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09화 (309/687)

309화

“식사합시다.”

모닥불 위에 놓인 냄비 안의 수프가 부글부글 끓었다. 갖고 온 싱싱한 야채와 고기를 볶아 넣은 다음에 물을 붓고 통조림을 열어 간을 맞춘 수프는 상당히 제대로 된 물건이었다.

물론 이한이 요리했다.

“??”

“????”

구본과 비지덱은 ‘이걸 왜 그쪽이 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할 타이밍도 놓쳤다.

그저 조용히 나무 그릇을 받았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식사했다.

“워다나즈 녀석. 솜씨가 여전하군.”

“마법 솜씨만큼 요리 솜씨가 대단한 놈이긴 하지.”

“그런데 구본 씨. 모험가들도 보통 이렇게 식사를 합니까?”

더르규가 궁금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구본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보통 가까운 곳의 일을 해결할 때나, 의뢰 첫날이나 둘째 날까지는 잘 먹긴 합니다...”

거리가 가깝거나 짧게 끝날 것 같은 의뢰에는 모험가들도 제법 먹을 것의 질을 챙겼다.

그러나 원거리 원정이나 규모가 되는 유적, 던전에 들어갈 때에는 그런 거 없었다.

무조건 효율과 압축이었다. 언제 배를 곯게 될지 모르는데 맛을 따지는 미친놈은 없었다.

“과연. 오늘 같은 의뢰에는 이렇게 먹는 게 맞는 겁니까.”

“나는 모험가들이 바짝 말린 육포만 먹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느 정도 과장이 있었나보군.”

“...아니, 잘 먹긴 해도 보통 이렇게 잘 먹는 경우는 드뭅니다...”

구본은 황당해하며 말했다.

‘잘 먹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갖고 온 신선한 과일이나 빵이나 떡 같은 걸 상하기 전에 먹는다는 이야기였지 이렇게 거창하게 차린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요리에 쓸 물을 구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불을 쓰는 요리는 연료도 그만큼 들지 않는가. 식사 한 번에 그렇게 에너지를 쓰는 모험가들은 드물었다.

“이렇게 안 먹습니까?”

“예... 물도 불도 다 힘이 드니까요.”

“과연.”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에인로가드에서 생긴 습관대로 수프를 손으로 막고 보호했다.

“안... 안 돌려준다.”

“뺏을 생각도 없었다. 이미 요리했는데 어쩌겠냐. 하긴, 마법이 없으면 이게 다 일이겠군.”

이한이 보기에도 이걸 마법 없이 했다면 시간부터 에너지까지 꽤 많이 잡아먹었겠다 싶었다.

“그럼 다음부터는 우리도 간단하게 모험가 보존식량으로...”

“너, 너무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잖나. 워다나즈.”

“맞는 말이다. 여기 구본 씨도 잘 먹을 수 있을 때는 잘 먹으라고 하셨지 않나.”

앙라고와 라파드엘은 필사적으로 이한을 설득하려고 했다.

솔직히 기사단 공관 숙소에서 나오는 식사보다 이게 더 맛있었던 것이다.

구본의 동료, 비지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수프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맛있군.”

“재료가 좋아서 아닌가?”

“요리하는 걸 도우면서 봤는데 재료는 별달리 특별한 게 없었는데... 혹시 물이 특별한가?”

“물? 물이 뭐가?”

“마법사 님이 불러낸 물이잖나.”

“호. 과연. 그런 걸 수도 있겠어.”

두 모험가가 수군거리는 사이 앙라고는 그릇을 박박 긁어내고 국자로 냄비를 긁어대다가 이한에게 한 대 맞았다.

“작작 처먹어라. 두 분도 드셔야지.”

“아... 아니... 남은 게 있으면 아깝잖나...”

*         *         *

시간이 되자 이한은 조용히 일어났다.

두 모험가는 자기들끼리 불침번을 서겠다고 말했지만 이한은 거절했다.

괜히 게으른 버릇이라도 들여놓으면 나중에 모험가들이 없을 때 귀찮아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길드에서 정말 성실한 사람들을 추천해줬군.’

