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두 모험가가 ‘에인로가드는 마법학교가 아닌가? 기사 가문 출신들한테 대체 뭘 가르친 것인가?’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이한은 쓰러진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정신을 차린 불다학은 이한을 보고 움찔했다.
방금 있었던 마법의 폭풍을 일으킨 자가 누군지 깨달은 것이다.
“네놈...”
“샤르칸.”
이한은 샤르칸을 불러서 용병들을 감시하게 했다.
단단히 묶였지만 누가 무슨 짓을 할지는 몰랐으니까.
그러나 불다학은 샤르칸의 등장을 조금 다른 뜻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공포 섞인 눈빛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름.”
“불... 불다학.”
“살인, 운송 마차 습격, 협박... 하여간 제국 현상금 걸린 놈 맞나?”
불다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기뻐하며 구본에게 말했다.
“맞답니다.”
“...실, 실례지만 기뻐하시는 것 같은데...”
“추가 은화가 생겼잖습니까?”
“......”
이한의 발상에 구본과 비지덱은 경악했다.
“그렇긴... 한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처음에 계약하신 대로 분배할 겁니다.”
“그런 걱정을 한 게 아니라, 불다학이 여기 온 게 이상합니다.”
구본은 노련한 모험가답게 이상함을 눈치챘다.
이한과 학생들은 어디까지나 그랑덴 시에서 가깝고, 그리 위험하지 않은 의뢰 위주로 골랐다.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전문적인 능력(마법사의 마법 같은)이 필요한 쏠쏠한 의뢰들.
이런 의뢰들은 제법 돈이 됐지만 불다학 같은 현상금 걸린 용병이 나타날 의뢰는 아니었다.
크게 한 탕을 노려야 할 자가 왜 여기 나타난단 말인가.
“과연.”
“놈을 심문해야 합니다.”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놈이 과연 진실을 토해내겠습니까?”
이한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놈이 상당히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마법사 님의 마법에 큰 충격을 받은 겁니다. 지금 심문하시면 놈이 진실을 토해낼지도 모릅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이야 자다가도 맞는 게 마법이라지만, 제국 사람들에게 마법은 여전히 미지의 공포였다.
게다가 이한이 적들을 제압한 방법은 마법사들의 기준으로 봐도 평범하지 않았다.
상대를 방심시킨 사이 투명화 마법으로 뒤를 선점. 어둠을 이용해 번개 마법 난사로 혼비백산. 어떻게든 반격하려는 자들에게는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우회 공격.
하나만 당해도 얼이 빠지는 공격을 저렇게 겹쳐서 당했으니 적 용병들의 영혼이 반쯤 나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 저 용병들은 이한이 대체 어디서 온 전투 마법사인지 몰라 벌벌 떨고 있었다.
“불다학. 여기 온 이유를 밝혀라.”
“...동굴의 보물 때문이다.”
불다학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잔뼈가 굵은 용병인 만큼, 저 정도 되는 마법사 앞에서 거짓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괜한 오기나 자존심을 부리는 순간 살가죽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며 영혼까지 헤집어지리라.
“음. 그렇군.”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척을 했다.
그리고 구본에게 속삭였다.
“저 놈이 아주 치밀한 놈입니다. 잡혔을 경우 거짓말까지 준비했군요.”
“예?”
동굴의 보물이 뭘까 생각하고 있던 구본과 비지덱은 당황했다.
“거짓말입니까 저게?”
“그야 당연합니다. 저렇게 현상금 걸린 놈이 질문 한 번에 순순히 대답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 마법사 님에게 겁을 먹은 게 아닐지...”
비지덱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금 겪은 일도 있고, 옆에는 에메랄드빛을 띤 맹수 소환수가 으르렁대고 있었다.
불다학보다 현상금이 몇 배 걸린 용병이라도 체념하고 진실을 말할 것 같았다.
“마법은 그렇게 만능이 아닙니다. 두 분께서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말입니까?”
“모험가의 기술로 심문해주시죠.”
“오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기대 섞인 표정으로 구본과 비지덱을 쳐다보았다.
기사로서 훈련 받긴 했지만, 이렇게 모험가가 심문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심문할까?
