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잠ㄲ...”
디레트가 부르기도 전에 이한은 방금 지껄인 모험가 놈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컥!”
“다시 지껄여봐라.”
새벽별을 검집째로 뽑아든 이한은 멈추지 않고 다른 모험가의 명치에 일격을 날렸다. 제대로 얻어맞은 모험가는 거품을 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미친ㄴ...!”
“다시 지껄여보라니까?”
퍽! 퍽퍽퍽!
모험가들이 쓰러지자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 패듯이 두들겨 팼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잘...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나?”
“그게 그...”
“덜 맞았군.”
이한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모험가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또 싸움났군’하는 표정으로 흥미롭게 쳐다볼 뿐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덕분에 이한만 편히 두들겨 팰 수 있었다.
“크헉... 흑마법사 님들이, 도굴꾼이라고 한 걸...”
“아직 부족하군.”
“예? 뭐가 말입... 크학!”
“생각을 해보라고. 시체 훔친다는 누명은 창의적으로 씌우는 놈들이 왜 사과는 창의적으로 못하나?”
두들겨 맞다보면 없던 지능도 생기기 마련.
모험가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위대한 흑마법사 님들이...?”
“더.”
“도, 도시를 지켜주시는 위대한 흑마법사 님들에게 도굴꾼 같은 누명을 씌워서 죄송합니다...!”
“그래. 안 그래도 도시를 지키느라 힘든데 그런 누명을 씌워서야 되겠나?”
“잘못했슴니다...”
두들겨 맞은 모험가들은 비틀거리며 대답했다.
“말은 그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명심해두도록. 반성했으니 용서해주겠다.”
“감사함니다!”
모험가들은 속으로 미치광이 흑마법사들을 욕했다.
앞으로는 묘지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으리라.
‘치사하게 기사를 한 명 숨겨놓다니...’
“따라와라.”
“예?”
“따라오라고. 반성했으니 일을 도와야지.”
“......”
처음 듣는 논리에 모험가들은 당황했지만, 이한은 다시 친절하게 설득해줬다.
들고 있던 검을 겨누자 모험가들은 동시에 외쳤다.
“돕게 해주십시오!”
“그럴 줄 알았다.”
아래에서 보고 있던 디레트는 황당해하며 물었다.
“...지금 저게 뭐하고 있는 건지 아는 사람?”
* * *
“과연. 마력의 흐름이 강한 곳은 지형을 바꾸는 식으로 고여 있는 마력을 풀어주는 거군요.”
다시 진행되는 설명.
이한은 디레트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장소에 비정상적으로 마력이 많이 모이면 이상현상이 벌어질 가능성도 따라서 높아지니, 그런 장소들을 먼저 찾아서 어떻게든 마력을 흐트러뜨려야 했다.
“자. 그러면 저 흙을 파내고 새 흙을 가져와서 섞도록.”
“......”
“......”
모험가들은 묵묵히 삽을 들고 흙을 펐다. 이한은 흐뭇해하며 격려했다.
“잘하는군. 그쪽 작업 끝내면 이쪽 담장 밑도 진행하자고.”
“다들 일 잘하시네!”
“가이난도. 너도 놀지 말고.”
“나, 나는 흙 마법 안 써서 자신 없는데.”
“그럼 손으로 퍼야지. 자.”
“......”
디레트는 이 희한한 모습에 생각했다.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좀 많이 다른데...’
선배가 가르치고 후배가 배우며 서로 같이 힘을 모아 사고를 예방하는 그런 훈훈한 광경을 생각했었지, 이런 죄수들의 노동 같은 모습을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진도는 빠르긴 한데...!
“이한. 여기 마력 많이 모인 곳 맞아?”
“잘 찾았군. 다른 곳보다 마력이 많이 모인 곳 맞다.”
“워, 워다나즈. 여기는?”
“잠깐... 여기는 굳이 건드릴 필요 없을 것 같다.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까지 많은 것도 아니고, 또 마력 흐름이 유동적이라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하지만 길가던 모험가들 붙잡아서 강제로 부려먹는 걸 제외한다면 이한은 확실히 뛰어난 후배였다.
