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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42화 (342/687)

342화

‘양심이 없는 놈이다!’

이한은 속으로 격분했다.

공작이라고 최대한 공손히 대해줬는데 저런 짓을 저지르다니.

지금 소환된 맹독 오염체가 노린 적이 누구겠는가.

이한도, 이한의 친구들도 아닌 이칼도렌 공작이었다.

그럼 맹독 오염체를 막았으면 당연히 ‘고맙소 역시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그 의기가 드높구려’하며 사례부터 해야 하지 않은가.

물론 이한이 해골 교장이 한 짓인 줄 알고 나서긴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결과가 중요했다.

그런데 갑자기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며 자리를 뜨려고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사례비를 아끼려는 것이었다.

‘용서할 수 없다.’

가난한 자라면 이해나 가지, 아덴아르트한테는 별 쓸데없는 수수께끼 명목으로 아낌없이 금화를 뿌리는 놈이 자기 목숨 구해준 일에는 금화를 아끼다니.

“제국에 저렇게 뻔뻔하고 파렴치한 귀족은 더 없을 거다. 가증스럽군.”

“...아, 아니. 워다나즈 님. 이칼도렌 공작이 무례하긴 한데... 그...?”

처음에는 이한이 같이 욕해줘서 기뻐했던 로웨나였지만 슬슬 당혹스러워졌다.

이칼도렌 공작이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무례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황녀의 지지자 중 하나였고, 선을 넘지도 않았는데...?

“로웨나. 네가 이칼도렌 공작을 평생의 원수로 생각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군.”

“예? 제, 제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습니다.”

로웨나의 해명은 무시하고 이한은 발걸음을 옮겼다.

공작은 벌써 저 멀리 가버렸지만 공작의 호위 몇 명은 남아서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불타버린 맹독 오염체를 확실하게 제거하고, 주변에 별다른 오염이 없는지 확인하고, 맹독 오염체를 소환한 흔적과 증거를 차분하게 모으는 그 모습에서는 한두번 해본 게 아니라는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걸 보니 이한은 더더욱 확신이 섰다.

‘공작 노린 게 맞군.’

입맛이 썼다.

그냥 지켜볼 걸 괜히 끼어들어서 옷만 버리고...

“공작 전하께서 혹시 말씀 남기신 것 없습니까?”

이한은 혹시나 싶어 호위들에게 물었다. 호위들은 정리하다말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단순히 이한이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어서가 아니었다.

방금 보여준 모습만으로 이한은 호위들의 존중을 받기 충분했다.

고작 1학년인데 저 정도 전투력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제국에 명성을 떨치는 거물 마법사가 될 게 확실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인인 이칼도렌 공작 또한 이한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모습이었다.

방금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공작은 절대 빈말을 하지 않았다.

“워다나즈 님.”

“예. 남긴...”

“그런 말씀은 없었습니다.”

“......”

이한은 정색했다.

그런 속마음도 모르고 호위들은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없겠지요.”

“맞습니다. 이제 곧 따로 이야기하시게 될 텐데.”

“...?”

이한은 호위들이 미쳤나 싶었다.

왜 갑자기 아부하듯이 저렇게 군단 말인가.

‘주인부터 단체로 미쳤나?’

*         *         *

“정말 고생 많았다. 워다나즈.”

경비병들까지 와서 정리를 마치고, 공작의 호위들이 자리를 떠나자 클트란이 이한을 칭찬했다.

공작의 호위들만큼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클트란도 이한이 얼마나 잘 싸웠는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이한은 손을 내밀었다. 클트란은 그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이한은 손을 치우고 클트란의 망토를 뺏었다.

“망토 좀 빌려달란 뜻이었다.”

“...으, 으응.”

맹독 오염체와 싸우느라 이한의 상의와 망토는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이한은 클트란의 망토를 걸치고 말했다.

“클트란. 너는 흰 호랑이 탑이니까 앞으로 방학 동안에 의뢰를 종종 받겠지.”

