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20화 (320/687)

320화

“뱀파이어 친구가 있었나?”

상황 파악이 덜 된 가이난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한은 오늘 밤 가이난도네 집에서 머무를까 살짝 진지하게 고민했다.

“왔군.”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그런 고민을 친절하게 막아줬다.

안에서 걸어 나오는 볼라디 교수의 모습에 가이난도는 놀라서 말했다.

“교수님이 왜 여기 계셔? 경비병 불러서 쫓아내야 하는 거 아니야?”

이한은 순간 솔깃했지만 제정신을 차렸다.

“교수님! 제 누추한 집에 방문해주시다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누추하지는 않군.”

“근데 누추가 뭐야?”

가이난도의 질문은 무시하고 이한은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교장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다.”

‘죽여버릴까 진짜.’

이한은 사악한 구울의 왕을 토벌한 김에 사악한 에인로가드의 리치도 토벌해야 하나 생각했다.

“잠깐. 혹시 교장 선생님께서 다른 교수님들한테도 알려주셨습니까?”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현기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미치겠군.’

지금 저택에 찾아올 만한 교수들이...

‘가르시아 교수님은 괜찮고. 오히려 대접을 해드려야지. 우레걸음 교수님은... 뭐... 못 해드릴 건 아니고. 번개걸음 교수님은 성격상 안 오실 것 같은데. 잉걸델 교수님은 오시면 알라르롱이 좋아할 것 같군.’

따져보니 제일 위험하고 까다로운 교수들은 두 명 정도 남았다.

볼라디 교수와 버두스 교수.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지금 앞에 있었다.

“근데 방학인데 교수님이 왜 와요?”

가이난도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질문했다. 이한은 아까 가이난도에게 솜사탕을 사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솜사탕 값을 하는군.’

“이야기 할 게 있어서.”

“편지 보내도 되지 않아요?”

“편지로는 힘들다.”

“왜요?”

“이야기 할 게 많아서.”

“길게 쓰면 되지 않아요?”

볼라디 교수는 가볍게 손짓했다. 침묵 마법이 걸린 가이난도는 분노해서 손을 내저었다.

감히 에인로가드 밖에서 황족을 공격하다니!

‘항의해줘! 이한! 황족의 명예를 위해서!’

‘미안하다.’

이한은 시선을 피했다.

교수의 제자로서 교수가 하는 일을 어떻게 막겠는가.

“들어가시죠. 교수님.”

“그래.”

*         *         *

이한은 하인들 대신 직접 찻잔과 찻주전자를 들었다.

“내가 대신 들고 가겠다.”

“이한 님... 훌륭하십니다.”

대귀족의 피를 타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직접 모시려는 갸륵한 모습에 하인들은 모두 감동했다.

이한은 찻잔 받침을 던질 뻔했다.

‘잘못 없는 사람들한테 화풀이하지 말자.’

볼라디 교수는 따라준 녹차를 홀짝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실리스크를 잡았다고 들었다.”

“커헉.”

이한은 같이 녹차를 마시다가 쿨럭였다. 뜨거운 녹차가 목구멍을 가격하는 기분이었다.

“그게... 오햅니다.”

“뭐가 오해라는 거지?”

“그 바실리스크는 성체도 아니었고...”

“갓 태어난 바실리스크. 물약으로 강화된 상태. 사안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리바운드로 탈진. 틀린 게 있나?”

“앗. 맞습니다.”

생각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볼라디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안심했다.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받는 것 아닌가 걱정됐던 것이다.

“사안을 마력만으로 튕겨낼 줄은 몰랐군.”

“...갓 태어난 놈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글쎄. 사안의 관통력은 그렇게 크게 차이나지 않을 터.”

볼라디 교수는 뒤에 내려놓은 우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 안에는 낯익은 알이 푹신한 둥지 안에 잘 자리 잡고 있었다.

볼라디 교수가 저번 외출 때 손에 넣은 바실리스크의 알이었다.

“2학기 강의 때 쓰려고 했는데 걱정이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저번의 그 바실리스크는 지나치게 방심한 거였고...”

