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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36화 (336/687)

336화

이한은 살짝 미안해졌다.

사실 학교에서 춤 강의를 듣지 않은 건 이한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해골 교장이 대신 괜한 오해를 사다니.

“죄송합니다.”

“됐다.”

“평소에 하신 일들 때문에 오해를 사신 것 같습니다.”

“너는 죄송하다고 해놓고 그런 소리를 하면 그게 죄송하게 들릴 것 같으냐?”

해골 교장은 어이가 없었다.

누가 가르쳤는지 사과로 사람의 복장을 뒤집어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내가 대귀족들 만나는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해골 교장은 피곤한 표정으로 제국 금화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한은 무심코 금화를 챙기려고 했다. 해골 교장은 바로 금화를 회수하고는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금 내 금화를 가져가려고 한 거냐?”

“저 주려고 꺼내신 줄 알았습니다.”

“...지금 널 보니 폐하께서 하신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후원을 받으러 왔다.”

마법사는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는 족속들이었다.

시약 하나 개발해보겠다고 귀중한 보석들을 불태우고 희귀한 소재들을 갈아넣는데 절약이 될 리 없었다.

그래놓고서 ‘구해주신 다이아몬드 한 상자를 다 썼는데 성과가 없네요 좀 더 좋은 다이아몬드로 다시 구해주시면 안 됩니까’같은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여서 후원자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게 마법사들!

그리고 그런 마법사들 중에서도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이들만 모아 놓은 곳이 에인로가드인 만큼, 낭비도 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심했다.

황제가 제국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인로가드의 지원을 해줘도(제국 재무관들은 에인로가드의 이름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어댔다) 예산은 언제나 빠듯했다.

그런 만큼 해골 교장의 업무 중 하나는 추가 후원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과연.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한은 깊게 공감했다.

교수의 일은 자신의 마법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것만 있지 않았다.

예산을 따오는 것도 교수의 능력 중 하나였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해골 교장은 대단한 사람이 맞았다.

‘잠깐. 협박해서 뜯어내시는 건 아니겠지?’

“왜 그렇게 쳐다보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 저희 가문에는 언제 방문하실 겁니까?”

“워다나즈 가문에?”

해골 교장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워다나즈 가문에는 방문할 이유가 없지. 자기 실험도 바쁜 마법사가 다른 마법사에게 실험하라고 금화를 내주겠나.”

마법사들은 절대 다른 마법사에게 금화를 내주지 않았다.

자기가 쓰면 모를까, 다른 마법사한테 양보하는 건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 그렇습니까. 크라하 님께서는 후원을 받으셨습니까?”

“아직. 남의 금화를 받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 더 방문해서 설득 드려야겠지.”

해골 교장의 표정은 진지했다.

저번에 고유세계라는 대마법을 쓸 때보다 훨씬 더 진지한 표정이었다.

사실 예산을 따오는 건 마법보다 훨씬 더 어려운 영역이기도 했다.

“설득이 힘드신 모양입니다.”

“당연히 그렇지. 크라하 님이 호락호락한 사람은 결코 아니니.”

“가이난도 이야기는 이미 하셨을 테고... 후원 받을 만한 다른 핑계는 없습니까? 2학기 때 일정 같은.”

이한은 슬쩍 캐물었다.

미리 안다면 대비하기 쉬운 법.

그러나 해골 교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있어도 너한테 알려주진 않을 거다. 그리고 자기 자식이 징벌방 끌려간 이야기를 하라는 거냐?”

해골 교장은 수상쩍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저번 학기 때 쌓인 원한을 이렇게라도 갚으려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있잖습니까. 크라하 님. 가이난도가 흑마법에 재능 있는 거 아셨습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마법사 카드가 아니라?”

“마법사 카드는 별로 재능 없지만 흑마법에는 뛰어납니다. 저랑 같이 듣는데 손에 꼽힐 정도니까요.”

‘애초에 듣는 신입생이 손에 꼽히잖나.’

해골 교장은 어이없었지만 끼어들지는 않았다.

“고나달테스 공. 이런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크라하 님. 학생들의 비밀을 제가 유출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

이번에는 이한이 해골 교장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징벌방 보낸 이야기 안 하시려고 개수작을...’

“후원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침 새 시체들이 필요했는데.”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관대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 교장은 아까와는 달라진 얼굴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교장 선생님. 제가 제 자랑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학년 수석입니다.”

“그래. 학년 수석아. 자랑스럽구나. 그런데 내가 방문할 다른 가문이 있는데.”

“이만 춤 배우러 가보겠습니다.”

이한은 못 들은 척 발걸음을 돌렸다.

*         *         *

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노련한 춤꾼이었고 이한은 이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동작들을 목숨 걸고 해내 적이 있었다.

사실 가이난도의 어머니가 친절하게 가르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빨리 배웠을지도 몰랐다.

‘박자 실수했을 때 공격이 날아오지 않으니 어색하군.’

이한이 무슨 흉흉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친절하게 강조했다.

“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박자입니다. 박자만 느낄 줄 알면 나머지 동작들은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 둘, 셋. 다시 한 번 하나, 둘, 셋.”

이한의 동작을 본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재능 있는 제자에게 만족한 스승의 얼굴로 흡족해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면 훌륭한 성과였다.

“이 정도 재능이라면 썩히기 아쉬운데... 2학기 때는 들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사실 다른 강의를 많이 듣고 있어서 말입니다.”

이한은 재빨리 핑계를 댔다.

그 볼라디 교수도 ‘제가 사실 모든 마법을 듣고 있습니다’란 핑계는 인정해 줄 정도였으니, 이 핑계가 가진 힘을 알 수 있었다.

