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물론 공동묘지에서 일하는 흑마법사들의 보상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흑마법사는 그냥 근거 있... 없는 소문과 편견에 시달리는 마법사였지 결코 호구가 아니었다.
보수가 좋지 않다면 어느 흑마법사들이 이런 일을 맡겠는가.
그러나 이한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보수가 늘어나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란 지론을 갖고 있었다.
“아닙니다. 달카드 님. 저희는 그저 도시를 위해 헌신한 건데 그런...”
“헌신한 사람에게 보상이 나오지 않는다면 누가 헌신하겠습니까. 시 위원들에게 강하게 말해서 예산을 추가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자 이한은 다시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저런. 그만 말씀하시고 쉬십시오. 저번 토벌에서 소모한 마력이 회복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한은 비틀거리며 가이난도의 어깨 위에 팔을 올렸다. 가이난도는 얼떨떨해하다가 부축하는 시늉을 했다.
“정말 훌륭한 마법사들입니다.”
다이할의 시선을 느끼며 이한은 공동묘지를 빠져나왔다.
후배의 연기를 차마 방해하진 못하고 가만히 있던 디레트는 가만히 물었다.
“그런데 후배. 저번 토벌이 뭘 말하는 거야?”
“쿨럭쿨럭쿨럭.”
“작작해라.”
“옙.”
* * *
“...그래서 웬 미치광이 견습기사 놈들이 주제 파악도 못하고 그런 존재를 또 잡으러 가자고 하는 겁니다. 아주 미친놈들 아닙니까? 기사단에서는 왜 에인로가드처럼 인성교육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이한은 분노에 차서 견습기사들을 비판했지만 디레트는 안 듣고 있었다.
그 전의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걸 도망을 쳐야지 왜...”
“그것도 흰 호랑이 탑 놈들 때문이라니까요??”
“으, 으응. 그래.”
후배가 너무 억울해보여서 디레트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했다.
‘모르툼 교수님이 알게 되면 꽤 귀찮아질 텐데...’
기록에도 없는 고대의 사악한 존재를 만났다니.
모르툼 교수가 알게 된다면 신나서 온갖 조사를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조사의 준비는 제자가 할 것이고, 조사의 대상은 가장 가까이서 경험한 사람이 될 텐데...
저 후배는 둘 다 해당됐다.
“선배.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으음.”
디레트는 살짝 고민했다.
원래 귀족 가문의 저택에 방문하는 건 불편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후배의 부탁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좋아. 후배가 그렇게 말하는데 거절할 순 없지. 그런데 후배.”
“네?”
“저 분은 교수님 아니시니?”
저택 정문 앞에 앉아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는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아주 살짝 미안해졌다.
* * *
“워, 워다나즈는 식사 안 해?”
“이한은 원래 공부하는 걸 식사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거든.”
이미르그의 질문에 가이난도가 아는 척을 했다.
물론 이한이 옆에 있었다면 뒤통수 한 대 맞을 소리였다.
“...후배들. 대체 비블레 교수님이 왜 여기 계시는 거지?”
“어. 그냥 찾아오시던데요?”
“그냥 찾아오셨다고?”
“네.”
“그렇게까지 멋대로 행동하시는 분은... 맞긴 하지.”
디레트는 의문을 품기도 전에 바로 납득해버렸다.
버두스 교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쉴 시간은 좀 줘야 하지 않나 싶은데.”
디레트는 딸기 마들렌을 내려놓고 말했다.
방금까지 언데드 키메라를 잡느라 고생했던 학생인데 쉴 틈도 주지 않고 데려가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 아무리 오래 기다리셨어도 그렇지. 고작해야 몇 시간일 거 아니야.”
“어. 아뇨?”
“아니라고?”
“어제 밤부터 오셔서 기다리셨어요.”
지금 시간이 저녁이니 거의 하루 가까이 기다린 셈이었다.
“어제 밤부터 오셨는데... 잠깐. 잠깐만.”
