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마법도 아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는 학문이었다.
더르규나 앙라고처럼 흑마법에 관심이 없는 마법사는 잘 몰랐지만, 같이 흑마법을 배우는 라파드엘은 지금 이한이 한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지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낮은 서클 마법이라 하더라도 저 정도 되는 숫자의 뼈 구속구를 소환하고, 뼈다귀 손을 소환하고, 동시에 그걸 다 통제하다니.
뼈 마법도 일종의 원소 마법에 해당됐고, 원소 조종에 뛰어난 워다나즈라면 당연히 능숙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얼마만큼의 마력과 얼마만큼의 재능이 있어야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라파드엘. 뭐하냐. 안 들어가고.”
“......”
“야, 야! 뭐해!”
“너, 너는 이걸 보고 아무 생각도 안 든단 말이냐?”
라파드엘은 앙라고에게 물었다.
앙라고는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대답했다.
“워다나즈 원래 마법 잘 하잖아.”
“......”
‘이런 멍청한 자식이!’
흑마법을 몰라서 뭐가 대단한지도 못 알아보는 친구들의 모습에, 라파드엘은 가슴을 쳤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마법사 님. 이렇게 하면 어떻게 싸웁니까?”
용병 중 한 명이 울먹이며 이한에게 말을 걸었다.
동정심을 자극해서 어떻게든 구속을 풀어보려는 수작이었다.
“그 상태여도 구울하고 충분히 싸울 수 있을 텐데?”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면... 동굴은 어둡고 지형이 복잡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걱정 마라. 어두운 건 빛을 띄울 테니까 상관없고. 복잡한 지형은 샤르칸이 먼저 들어가서 파악을 할 거다. 기습 받을 일 없으니 대형 유지해서 잘 싸우도록.”
“......”
붙잡힌 용병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정말 상종하기 싫은 족속이라고!
* * *
“그럼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잠깐. 기민한 발걸음 마법을 걸어드리겠습니다.”
“오...!”
말로만 듣던 마법사의 강화 마법을 직접 경험하게 된 두 모험가는 반색했다.
이한은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을 시전했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힘에, 두 모험가는 전율했다.
‘이게 강화 마법...!’
‘강화 마법사를 어떻게든 파티에 넣으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면 들어가겠습니다.”
“잠깐. 공간 인지 마법도 걸어드리겠습니다.”
“앗... 감사합니다.”
<공간 인지> 마법이 시전되자, 두 모험가는 거리감각이 아주 날카로워지고 정교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강화 마법...!’
‘강화 마법사를 어떻게든...’
“자, 들어갑니다!”
“잠깐. 날카로운 손 마법도 걸어드리겠습니다.”
“......”
“감... 감사합니다.”
두 모험가는 슬슬 당황스러웠다.
마법사의 마력도 무한하지 않을 텐데, 괜찮은 거 맞나?
좋긴 한데 정말 이래도 되나??
‘에인로가드 출신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인가?’
“자. 다 걸었으니 이제 들어갑시다. 앞으로.”
이한은 불다학의 목을 조르고 있는 뼈다귀 손에 힘을 줬다. 불다학이 목 졸리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크르르릉.
샤르칸은 안에서 구울의 냄새를 맡았는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잠깐 정지.”
이한은 다시 불다학의 목을 조르고 있는 뼈다귀 손에 힘을 줬다.
불다학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
“말로 해도 알아듣는다...”
“빛이여!”
동굴 입구에 강한 광량을 가진 빛의 구체가 생겨나자, 입구 근처에서 자리 잡고 있던 구울들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빛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그 빛을 불러낸 마법사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 ■■■...
-■■■■■...
“막아라!”
용병들은 어느 때보다도 필사적이었다.
평소라면 각자 진형만 느슨하게 유지한 채 자유롭게 움직여서 싸웠을 테지만 지금처럼 강제로 다 묶인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어깨를 맞대고 단단하게 진형을 유지한 채로 구울을 찔러서 넘어뜨렸다.
더르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용병들이 저 정도로 합을 맞춰서 싸울 줄은 몰랐다. 가문의 병사들이 떠오르는군.”