“그렇습니까? 아쉽게 됐습니다.”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굳이 더 권하지 않았다.

학년 수석 정도면 어지간해서는 자기가 알아서 잘 할 테니까.

‘후원금을 전달할 때 고나달테스 공한테 한 마디 정도만 더 해야지.’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그래도 해골 교장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골 교장 때문에 못 듣는 걸 수도 있었으니.

“참. 무도회에서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까?”

이한은 조언을 얻기 위해 물었다.

다른 친구들도 아직 어린 만큼 사교 모임에 참석한 경험이 부족했지만 이한은 그 중에서도 더 심했다.

사실 애초에 사교 모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만큼 가이난도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 해주는 조언은 귀중했다.

“우선 황족들하고는 엮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어...”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가이난도랑 놀지 말라는 소리신가?’

“가이난도와 놀아주는 건 고맙지만 모임에 참석하는 황족들이 질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래저래 피곤하게 구는 이들이죠.”

속마음을 읽었는지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친절하게 조언해줬다.

황족들이란 기본적으로 자기 업적을 쌓고 명성을 올려서 제국 사교계에 ‘제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니 후계자로 절 밀어주십시오’라고 알리는 걸 목적으로 했다.

그런 만큼 마법학교에 새로 들어온 인재들이 모이는 자리에 크게 관심을 가졌다.

야심 있는 학생이라면 황족 중 한 사람과 손을 잡고 편을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면 피하는 게 좋았다.

“예의바르게 춤을 거절하거나 대화를 거절하면 그쪽에서도 이한 군의 뜻을 이해하고 존중해줄 겁니다. 그쪽도 자존심이 매우 강하니 말입니다.”

“???”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그러던데?’

이한이 사양해도 황족들은 계속해서 치근댔다.

아예 대놓고 가이난도 앞에서 ‘워다나즈를 뺏겠다’선언하던데...

‘내가 만난 황족들이 유난히 자존심 없는 이들이었나?’

“그, 그렇군요. 주의하겠습니다. 친해지면 귀찮아지는 사람들 말고, 친해지면 좋은 사람들도 있습니까?”

“그랑덴의 도시귀족들은 친해지면 대체로 나쁠 것 없습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머무르게 될 텐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저번에 언데드 키메라를 쫓을 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신입생이 언데드 키메라를 추격해서 잡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척 넘겼다.

과연 제국 사교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다운 노련함이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알아두면 좋은 사람들은...”

‘오.’

이한은 가이난도의 어머니가 전수해주려는 그랑덴 시 사교계 핵심요약정리를 크게 기대했다.

“보오드 가문의 그리메 같은 경우에는 길드의 재료와 시약을 총괄하고 있어서 마법사가 알아두면 좋을...”

“!”

설명만 들어도 금화가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아. 잠깐. 안되겠습니다.”

“예? 어째서 말입니까? 제가 워다나즈 가문이라?”

이한은 당황했다.

벌써 머릿속으로는 친해진 다음 각종 일거리를 독점적으로 받아 방학 끝날 때까지 친구들과 행복하게 일하는 상상까지 하고 있었는데.

“워다나즈 가문 때문은 아닙니다. 그리메는 정령의 피가 섞여 있어서 이한 군과 가까이 이야기하면 겁을 먹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한은 한 번 더 당황했다.

이게 무슨 소리?

“어... 그... 크라하 님께서는 지금 저하고 대화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한은 질문하면서 가이난도의 어머니가 ‘그러네요’나 ‘하긴 저도 괜찮았으니 그리메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란 대답을 해주길 기대했다.

물론 정령들이 이한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정령 혼혈들까지 좋아하지 않는 건 말이 안 ㄷ...

“저는 정신력이 강한 편입니다만, 그리메는 겁도 많고 정령의 피도 상당히 짙어서...”

“......”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부정해주는 대신 못을 박았다.

이한은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그렇게 위압적입니까?”

“네.”

“......”

“미안합니다. 하지만 돌려서 말해줄 수는 없는 일이라서요.”

가이난도의 어머니는 매우 미안해하며 말했다.

이한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럼 가이난도도 정신력이 강해서 제게 별 위압감을 못 느끼는 겁니까?”

“그냥 정령의 피가 발현되지 않아서 못 느끼는 겁니다.”

“그, 그렇군요.”

*         *         *

그랑덴 시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회관은 원래라면 중대한 일이 있을 때 도시귀족들과 관료들이 모이는 시의 자랑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은 마법학교에 새로 들어온 학생들을 환영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하나둘씩 도착한 학생들이 대저택의 화려한 외관을 보며 놀라워했다.

도착한 이한은 먼저 온 다른 탑 학생들을 보고 간단하게 인사했다. 이한과 안면이 있는 친구들은 같이 인사하거나 시선을 피했다.

“왜 시선을 피하지?”

“오, 오해다. 워다나즈.”

서로 사이에 사소한 오해가 있을 경우 그것도 잊지 않고 풀었다.

“닐리아.”

이한은 다크 엘프 친구의 낯빛이 좋지 않은 걸 보고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무도회에 참가하기 싫은 거군. 이해한다. 나도 별로 참가하고 싶지 않거든.”

“그거 때문 아닌데.”

“아니라고? 그러면 왜?”

“메이킨 저택에서 일등해서...”

“?”

닐리아는 한숨을 푹 쉬며 종이를 꺼냈다.

북부에는 할 일 없는 사냥꾼들이 많은데 이들을 남부 해안가로 보내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니까 몬스터 대처도 잘 될듯... 몬스터가 잘 잡히면 사람들도 행복해지고 정치적 불안정도 줄어들고... 죄송합니다...

“내가 이걸 왜 제출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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