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39화 (339/687)

339화

“앗. 고나달테스 님.”

“여기 보십시오! 여기 이 워다나즈 님께서 <오고닌의 박무>를 익히기 직전입니다! 고작 1학년밖에 안 됐는데요!”

“......”

해골 교장은 해맑게 말하는 환상 마법사들의 낯짝에 저주를 날리지 않도록 인내심을 최대한 끌어 모았다.

“그거 참 아주 놀라운 일이군.”

“그렇죠? 동의하실 줄 알았습니다!”

“에인로가드를 책임지고 계시는 만큼 당연히 기뻐하시겠지! 하하하!”

환상 마법사들은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한은 조금 생각이 달랐다.

‘엄청나게 열받으신 것 같은데.’

인간 형태로 있는 해골 교장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싸늘한 수준을 넘어서서 당장이라도 환상 마법사들을 공격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환상 마법사들은 고작 1학년밖에 안 된 이한이 <오고닌의 박무>를 익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너무 기쁜 나머지 해골 교장의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나달테스 님께서도 몇 마디 조언을 해주시면 어떻습니까?”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군!”

저 순수한 대화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환상 마법사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에 능숙하다는 건 헛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만...”

“그게 무엇이십니까?”

“내가 자네들에게 부탁한 게 있지 않았나?”

해골 교장은 최대한 친절하고 부드럽게 물었다.

본심이 나왔다가는 마법사들이 모두 도망칠 수도 있었으니까.

“그게 뭐였지?”

“<오고닌의 박무>를 완전하게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였나?”

환상 마법사들이 웅성거리자 해골 교장의 분노는 더욱 더 깊어졌다.

“무도회장에...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아. 맞습니다. 기억났습니다. 고나달테스 님.”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해달란 거였지요?”

“깜짝... 놀라게가 아니라... 모두 겁에 질려서 도망치게...”

“예? 왜 겁에 질려서 도망치게 만들어야 하나요?”

해골 교장은 이 환상 마법사들을 괜히 불렀다고 후회했다.

그랑덴 시에서 제법 괜찮은 놈들을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눈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이야.

“...됐다. 다들 준비하도록.”

“아. 잠시만요. 고나달테스 님.”

“뭐지?”

“여기 워다나즈 님이 <오고닌의 박무>를 익히는 걸 마저 보고 준비하고 싶습니다.”

“......”

해골 교장은 여기가 에인로가드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그랬다면 저 마법사들을 모두 거꾸로 징벌방에 처박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여기는 그랑덴 시였고 환상 마법사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 제국 수도로 고발과 투서(投書)들이 날아들 것이다.

도시에서 쌓은 에인로가드의 명성은 난폭함과 두려움으로 먹칠될 것이고.

참아야 했다.

“지금... 무도회가 중반이 넘었으니 빨리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해골 교장은 정말 최대한 좋게 말했다.

그러나 환상 마법사들은 예상보다 더 눈치가 없었고 더 끈질겼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나달테스 님.”

“거의 다 왔습니다! 이번 기회에 <오고닌의 박무>를 익히지 않으면 얼마나 더 오래 걸릴지 모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음에 다시 연습해도...”

분위기를 파악한 이한이 말리려고 했지만 환상 마법사들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고나달테스 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나달테스 님이라면 이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마음대로 하도록.”

해골 교장은 아주 깊고 어두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깊고 어두운지 복도 바닥을 뚫고 지하 깊숙한 곳의 악령들에게까지 닿을 것 같았다.

“가능한 최대한 빨리.”

“최선을 다해 빨리 해내겠습니다.”

이한은 해골 교장의 심정을 읽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자 환상 마법사들이 옆에서 조언을 던졌다.

“너무 서두르실 것 없습니다.”

“맞소. 마법을 익힐 때 성급함이야말로 위험한 적이지.”

“......”

해골 교장은 죽일 듯이 환상 마법사들을 노려보았다.

*         *         *

이한이 결국 <오고닌의 박무>를 익히고 연회장으로 돌아왔을 때 무도회는 이미 막바지였다.

