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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28화 (328/687)

328화

‘잠깐. 이거 몇 년 된 프로젝트지?’

이한은 군데군데 적힌 날짜나 낡은 흔적을 보고 의아해져서 물었다.

“이거 몇 년 동안 작업하신 겁니까?”

“어... 20...”

“!!”

20년이라니.

이한은 경악했다.

버두스 교수가 미친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20년 동안 프로젝트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니.

“...30... 40...? 40년은 아니었던 거 같고... 기억 안 나.”

“......”

심지어 더 올라가는 숫자.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계신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해.”

“혹시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진척이 확실하게 있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너무 복잡하거나 정교해서 그렇지 완성만 가능하다면 시간을 쏟아 붓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냐. 막힌 부분도 많아서 지금 상태로는 무리야.”

“그렇습니까.”

황당하긴 했지만 조금 존경스럽기도 했다.

진척도 없고 막힌 부분도 많은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다니.

미친놈은 미친놈이었지만 그래도 학구적인 미친놈은 조금 존경스럽기 마련이었다.

“실제 제작까지 안 가더라도 이 정도면 비용이 꽤 드셨을 텐데. 사비를 많이 쓰셨을 것 같습니다.”

“어? 어... 그랬나? 잘 몰라. 내 돈도 꽤 들어가긴 했을 거 같은데.”

“???”

버두스 교수의 말에 이한은 다시 당황했다.

물론 버두스 교수의 성격을 봤을 때 금화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건 뻔히 보였다.

그렇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산 관리가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어디선가 돈을 구해오지 않으면 진행 자체가 되지 않을 텐데?

“교수님께서 잘 모르시면 돈은 어디서 난 겁니까?”

“고나달테스한테 투자 받고, 그... 그. 이름 까먹었는데 십몇년 전에 공작 한 명한테서 투자 받고, 어... 그... 하여간 또 누구한테서 투자 받았는데. 잊어버렸네.”

“......”

이한은 버두스 교수의 목숨이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암살자 찾아와도 안 이상하겠는데.’

저렇게 투자 받고 십 년 넘게 먹튀를 하고 있다니. 만약 이한이 투자자였다면 진지하게 찾아가서 결투 신청부터 했을 것이다.

“재미없는 건 그만 물어보고! 널 부른 건 이 재미있는 계획에 참가시켜주기 위해서야.”

“와...”

“신나지?”

“아. 예.”

버두스 교수는 ‘와!’와 ‘와...’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교수님. 저는 여기서 따라갈 수 있는 게... 음...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정도밖에 없습니다만.”

이한은 전방 돛과 돛대. 선수와 망대를 가리켰다.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마법들로 가득 새겨져 있었지만 대충 구조로 봤을 때 바람을 끌어 모으고 증폭시키는 원리라는 것 정도는 짐작이 됐다.

사실 1학년이 한눈에 봐서 이 정도나 파악했으면 대단한 게 맞았다. 해골 교장도 인정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버두스 교수는 냉정했다.

“그야 멍청해서 그래.”

“아. 예.”

“그건 나중에 공부해서 따라오고, 지금 중요한 건 여기 선체야. 선체 밑이 핵심이거든. 보여?”

선체 바닥의 중앙을 지탱하는 커다란 용골에는 수많은 마법진들이 새겨져있었다.

어찌나 복잡하고 그 숫자가 많은지 이한은 보는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아무 마법진 하나를 짚어도 따로 작동하는 게 없었다. 모든 마법진들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연결되어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은 등골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집요함.

천재가 자신의 수많은 세월을 쏟아서 만든 광기 어린 결과물이 눈앞에 있었다.

이한은 해골 교장의 고유세계를 봤을 때와 비슷한 경외감을 느꼈다.

‘저게... 사람의 지혜로 가능한 마법진인가?’

“보입니다.”

“이게 이제 범선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 중력을 역전시키고 바람을 모으고 양력도 만들고 선체의 내구도도 강화시켜야 하거든.”

“......”

이한이 부여 마법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았지만, 버두스 교수가 욕심 더럽게 많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저 중 기능 몇 개는 포기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 그냥 마법사를 고용해서 배에 올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이걸 왜 해? 바보야?”

버두스 교수는 이한의 상식적인 지적에 툴툴댔다.

“아. 예. 그래서요?”

“여기 외곽 마법진들이 이제 마법진에 필요한 마력을 모으고 유지하고 증폭하는 역할인데 아무래도 부족하단 말이지.”

“그러시겠죠.”

저 기능들을 다 유지하려면 마법진이 아니라 그냥 마법사들이 상시 거주하면서 버텨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도가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든 생각인데, 여기 외곽 마법진에 배치시킨 마석들 있지?”

“예.”

마법진이 자연에서 마력을 다 끌어 모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걸로 마력을 다 충당하기는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이제 마력이 응축된 마석 계열의 보석류를 보조배터리 삼아서 사용하곤 했다.

물론 이것도 그냥 사용하거나 배치하는 게 아니었다.

다 마법진에 걸맞게 가공하고 부여 마법을 걸어줘야 배터리처럼 쓸 수 있었다.

버두스 교수가 가리킨 외곽마법진에는 마석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누가 만들지는 몰라도 저걸 만들게 된다면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기 마석들을 다 마력 과포화 상태로 만들어서 배치하는 거야.”

“그러면 필요한 마력이 충당됩니까?”

“나야 모르지. 과포화 상태로 만들었을 때 얼마만큼의 효과가 나오는지는 실험해봐야 알아. 계산으로 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과연...”

듣던 이한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 마력 과포화 상태로 만드는 건 누가 합니까?”

“네가 해야지?”

“...저 말고는요?”

“어? 없는데?”