어제 밤에 방문한 것도 이상하긴 했지만, 그건 교수와 제자가 친해서 그런 걸 수도 있긴 했다.
“어제 밤부터 오셨는데 너희는 왜 공동묘지에 온 건데?”
“이한이 아침에 도망치자고 해서...”
“......”
디레트는 할 말을 잃고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건 자업자득인가?
* * *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이한은 가식적인 표정과 함께 사과했다.
일단 상대는 교수였으니까.
그러나 버두스 교수는 역시 예상대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 아냐. 작업이나 하자고. 참. 투구는 바꿔놨어.”
“앗. 감사합니다!”
이한은 버두스 교수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팔 수 있다!’
“이 정도면 가격이 얼마나 나갈까요?”
“가격?”
“네.”
“저런 걸 누가 사? 위험한 아티팩트잖아.”
“...어... 이제 고쳤으니까, 사용자가 조심하면 안전한 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 근데 조심 안 하면 위험하잖아. 그런 건 안 사지.”
“......”
이한은 투구를 노려보았다. 지혜의 투구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 안의 지혜를 한 번 꺼내보는 것도...
“닥쳐라.”
이한은 투구에게서 관심을 껐다. 돈이 안 된다는 걸 안 이상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교수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제가 아티팩트를 만들어서 팔 수 있을까요?”
“무리겠지?”
버두스 교수는 즉시 대답했다.
아티팩트는 하나하나가 비싼 물건이다 보니, 그 아티팩트를 만든 사람의 경력도 상당히 중요했다.
신인 아티팩트 제작사의 경우 꾸준히 다른 아티팩트 제작에 보조로 참가해서 경력을 쌓고, 인맥을 늘려간 다음, 기회를 잡아서 자신만의 아티팩트를 선보여야 제국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군.’
어느 업계든 신인에게는 다 가혹한 법. 십 년 이상은 가볍게 걸린다는 말에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이러면 어떻습니까? 싸게 만들어서 싸게 파는 겁니다.”
에인로가드만 해도 불완전한 실패작 아티팩트들이 굴러다녔다.
선배들이 만들다가 실패하고 던져버린 잔해들이었다.
이런 아티팩트들은 당연히 제값주고 파는 순간 제국 현상금이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당장 모험가들만 해도 비교적 싼값에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다면 불완전한 실패작이라 하더라도 솔깃해 하리라.
“뭐? 마력 낭비지.”
버두스 교수는 이한의 사업 계획에 부정적이었다.
마법사의 마력은 한정적인 자원이었다.
한 줌의 마력도 아껴서 걸작을 만들어야지 그런 곳에 왜 낭비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당장 돈으로만 따져도 걸작 하나를 파는 게 싸게 만든 쓰레기들 수십 개 파는 것보다 나았다.
“과연. 마력 낭비 말고 다른 문제는 없다 이거죠?”
그러나 이한은 버두스 교수의 말을 알아서 걸러들었다.
마력 낭비 좀 하면 어떤가.
그리고 가성비가 좀 안 좋으면 어떤가.
‘십 년 일해서 경력 쌓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미리 미리 버는 게 훨씬 낫다. 그리고 어차피 연습하다보면 나오는 게 실패작들인데.’
이한은 빠르게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렸다.
최대한 쓸만한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들을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판매하려면...
“자. 시작하자!”
버두스 교수는 이한의 꿍꿍이도 모르고 장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끌과 정, 망치, 대패와 톱, 극염 마법이 걸려 있는 용접용 소형 완드, 용도별 렌즈들이 달린 안경 등등.
“교수님. 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앗. 뭔데? 뭔데??”
버두스 교수는 이한이 의욕을 보이자 신이 나서 되물었다.
“물 생성 아티팩트나 암흑 시야 아티팩트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뭐? 그런 쓰레기들을 왜 만들어? 시간 낭비에 마력 낭비에 재료 낭비야!”