남들보다 압도적인 마력 감지 능력에,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두뇌까지.
종이에 일지를 작성해가며 마력이 고일 법한 장소를 정리하는 모습이 누가 보면 몇 년은 일한 흑마법사 같았다.
‘이 정도면 내가 가르칠 게 없겠는데...?’
“선배.”
‘그래도 선배로서 뭘 좀 가르쳐야 하는데. 뭘 가르치지. 쓸만한 흑마법이 뭐가 있더라.’
“?”
이한은 디레트가 혼자 생각에 잠겨있자 의아해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지?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어? 언제 왔어?”
“방금 전부터 앞에 있었습니다만... 만약에 발견이 늦어서 마력을 흐트러뜨릴 수 없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아차... 그걸 설명해줬어야 했는데.”
디레트는 미안해졌다.
후배가 하도 일처리를 잘해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경우는 좀 거친 방법을 동원해야 해. 여기 있는, 신전 쪽에서 축복 받은 성수나 성물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고...”
교단의 축복을 받은 물건들은 음에너지 계열의 마력들과 상극이었다. 둘을 부딪치면 서로 충돌로 인해 고인 마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었다.
“아니면 마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긴 한데 그건 좀 어려운 방법이라. 후배. 혹시 암흑 원소 쓸 줄 알아?”
디레트는 물으면서도 당연히 이한이 아직 배우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다.
지금 1학년 때 다루는 흑마법의 영역만으로도 만만치 않게 넓었으니까.
그 영역들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암흑 원소 같은 고난이도 원소 마법을 어떻게 익히겠는가.
“기초적인 것 정도만 쓸 줄 압니다.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무리입니다만...”
“그래. 당연히... 당연히 뭐???”
디레트는 무심코 넘기려다가 깜짝 놀랐다.
모르툼 교수가 미쳤나??
“모르툼 교수님이 가르쳤어? 왜? 언제??”
“아. 모르툼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건 아니고... 다른 교수님이 필요하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뭐하는 미친 사람이지?’
디레트는 이한에게 암흑 원소를 가르친 교수를 욕했다.
아무리 필요해도 그렇지 1학년한테 암흑 원소를 가르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 그래. 그랬구나.”
“말씀드렸듯이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무리라서, 기대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만.”
“기대 안 했어! 어떤 미친 선배가 1학년 후배한테 암흑 원소 사용을 기대해!”
디레트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외쳤다.
그리고는 1학기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서리거인의 왕부터 시작해서 기말 과제까지.
그 모습은 자기 일에 1학년을 끌어들인 추한 4학년 그 자체였다.
“...아니다. 후배 네가 그렇게 생각해도 할 말이 없네.”
“??”
“암흑 원소는... 당연히 완벽하게 통제하기 무리지. 나도 통제 못하는데.”
“그렇습니까?”
“그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원소야. 화염 원소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르지.”
“전 화염 원소도 완벽하게 통제 못합니다만.”
“...그, 그래?”
디레트는 당황했다.
솔직히 이한이 화염 원소처럼 쉬운 원소를 통제 못한다는 게 놀라웠던 것이다.
“사람마다 원소 적성이 다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후배. 주로 무슨 원소 마법을 쓰지?”
“일단 물하고...”
“거봐. 그래서 그래. 화염 원소하고 안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후배.”
“번개하고 얼음?”
“......”
디레트는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지금 장난하냐?
* * *
생각보다 긴 대화 끝에 디레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하. 마력 때문에... 하긴. 그거라면 설명이 되네. 후배.”
서리거인의 왕도, 악마를 제압해야 하는 기말고사 과제도.
방금 이한이 설명한 게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물론 마음 속 한 구석에는 ‘그런데 대체 마력이 얼마나 많아야 그런 게 가능한 거지?’란 생각이 남아있었지만.
“잠깐만. 후배. 번개 원소하고 얼음 원소는 다룰 줄 안다면서? 마력이 많은 만큼, 안 그래도 어려운 상급 원소들은 더 어려울 텐데?”