“......”
“......”
구본과 비지덱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등에서는 살짝 식은땀이 났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알겠나?’
‘물론이지.’
* * *
“크아아아아아아악! 이 아비는 악마와 흘레붙고 어미는 괴물과 간통한 후레자식... 크아아악! 크아아악!”
“어서 진실을 말하지 못할까!”
“여기 마법사 님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구본과 비지덱은 베테랑 모험가의 경험을 총동원해 불다학을 심문했다.
고통스러운 고문에 불다학은 온몸을 비틀었다.
“말했잖느냐! 말했다고! 다른 새끼들한테도 물어보라고!!!”
“닥쳐라! 빨리 진실을 말해라!”
우드득, 우득!
이한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심문을 지켜보았다.
앙라고가 속삭였다.
“저런 식으로 다리 사이에 막대를 넣어서 비트는 거군. 꽤 고통스럽겠는걸.”
라파드엘이 대답했다.
“좋은 방법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모험가들에게서는 배울 게 많다.”
불다학이 혼절하자 구본과 비지덱은 이마의 땀을 닦고 한숨 돌렸다.
이한이 소환한 차가운 물을 주석잔에 담가 건넸다.
“쉬엄쉬엄 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이한의 응원에 기운을 차린 두 모험가는 불다학의 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하들은 불쌍할 정도로 벌벌 떨었다.
그리고 삼십분 후.
두 모험가는 매우 송구스러워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기술로는 더 이상...”
“마법사 님. 감히 마법을 부탁드려서 죄송하지만, 혹시 놈에게 진실을 알아낼 방법이 없으실까요?”
“으음. 아쉽게도 저도 그런 마법은 할 줄 모릅니다. 놈의 감정은 파악해봤지만...”
“그렇습니까. ...예?”
두 모험가는 멈칫했다.
감정을 파악하고 있다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파악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놈이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감정은 진실에 가까웠습니다.”
“...어... 마, 마법사 님. 제가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러면 불다학이 진실을 말한 게 아닙니까?”
이한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감정을 통제하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잖습니까.”
“......”
“...마법사 님. 불다학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절대...”
두 모험가가 마법에 대해서 아는 게 적어도 이건 확실했다.
불다학이 그 정도 수준의 용병이었다면 현상금 사냥꾼들이 아니라 황제의 근위기사들이 잡으러 왔을 테니까!
* * *
“개새끼들아, 너희는 영원히 저주 받을 거다.”
악에 받친 불다학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외쳤다.
고통이 싫어서 진실을 말했는데도 심문을 당한 게 정말로 억울한 모양이었다.
“아. 미안하다고 했잖나. 좀 닥치도록.”
“......”
불다학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한은 그냥 한 말이었지만, 불다학에게는 ‘자꾸 지껄이면 혓바닥을 뽑아버린다’로 들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 동굴 안에 보물이 있다는 건데...”
원래 의뢰는 불파른 언덕 인근 동굴에서 나오는 구울 토벌이었다.
이 구울들이 동굴뿐만 아니라 인근 길가로 내려와 선량한 여행자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구울을 쓰러뜨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구울이 나오는 원인을 파악하고 처리까지 해야 하는 만큼,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모험가가 맡기에는 성가신 의뢰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법사들이 포함된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맡기에는 좋은 의뢰였다.
그런데 불다학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도둑 길드는 물론이고 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몇몇 놈들의 증언에 따르면, 동굴 안쪽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대의 유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뭘 기다리는 거냐, 워다나즈? 들어가자!”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은 잔뜩 흥분했다. 심지어 침착한 더르규마저 눈빛을 빛냈다.
마법사만큼 고대 유적, 고대 던전, 고대 유물에 환장하는 직종도 드물었다.
예전에 실전된 마법이나 지식은 천금보다도 더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한은 회의적이었다.
“그냥 이 놈이 멍청한 것 아닌가?”
증언을 보면 이 정도 수준이었다.
-동굴 안에서 길을 잃었는데 한쪽에서 검은색 빛이 계속 나오더라고! 분명히 아티팩트의 빛이야!
