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14화 (314/687)

314화

구울의 왕은 아까처럼 가볍게 몸을 분산시키며 번개를 피했다.

그러나 아까와는 상황이 달랐다.

화르르륵!

이한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진 불길이 동굴의 드넓은 공동 안을 채우고 있었다.

마법사의 마력이 담긴 거센 맹염은 아무리 구울의 왕이라 하더라도 가볍게 무시하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힘의 소모가 심한 상태에서 잘못 휘말려서 불타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타격은...

벌레부터. 먼저.

구울의 왕은 이한을 짓밟는 대신 방금 뒤쪽으로 빠져나간 자들을 먼저 쫓아 죽이기로 생각을 바꿨다.

“...번쩍여라!”

그러나 이한은 당연히 그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구울의 왕이 움직일 법한 궤도에 번개를 미친듯이 난사하며 한 발짝씩 앞으로 움직였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지직!

서슬 퍼런 주문의 난사에 구울의 왕도 움찔했다.

저런 미친 난사는 자폭에 가까운 짓이었다. 채 십 초도 지나지 않아서 마력이 고갈될 것 아닌가.

마법사를 상대해 본 경험이 많은 구울의 왕은 이한의 행동에 다시 한 번 당황했다.

그러나 이한은 마력이 고갈되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구울의 왕이 멈춘 시간을 아주 요긴하게 활용했다.

화르륵!

방금 친구들이 빠져나간 통로 앞을 막아서고 불길로 채워버린 것이다.

그제야 이한의 속셈을 깨달은 구울의 왕은 극도로 분노했다.

감히.

“말했듯이, 협상하자고 했을 때 협상했어야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한도 본색을 숨기지 않았다. 적을 거칠게 쏘아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불사조의 문양이 이한의 손아귀에 기운을 전해주었다.

주변의 통제 불가능한 불길이 이한을 덮치려다가 물러서고, 다시 한 번 통제하에 들어왔다.

‘가라!’

이런 맹염 속에서는 형태 변환이나 조종 같은 게 필요 없었다. 이한은 정면으로 덤벼들었다.

거대한 화염의 파도가 몇 겹이고 넘실대며 구울의 왕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모든. 구울의. 주인이자. 필멸자들의. 공포를. 상대로. 한. 불경.

구울의 왕은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와는 위치가 정반대로 뒤집힌 것이다.

소모되는 힘이 아쉽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죽음으로도. 갚지. 못한다.

불다학의 몸을 뺏고 강림하려고 할 때처럼 시푸른 음(陰)의 에너지가 강렬하게 응축되더니 맹염의 파도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그렇게 사납게 날뛰던 불들이 버티지 못하고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울의 왕은 아직도 상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다른 마법사들을 상대하듯이 마법을 묶어버린다고 끝나는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타올라라!”

구울의 왕에게 눈동자가 있었다면 크게 부릅떠진 모습을 볼 수 있었으리라.

시퍼런 음의 에너지로 꺼져가던 불길이 다시 마력을 연료 삼아 타오르자 구울의 왕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애초에 힘을 아끼며 소모전을 가려고 했던 게 실수였다는 것을. 그 자체가 상대의 노림수였다.

무슨 아티팩트를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상대는 마력을 회복하는 수단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건방. 을...

구울의 왕의 형체가 뚜렷해지더니 갑자기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동굴을 뒤덮고 있는 맹염을 관통하자 구울의 왕의 형체에서 불타오르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구울의 왕은 그 피해를 감수하고 이한에게 가까이 붙었다.

마법사. 검을. 들고. 덤비던데.

이한이 한 손으로 새벽별을 휘둘렀다. 구울의 왕은 새벽별의 공격을 맞아주며 더욱 붙었다.

원하던. 대로. 해주지!

콱!

구울의 왕은 불다학에게 빙의했던 것처럼 형체로 이한을 단단히 붙잡았다.

대부분의 권능이 사라진 구울의 왕이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권능 중에는 이런 권능도 있었다.

공허로 가득 찬 차원의 문을 열고 붙잡은 상대의 육신을 연결시켜버리는 것.

