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어딜 가나 대우 받는 고급 인력이었지만...
거기서도 가끔 예외는 있었다.
사실 예외라고 할 필요 없이 흑마법사라고 해도 됐다. 보통 흑마법사였다.
흑마법은 기본적으로 인기가 없었다.
‘나 같아도 굳이 흑마법사를 부르진 않을 것 같다.’
다른 뛰어난 학파의 마법사들이 많은데 굳이 흑마법 학파의 마법사들을 부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흑마법사만 할 수 있는 일이라니.
매우 수상했다.
“넌 그걸 어디서 들었는데?”
“랫포드가 알려줬어!”
“오. 그렇다면야.”
“...잠깐. 뭔가 이상한데?”
가이난도는 랫포드의 이름을 듣자 반응을 달리하는 이한의 모습에서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빨리 가보자고.”
“그래. 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보단 나을... 아차.”
“네 공부지 내 공부냐...”
* * *
랫포드는 흑마법사가 아니었지만 흑마법을 배우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탑의 이미르그였다.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은 서로 쏠쏠한 일자리들이 나오면 긴밀하게 공유했기에 랫포드의 귀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저게 진짜 우정이지.’
이한은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의 우정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기껏 한다는 게 저택에서 파티 열고 초대하는 건데...
“오랜만이다. 이미르그.”
“오랜만이야!”
“반, 반가워.”
1학년 학생 중 흑마법을 배우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학생들은 서로 친할 수밖에 없었다.
“라파드엘도 불렀나?”
“그 자식은 왜 불러!? 필요 없어!”
...몇몇 학생들은 서로 친했다.
“흰, 흰 호랑이 탑한테도 말했는데... 피로 때문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던데.”
“저런.”
“자기 관리도 못하면서 기사는 무슨 기사야. 흥.”
평소 라파드엘과 투닥대던 만큼 가이난도는 계속 툴툴댔다.
“그런데 크게 아픈 건 아니지?”
“아닐걸.”
진상을 아는 이한은 중얼거렸다.
아마 저번 구울의 왕 토벌 때문에 피로가 덜 풀린 게 분명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단련이 덜 됐군.’
라파드엘이 들었다면 멱살 잡을 생각을 하며 이한은 시선을 돌렸다.
“라파드엘은 어쩔 수 없으니 우리가 대신 더 열심히 하자고. 그래서 이미르그. 이쪽인가?”
“으응.”
이미르그가 길을 안내하고 있는 곳은 시의 남쪽 구역, 일반 구역이었다.
이 남쪽 구역에는 귀족들이 지내는 중앙 구역이나 길드들이 위치한 서쪽 구역과는 다른 활기가 느껴졌다. 온갖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뒤섞여 있을 때만 뿜어져 나오는 활기였다.
망토로 온몸을 가린 수상한 여행자도, <고나달테스 공의 비약>이라고 이름 붙은 수상쩍은 물약을 파는 상인도, 다섯 자루의 검을 차고서 창까지 들고 다니는 용병도 여기서는 이상해보이지 않았다.
“이 자식! 도시 안에서 창을 들고 다니다니. 그랑덴 시가 우스워보이나! 따라와라!”
“잘, 잘못했습니다!”
“......”
물론 완전히 무법지대는 아니었다.
길을 내려가 시의 외곽으로 향하자 점점 인적이 드물어졌다. 이한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자리지?”
“경, 경비 일자리.”
“경비라고?”
이한은 생각지 못한 이름에 생각에 잠겼다.
‘마법사, 그것도 흑마법사를 경비로 세울 이유가 있나?’
마법사는 몸값이 비쌌다. 경비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노련한 모험가나 용병 몇 명을 더 고용하는 게 나았다.
설령 비싼 값을 주고 고용한다고 쳐도 생각보다 많은 마법사들이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습격이나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제값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굳이 따지자면 결계나 경계 마법 같은 활용방법이 있겠지만...
‘굳이 흑마법사를?’
“어디 경비인지 아나?”
“으응. 공동묘지.”
“...아하.”
이한은 바로 납득했다.
그런 곳이라면 흑마법사가 필요할지도...
“공, 공동묘지? 공동묘지 가는 거였어 지금???”
물론 가이난도는 달랐다.
배신당한 눈빛으로 이미르그를 쳐다보자 이미르그도 당황했다.
“왜... 왜? 문제 있어?”
“공동묘지는 무섭잖아!”
“......”
“......”
이한과 이미르그는 순간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그게 흑마법사가 할 소리냐?
“모르툼 교수님 흑암관 주변에도 묘지 몇 개 있지 않았나?”
“그래서 그것도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게 모여 있는 곳에 굳이 가야 해?!”
가이난도는 질색하며 버티려고 했다.
“스켈레톤도 소환해봤고 앞으로 언데드 더 소환하게 될 텐데 미리 익숙해지는 게 나을 걸.”
“언데드하고 따로 만나면 되지 왜 공동묘지에 가야 하는데!”
“가이난도.”
“?”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은화를 받는 게 인생이다. 닥치고 따라와.”
“......”
가이난도는 풀이 죽어서 따라왔다. 이미르그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저, 저래도 돼?”
“괜찮아. 나중에 일 끝나고 솜사탕이나 하나 사주면 돼.”
* * *
그랑덴 시 외곽 공동묘지를 지키고 있던 묘지기는 셋의 등장에 매우 기뻐했다.
“아이고! 마법사 님들, 어서 오십시오! 정말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았거든요.”
“무슨 걱정 말입니까?”
“이번 해에 흑마법을 배우는 에인로가드 학생 분들이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했습니다. 안 그래도 도시에 계신 흑마법사 분들이 적거든요.”
“......”