“그렇겠지?”

“이칼도렌 공작의 의뢰는 받지 마라. 아주 쪼잔한 사람이군.”

“그... 런가? 그보다 워다나즈. 수수께끼...”

“수수께끼는 무슨 수수께끼. 해결해도 아무것도 안 나올 수 있다.”

이한은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속으로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칼도렌 공작은 이한에게 줄 사례는 주지 않고 튀어도, 황녀에게 줄 사례는 확실하게 주고 있었다.

저번에도 금화가 나왔으니 이번에도 나오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더 화나는군.’

“같이 해결하면 나도 나눠 받는 건가?”

“그렇긴 한데 너한테 금화가 딱히 중요하지는 않잖나? 나 같은 사람이면 모를까.”

클트란의 말에 이한은 가이난도 쪼듯이 구박하려다가 참았다.

망토를 빌려줬기에 한 번 참아준 것이다.

“좋습니다. 황녀님. 같이 풀어봅시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워다나즈.”

클트란은 씩 웃었다.

점점 워다나즈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워다나즈는 겉으로는 차갑게 말해도 행동은 따뜻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괜히 더르규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야.’

이번 건도 당연히 참가할 거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투덜대도, 워다나즈가 친구와 관련된 일인데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역시 예상이...

“뭘 말할 줄 알아 이 자식아. 안 그래도 공작 때문에 열받는데 성질 돋울래?”

“미, 미안하다.”

클트란은 순간 움찔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달그락-

이한과 친구들은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로웨나는 다섯 가지 채소를 갈아 만든 주스를, 클트란은 럼을 좀 더 넣은 에그노그를, 이한은 커피를, 황녀는 초콜렛과 바닐라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초콜렛 케이크를 시켰다. 이한은 바닐라 케이크를 하나 더 시켜서 슬쩍 황녀 앞에 밀어줬다.

“그래서 수수께끼가... 음...”

명예로우신 아덴아르트 전하에게, 이 수수께끼가 전하의 지루함을 달래드리기를 빕니다.

여기 한 지팡이가 있습니다. 마법사가 그 지팡이를 들고 걸어가자 시냇물이 길을 열어줬습니다. 시냇물을 건너자 바람이 앞을 막고 있는 벽을 치웠습니다. 벽이 사라지자 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번쩍이는 빛이 길을 밝혔습니다. 이 지팡이는 어떤 지팡이인지 궁금합니다.

“????”

이한은 다 읽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아티팩트인지 맞히라는 건가?”

이한은 공작이 쪼잔한 만큼 수수께끼에도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아티팩트인지 맞히라는 게 좋은 수수께끼는 아니지 않은가.

그게 수수께끼라면 이한도 수수께끼를 낼 수 있었다.

‘가이난도의 카드 덱 맨 위에서 3번째 카드는 무엇인가’ 같은...

“아. 그게 아닙니다. 이런 지팡이를 직접 만들어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아니 그게 왜 수수께끼... 됐다. 그건 중요하지 않지.”

이한은 산맥에서 만났던 말하는 떡갈나무의 수수께끼가 얼마나 괜찮은 수수께끼인지 새삼 느꼈다.

이건 수수께끼가 아니라 그냥 ‘이런 지팡이 만들 수 있습니까?’지 않은가.

“물 원소, 바람 원소, 빛 원소. 최소 3가지 걸린 아티팩트 지팡이를 만들어보라고?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요구하는 위력이 너무 심한데?”

“아. 그게 아닙니다. 저건 비유에 가깝고, 실제로는 훨씬 더 위력이 약해도 상관없습니다.”

“......”

이한은 자기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시냇물이 길을 열어줬다고 썼으면 시냇물을 가를 정도는 되어야지 무슨 이딴...’

속으로 투덜거리던 이한은 자신이 에인로가드의 교수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멈칫했다.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도, 푸는 사람도 만족하고 있는데 이한이 산통을 깰 이유는 없었다.