버두스 교수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한처럼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가지고 부여 마법을 시전할 때마다 과충전할 수 있는 마법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아하.”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죽여야 하는 거 아닌가?’

*         *         *

다행히 버두스 교수는 지금 바로 범선에 필요한 모든 외곽마법진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는 만들지도 모른다는 게 소름끼치는 점이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버두스 교수의 목표는 확인이었다.

저런 방식으로 했을 때 마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

“양탄자. 이 양탄자에 간이로 마법진을 새겨놨어. 여기에 들어갈 마석만 준비하면 돼.”

“교수님?”

“응?”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해주시죠.”

“응.”

저녁도 못 먹고 심야 작업을 하는 이한의 목소리에는 살짝 독기가 올라 있었다.

지금 독 원소 마법을 시전하면 꽤나 강한 맹독이 나올 것 같았다.

방금 이한이 버두스 교수에게 배운 마법은 <비블레의 마력 발산 부여>.

마석에 시전할 경우 안에 담긴 마력을 천천히 발산하는 성질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 마법은 3서클 마법이었다.

‘그냥 잘 안 된다고 버텼어야 했나.’

이한은 별 생각 없이 지팡이 몇 번 휘두르고 ‘이렇게 하는 건가요?’ ‘이렇게요?’ ‘아, 이렇게군요’하고 끝내버린 과거의 자신을 후회했다.

마석 수십 개를 하나하나 마법진에 박아 넣고 마령묵으로 선을 그으며 연결시키다보니 마력은 멀쩡해도 정신력이 닳아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두스 교수는 옆에서 흥얼거리며 양탄자의 마법진을 조작했다.

“옛날 동화에 왜 양탄자를 타고 다니는 마법사가 많은지 알아?”

“아뇨.”

“보통 이런 걸 타고 다니는 마법사들은 자기가 마법을 쓰기보다는 소환된 존재와 계약해서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안 그러면 소모가 심하거든.”

“예.”

“그런데 예전에는 마법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서 이런 식으로 양탄자를 타고 다니는 게 있어보였나봐.”

“예.”

“재밌지?”

“후후.”

이한이 세 가지 대답을 기계적으로 돌리는 사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디레트가 걱정스러워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후배는 안 자?”

“괜찮아.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지?’

디레트는 순간 버두스 교수가 뭐가 괜찮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후배한테 물었는데 왜 당신이...

‘아차. 내가 미친 사람한테 무슨 소리를.’

디레트는 정신을 차렸다.

에인로가드에서 몇 년을 보냈는데 교수 상대로 정공법을 선택하다니.

“후배!”

“??”

“괜찮아?! 부상이 악화된 거 아니야?!”

“...!”

디레트는 눈빛으로 뜻을 전달했다.

그 모습에 이한은 놀랐다.

그리고 감탄했다.

‘저게 선배의 관록이구나...!’

“커, 커헉. 갑자기 마력이 뒤틀리는 것 같은...”

“그러게 내가 아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언데드 키메라한테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

“죄, 죄송합니다. 부여 마법이 너무 재밌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까 언데드 키메라가 찌른 가시에 당해서 중독까지 됐는데.”

“쿨럭. 쿨럭.”

“조금만 더 참고 하면 안 돼?”

버두스 교수가 아쉬워하며 물었지만 두 학생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휴식을 취해야겠다. 후배. 빨리 가서 누워.”

“감, 감사합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내일 몇 시에 깨워도 돼?”

두 학생은 다시 못 들은 척 방을 빠져나갔다.

*         *         *

이른 아침.

이한은 일어나자마자 주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버두스 교수가 침실까지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진 않았다.

“도련님.”

“쉿. 혹시 근처에 버두스 교수 있나?”

“예? 안 계십니다만...”

“그렇군. 고맙다.”

“그런데 손님이 오셨습니다.”

“......”

바로 창문 넘어서 저택을 빠져나가려던 이한은 멈칫했다.

“혹시 교수님이신가?”

“아뇨... 친구분이십니다. 프리싱가 교단의 사제분이라고...”

“아하.”

이한은 안도했다.

다행히 미친 교수가 한 명 더 오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모양이었다.

‘저번에 말한 교단 행사인가?’

프리싱가 교단의 행사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한은 갈 생각이었다.

버두스 교수를 피해 도망칠 핑계가 되기도 했고...

‘잠깐.’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니 아티팩트 전문가로서 버두스 교수만한 사람도 드물었다.

만약 버두스 교수를 프리싱가 교단에 데리고 간다면?

‘광기 어린 작업도 피할 수 있을 뿐더러 쓸만한 아티팩트를 구해서 정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수님! 교수님!”

“어!? 왜!?”

자고 있던 버두스 교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         *         *

“약속을 취소하면 안 돼?”

“예. 제 개인으로서의 명예와, 제 가문의 명예, 제 마법사로서의 긍지를 건 약속이었습니다.”

“에이...”

버두스 교수는 투덜거리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말하자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했다.

개인 걸고 가문 걸고 마법사 걸었는데 어떻게 막겠는가.

“교수님께서 도와주시면 일이 빨리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일이 빨리 끝나면...”

“마석을 작업할 수 있겠지!”

“...예.”

이한은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 버두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도와줄게.”

“...????”

티질링 사제는 이한과 버두스 교수의 대화를 듣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렇게...

무거운 약속이었나?

“그런... 약속이었습니까? 안 그랬던 것 같은데요...?”

“티질링 사제. 원래 기억은 좀 달라지기 마련이지. 난 그 때 그런 각오로 약속을 했었던 것 같아.”

“......”

티질링 사제는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요즘 느끼는 거였지만,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겉모습처럼 차갑고 냉철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좀 유들유들한 사람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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