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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19화 (319/687)

319화

이한은 대꾸하는 대신 성큼성큼 걸어가 가이난도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숨긴 얼굴이 드러난 가이난도는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쓰, 쓰려고 찾은 거 아니야. 무슨 원리인지 궁금해서... 그래! 미리 알아놔야 나중에 당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너희는 왜 왔어! 너희도 카드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아티팩트 찾으러 온 거잖아!”

황당한 가이난도의 트집에 이한과 요네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끔 너무 개소리를 들으면 바로 반응하지 못할 때가 있는 법.

“그렇지?! 내가 맞췄지?”

“아닌데.”

“개소리 작작 해 좀.”

“...아니야?”

가이난도는 살짝 기가 죽었다.

당연히 카드 게임 관련 아티팩트를 사러 온 줄 알았는데...

“가이난도. 카드 게임에서 이기고 싶으면 다른 방법이 있다.”

“어? 진짜?”

이한의 말에 가이난도는 눈빛을 반짝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푸른 용의 탑에서 이한은 가장 승률이 높은 마법사 카드 게임 고수.

“네 덱의 구성을 좀 바꿔라.”

“싫어! 모두 다 내가 아끼는 카드들이라고!”

덱에 저코스트 카드는 하나도 없이 고코스트 카드만 넣어놓으니 초반에 매번 맞아 죽었지만 가이난도는 끝까지 자신의 카드를 믿으려 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긴 해.”

“뭔데?”

“져도 징징대지 말고 패배를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

가이난도는 이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마법 못 한다고 구박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카드 게임 가지고 구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한. 여기 봐.”

둘의 대화를 무시하고서 둘러보고 있던 요네르가 이한을 불렀다.

“이 안경. 쓸만해 보이지 않아?”

“연금술사의 안경인가. 확실히 좋아 보이는군.”

연금술사의 안경

서부 이칸셀 광산의 호안석을 정련해 만든 이 안경은, 제국 최고의 아티팩트 장인들이 조정한, 완벽하게 균형 잡힌 디자인을 갖고 있습니다. 5년 동안 유지되는 강력한 성분 분석 마법의 효과를 느껴보세요.

‘얼마지?’

가격-제국 금화 백 닢

이한은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모습에 요네르는 깜짝 놀랐다. 언니의 지독한 정신 공격이 뒤늦게 효과를 발휘한 건가 싶었다.

“괜찮아!? 설마 언니 때문에?!”

“가, 가격이... 금화 백 닢이라니.”

“...깜짝 놀랐잖아.”

“요네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 아닌가? 이게 어떻게 제국 금화 백 닢이지?”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연금술사의 안경은 쓸만한 물건이 맞았다.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사람도 각종 재료나 시약의 성분을 손쉽게 분석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법사인 이한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었다. 심지어 영구 아티팩트도 아니지 않은가.

‘재료 모아서, 마법 걸고, 작업 한다고 쳤을 때... 원가는 금화 한 닢도 안 나올 것 같은데.’

그런 아티팩트가 이한이 모은 전재산보다 비싸다니.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아티팩트가 비싸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런 아티팩트도 이 정도로 비싸다면...

이한의 일확천금도 꿈이 아닐지 몰랐다.

“이건 마법보다는 디자인이랑 들어간 장식 때문에 비싼 거야. 이한.”

“응?”

“여기 봐.”

요네르가 안경 아래를 가리켰다.

이 아티팩트 작업에 참가한 장인들의 이름과 그들의 경력, 그리고 장식에 들어간 각종 보석들까지 세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이한은 그 설명을 보고 다시 아티팩트를 확인했다.

확실히 마법이 없어도 충분히 비싸 보이는 안경이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그냥 구리 안경에다가 마법을 걸어도 되는 일이잖아.”

“그야... 사는 사람이 이런 걸 원하니까...”

“큭.”

이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정한 마법의 가치를 보지 않고 겉모습과 화려함에만 주목하는 제국의 세태가 원망스러웠다.

그렇다면 이한이 열심히 만든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비싸게 팔지는 못할 것 아닌가.

“이해해. 그만 분해하고 다른 거 알아보자.”