“...더르규. 목, 손목, 발목에 달린 뼈는 안 보이냐?”
“안으로! 샤르칸. 계속해서 적을 파악해다오!”
이한은 불다학과 용병들을 가장 앞으로 밀어 넣고, 그 뒤에서 친구들과 진형을 유지하며 진입했다.
동굴은 십수 명은 너끈하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이한은 다시 빛의 구를 띄웠다.
-■■! ■■!
마치 대낮처럼 밝아진 동굴 안.
제대로 자극을 받은 구울들이 또 한 번 달려 나왔다.
용병들은 고함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철퇴에 얻어맞은 구울이 앞으로 쓰러지고, 두툼한 외날검에 베인 구울이 나뒹굴었다.
이한은 물 구슬을 띄운 뒤 샤르칸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날렸다. 벽 뒤에 숨어 있었거나 바위 뒤에 숨어 있었던 구울들이 분노해서 튀어나왔다.
“워다나즈를 보호해!”
동굴 안이 워낙 넓은데다가 구울이 사방에서 몰려나오다보니 용병들의 진형을 지나쳐서 뒤로 돌파하는 구울들이 나왔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검과 방패를 들고 구울을 넘어뜨렸다.
특히 라파드엘의 활약이 매우 적극적이었다.
“어딜 덤비는 거냐, 구울 놈들아. 죽은 자들의 땅으로 돌아가라! 감히 어디를!”
“라파드엘. 그렇게까지 안 해도 워다나즈는 괜찮은데.”
앙라고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친구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워다나즈를 걱정해도 너무 걱정하지 않은가. 워다나즈가 구울 한두 마리에 당할 놈도 아닌데.
“뭐? 아니야!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초이. 네가 대신 설명해줘라!”
“어... 워다나즈를 걱정해줘서 고맙다. 라파드엘.”
“......”
라파드엘은 이 흑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리석은 친구들의 모습에 한탄했다.
‘흑마법을 모르는 놈들하고 같이 움직이니 답답하군 정말!’
그러는 사이 한 차례 몰려든 구울 떼가 전부 쓰러졌다. 용병들은 거센 숨을 헉헉 내쉬며 무기를 내렸다. 강제로 묶인 상태에서 싸운 바람에 평소보다 몇 배로 힘든 기분이었다.
“마ㅂ...”
용병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이한은 반사적으로 물 구슬을 날리고 뼈다귀 손에 힘을 줬다.
“컥큭컥.”
“아 미친놈아!”
“왜 자빠지고 있어!”
옆에 같이 묶인 동료가 넘어지자 다른 용병들도 휘청거리며 성질을 냈다.
“아. 미안하다. 그러게 고개를 돌리지 말았어야지. 왜 그러지?”
“휴, 휴식을...”
“그래. 휴식해라.”
“혹시 마실 것도...”
“미친놈아. 눈치 없냐?”
옆에 있던 용병이 기겁해서 속삭였다.
현상금 걸린 상태에서 남 습격하려다가 잡혔는데 지금 무슨 마실 걸 찾는단 말인가.
도시 갈 때까지 해부당하고 싶지 않으면 입이나 다물고 있어야지, 꼭 이렇게 눈치 없는 놈이 있었다.
상대가 조금 말 들어준다고 바로 기어오르는 놈!
혼자 뒤지면 상관없는데 자기까지 같이 뒤진다는 게 문제였다. 용병은 이런 머저리가 일행에 끼어있다는 사실을 한탄했다.
“물?”
이한은 물을 불러내서 용병들 위에 끼얹었다. 땀과 피와 열기를 씻어내는 차가운 생명수에 용병들은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사 님!”
“더 마실 건가?”
“조금만 더...”
“야 이 미친놈아!”
다른 용병들은 기겁했지만 이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 한 덩어리를 더 불러내서 용병들에게 끼얹었다.
불다학은 바로 넘어가는 용병들의 모습에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은화에 모이고 금화에 넘어가는 게 용병들이라지만 그걸 눈앞에서 보는데 속이 안 꼬일 리 없었다. 아주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움직인다.”
일행은 방금 했던 것처럼 다시 움직였다.