물론 신이 났다고 해서 이한의 말을 잘 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아티팩트에 관해서 버두스 교수는 매우 냉정했다.
물 생성 아티팩트나 암흑 시야 아티팩트는 별로 어렵지도 않은,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어느 마법사나 만들 수 있는 재미없는 아티팩트였다.
그런 재료 낭비를 버두스 교수가 선호할 리 없었다.
“교수님. 제가 요즘 마법을 공부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
“제가 마력이 워낙 많다보니, 낭비를 좀 해줘야 손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
“예. 그렇다고 다른 마법으로 하자니, 다른 마법을 쓰다가 부여 마법을 붙잡으면 바로 적응이 안 되더군요. 같은 부여 마법으로 연습해야 손이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 재능이 없어?”
“크흑. 그러게 말입니다.”
이한은 가짜로 슬퍼하며 대답했다. 버두스 교수는 제자의 재능 없음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어떡해. 그래서 부여 마법 잘 할 수 있겠어?”
“앗. 그럼 그만두는 게 좋을까요?”
“그건 안 되고.”
‘젠장.’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는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알겠어. 그렇다면야. 재미없고 보람 없고 시간 낭비인 아티팩트지만...”
버두스 교수는 투덜대며 주머니에서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푸른 보석, 아쿠아마린을 꺼내서 정령고래 가죽 위에 올리는 모습에 이한은 멈칫했다.
이한이 아직 모든 재료에 통달하지는 못했어도 저 두 재료가 더럽게 비싼 재료란 건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잠깐. 교수님.”
“왜?”
“아쿠아마린과 정령고래 가죽을 씁니까?”
“응.”
“어... 물 생성 아티팩트에 그게 필수적입니까?”
“필수지?”
이한은 버두스 교수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러니까 그게 없으면 아예 물 생성 마법이 작동을 안 합니까?”
“그건 아니지. 근데 효율이 쓰레기겠지. 안 그래도 쓰레기 같은 아티팩트인데 효율까지 쓰레기 같으면 진짜 의미가 없잖아.”
“하지만 연습에 이런 재료를 쓰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그리고 본전도 못 건지고.’
최적화된 제작법을 얻으려고 하는 이한이 아쿠아마린이나 정령고래 가죽으로 된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빼면 효율이 너무 쓰레기가 되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이만한 가죽 물통이라고 치면, 일주일은 걸려야 다 찰 거야.”
“!”
확실히 버두스 교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일주일은... 너무 느리다.’
허리춤에 찰 만한 가죽 물통이 다 차는데 일주일이나 걸리다니.
이한은 새삼 마법사의 마법이란 게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적 같은 힘이라는 걸 느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마력을 많이 불어넣는다거나.”
“그래도 되긴 하는데... 아티팩트 수명이 짧아져.”
안 그래도 싸구려 재료로 만드는데 마력까지 과투입하면 아티팩트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마력 낭비였다.
“괜찮습니다! 어쨌든 효율은 좋아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버두스 교수는 의욕적인 제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저걸 왜 좋아하지?
‘쓰레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나?’
* * *
사슴 가죽, 코야크 실, 구리 반지.
물 생성 아티팩트, 휴대용 가죽 물통에 들어간 재료였다.
이한은 스스로의 실력이나 재능에 크게 감탄하거나 자부심을 가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 가죽 물통을 만들었을 때는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해냈다!’
그리 비싸지 않은 재료로 어떻게든 물이 나오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옆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버두스 교수는 하품을 하더니 물었다.
“다 했어?”
“예.”
“손 풀렸지? 자. 그럼.”
버두스 교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계도를 테이블에 펼쳤다.
어찌나 설계도가 길고 복잡했는지 기다란 사각 테이블 위가 꽉 찼다.
“...이게 뭡니까?”
“공중 비행 범선.”
이한이 백 년 쯤은 해야 엄두를 낼 것 같은 난이도의 프로젝트를 당당하게 꺼내는 버두스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다시 한 번 꾀병을 부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