“크윽! 왜 이렇게 비싸!?”

“?”

“?”

가이난도의 외침에 요네르와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가이난도는 평소에 절대 저런 소리를 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마르지 않는 용돈 주머니를 갖고 있는 친구였는데...?

“평소에는 그런 소리 안 했잖나? 왜 그래?”

“아. 그게.”

가이난도가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택에서 바실리스크와의 혈전이 있고 나서...

“혈전은 아니지. 자멸한 건데.”

이한은 냉정하게 지적했다.

그렇게 들으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었다.

“그 정도면 혈전 아닌가...”

“아니라고.”

“어쨌든 그 다음에 어머니한테 칭찬 많이 받았거든. 친구들 칭찬도 많이 하셨고.”

“그래서?”

“신이 나서... 친구들하고 같이 일해서 은화 번 이야기도 했거든. 그러니까 더 칭찬을 하시더라고...”

이한은 살짝 불길해졌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그래서 내가 앞으로 용돈 필요 없다고, 내 능력으로 해결해보겠다고...”

이한과 요네르는 동시에 한탄했다.

저런 어리석은 짓을!

물론 칭찬받고 신이 난 건 이해가 갔지만, 스스로 용돈 주머니를 발로 걷어차다니.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자존심 하나 때문에 그런 짓을 하다니...

“그래도 잘 했지?”

가이난도는 애써 정신승리를 하려는 듯이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칭찬해줘!

그러나 이한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가이난도. 돌아가서 잘못 생각했다고. 적절한 용돈은 필요할 것 같다고 빨리 말씀드려라.”

“맞아. 넌 못 버텨.”

“아니 왜!”

응원해줄 줄 알았던 두 친구들의 냉혹한 대답에 가이난도는 울컥했다.

“그야... 넌 일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

“아닌데? 아닌데?? 나도 일 많이 할 건데?”

이한과 요네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할 것 같은데.

-맞아. 그런데 우리 알 바 아니잖아.

-...가이난도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쟤는 좀 당해봐야 정신 차려.

“이한. 나도 같이 일할래.”

“후회할 텐데.”

이한의 말에 가이난도는 가슴을 두드렸다.

“나도 에인로가드 학생이야. 어엿한 마법사라고.”

그 모습에 요네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 푸른 용의 탑이라서 날로 먹은 거야...’

다른 탑 학생들 이야기 들어 보면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처절한 생존의 연속이었다.

이한이 같은 탑이라 끼니 챙겨준 거였지 아니었으면 가이난도는 반쯤 시체 되어서 나왔다.

“알겠다. 일 소개 받으면 너도 불러줄게.”

“진짜? 고마워!”

“감사인사는 일 다 하고 하는 게 나을 텐데... 어쨌든. 이걸 좀 팔아야겠군.”

이한은 점원을 불렀다. 그리고는 갖고 온 아티팩트를 꺼냈다.

점원은 이한이 갖고 온 아티팩트의 가치를 금세 알아보았다.

“<번개 방출>의 마법이 걸린 반지입니까!”

“맞습니다.”

“잘 만들어진 아티팩트군요. 혹시 제작한 마법사의 설명서가 있을까요?”

“여기.”

이한은 길드에게 받은 설명서를 내밀었다.

그걸 본 점원은 당황했다.

“...혹시 모험가 길드 쪽에서 감사의 뜻으로 바친 선물인가요?”

“문제될 게 있습니까?”

“혹시 이번에 사악한 존재를 토벌하신 워다나즈 님이십니까?”

“......”

이한은 한숨을 푹 쉬려다가 참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랑덴 시 정보 공유 게시판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맞습니다. 혹시 할인이라도 됩니까?”

“유머 감각도 대단하시군요. 제 친구가 모험가 길드에서 일하고 있어서 들었습니다. 에인로가드의 학생분들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1학년 때부터 이렇게 활약하시는 분은 드물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농담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랑덴 시 정보 공유 게시판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문제될 건 없습니다만... 모험가 길드 쪽에서 바친 선물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점원은 신중하게 질문했다.

