”

발가로는 후배한테 갑자기 칭찬을 받자 쑥스러워했다.

“아까 화염 마법 쓸 때 너무 긴장해서 문제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성격이 소심한 거였냐. 안타깝네.”

“하하.”

“그래도 뭐 어떠냐! 긴장 많이 하더라도 중요한 건 마법 실력이지. 2학년 중에서도 너처럼 동시에 수십 개의 화염을 띄우는 놈은 못 봤다고.”

발가로는 그냥 칭찬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난 너 같은 후배가 탑에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지.”

“예?”

“재수 없는 푸른 용의 탑 놈들의 콧대를 밟아버릴 후배 말이다!”

“......”

이한은 갑자기 미안해졌다.

“그 자식들이 마법 좀 잘 쓴다고 얼마나 건방을 떨어댔는지 알아? 개자식들... 두고 보자고!”

발가로가 신나서 떠드는 사이, 오티로를 두들겨 팬 마법사들이 이한에게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속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저 사기꾼 놈에게 속아 넘어갔을 걸 생각하면 아찔하기 그지없...”

“잠깐! 혹시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아니십니까?!”

“?!”

이한은 깜짝 놀랐다.

만나본 적도 없는 마법사가 자신의 이름을 맞춘 것이다.

“맞습니까? 맞지요? 졸바브덴 님이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에인로가드의 1학년 학생이신데도 바실리스크를 일격에 제압했다고!”

“......”

이한은 졸바브덴을 제압하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그 말을 듣자 다른 마법사 하나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 저도 들었습니다! 혹시 달카드 가문의 저택에서, 밸러 가문의 도인 경과의 마법 승부에서 승리하지 않으셨습니까?”

“발드로가드 출신인 도인 경을 압도했다고!”

“압도가 아니라 상대가 마력 고갈...”

“상대의 마력을 고갈시키셨다고요?”

“......”

이한은 그랑덴 시의 사교계가 이렇게까지 소문 전파 속도가 빠른지 몰랐다.

“어... 가이난도? 뭔 소리냐? 너 모라디 가문의 가이난도라고...”

“아차. 급한 약속이. 선배.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한은 허가장을 챙겨서 빠르게 신전을 빠져나왔다.

모여 있던 마법사들은 발가로를 둘러싸고 연신 질문을 던져댔다.

“에인로가드의 학생이시라면 혹시...”

“저 분과 많이 친하십니까? 혹시 자리를 주선해주실 수 있으신지...”

“아, 비켜! 비키라니까! 후배! 잠깐만! 후배!!”

*         *         *

“어? 이한.”

더르규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랑덴 시 대로에서 우연히 이한을 목격한 것이다.

그런데 멀리서 걸어오는 이한은 유난히 피곤해보였다.

“왜 그러지? 지쳐 보이는데?”

“...조금 일이 있었다. 더르규 넌 뭐하고 있었지?”

“학기 끝나고 푹 쉬었겠다, 친구들하고 같이 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 참. 넌 모르겠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실전에서 감각을 갈고 닦기 위해 모험가로서 의뢰를 받고 수행한다는 거겠지. 덤으로 생활비도 스스로 구하고.”

“어떻게 알았나!?”

더르규는 깜짝 놀랐다.

보통 귀족 가문들은 귀족 가문들끼리, 기사 가문들은 기사 가문들끼리 노는 만큼 서로의 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한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친구잖나. 당연히 어떻게 지내는지 정도는 관심을 갖고 있지.”

“이한...!”

더르규는 울컥 감동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중에는 ‘더르규 방학 때는 워다나즈 만나지 마라 그 자식 위험하다니까’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속 좁은 놈들이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지금 이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배려심 가득한 친구한테 무슨 소리를.’

“그래서 일단 모험가로 등록하려는 건가?”

“음. 그런 셈이지.”

더르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를 받아서 해결하는 모험가.

얼핏 들으면 자격이니 등록이니 필요 없어 보였다. 그냥 의뢰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거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제국 먼 외곽의 무법지대에서나 통하는 방식이었고, 제국의 대도시에서는 그런 대충대충이 통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마찰이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국 모험가 길드가 관리와 중재를 도맡는 것이다.

모험가들은 길드에서 신원을 확인받고 등록하고, 의뢰인들은 길드에 은화와 금화를 맡겨놓고 신용을 보장한다. 꽤 체계적인 방식이었다.