이한의 설득에도 볼라디 교수는 걱정을 멈추지 않았다.

설득하던 이한은 문득 자괴감을 느꼈다.

‘내가 왜 바실리스크를 2학기 때 상대하고 싶다고 이러고 있지?’

교수를 잘 설득해서 얻는 결과물이란 게 고작 바실리스크와 맞붙을 미래라니.

생각해보니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볼라디 교수 성격상 더 미친 몬스터를 갖고 올 테니...

“구울의 왕을 격퇴했다고.”

“쿨럭.”

“몸이 안 좋나?”

이한이 두 번째로 사레들리자 볼라디 교수는 눈썹을 위로 올리며 물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이한은 기침을 몇 번 더 하고 침착을 되찾았다.

아까 바실리스크 건도 그랬던 것처럼, 볼라디 교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필요 이상으로 겁먹을 이유는 없었다.

“구울의 왕을 압도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커허헉.”

“정말 몸이 안 좋은 모양이군.”

볼라디 교수는 진지하게 걱정했다.

“조급함에 실수를 저질러도 회복 가능한 에인로가드와 달리, 밖에서는 그런 게 불가능하다. 조급함을 거두도록.”

“...아. 예.”

이한은 ‘저는 교수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강해지기 위해서 바실리스크와 구울의 왕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무 의미 없는 짓이었으니.

“압도한 게 아닙니다. 상대가 워낙 불완전한 상태라서...”

“그래. 불완전한 상태라서 압도했겠지. 압도한 건 맞잖나.”

구울의 왕을 쓰러뜨리고서 근처 의뢰까지 깔끔하게 다 하고 왔으니 누가 봐도 압도한 게 맞았다.

압도한 게 아니었다면 동굴 근처에서 쓰러졌을 테니까.

볼라디 교수의 논리에 말문이 막힌 이한은 후회했다.

‘아픈 척을 할 거 그랬나.’

“구울의 왕은 기록에 없더군.”

다른 차원의 존재라 하더라도 이름값 있는 이들은 기록에 남는 편이었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었다.

구울의 왕처럼 먼 옛날에 강림해서 봉인된 존재는 기록이 있을 수가 없었다.

“예.”

“그렇다 하더라도 주의하는 게 좋겠군. 그런 존재들은 끈질기지.”

이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한 같은 애송이한테 당하고 다른 차원으로 역소환됐는데 너그럽게 넘길 수 있다면 그건 사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마 자신의 차원에서 힘을 회복하며 칼을 갈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한은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만날 일이 어지간해서는 없지 않나?’

저렇게 타격을 입고 역소환됐는데 한동안은 회복하느라 다시 강림할 엄두도 내지 못할 테고, 그러면 남은 가능성은 이한이 구울의 왕이 있는 차원에 방문해 놈의 앞을 직접 찾아가는 건데...

이한이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존재들을 상대할 방법을 준비했다.”

“...!!”

이한은 뜨거운 찻물이 목을 강타하는 걸 견디며 삼켰다. 그러나 눈이 부릅떠지는 것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그런... 방법도 있습니까?”

“그래.”

볼라디 교수는 침착하게 설명에 나섰다.

원래 지금 이한이 걷고 있는 길은 다른 학파의 마법들을 모두 통달해서 융합시키는 완성형 전투 마법의 길.

...물론 이한은 딱히 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여간 이 완성형 전투 마법의 길은 학파 하나하나의 완성도도 중요했기에 볼라디 교수는 결코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제자는 재능 때문에 쉬이 서둘렀지만 볼라디 교수는 스승으로서 이해했다.

스승이 그걸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이해해준단 말인가.

하지만 이번 구울의 왕 토벌전을 생각해봤을 때, 지금은 흑마법에 관련된 마법 전투 경험을 쌓는 게 안전했다.

그래야 구울의 왕과 다시 맞부딪쳤을 때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

“과연.”

설명을 들은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고개만 끄덕였지 속으로는 납득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냥 피하면 안 됩니까?”

“피한다고 피할 수 있으면 적이 아니지. 모르툼 교수에게 들었다. 먼저 흑마법에서 저주, 독, 뼈, 네크로맨시. 4개 기본 영역을 익혔다고.”