뭘 하려고 할 때마다 다 자기들이 나서서 하려고 하는 모습은 이한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모험가들 중에는 인성이 그리 좋지 못한 이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길드에서 정말 믿을 만한 인재를 추천해준 모양이었다.

“눈이여, 암흑을 꿰뚫어라.”

불침번이라고 지루하게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한은 암흑 시야 마법을 시전하고 마도서를 읽기 시작했다. 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보면 몸서리를 칠 지독한 광기였다.

<고대 기초 사령술-진정한 언데드 소환에 대하여>

진정한 흑마법사는 이계의 언데드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노니, 순수한 의지만으로 죽은 존재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여기 스켈레톤의 명령을...

다른 흑마법사들이 편하게 언데드계에서 언데드와 계약 맺고 소환할 때 이한은 해골 교장이 ‘정통 고대 흑마법을 배워라’하고 강권한 탓에 직접 뼈 조립해서 만들어내는 구식 흑마법을 쓰고 있지만,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 장점이 없었다면 이한은 해골 교장이 아무리 강권했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방학 안에는 스켈레톤 전사들의 공격이 완벽해졌으면 좋겠군.’

지금 스켈레톤 전사들의 소환은 가능했지만 그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적이고 실패가 많았다.

스켈레톤 전사들이 알아서 적을 공격하는 단계까지만 도착해도 볼ㄹ... 아니, 적들을 상대할 때 좀 더 편할 터.

샤샤샥-

“?”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수풀 스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동물인가?’

팟!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래쪽에서 빛이 번쩍이며 폭발했다. 혹시 몰라서 걸어놓은 침입자 방지 마법이 작동한 것이다.

공격력은 없었지만 침입자를 당황시키고 이쪽이 대응하기에는 충분했다.

이한은 숙련된 에인로가드 학생으로서 조금의 낭비도 없이 움직였다.

퍽!

“일어나! 습격이다!”

“교, 교장 선생님인가!?”

친구들의 등을 걷어차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허둥지둥대며 일어섰다.

“교장 선생님은 아니다!”

“다... 다행이다.”

“다행이 아닙니다! 모두 일단 무기 드십시오!”

경험 많은 구본과 비지덱은 매우 긴장했다.

학생들의 실력은 뛰어났지만 이런 기습과 난전은 실력과 별개로 평정심도 상당히 중요했다.

하필이면 학생들과 같이 의뢰를 나온 상황에서 이런 침입자가 나타날 줄이야.

‘부디 별 일 아니기를!’

구본과 비지덱은 제발 침입자가 주변을 돌아다니던 양치기나 여행자, 혹은 길 잃은 모험가이길 빌었다.

“방패 들고 고개 숙여.”

“워다나즈를 보호해!”

“!?”

그러나 학생들의 움직임은 두 모험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빛이 터지는 순간 바로 일어나 무기와 방패를 들고 진형을 갖추는 모습이 보통 능숙한 게 아니었다.

‘역시 기사 가문 출신이구나!’

딱히 기사 가문 출신 때문은 아니었지만 두 모험가의 오해는 한층 더 쌓였다.

“제기랄, 너희들은 여기서 뭘하고 있나!”

아래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빛 때문에 시야에 타격을 입은 게 분명했다.

‘공격하려면 지금 공격해야 하는데...’

구본은 고민했다. 만약 호전적인 모험가들의 파티였다면 일단 상대를 공격부터 하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학생들은 모두 다 기사 가문 출신. 그런 비겁한 짓은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우린 그랑덴 시에서 불파른 언덕의 의뢰를 해결하러 온 모험가들이다.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불파른 언덕은 우리가 이틀 전에 먼저 왔다. 꺼져!”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당황했다.

모험가들의 관습적인 규칙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물러나야 합니까?”

“아닙니다! 원래 늦게 도착한 쪽이 물러나는 게 관행이긴 하지만, 그것도 꼭 절대는 아닌데다가 이렇게 증거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하는 일은...”

“알겠다. 물러나겠다!”

“!”

이한의 외침에 친구들과 모험가들은 놀랐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이한의 권위를 존중해서였다.