“난 아는 분께 빌려서 장비를 맞췄고, 다른 친구들도 싸게 장비를 파는 곳을 소개받아서 지금 맞춰오고 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갑옷을 갖춰 입은 흰 호랑이 탑 학생 무리들이 나타났다.

약간 흠집이나 녹슨 부분들은 있어도 성능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였다. 기사단이나 기사 가문의 인맥으로 괜찮은 곳을 소개받은 게 분명했다.

“워, 워다나즈!”

“그래.”

“...잠깐! 오해하지 마라!”

“뭘 오해하지 말란 거지?”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당황해하며 벌벌 떨자 의아해했다.

지금 이한은 딱히 아무 짓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빚... 빚은 벌어서 갚을 거다!”

“그, 그래! 이것도 반쯤 외상으로 빌려온 거라고! 오해하지 마라! 너한테 갚을 은화를 먼저 쓴 게 아니니까!”

‘아.’

이한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기본적으로 부유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나, 혹은 집이 부유한 상인 가문인 몇몇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과 달리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그리 지갑이 두둑하지 않았다.

부유한 기사 가문은 몇 개 되지 않았고, 다른 기사 가문 출신 학생들은 스스로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쓸 수 있는 은화가 없었다.

숙소나 식사야 인맥으로 해결이 된다지만 그 외는 직접 해결해야 하는 만큼 이렇게 준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 괜찮다.”

“이미 계약한 거라 지금은 정말 때려죽여도 돈이 나올 구석이... 어? 괜찮다고?”

“그래. 괜찮다고.”

이한의 말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멈칫했다.

“정... 정말?”

“그래.”

“정말로 벌어서 갚아도 되냐? 혹시 늦게 갚았다고 기사단에 찾아가서 우리 가문의 이름을 모욕하는 글을 남긴다거나...”

“창의적인 방법이긴 하군. 하지만 그런 짓 안 한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가문에 편지를 보내서...”

귀찮아진 이한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움츠러들었다.

“괜찮다고 했잖나.”

“그, 그렇군. 고맙다.”

눈치를 보던 흰 호랑이 탑 학생 중 한 명이 슬며시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모험가 길드에 가서 등록해야 할 게 있어서.”

“같이 들어가지.”

“어?”

“같이 들어가자고. 나도 등록하려고 왔거든.”

“......”

“...왜??”

“은화를 모으려고.”

이한이 대답했지만 그 말을 믿는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실전감각을 유지하려고 저러는 거겠지?’

‘그렇겠지. 어떻게 된 놈이 기사보다 더 호전적이지?’

‘마법에 미친놈이라니까!’

“자. 다들 그러고 있지 말고 들어가자고.”

더르규가 친구들을 재촉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을 뒤에 두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모험가 길드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험가 길드라고 해서 딱히 분위기가 특별하진 않았다. 오히려 다른 건물보다 더 조용하고 사무적이었다.

가지각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걸 제외하면 여기가 모험가 길드라는 것도 알기 힘들 정도였다.

쾅!

“에인로가드 1학년, 알파 가문의 앙라고 님, 확인됐습니다. 활약 부탁드립니다.”

쾅!

“에인로가드 1학년, 제이 가문의 듀크마 님, 확인됐습니다. 활약 부탁드립니다.”

모험가 등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진행됐다.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는 확실한 신분에다가 다들 가문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무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고 허가장과 메달을 내밀었다.

“에인로가드 1학년,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예.”

“......”

사무원은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들고 이한을 쳐다보았다.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친우분들과 같이 하시려는 겁니까?”

“예?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면 같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의뢰가 위험할 가능성은 적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걸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한은 상대 사무원의 걱정을 이해했다.

아마 가끔씩 할 일 없고 심심한 귀족들이 모험을 해보고 싶어서 찾아왔던 게 분명했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보통 그런 귀족들은 다치고 나면 ‘이런 시궁창 같은 일에 날 몰아넣다니!’하고 따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정말로...”

“사무원님. 워다나즈 놈... 아니, 워다나즈는 그런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맞아요. 진짜 미ㅊ... 자기 몸 지킬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장한다니까요.”

“????”

기사 가문 학생들이 입을 모아 외치자 사무원은 더더욱 혼란스러워했다.

대체 저 학생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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