“예...”

이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이 정도로 놀라지도 않았다.

‘나중에 기침이나 더 하셨으면 좋겠군.’

“나쁜 선택은 아니다. 흑마법에 있어서 기초 중 기초니. 하지만 구울의 왕 같은 존재는 방금 말한 영역으로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확실히 그랬습니다. 번개 원소도 예지 능력이 있는지 너무 쉽게 피했고, 그나마 화염 원소로 광역기를 펼쳐야 그나마 통하더군요.”

“이계의 사악한 존재들의 권능은 마법사들의 지혜를 뛰어넘을 때가 많지.”

볼라디 교수는 놀라지 않았다.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존재들은 예지 능력은 물론이고 예지 능력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괴한 권능들을 갖고 있곤 했다.

“허나 상대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중 하나는 암흑 원소지.”

“암흑 원소... 말입니까?”

여러 원소 계열 중 암흑 원소는 번개나 얼음과 같이 익히기 까다로운 축에 들어갔다.

번개 원소가 통제가 힘들고, 얼음 원소가 유지가 힘들다면, 암흑 원소는 마법사의 개념화, 그러니까 상상이 힘든 계열에 들어갔다.

“그런 존재들은 음에너지 기반의 암흑 원소를 즐겨 사용한다. 마법사가 다룰 줄 알면 예측도 가능하지.”

“과연.”

볼라디 교수는 책을 한 권 내려놓았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글씨체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기초 암흑 원소 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

낯익은 책의 모습에 이한은 문득 깨달았다.

‘잠깐. 책을 주신다는 건 직접 가르치실 생각이 없으신 건가?’

“직접 가르쳐주시지는 않는 겁니까?”

“그래. 일이 있어서. 익혀놓도록.”

이한은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볼라디 교수가 뒤에서 칼 들고 쫓아오는 가르침을 피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긴 한데...

안 그래도 난이도 높은 암흑 원소를 혼자서 익혀도 괜찮나?

‘일단 받고, 나중에 못 익혔다고 해도 설마 죽이진 않으시겠지.’

책을 받은 이한은 별 생각 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볼라디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유미디후스 님을 만나서 2학기 강의 때 필요한 걸 준비할 생각이다.”

“과연. ...잠깐만요. 교수님. 교수님! 날이 어두워졌는데 묵었다 가시죠! 저택에 방도 많습니다!”

“아니. 다음에 오도록 하지. 대접 잘 받았네.”

볼라디 교수는 하인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저택의 정문을 나섰다.

이한은 저 멀리 사라지는 볼라디 교수의 모습이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녹차에 수면제를 탔어야 했는데!’

이한은 옆의 하인에게 말했다.

“앞으로 트롤 혼혈처럼 생긴 교수님을 제외한 나머지 교수님들은 방문해도 내가 저택에 없다고 대답하도록.”

“알겠습니다...?”

하인은 이한의 명령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대답했다.

대체 무슨?

*         *         *

이한은 기다리고 있던 요네르와 가이난도와 함께 조금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가이난도는 입맛이 없는지 깨작거렸다.

“왜 그래? 요리사들이 실망하겠다.”

“아까 솜사탕을 많이 먹어서...”

요네르는 저걸 왜 친구 집에 데리고 왔나 후회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가이난도가 이한을 가리켰다.

“이한도 입맛 없어 하잖아!”

“지금 그게 같아보여?”

솜사탕 많이 먹어서 저녁 입맛 없는 것과 방학 때 교수 만나서 과제 추가로 받은 걸 같은 선상에 놓다니.

요네르가 보기에 이건 이한이 가이난도를 공격해도 무죄였다.

“아니.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지. 다들 고맙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숟가락을 잡았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식사는 언제나 잘 먹어야 하는 법.

-침입자다. 붙잡아!

-잠깐, 잠깐! 내 신분을 들으면 이해할 거다! 나는 에인로가드의 교수, 비블레 버두스 교수다!

“......”

탁! 이한은 성질을 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가이난도가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었다.

“나, 나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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