텅 빈 공허의 차원은 마치 진공처럼 마법사의 마력을 끝없이 빨아들였다.

마법사의 가장 커다란 공포는 마력이 고갈되는 것.

게다가 이 연결은 마력이 고갈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마법사의 생명력이 마력으로 전환되어서 고갈될 때까지 계속됐다.

구울의 왕은 붙잡힌 마법사가 눈과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예상과는 달랐다.

“고맙군. 원하는 대로 해줘서.”

이한은 차갑게 말하며 지팡이를 겨눴다.

이 거리에, 상대가 이한을 붙잡고 있는 이상 놓칠 수가 없었다.

“모이고, 응축하여...”

잠...

“...폭발하라!”

<피블리쿠스의 정신 나간 마력폭발>이 근거리에서 정확히 명중했다.

안 그래도 차원 연결의 권능을 쓰느라 소모가 심했던 구울의 왕은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났다.

*         *         *

“찾아야 한다! 빨리!”

더르규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한이 목숨 걸고 시간을 벌어줬는데 여유가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앙라고와 라파드엘도 그걸 알았기에 동굴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이한이 보낸 소환수 샤르칸이 사방을 날카롭게 찢어발기며 길을 안내했다.

“여기... 젠장! 잘못 봤다!”

“야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넌 장님이냐! 장님도 너보단 낫겠다!”

앙라고가 잘못 보자 더르규가 벌컥 화를 냈다.

앙라고는 너무나도 당황해서 대꾸도 하지 못했다.

더르규가 저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평소에는 어떤 실수를 해도 ‘괜찮다 고의가 아니었겠지’하던 친구였는데...?!

“미안하다!”

“미안할 시간에 입 닥치고 찾아라!”

앞에 있던 라파드엘은 더르규의 기세에 단단히 쫄아붙었다. 만약 한 번이라도 실수를 더 한다면 더르규가 칼로 찌를 것 같았다.

-크르르르릉!

다행히 샤르칸이 길을 열어냈다.

마력의 잔향을 맡은 샤르칸은 아무것도 없는 동굴 벽을 탕탕 두드리며 셋에게 신호를 보냈다.

“여기라고?”

“여기겠지!! 그럼 심심해서 저러겠나! 빨리 휘둘러!”

더르규는 들고 있던 칼을 거꾸로 잡고 곡괭이질 하듯이 벽을 때리며 화를 냈다.

“미, 미안!”

“알겠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정신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강화 마법이 걸린 상태에, 마력도 어느 정도 담을 줄 아는 이들인 만큼 그 위력은 상당했다.

거기에 샤르칸까지 합세해서 동굴의 벽을 갈겨댔다.

캉, 카카캉, 카카카캉-

날카로운 소리가 반복해서 들리더니 점점 동굴의 벽이 얇아지는 게 느껴졌다.

“헉, 허헉. 허억...”

앙라고는 온몸에서 땀이 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감각을 맛봤다.

전력으로 달린 상태에서 쉬지 않고 무기를 휘둘러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멈추지 마라!”

더르규는 으르렁대며 외쳤다.

“어...!”

앙라고는 간신히 쥐어짜듯이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휘두르다 쓰러져라! 멈추지 말고!”

“커헉. 헉. 허헉.”

더르규는 미친놈처럼 친구들을 밀어붙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기에 금이 가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손바닥도 피투성이가 되었을 무렵, 마침내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콰직, 콰지직!

“됐다!!!! 해냈다고!!!!!”

“들어가서 빨리 유물이나 부숴!!”

더르규의 고함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부서진 벽을 발로 찼다.

그러자 안에서는 텅 빈 무덤이 나타났다.

다른 유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무덤 위에 불길한 마력을 흩뿌리는 수정 해골이 있다는 점이었다.

누가 봐도 사악한 이계의 존재가 깃들어 있을 법한 유물이었다.

라파드엘은 검을 뽑아들었다.

“부숴!”

캉!

그러나 검은 흠집 하나 주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라파드엘은 손을 타고 올라오는 사악한 음에너지에 경악했다.

“크... 흑...”