세 학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에인로가드에서도 흑마법을 배우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랑덴 시에서 실력 있고 기본기가 탄탄한 마법사를 가장 쉽게 구하는 방법은 방학 때 나오는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고용하는 것.
그런데 이번 해 에인로가드 학생 중에 흑마법을 배우는 사람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됐다.
“그래도 세 명이나 있으시다니, 정말 기쁩니다!”
“아... 예.”
“근데 흑마법사가 그렇게 없어요?”
가이난도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에인로가드 출신이야 적더라도, 다른 곳에 있는 흑마법사들을 불러오면 될 것 같은데...
“아이고.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 흑마법사는 다른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신분이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요?”
“그야...”
묘지기가 머뭇거리자 이한이 대신 대답해줬다.
“묘지에서 시체 꺼내갈까봐?”
“크... 크흐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흑마법사 님들에 대한 편견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제국 신문에 너무 꾸준히 사고가 나던 것 같...”
“자! 묘지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묘지기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흑마법을 배우는 학생들 앞에서 흑마법사들이 사고 친 목록을 나열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국에는 주기적으로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사방에 음에너지가 차오르면 죽은 자들의 힘도 강해지죠. 그러면...”
“묘지 같은 곳에서는 이변이 일어날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역시 에인로가드 출신다우십니다.”
자연에 충만한 마력은 온갖 변덕스러운 현상을 일으키곤 했다.
에인로가드에서 뜬금없이 불사조가 소환되었던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음의 마력이 강해진 탓에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다른 차원의 존재가 균열 너머로 넘어오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건 역시 흑마법사였다. 아무리 안 좋은 인식이 많아도 흑마법은 제국에 꼭 필요한 마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저희는 흑마법의 복잡한 비의에 대해서는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처음 오신 학생분들에게 모든 걸 맡기지는 않습니다. 여기 도와주실 선배 흑마법사 분이 계십니다. 디레트 님!”
“!”
이한은 익숙한 이름에 놀랐다.
디레트라면 분명...
“후배들이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왔잖아?”
등 뒤에서 검은 날개를 퍼덕거리는 까마귀 수인 학생이 손을 흔들며 공동묘지의 탑에서 걸어 나왔다.
에인로가드의 4학년, 흑마법 학파를 전공하는 학생인 디레트였다.
“선배! ...괜찮습니까?”
이한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디레트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대화 좀 나눈다고 징벌방에 안 가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리고 징벌방 간다고 안 죽어. 너희도 앞으로 에인로가드 계속 다녀야 할 텐데, 징벌방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둬야 좋을 걸.”
가이난도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싫어했지만 이한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확실히 징벌방 준비도 미리 해놓는 게 좋긴 하지.’
갇혔을 때 탈옥할 방법부터 시작해서 탈옥이 힘들 때 안락하게 휴식이라도 취할 수 있는 플랜 B까지.
그나마 다행인 건 간수장 중 하나인 페르쿤트라와 친하다는 거였지만 페르쿤트라만 믿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한이 보기에 페르쿤트라는 좀...
‘...중요할 때가 실수가 잦단 말이지.’
“어쨌든 너희 둘은 왜 왔어? 푸른 용의 탑 아니야?”
디레트는 이한과 가이난도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보통 이런 일을 푸른 용의 탑 학생이 하지는 않았다.
가이난도는 즉시 대답했다.
“저는 제가 쓸 돈을 스스로 벌고 있습니다!”
“뭐? 왜 그딴 짓을 해? 받을 수 있으면 가서 받아야지.”
“......”
칭찬을 들을 줄 알았던 가이난도는 시무룩해졌다.
이한은 ‘저는 은화에 미쳤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말해봤자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흑마법을 단련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
디레트는 경악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이 후배는 모든 학파의 마법을 듣고 있는 정신 나간 천재였다.
“으, 으응. 그렇구나.”
‘어라?’
이한은 이상함을 느꼈다.
가이난도 때보다 반응이 더...
“그래도 셋이나 와서 좋긴 하네. 더 적을 때도 많았거든. 원래라면 이번 일도 내가 아니라 3학년이 설명해주는 게 맞는데, 걔가 지금 쓸만한 시체 찾으러 동부로 가버려서.”
“그, 그렇군요.”
이번에는 이한과 친구들이 말을 더듬을 차례였다.
“하도 간절히 부탁을 해서 거절할 수가 없더라.”
묘지기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데 또 흑마법사로서 거절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디레트가 이렇게 설명을 위해 참석하게 됐다.
“훌륭하십니다. 하긴 보수를 몇 배로 제안한다면야 거절하는 것도 조금...”
“뭐? 아냐. 보수는 그대론데.”
디레트의 말에 이한은 깜짝 놀랐다.
“보수가 그대로라고요?”
“어? 어...”
후배가 뿜어내는 압박감에 디레트는 당황했다.
“묘지기들이 선배를 속인 겁니다. 제가 가서 항의하겠습니다.”
“아니, 아니... 원래 알던 사이인데 이 정도는...”
“안 됩니다. 오히려 아는 사이일수록 돈 거래는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수상할 정도로 은화에 진심인 후배의 모습에 디레트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후배, 설마 은화 때문에 일하러 온 건 아니겠지?’
* * *
“기본적으로 이 일은 사후대처보다는 사전예방이 중요한 일이야.”
디레트는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만큼 마력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 너희 후배들은 흑마법을 배운 만큼 음에너지 계열의 마력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 거야.”
디레트가 설명하는 사이 저 멀리 공동묘지 위쪽 길에서 지나가던 모험가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켁, 도굴꾼들이잖아?”
“또 시체를 훔치려는 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면전에서는 지껄이지도 못하는 놈들이야. 자. 그래서... 잠깐. 후배 한 명 어디 갔어?”
디레트는 사라진 이한의 모습에 당황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한이 저 위쪽 길로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