“크윽... 저런 놈들을 배려해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참아라. 저런 놈들과 드잡이질을 하는 게 더 수치다.”

앙라고와 라파드엘이 아쉬워하는 사이 이한은 다시 말했다.

“우리가 물러나는 동안 그쪽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받아야겠다. 모습을 드러내라!”

“헛소리 하지 마라. 니 새끼가 공격할 줄 어떻게 알고?”

“서로 한 명씩 나와서 확인한다. 어떠냐?”

“...좋다.”

이한은 라파드엘에게 말했다.

“잘 부탁한다.”

“그래. 알겠... 잠깐만.”

라파드엘은 예전에 이한과 언데드계에 갔을 때가 떠올라서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설마...”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라. 수상한 점 있으면 바로 말하고.”

“......”

*         *         *

용병, 불다학은 인상을 찌푸리며 걸어 나왔다.

라파드엘을 본 불다학의 미간 주름은 한층 더 깊어졌다.

‘뭐야? 애송이잖아...?’

불다학도 괜한 피를 흘리는 건 사양이었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달랐다.

애송이 주제에 장비까지 제법 잘 갖춰 입지 않은가.

보통 애송이 모험가들은 갑옷은커녕 무기도 제대로 된 걸 들지 못하고 발발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눈앞의 애송이는 정반대였다.

아마 집안의 유품이나 갖고 나온 재산을 써서 차려입은 게 분명했다.

‘저런 놈이 들어가 있는 파티면 별로 대단할 것 같지도 않은데.’

불다학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꿈틀거렸다.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내서 습격할까 강하게 유혹이 들었다.

“번쩍여라.”

작은 읊조림과 함께 뒤에서 날카로운 번개 줄기가 불다학의 등짝에 작렬했다.

파지지지직!

“커... 헉?!”

전혀 예상치 못한 습격에 불다학의 팔다리가 굳고 무기가 떨어졌다.

얼마나 예상치 못했는지 라파드엘도 깜짝 놀랐다.

“워... 워다나즈!?”

“번쩍여라, 번쩍여라. 번쩍여라.”

다시 번개 줄기가 날아들고 근처 수풀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용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마법사다!!! 마법사가 있다!”

“마법사를 찾... 캬학!”

남은 용병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게 없었다.

“횃불을 켜!”

“표적이...”

“머저리 같은 놈아! 마법사는 어둠을 꿰뚫어본다! 빨리 켜!”

‘번개 마법은 그만 써야겠군.’

이한은 자리를 옮기며 생각했다.

애초에 순순히 물러나겠다고 말한 것도, 라파드엘을 앞에 보낸 것도 시간을 끌고 상대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파악이 끝나고 뒤를 잡자마자 바로 공격 시작.

정확히 작렬한 번개 마법으로 위협적인 놈들부터 먼저 쓰러뜨렸다.

투명화가 걸려 있지만 계속 번개 마법을 쓴다면 위치를 파악당하고 반격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법을 못 쓰는 건 아니었다.

“샘솟아라.”

물의 구슬들이 빠르게 분열하더니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퍽!

“이미 마법을 많이 썼다! 마법사는 더 이상 마법을... 컥.”

외치던 용병이 쓰러지고, 물의 구슬이 다른 용병의 턱도 후려갈기자, 남은 용병들은 겁에 질렸다.

“항복하겠습니다!”

“항복하겠습니다, 마법사 님! 항복하겠습니다!”

구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무기를 내려놓고 양손을 올려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놈은 공격하겠다! 비지덱! 가서 놈들을 묶어!”

“저희도 가겠습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비지덱은 쓰러진 용병들과 항복한 용병들을 단단히 묶었다.

“이 놈은... 불다학! 불다학이다!”

비지덱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누굽니까?”

“제국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입니다!”

“오. 현상금이 얼마죠?”

투명화를 풀고 이한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구본이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이 자가 불다학이란 걸 아셨습니까?”

“몰랐습니다.”

“예?”

“만약 싸우게 된다면 무조건 선공이 유리하잖습니까.”

이한의 말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워다나즈군.”

“절대 방심하지 않는 놈이라니까. 저런 점은 배워야 해.”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