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워다나즈 가문이라면 분명 마법명가이자 대귀족 가문인데, 왜 기사 가문 출신 학생들이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전투력을 보장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술이 더 뛰어난 것도 아닐 테고, 아직 1학년 학생인데 마법 전투에 능숙한 것도 아닐 테고...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혹시 기록에 추가할 다른 게 있으십니까?”
“아프하 교단에서 화염 마법 허가장을 받았습니다.”
“그러십니까? 기록해놓겠습니다.”
사무원은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매번 방학 때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몇 명씩 맞이하는 사무원이었다.
저런 준비까지 해오는 1학년 학생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여기에 찾아오는 대귀족 가문 출신 1학년 학생도 본 적이 없었지만!
이한은 미치광이 교수한테 마법 전투 훈련을 받았다는 것도 경력에 넣어달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괜히 역효과가 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화염 마법 허가장? 그런 건 언제 구한 거냐?”
“이런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도시 내에서 의뢰를 해결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대비를 안 했나?”
이한의 꾸짖음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억울해했다.
오늘 처음 하는데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됐다. 처음 하는 거니 실수할 수도 있지. 자. 여기서 파티원들을 구한 사람 있나?”
모여 있는 흰 호랑이 탑 학생 중 2/3 정도가 손을 들었다.
자기들끼리 돌기로 했거나, 혹은 인맥으로 파티원을 소개 받은 학생들이었다.
“그렇군. 남은 사람들은 나와 같이 하면 되겠지. 잘 부탁한다.”
“......”
“......”
“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순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어... 어어??”
“왜 그러지?”
“어, 어어. 그. 워다나즈. 우리가 같이 움직이는 건가?”
“그래. 불만이라도 있나?”
“어, 그게. 그러니까. 위험하지 않을까?”
옆에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속으로 생각했다.
‘특히 우리가!’
“위험하다고?”
“으... 으응.”
“걱정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난 내 몸을 지킬 능력이 있다. 각오도 다진 상태고. 그러니 괜찮아.”
흰 호랑이 탑 학생은 ‘우리가 안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은 못하고 주변의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도와줘라!
그러나 생각보다 나서는 친구들은 없었다.
“으... 으흠. 그럼. 워다나즈. 열심히 일해서 은화 생기는 대로 갚을게.”
“맞, 맞아. 워다나즈. 다음에 봐.”
아까 질문에 손을 든 운 좋은 학생들은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이제 자리에 남은 건 운 없이 손을 들지 않았던 학생들 뿐.
“그럼 같이 무슨 의뢰를 받을지 생각해보자.”
“저. 워다나즈. 혹시...”
“그러고 보니 나한테 은화를 얼마나 빚졌지?”
“...열심히 하겠다...”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우울한 표정으로 사실을 받아들였다.
분명 장비를 갖춰 입을 때만 해도 어떤 의뢰가 있을지 몰라 두근거렸는데, 벌써 에인로가드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 * *
‘든든하군.’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같이 다점(茶店)의 바깥 테이블에서 녹차를 홀짝이며 계획을 세웠다.
생각치도 않은 화살받이, 아니, 파티의 전위를 구해서 기분이 좋았다.
파티의 정석적인 조합은 단단한 전위가 앞에서 틀어막고, 그 뒤에서 중간 위치에 자리 잡은 전투원들이 공격을 날리며, 후방에는 마법사나 사제 같은 이들이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예시였다. 세상일은 이상적으로만 굴러가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사나 사제 같은 이들은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쉽지 않은 고급 인력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주 유리한 위치지. 안 그러냐?”
모험가나 용병이라고 해서 다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다.
뛰어난 베테랑들은 밑바닥에서 굴러먹다가 죽을 뻔한 위험을 몇 번이고 겪으며 실력을 쌓은 경우였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대부분 실력이 기초가 없이 들쭉날쭉했다.
그에 비해 여기 있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십 년 넘게 검술을 비롯해 기사로서 훈련을 받은 준비된 인재들.
이 정도만 되도 어중간한 모험가들은 따라올 수 없는 실력가였다.
“튼튼한 전위에 마법사까지.”
“......”
“대답 안 하나?”
“좋, 좋은 거 같아!”
눈빛을 교환하면서 ‘어떻게 못 도망치나’하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급히 말했다.
“그런데 워다나즈. 우리 인원이 좀 부족하지 않나?”
앙라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르규, 앙라고, 라파드엘, 이한.
아주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경험도 부족하지 않던가.
욕심 같아서는 경험 풍부한 베테랑 두셋 정도는 추가하고 싶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더르규가 대신 대답했다.
다른 친구들과 오기 전에 선배 기사들에게 물어가며 철저하게 조사한 더르규였다.
“우리 같은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인기가 좋다고 들었다. 다른 모험가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모두 다 철저하게 훈련 받은데다가 마법까지 사용 가능했다.
다른 모험가들이 같이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잘 된 거네? 길드에 가서 바로 구해달라고 하면 되나?”
“그렇지. 다만 그 전에 무슨 의뢰를 깰지 계획부터 하고 가자고.”
이한은 지도를 꺼냈다.
“불파른 언덕 근처 동굴에서 구울들이 나온다고 하더군. 먼저 이 언데드를 처리한다.”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울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거리가 약간 있는 만큼 근처에서 야영을 하는 1박 2일의 원정이 되리라.
“그런 다음 동굴 뒤쪽에서 제라늄꽃, 설락초, 잠쑥을 채집한다. 셋 다 구하는 의뢰가 있더군.”
“...어? 잠깐만.”
“왜 그러지?”
언데드 사냥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약초 채집이 추가되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당황했다.