해골 교장은 이한이 일부러 늦게 익힌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보냈지만 그걸로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솔직히 해골 교장이 봐도 빨리 익힌 편이어서 양심적으로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안 들켰군.’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에는 <오고닌의 박무>를 익혔는데 일부러 마력의 흐름을 꼬아서 실패한 척을 몇 번 했던 것이다.

대충 보니 무도회가 다 끝나갈 시간이라 굳이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가이난도... 혹시 수영이라도 했나?”

이한은 땀으로 목욕을 한 것 같은 가이난도의 모습에 놀랐다.

가이난도는 의자에 앉아서 곧 심장이 멈출 사람처럼 숨을 헐떡였다. 어찌나 숨이 가파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헉, 구두, 허억, 미친 교수, 헉...”

“미친 교수가 주는 구두는 믿지 말란 거군. 이해했어.”

가이난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가이난도가 맨발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 아티팩트에 문제가 생겨서 간신히 부수고 탈출한 것이리라.

‘그러게 신지 말라니까.’

이한이 속으로 안타까워하는 사이 옆에서 도시귀족 몇몇이 지나가면서 가이난도를 보고 감탄했다.

“정말 대단한 춤이었습니다.”

“저 정도 되는 춤꾼은 수도에서도 드물 겁니다. 황자 전하께서 사교계에 얼굴을 내미시면 다들 감탄하겠군요.”

“!”

이한은 놀랐다.

버두스 교수의 저주받은 아티팩트가 이렇게 행운으로 돌아올 줄이야.

가이난도가 어떻게 춤을 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교와 무도회에 이골이 난 도시귀족들까지 감탄시킬 정도로 대단한 춤을 보여준 게 분명했다.

“하지만 황자 전하께서는 커다란 결점이 있잖습니까.”

“아. 하긴... 그 결점을 고치지 않는다면 사교계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할 수 있겠군요.”

“!?”

이한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뭐지? 가이난도가 무슨 사고를 쳤길래?’

가이난도가 조금 칠칠맞긴 해도 애초에 사고를 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올해 대부분을 마법학교에 있었던데다가 그 전에는 사교 모임에 참석할 일도 별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말실수를 했나? 누구를 모욕이라도 한 건가?’

“마법사 카드 게임에서 흑마법 저주로 이기시다니. 정말이지 참...”

“서로 명예를 존중하는 친선 게임에서 그런 추잡한 카드를 꺼내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이한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뭔...?

‘카드 몇 장 좀 냈다고 저렇게 말하는 건 너무하잖아.’

“워다나즈 님.”

이한이 놀라워하는 사이 흰 호랑이 탑 친구 두 명이 말을 걸어왔다.

오늘 환상 마법사들한테 하도 존칭을 많이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힌 상태라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로웨나. 클트란. 반갑군.”

로웨나는 황녀의 추종자 중 한 명인 동부 출신 기사였고 클트란은 격구하다가 발목이 부러져서 이한의 도움을 받은 적 있던 기사였다.

클트란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워다나즈. 무도회 중간부터 어디 있었던 거지? 안 보이던데.”

“시 마법사들을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한은 둘러댔다.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 역시 대단하군.”

클트란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워다나즈가 워낙 명성이 있다 보니 시 마법사들이 알아서 찾아와 훈훈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생각한 것이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물론 클트란이 부러움의 눈빛을 보낼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워다나즈 님. 이건 좀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로웨나가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이한은 저 엘프 친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뭘 말하는 거지?”

“황녀님도 워다나즈 님의 친구신데, 가이난도 님에게만 그런 구두를 주시다니요.”

“......”

로웨나의 말을 들어보니, 가이난도가 무도회를 폭풍처럼 휘저은 덕분에 황녀 아덴아르트는 뛰어난 춤솜씨를 가지고서도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가지지 못한 모양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클트란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가이난도에게 밀렸으면 그냥 춤 실력이 부족한 것 아닌...”

“감히 그런?! 그건 시선을 잡아끄는 화려함만 있는 춤이었습니다! 진짜 춤은 침묵 속에 우아함과 의미를 품고 있어야 하는...”

