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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35화 (335/687)

335화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한이 제국의 무도회에서 춤으로 명성을 날릴 것도 아니고, 온갖 춤들을 다 꿰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 한 곡씩 출 때 같이 한 번만 추고 다시 돌아와서 앉으면 되는 만큼 기본적인 것만 익히면 충분했다.

뛰어난 춤꾼들은 제국의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원무곡(圓舞曲)의 차이점을 모두 꿰고 있다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속으로 새삼 놀라워하던 이한은 살짝 반성했다.

생각해보니 모든 학파를 듣는 이한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이런 걸 가장 배우기 쉬운 방법은 역시...’

혼자서 배우는 것보다는 이한과 똑같이 춤 잘 못 추는 친구와 같이 배우는 게 편했다.

부탁하기도 좋고 연습하기도 좋았으니까.

‘그리고 쓸데없는 소리 못하도록 미리 준비도 시키고.’

“가이난도가 없다고요?”

“예. 죄송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이난도는 저택에 없었다.

“어떻게...? 아니. 실례되는 질문이었습니다. 하긴 가이난도도 혼자 놀러나갈 수 있으니.”

이한의 말을 들은 집사장은 속으로 ‘다른 친구분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생각했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다.

가이난도는 혼자 놀러 나간 게 맞았으니까.

“마법사 카드 새로 맞췄는데 그걸 시험해보러 나간 모양이군요.”

“역시 워다나즈 가문...”

“그건 가문하고 전혀 상관없는 추측입니다만. 어쨌든 알겠습니다.”

“손님이 왔습니까?”

“!”

저택의 안쪽에서 저번에 뵌 적 있던 가이난도의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신 정령의 광채에 집사장은 고개를 숙였다.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이한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가이난도의 친ㄱ... 친... 아는... 같은 탑... 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학생 맞으시죠?”

“예. 그리고 친구니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상대방이 ‘진짜 친구인가? 아직도 친구인가? 괜히 친구 사이라고 말했다가 아니라고 하면 서로 민망해지니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로?”

“곧 시에서 주최하는 큰 사교 모임이 있는데 가이난도와 같이 연습하려고 찾아왔습니다.”

“......”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놀라워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챙겨주냐는 눈빛이었다.

‘못 본 척 해야지.’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로군요. 미리 알았으면 나가지 못하도록 가둬놨을 텐데.”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니 괜찮습니다.”

집사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연습에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준비하겠습니다.”

그 질문에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눈썹을 찌푸렸다.

자존심 강한 귀족이라면 이런 제안 자체를 기분 나빠할 수도 있었다.

같은 귀족 가문인데 예의범절을 도와준다는 건 얼핏 보면 상대를 무시하고 깔보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으니까.

“무례하군. 워다나즈 가문의 자제분이 그런 것 하나 스스로 하지 못할 리 없지 않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

이한은 머쓱해졌다.

‘도와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런 것 하나 스스로 하지 못하는 녀석이니 도와주시는 게 나을 겁니다.”

“!!”

저택의 안쪽에서 어디서 본 적 있는 귀족이 나타났다.

검푸른 비단으로 만든 예복을 두르고, 귀족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우아한 동작으로 지팡이를 잡고 나오는 차가운 인상의 미남.

그 눈빛에는 사악한 심술이 일렁거렸다.

“해골 ㄱ...! 아니, 교장 선생님!”

“방금 네가 날 편하게 부르려고 한 것 같지만, 친근함의 표시로 넘어가주도록 하지.”

해골 교장은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한은 해골 교장이 매우 피곤해보였다.

‘이상한데.’

해골 교장은 이한이 아는 가장 강력한 마법사 중 하나였다.

그런 마법사 정도 되면 마법 몇 개 썼다고 피곤해지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질문의 이유가 뭐냐?”

“조금 피곤해보이십니다.”

“기분 탓이겠지.”

해골 교장은 인상을 팍팍 쓰며 이한을 노려보았다.

덕분에 방금 한 말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기분 탓이라면서.’

이한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고민했다.