모험가 길드 쪽에서 바친 선물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건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작한 아티팩트 장인부터, 그 아티팩트 장인을 믿고 의뢰를 맡긴 모험가 길드 쪽 담당자까지 여러 사람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저한테는 필요하지 않은 아티팩트라.”

“!”

이한의 말에 점원은 놀랐다.

아티팩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건 단순히 그 마법을 쓸 줄 안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시전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집중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 걸 보완해주는 아티팩트가 필요 없다는 건, <번개 방출> 마법의 시전 속도가 아티팩트 발동 속도와 맞먹는다는 걸 의미했다.

‘과연... 발드로가드의 도인 경을 제압하고 바실리스크를 쓰러뜨린 분답군요.’

이한이 들었다면 뒷목 잡을 생각을 하며 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에서 실수를 했군요.”

“아닙니다.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죠. 사실 저는 금화로 줬어도 만족했을 겁니다.”

점원은 참지 못하고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멋쩍은 표정으로 수습했다.

“정말 유머 감각이 대단하십니다.”

“......”

“어쨌든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감정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맡기실 아티팩트는 이게 답니까?”

“아. 이 투구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게 뒤편으로 향했다.

한 시간 후.

점원이 두 아티팩트를 들고 돌아왔다. 가이난도는 지기 직전의 카드 게임을 슬쩍 엎어버렸다.

“이 <번개 방출>의 마법이 걸린 반지는 금화 열 닢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외진 마을의 골동품이나 잡동사니 가게면 모를까 이런 대도시 중앙 구역의 귀족 전문 아티팩트 점에서는 어설픈 협상 같은 게 없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바로 귀족한테 ‘지금 내 명예를 무시하나?’ 소리 듣기 딱 좋았다.

‘나쁘지 않다.’

이한은 매우 만족했다.

금화 열 닢이라니.

저만큼을 벌려면 메이킨 가문의 공방에서 몇 번이나 일을 하고 의뢰를 몇 십 건이나 받아야 했다.

모험가 길드의 진심이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바로 바꿔주십시오.”

“예. 그리고 이 투구는...”

이한은 살짝 긴장했다.

‘제법 비싸지 않을까? 에고 아티팩트다. 에고 아티팩트는 분명 귀할 터. 하지만 너무 볼품없는 외관을 갖고 있어. 젠장. 보석으로 치장이라도 했어야 했나? 아니. 비전문가의 솜씨로 건드려봤자 역효과만 났을 거다.’

“...저주 받은 아티팩트입니다.”

“예?”

“저주 받은 아티팩트.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사악한 성향을 가진 아티팩트입니다. 주인을 파멸로 이끌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용케 다치지 않으셨군요.”

점원은 걱정과 존경이 반반 섞인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저런 아티팩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멀쩡하게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정신의 강함을 증명했다.

물론 이한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저주 받은 아티팩트였다고?’

“아... 어쩐지 이한이 이상한 놈들을 많이 만나더라구요.”

가이난도는 이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이상할 정도로 강한 적들을 많이 만났는데, 저게 다 저 투구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내 말은 듣지도 않았는데...!

투구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의하려고 했지만, 점원이 재빨리 침묵의 천을 덮어서 투구의 입을 막았다.

사악한 아티팩트의 말을 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이건 구매할 수 없습니다. 워다나즈 님이라면 알아서 잘 처리하시겠지만, 사악한 아티팩트니까 주의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한은 투구를 노려보며 챙겼다. 투구는 그 시선에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         *         *

가이난도한테 솜사탕 하나 사주고 셋이 같이 워다나즈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하인이 이한에게 말했다.

“도련님. 손님이 와계십니다.”

“이 시간에?”

곧 밤인데 손님이 찾아오다니.

어지간히 친한 사람이거나 어지간히 무례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지 않을 방문이었다.

‘전자겠군.’

“아산인가?”

“아닙니다.”

“더르규?”

“아니요. 친구분은 아니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처음 뵙는 분이었습니다.”

“혹시 종족이 어떻게 되나?”

“뱀파이어셨습니다.”

“......”

이한의 얼굴이 뱀파이어처럼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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