“아, 아니. 난 춤 잘 몰라.”

클트란은 이한한테 도와달라고 눈빛을 보냈다.

“로웨나. 그 구두는 내가 준 게 아닌데. 버두스 교수님이...”

“교수님께 물어보니 워다나즈 님에게 원래 주려고 했던 걸 거절하고 가이난도 님한테 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틀린 겁니까?”

“...준 건 아니고 가이난도가 알아서 가져간 거지. 그리고 그거 저주받은 아티팩트라니까.”

이한은 버두스 교수가 미친놈이고 그 아티팩트는 저주 받은 아티팩트라는 걸 설명해줬지만, 로웨나는 납득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면 제가 착용을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클트란은 로웨나를 한 번 보고 저 멀리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가이난도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입을 벙긋거리며 이한에게 말을 걸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충성하는지 모르겠어. 다들 미친 거 같아.

-너희 탑 친구잖나.

-...너무 남의 일처럼 그러지 말라고. 워다나즈 너는 네 개 탑의 보모잖아.

“...뭔 개소리야?”

같이 입을 벙긋거리던 이한은 클트란의 어이없는 말에 당황해서 목소리로 내뱉었다.

로웨나는 당황해하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착용하는 건 역시 너무 무례한 소리였습니까?”

“그게 아니라... 그보다 로웨나. 혹시 흰 호랑이 탑 놈들이 날 보모라고 부르나?”

로웨나는 이한의 목소리에서 위협적인 기색을 느끼고 멈칫했다.

“잘... 잘 모르겠... 앗! 황녀 전하! 황녀 전하! 이쪽입니다!”

로웨나는 아덴아르트를 발견하고 급히 불렀다. 이한은 그 모습에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충성심이 약한 것 아닌가?’

자신이 가진 기사로서의 충성심을 의심받고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하고, 로웨나는 황녀를 향해 손짓했다. 아덴아르트는 간식용 접시를 들고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다.

“제가 대신 담아드리겠습니다.”

“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발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굳이? 자기 좋아하는 거 먹게 하지...”

이한이 말하거나 말거나 로웨나는 서둘러 접시를 들고 움직였다.

옆에 있던 클트란은 번개처럼 접시를 챙기더니 자기도 일어섰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분노한 워다나즈를 혼자 상대해야 한다는 걸 기민하게 파악한 것이다. 괜히 기사가 아니었다.

‘음. 어색하군.’

이한은 바닥에 누워있는 가이난도라도 부를까 싶었다.

원래 같은 친구라 하더라도 좀 편한 친구가 있고 그리 대화를 나눈 적 없어서 어색한 친구가 있었다.

황녀는 전형적인 후자였다.

“방학 동안에 잘 지내셨습니까?”

끄덕.

황녀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바실리스크? 밸러 가문? 구울의 왕? 언데드 키메라? 홍련숲 기사들?’

이한은 순간 황녀가 뭘 물을지 예상하다가 스스로 자괴감에 빠졌다.

“...가이난도 전하와 같이 식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너무나도 예상 밖의 말에 이한은 잠시 정지했다.

‘뭐지? 가이난도 파벌이라고 견제하려는 건가?’

만약 그럴 경우 이한은 ‘저는 가이난도 파벌 아닙니다 하하 가이난도하고 마음대로 싸우십시오 저는 신경쓰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덴아르트는 말하는 대신 푸른 눈동자에 미묘한 감정을 담아서 시선을 던졌다.

이한은 그 눈빛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정확히는 과제가 잔뜩 밀렸을 때, 가이난도가 차마 말로는 못하고 애처로운 눈동자로 쳐다보던...

‘아니. 설마.’

이한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나 싶었다. 황녀는 과제를 못해서 도와달라고 할 사람이 아니었다. 가이난도와의 비교는 모욕이었다.

“갖고 왔습니다.”

로웨나는 그릇에 간식을 담아서 돌아왔다.

싱그러운 녹색으로 가득찬 건강한 접시의 모습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어... 황녀님 먹을 건?”

“이 접시입니다만?”

“......”

이한은 황녀가 순간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걸 분명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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