“구울의 왕 때문에 일이 늘어나신 겁니까? 그런데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 모험가 길드가 제대로 조사를 안 해서...”

“잠깐. 구울의 왕이라니.”

해골 교장이 이한의 말을 끊었다.

예지 마법으로 발달된 육감이 불길함을 경고하고 있었다.

들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새벽까지 황제한테 시달리고 왔는데 설마...’

해골 교장은 방학하고 나서 오늘 새벽까지 제국 황궁에서 황제와 단독으로 대면했었다.

말이 단독으로 대면이었지 힐난과 비판에 가까웠다.

-오수... 나는 자네의 방침을 존중하네. 하지만 너무 심한 부분도 분명히 있군. 저번에 에인로가드를 졸업한 마법사가 또 사고를 쳤다고 들었는데...

-마법사들이 기본적으로 미친놈들이라서 그런 거지 에인로가드가 특별히 이상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에인로가드의 비율이 높은 건 에인로가드에 능력 있는 마법사들이 많은 만큼 사건사고도 따라서 늘어나는 겁...

-변명은 거기까지만 하도록. 그걸 들으려고 부른 게 아니니. 이번에 워다나즈 가문에서 뛰어난 학생이 들어왔다고?

-예.

-자네가 그렇게 순순히 동의하는 거 보니 정말 뛰어난 학생인가보군. 하긴 워다나즈 가문이지.

-제가 책임지고 잘 가르치겠습니다.

-말 돌리려고 하지 말게. 그 학생이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선 가혹한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신입생이 모든 학파의 마법을 배우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전례가 없었던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꼬마는 트롤 혼혈이었잖나. 그 때도 자네를 파면시켜야 한다고 말이 많이 올라왔었네. 이번에는 워다나즈 가문이라 그런 말은 없지만.

-그것만 봐도 관료들이 얼마나 보는 눈이 없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 트롤 혼혈이 잘 버티겠습니까, 순수 인간이 잘 버티겠습니까?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는 비범함을 기대할 수밖에 없겠지... 말 그만 돌리도록.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 가지밖에 없네. 그 학생을 잘 가르치게.

-예.

-오수. 내가 말한 잘 가르치라는 건 마법만을 말하는 게 아닐세. 비뚤어지지 않게 잘 잡아주란 소릴세.

황제의 말도 완전히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위험한 존재였다.

그리고 뛰어난 마법사는 더욱 위험한 존재였고, 뛰어난데다가 비뚤어지기까지 한 마법사는 지극히 위험한 존재였다.

에인로가드에서 내보내는 마법사들의 실력을 봤을 때 황제가 저렇게 정색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해골 교장은 여전히 억울했다.

마법사들이 마법 배워가지고 사고를 치는 게 왜 해골 교장의 탓이란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몇 시간이고 따지고 싶었지만 해골 교장은 참았다.

제국의 대소사를 관장하느라 피곤한 황제에게 그런 식으로 말해봤자 자기만 불리해질 테니까.

그리고 해골 교장은 황제한테 약점을 잡힌 게 너무 많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네가 나중에 교묘한 말장난을 부릴까봐 미리 말하는 거네만... 잘 잡아준다의 예시는 이런 걸 뜻하네. 록 드레이크와 싸울 일이 있으면 피하게 해주거나, 이미 강의를 열 개 듣고 있으면 열 한 개째는 좀 말리거나, 외부에서 침입자가 발생했을 때 신입생이 싸우는 일은 피하게 하거나, 서리거인의 왕이 소환됐을 때 마찬가지로 신입생이 해결하는 일은...

-...맹세코 말하지만 저 일들 중 제가 고의로 밀어붙인 일은 없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폐하는 믿지 않으시겠지요?

-그렇다네. 날 너무 원망하지 말게, 오수... 모두 다 자네가 날 너무 많이 속여서니까.

-......

자업자득이었기에 해골 교장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매번 일을 저지른 다음 ‘제가 한 일 아닙니다’하고 발뺌을 해온 업보가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한과 관련된 일들은 정말 해골 교장이 강제로 등을 떠민 게 아니었다.