샤르칸이 먼저 길을 파악하고, 이한이 빛의 구체를 띄운 다음, 몰려드는 구울들을 용병들이 처리한다.
물론 일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길이 막혔습니다!”
“갈림길을 잘못 골랐군. 돌아간다.”
동굴은 넓은 만큼 안의 지형이 생각보다 복잡했고, 길을 잘못 들면 다시 왔던 길을 돌아와야 했다.
구본은 길을 빠져나오자 말했다.
“앞에 표식을 남겨서 다시 들어가지 않도록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빛이여!”
잘못 들어간 입구에는 빛의 구체를 띄워버리는 이한의 모습에, 구본은 당황했다.
“마법이 아니라 백묵으로 벽에 남겨도 됩니다만.”
“지워질 수도 있고, 또 이렇게 해야 멀리서도 보기 좋잖습니까?”
“그런데 마력이... 괜찮으신...”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구본과 비지덱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봐도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이한의 다른 친구들은 정말 괜찮다는 듯이 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마법을 몰라서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마력을 낭비하는 것 같은데...’
-크르르르르릉!
“!”
샤르칸이 발을 구르며 이쪽을 보라는 듯이 외쳤다.
허공에 뜬 빛의 구체 덕분에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비지덱은 외쳤다.
“함정입니다! 모두 정지!”
“밟으면 작동하는 방식의 덫입니까?”
“맞습니다.”
용병들은 수군거렸다.
원래라면 동굴이나 던전에서 함정이 나오는 건 매우 위험한 징조였다.
지성이 없고 무질서하게 덤벼드는 구울은 재수 없는 일만 아니라면 무난히 상대 가능했지만, 어두컴컴한 먼지 속에 숨어 있는 함정은 어지간한 모험가도 쉽게 피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좀 달랐다.
웬 미친 마법사가 동굴 안을 대낮처럼 환하게 만들고 있었고...
...무엇보다 함정이 있다는 건, 보물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함정이 있지는 않았으니까.
“이거 설마 정말로...”
“쉿. 구본. 그런 말 할 때가 아니다.”
비지덱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함정이 나왔을 때야말로 비지덱의 능력이 발휘될 때였다.
“혹시?”
“예. 도둑에게서 기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비지덱은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래된 유적이나 던전을 공략할 때 꼭 필요한 게 이런 함정 해체 전문가였지만, 전문가에 대한 시선은 그리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통 이런 전문가는 도둑 출신이었으니까!
전문가가 ‘저는 손 씻었습니다’ ‘저는 이제 안 훔칩니다’ ‘저는 정의로운 도둑이었습니다’라고 말해봤자 다른 파티원들 입장에서는 저 전문가가 유적의 자물쇠를 딸지 자기 배낭의 자물쇠를 딸지 믿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도둑 길드 출신들도 길드 출신이라고 하기보다는 ‘우연히 기술을 배운 적이 있다’같은 식으로 돌려 말하곤 했다.
“오. 저도 도둑에게서 기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예. 예... 예????”
비지덱은 이한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둑에게서 기술을 배운 적이 있다고 했는데요.”
“농담하시는 겁니까? 그게 어떻게... 말이 됩니까?”
이한은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비지덱 씨는 도둑에게서 기술을 배운 적이 있는데 왜 저는 말이 안 됩니까?”
“그게... 어... 그렇긴 한데...”
“그렇죠? 그럼 같이 해체합시다.”
“......”
비지덱은 뭔가 홀린 기분으로 이한과 함께 걸어갔다.
여러 강화 마법이 걸린 덕분에 오감이 예민해져 있어 함정을 해체하기 더욱 편했다.
“압력을 누르면 작동하는 구조 같습니다. 맞습니까?”
“맞, 맞습니다. 어떻게...”
“옆으로 파고 들어가서 아래 장치를 해제할까요? 아니면 그냥 함정을 작동시킬까요?”
“안전하게 해제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제게 장비가 있으니 옆을 파고들어...”
“파내라.”
바로 구덩이가 생기는 모습에 비지덱은 조용히 생각했다.
‘도시에 돌아가면 돈을 모아서 마법을 한 번 배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