-절대로 자연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 빛이었습니다.
-주변으로 다가가려고 하니까 구울들이 갑자기 흉폭해져서 덤비는 걸 보면 아티팩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한은 한숨을 쉬며 친구들을 보았다.
“너희들이 그러니까 매번 교장 선생님의 함정에 빠지는 거다. 저런 근거 약한 소문에 휘둘리다니.”
“큭...”
“지,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잖아.”
‘교장 선생님?’
‘함정?’
두 모험가는 속으로 의아해했다.
구본은 눈치를 보며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마법사 님. 모험가들 사이에서 저 정도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증언입니다.”
원래 저것보다 훨씬 더 막연하고 말도 안 되는 소문이어도 찾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저 정도 소문이라면 구본이라도 궁금해서 사람을 모아 공략했을 터.
불다학 정도 되는 용병이 저 정도로 준비를 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저 소문의 가치를 증명했다.
“여기가 무슨 제국 외곽도 아니고 쓸만한 유물이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닙니다. 던전이나 유물들은 생각보다 도시 근처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여러 자연 현상이나, 혹은 던전이나 유적 자체가 갖고 있는 마력 때문에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며 튀어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았다.
그럴 경우 이제 그걸 발견한 모험가들은 일확천금을 할 수 있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구울도 토벌해야 했고.”
“그럼 들어가는 건가?!”
앙라고가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아니. 아직 해가 다 안 떴잖아.”
새벽이긴 했지만 지금 들어가기에는 일렀다.
“...그, 그렇지.”
이 와중에도 냉정한 이한의 모습에 앙라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자식은 기대도 안 되나.’
“그 사이 할 일이 있다.”
“뭐지, 워다나즈?”
라파드엘은 집중해서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워다나즈는 마법에 관해서는 허튼 소리를 하지 않았다.
구울을 상대하기에 앞서 필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리라.
“일어난 김에 채집 의뢰도 좀 해놓자. 라파드엘. 넌 설락초. 앙라고. 너는 제라늄꽃. 더르규. 넌 잠쑥이다. 난 라펠라 멧쥐의 흔적을 파악해야겠군.”
“......”
“......”
이한과 체념한 친구들이 떠나자 불다학은 구본을 보며 물었다.
“저 미친 마법사들은 대체 뭐냐?”
* * *
이한의 도움 덕분에 친구들은 수월하게 채집 의뢰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게 설락초냐? 네 눈은 대체 어디에 쓰려고 달아놓은 거냐? 스켈레톤하고 구울 구분할 수는 있냐?
-넌 꽃을 그렇게 채집하냐? 꽃이 몬스터로 보이냐? 설마 돌아가서 몬스터 잡았다고 하려고 그렇게 꺾는 거냐?
“다들 고생했다.”
“......”
채집을 끝내자 날은 완전히 밝아졌다.
드디어 동굴로 들어갈 때였다.
“그런데 마법사 님.”
비지덱은 용병들이 듣지 못하게 속삭였다.
“저 놈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기다 두고 갈 경우 놈들이 도망치거나, 저희의 뒤를 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건 근처 도시로 끌고 가는 거였지만, 이한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보물에 눈이 먼 상태였다.
“데리고 들어가면 됩니다.”
“예?”
비지덱은 멈칫했다.
데리고 들어간다니.
다른 파티와 같이 공략하는 것처럼 협력하자는 소리는 아닐 테고...
“놈들이 안에서 도망치거나 난동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통제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것도 생각해놨습니다.”
이한은 그렇게 말하고 뼛조각을 꺼냈다.
라파드엘은 그 모습에 설마 싶었다.
“뼈여, 적을 붙잡아라. 뼈여, 적을 붙잡아라. 뼈여, 적을 붙잡아라...”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용병들의 발목과 손목에 뼈로 된 구속구가 채워졌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용병들의 목에는 뼈로 된 손이 소환되서 단단히 매달렸다. 이한이 손짓만 하면 바로 목을 조일 수 있는 상태였다.
“좋아. 이 정도면 될 것 같군.”
“넌... 진짜... 말도 안 되는 놈이다...”
라파드엘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막강한 흑마법사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