대부분 다 스스로 나선 거였다!

-앞으로는 신입생이 너무 가혹한 시련들을 겪지 않도록 좀 주의하겠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니 만족스럽군... 믿네. 오수. 이래놓고서 3일 지나면 또 자네 뜻대로 가혹하게 의발(衣鉢)을 전수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지만...

-아닙니다. 폐하.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러겠습니까.

-자네한테서 도망친 제자들만 모아도 마탑 하나는 꾸릴 수 있을 텐데. 어쨌든... 믿도록 하지.

근거 없는 풍문과 소문만 듣고 선량한 대마법사를 모욕하는 무도한 황제의 폭언을 견뎌내고 돌아왔는데, 이 모든 원인인 녀석이 불길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맞춰보도록 하지. 구울의 왕이라니... 혹시 공동묘지에서 언데드라도 일어났나? 슬슬 그럴 때가 되긴 했지. 할 일 없는 호사가들이야 거창한 별명을 붙이니까.”

“앗.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런데 그건 구울의 왕이 아니라 언데드 키메라였습니다. 디레트 선배와 같이 추적해서 잡았습니다.”

“......”

해골 교장은 존재하지 않는 육체에서 환상두통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자리를 비운 게 한 달 조금 넘었는데 그 사이 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난 건지 물어보기도 무서웠다.

“...그러면 혹시 귀족 놈들이 사고를 쳤나? 그 놈들이야 뭐가 위험한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사들여서 장난을 치는 놈들이니.”

“어. 들으셨습니까? 그런데 그건 바실리스크였습니다.”

“...너는 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

결국 해골 교장은 폭발했다.

“다른 푸른 용의 탑 놈들은 방학이 되면 가문의 재산이나 뜯어내서 방탕하게 놀아대는데 너는 대체 왜 이러는 거냐! 리치도 아닌 놈이 목숨이 여러 개인 것마냥!”

“......”

“......”

이한뿐만 아니라 가이난도 저택에 있던 다른 사람들 모두 황당해했다.

“제 친구들도 다 방학에 일하고 있습...”

“네가 영향을 끼쳤겠지!”

“그건 아닌... 그런가?”

이한이 납득하자 해골 교장은 더욱 심술이 났다.

가이난도의 어머니가 이한을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

“고나달테스 공.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학생은 허명을 위해 능력에도 맞지 않는 위험한 짓을 저지르는 정신병자들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이번에 홍련숲 토벌대 인원이 불운한 사고로 텔레포트 된 일이 있었는데, 이한 학생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매우 감사해했습니다.”

“......”

원래라면 학생의 활약에 기뻐해야 할 위치였지만 해골 교장은 기뻐하는 대신 더욱 한숨을 크게 쉬었다.

가장 두려운 건 아직도 이한이 저지른 업적들이 남아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었다.

몇 번 한숨을 더 쉬고 나서 해골 교장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나마 알리바이가 있어서 다행이군.’

나중에 황제가 묻는다 하더라도 그 시간에 그랑덴 시에 없었다는 변명은 가능했다.

그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됐다... 말린다고 말려질 놈이라면 그 정도 그릇도 아니었겠지. 춤이나 배우도록. 크라하 님. 이 녀석은 사교 강의를 듣지 않았으니 가르쳐주시면 좋을 겁니다.”

“설마?”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듯이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해골 교장은 무슨 오해를 하는지 즉시 알아차렸다.

“아니... 크라하 님! 제가 듣지 못하게 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안 들었다는 겁니까?”

“그런 거지요!”

“예... 알겠습니다...”

“성물함 부서지겠군...! 네가 대신 말해라!”

해골 교장은 두통을 참으며 이한을 불렀다.

“예? 뭘 말입니까?”

“춤을 안 들은 건 네 선택이었잖느냐!”

“예. 제 선택이었습니다만.”

“보십시...!”

말하려던 해골 교장은 가이난도의 어머니가 보내는 경악의 눈빛을 보고 멈칫했다.

그 순간 해골 교장은 어떤 식으로 말해도 오해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춤이나 가르쳐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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