‘그래. 서로 좋게 좋게 끝낸다는데 나쁠 거 없지. 금화만 받아가자.’

“위력은 약해도 되면, 3가지 부여 마법이 걸린 지팡이만 완성하면 되겠군... 어. 쉽지 않나?”

조건을 따져보던 이한은 의아해했다.

위력이 약해도 되면 난이도는 생각보다 많이 내려갔다.

물론 부여 마법을, 그것도 다른 원소 마법으로 3가지를 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긴 했다.

부여 마법을 한 겹 한 겹 걸 때마다 시전 난이도는 올라가고 그게 다른 원소 계열이라면 또 올라가니까.

하지만 이미 1학기 때 지옥의 버두스 코스를 경험한 이한에게 있어서 저 정도면 꽤 할만했다.

부유하며 움직이고 스스로 공격도 방어하는 방패를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지 않은가.

“......”

“......”

이한의 말에 로웨나와 클트란은 침울해졌다.

학년 수석의 잔잔한 광기가 그들을 시무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 아니. 생각해보니 어렵군.”

이한은 둘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말을 바꿨지만 이미 늦었다.

“아닙니다. 워다나즈 님. 저희를 배려해주실 필요 없습니다.”

“맞아... 워다나즈. 우리까지 배려해 줄 필요는 없지. 네 눈에 우리가 원숭이처럼 보여도 이상하지 않아.”

“오해다. 클트란. 원숭이로 생각한 적은 없어. 가이난도보다 못한 놈으로 생각한 적은 있... 아니.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까지 어려워보이진 않는데.”

이한의 말에 케이크를 두 개째 끝낸 황녀가 손을 들고 말했다.

“두 개만 중첩시켜도 서로 충돌하면서 시전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세 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입니다만.”

“마법진을 보조 장치로 사용하면 됩니다.”

“지팡이 같은 아티팩트에... 마법진을?”

황녀는 눈썹 끝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

아티팩트의 크기가 작고 부피가 줄어들수록 그 위에 마법을 새기기는 어려워졌다.

지팡이도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부여 마법을 각인하기 좋은 도구는 아니었다.

물론 정말 뛰어난 부여 마법사들은 요령껏 마법진을 압축하고 기교를 부려서 지팡이 위에 새기겠지만, 그 정도 기교는 도저히 신입생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자 클트란이 대신 대답했다.

“워다나즈라면 분명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아닌데?”

“...아냐?”

“당연히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해야지. 유지나 지속 시간 관련 부분은 다 빼버릴 거다.”

“???”

황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웨나와 클트란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건 그냥 말을 따라오지 못해서 갸웃거린 거였고, 황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갸웃거린 거였다.

유지나 주문 지속 시간 관련 부분을 다 빼버리면, 지팡이에 마법을 걸자마자 몇 초 후 사라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시간이...”

“마력량으로 때우면 됩니다. 마력을 퍼부으면 유지나 지속 시간은 늘어나게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

황녀는 이 무식한 방법에 동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논리적으로 따지면 맞는데 저런 편법으로 해도 괜찮나?

황녀는 다른 둘의 의견이 궁금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둘은 어떻게 생각...”

“워다나즈 님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요.”

“......”

자신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바로 동의하는 둘의 모습에, 황녀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한은 그걸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변에 가이난도만 있으면 곤란할 수밖에 없지.’

조별과제에서 자기 혼자만 과제를 이해하고 있다는 절망감.

이 절망감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켜서 참가시킬 수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

이한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덴아르트는 그 모습에 감정이 아주 조금 북받친 눈빛으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커피를 홀짝이던 이한은 문득 궁금해져서 로웨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팡이는 연습을 하려고 해도 상당히 비쌀 텐데 어떻게 구할 생각이지? 만약 구하기 힘들다면 교수님한테 부탁해서 망가진 지팡이들을 구해 재활용을...”

“아. 후원자 분들에게 부탁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

이한은 자기와는 사고방식이 다른 황녀 일행의 모습에 슬쩍 의자를 뒤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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