“아. 그러네요.”
“...그게 끝이야?”
“그냥 처음부터 잘 맞아서...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
디레트는 처음으로 후배를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이래서 천재란 족속들은...!
한마디로 마력이 많은데도 그걸 감안하고 번개 원소나 얼음 원소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재능을 타고났다는 소리 아닌가.
참으로 얄미운 소리였다.
게다가 두 원소는 통제 이전에 구현 자체가 어려운 원소였다. 둘 중 하나만 구현해도 원소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텐데 둘 다 손쉽게 구현할 줄 안다니.
“번개하고 얼음 원소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하지만 화염이나 암흑은 통제가 잘 안 됩니다.”
“후배... 작작 원해.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거야. 두 원소는 주변으로 확장되는 성질이 있어서 더더욱 그럴 거고. 하여간 암흑 원소는... 다룰 줄 알면 이런 작업을 하기 편하긴 한데. 어렵긴 하지.”
디레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디레트의 지팡이를 시커먼 암흑이 감싸기 시작하더니 창의 형태로 변했다.
“보여? 힘드니까 빨리 대답해. 후배.”
“보입니다.”
디레트는 그 상태로 창끝을 쿡 찔렀다. 찔린 곳에 위치해있던 잡초들이 생기를 잃고 죽어버렸다.
“참고로 이거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거 아니야. 모양만 대충 잡은 거지. 끝에 봐.”
디레트의 말대로 창의 겉모습은 거칠고 일렁거렸다.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전에도 못 쓰는 건 아니야. 완벽한 통제는 포기하고 원소의 성질만 이용하는 거지. 화염 마법의 달인이 아니더라도 다들 횃불은 쓸 줄 알잖아. 결국은 요령이지.”
“과연...”
“한 번 해보자. 후배. 가장 간단한... 그래. 구체 형태가 좋겠네. 구체로 쏘아봐.”
이한은 디레트가 말하는 대로 암흑 원소를 불러냈다.
그리고 다른 원소처럼 구체 형태로 모았다.
팍!
그러자 압축된 불꽃이 폭발하는 것처럼 암흑 원소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암흑이여, 이 끝에 모여라!”
디레트는 깜짝 놀라 지팡이를 휘둘러 암흑 원소를 통제했다.
“왜 폭발해!?”
“마력이... 많아서 같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후배. 내 기준으로 생각했네.”
디레트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자신과 달리 이 후배는 대충 통제라는 게 성립하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보다 몇 배로 강한 힘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그 막강한 마력 때문에 원소가 제멋대로 날뛰는 것이다.
“전 괜찮습니다. 선배 잘못도 아닌데.”
“잠시 기다려봐. 그래도 내가 선배잖아. 말을 꺼냈는데 조언 정도는 해줘야지.”
디레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암흑 원소에 관한 지식을 모두 끌어내며 생각에 잠겼다.
저런 후배한테는 어떤 조언을 해줘야 도움이 될까?
‘더 통제하기 쉬운 형태를 찾아봐야 할까? 아니,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야. 통제를 아예 포기하고 불러내는 식으로 사용한다면... 안 되겠네. 화염도 위험한데 암흑은 더더욱 그렇겠지. 사방으로 비산할 텐데 잘못 비산하면 스스로를 찌르는 꼴이야. 다른 마법을 응용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부여 마법도 들을 텐데. 부여 마법으로 사용하면 좀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부여 마법도 난이도가 만만치 않을 텐데... 다른 학파 마법 중에는 뭐가 있었지?’
“선배! 선배!”
“?”
이한의 부름에 디레트는 고개를 들었다.
지팡이 위에 암흑 원소로 된 구체가 형태를 유지한 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조언해주신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후배. 넌 그게 진심으로 내가 조언한 덕분이라고 생각해??”
자기는 다른 방법 없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 잠깐 안 보는 사이 막힌 부분을 가볍게 뛰어넘은 모습을 보자 말도 안 나왔다.
저게 대체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