“언데드 사냥한다면서?”
“그래. 그런데 지도를 보니까 세 약초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형이다. 한 번에 여러 의뢰를 할 수 있으면 좋잖나.”
“...그, 그렇군!”
“과연!”
“나도 그... 설박초하고 쑥떡이 있을 법한 지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더 이상 묻는 대신 원래 그들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지도만 보고서 약초가 있다는 걸 알았어?’라고 물었다가는 그들이 너무 멍청해 보일 것 같았다.
“그렇지? 알고 있을 줄 알았다. 책에도 나왔잖나.”
“......”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일단 가만히 듣기만 하면 중간은 갈 것 같았다.
“그리고 채집이 끝나면 인근 숲에서 라펠라 멧쥐를 포획한다. 발견 기록이 있더군.”
“....아, 아니. 아니. 잠깐만.”
언데드 사냥에 약초 채집에 희귀 동물 포획까지 추가되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참지 못하고 미소를 풀었다.
“왜 그러지?”
“그... 라펠라 멧쥐 포획하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은데??”
“맞아. 워다나즈. 그런 동물 포획 의뢰는 보통 어렵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노련한 사냥꾼이 있어야...”
“그렇겠지. 확실히 잡힌다는 보장은 없긴 해.”
“그래! 지금도 이미 충분히 일정이...”
“하지만 꽤 가능성 높은 방법이 있다. 먼저 놈은 <도브룩의 적오향 물약>을 좋아하지. 샤르칸을 시켜 놈의 흔적을 찾게 한 다음, 놈의 동선에 물약을 뿌려놓고 기다리면 무작정 숲을 뒤지는 것보다 높은 확률로 붙잡을 수 있을 거다. 뿐만 아니라 길목에 환상 마법까지...”
이한의 설명을 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입을 쩍 벌렸다.
‘뭔...’
‘10년 차 모험가냐?’
‘저거 우리하고 같이 등록한 놈 맞지?’
“이 정도 설명이면 됐겠지? 너희도 책에서 봤을 테니까.”
“......”
“...우리가 생각했던 게 바로 그거야. 워다나즈. 한 번의 의뢰로 최고의 효율을 뽑는 거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갖고 있던 모든 불만을 갖다 버렸다.
그리고 버리는 김에 뇌도 같이 갖다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워다나즈 놈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겠다...’
* * *
“에인로가드! 에인로가드 학생 말입니까!”
모험가, 구본은 사무원의 말에 매우 반색했다.
3년 동안 같이 활동하던 파티가 전위 두 명의 은퇴와 공격수 둘의 내분으로 해산된 차라 곤란해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제안을 받은 것이다.
“예. 구본 씨께서는 꾸준히 활동하셨고, 대부분의 의뢰에서 성실성과 신뢰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연결을 권해드리는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구본은 사무원의 제안이 얼마나 귀한 건지 잘 알았다.
칼 한 번 잡아보지도 않은 놈들이 도시로 흘러와서 ‘나 모험가요’하고 까불고 다니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방학을 맞아 나온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매우 귀중한 인재였다.
게다가 전부 다 기사 가문 출신일 테니 전투와 마법 모두 탁월한, 그야말로 문무겸전의 인재들 아닌가.
이런 귀중한 인재들을 그와 연결시켜주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베테랑으로서의 조언을 기대하는 거겠지.’
길가의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이름 모를 모험가는 어디 가서 뒤져도 상관없지만, 에인로가드 학생이 다치는 일이 생기면 곤란해질 사람이 여럿이었다.
실력이야 확실하지만 부족한 경험은 어쩔 수 없는 것.
그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믿음직스럽고 경험 많은 모험가를 붙여준 게 분명했다.
“최선을 다해서 협력하겠습니다.”
“든든합니다. 믿고 있겠습니다. 구본 씨.”
구본은 사무원과 대화를 끝내고 파티에 남은 동료 한 명과 약속 장소로 향했다.
“에인로가드 학생... 어떤 사람일 것 같아?”
“나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일단 대부분 기사 가문 출신의 마법사들이라고는 들었는데.”
“그럼 기사인가?”
둘은 단단히 무장하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밀어붙이는 강력한 기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기에 마법이라니.
“싸움 하나는 잘 하겠군.”
“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게 문제지. 경험 없는 어린 학생이라며? 솔직히 난 좀 불안하다고.”
“그러면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나? 이런 좋은 제안을?”
“그건 아니지만... 솔직히 마법사하고 같이 일해보고 싶긴 했지, 나도. 다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할까봐 걱정 되서 그렇지.”
둘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생들의 실력은 불안하지 않았다.
다만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목표를 크게 잡거나 이상한 부분에서 잔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될 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구본입니다. 여기 이 친구는 비지덱입니다.”
구본은 조각상처럼 잘생긴 소년과 악수를 했다. 키가 크고 단단하게 잡혀 있는 체격이 과연 기사 가문 출신 마법사다웠다.
“워다나즈?”
“왜 그러나, 비지덱. 조용히 해. 대화 중이잖냐.”
“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서. 미안하다.”
자리에 앉은 구본은 이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 파티가 훨씬 규모가 작은 만큼, 저희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로 명령에 따를 생각입니다. 그런데 혹시 목표로 삼은 의뢰가 있으신지...”
구본은 이한이 터무니없는 계획을 꺼내면 어떻게 말려야 하나 긴장되어서 침을 삼켰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도를 꺼냈다.
“자. 여기 불파른 언덕 근처 동굴에서 구울들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30분 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하고 치밀한 계획에, 구본은 경악에 찬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며 물었다.
“에인로가드 학생 분들은 다 이렇습니까??”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