손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자 자연스럽게 검이 떨어졌다.

더르규는 전투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휘둘렀다.

“못하겠으면 저리 꺼져라!”

“미, 미안...”

그 기세가 얼마나 흉악했는지 앙라고는 순간 더르규가 라파드엘을 죽이려는 줄 알았다.

쾅!

검이 휘둘러졌는데도 수정 해골은 끈질기게 버텼다. 더르규는 붕대를 꺼내서 손에 칭칭 감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감아라! 빨리!”

“어, 어어!”

“휘둘러! 번갈아가면서!”

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번갈아가면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기에 금이 가고 손에서는 생기가 사라졌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한을 생각해라!”

“어어!”

“지금 목숨을 걸고 놈을 상대하고 있을 거다!”

“어... 어!”

“빨리 더 휘두르란 말이다!”

“어어...”

그리고 뒤에서 이한이 나타났다.

이한은 매우 피곤하고 지친 얼굴로 말했다.

“애들아. 일단 분신 잡았으니까 천천히 부숴도 된다.”

“......”

“......”

“......”

검을 들고 휘두르려던 세 흰 호랑이 탑 학생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         *         *

구울의 왕이 어떤 공격을 했는지 이한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마 모종의 수단을 써서 마력을 소모시키려고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공격은 거의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이한에게 데미지를 준 건 이한 본인의 마법이었다.

만든 본인은 매직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피블리쿠스의 정신 나간 마력폭발>.

최대한 통제하면서 시전했는데도 마력폭발의 여파가 이한의 전신을 후려갈긴 것이다.

자기 마법에 이렇게 데미지를 받는 마법사라니. 해골 교장이 봤다면 낄낄댔을 일이었다.

자기 본체도 없고, 유물에 의존하고 있는데다가, 분신까지 박살낸 이상 아무리 강한 존재라 하더라도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 일단 안심해도 됐지만...

...이한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시는 화염 마법 쓰지 말자.’

이한이 미친놈처럼 질러댄 불길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불사조의 문양도 시간이 다 됐는지 힘을 잃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결국 이한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다시 미친놈처럼 열심히 불을 끄는 것.

이한은 물 덩어리를 불러내고 불러내고 불러내서 화염 위에 끼얹었다.

서로 합쳐져서 지독한 열기를 내뿜던 화염들도 끈질긴 공격에는 버티지 못했는지 결국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간신히 진화를 마친 이한은 친구들이 향한 쪽으로 움직였다.

친구들은 용케도 구울의 왕이 깃든 유물을 찾았는지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애들아. 일단 분신 잡았으니까 천천히 부숴도 된다.”

“......”

“......”

“......”

친구들이 경악하는 사이 이한은 물 구슬을 단단하게 압축시키고 회전시켰다.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파괴력 있는 마법을 준비할 수 있었다.

‘저런 유물을 부수는 건 아깝지만...’

괜히 아깝다고 상대를 얕본 채 들고 나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매우 골치 아파졌다.

꼭 적을 다 쓰러뜨린 다음 사악한 유물을 챙겼다가 일이 틀어지지 않던가.

이한은 후환을 남겨둘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들 비켜라.”

“응, 으응.”

콰직!

일격에 수정 해골이 산산조각났다. 그 안에 깃들었던 사악한 존재가 비명을 지르며 다른 차원으로 역소환됐다.

라파드엘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사악한 유물을 파괴하는 이한의 결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워다나즈... 훌륭하다.”

“잠깐. 너... 손이 왜 그러냐?”

이한은 기겁해서 라파드엘을 쳐다보았다. 칭칭 감은 붕대는 피투성이에 드러난 살갗은 검게 죽어 있었던 것이다.

더르규가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훈장 같은 거다.”

“훈장?”

“그래. 이한. 네가 저 놈과 싸우는 동안,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는 훈장.”

더르규의 말에 다른 두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까 더르규가 화낸 게 살짝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꺼내면 너무 소인배 같이 느껴질 것 같았다.

“아니. 더르규. 헛소리 하지 말고. 손이 왜 그러냐고.”

“어... 저 유물이...”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