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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45화 (345/687)

345화

황녀는 푸요의 대답에 불길함을 느꼈는지 이한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이한은 저 정도는 아직 괜찮은 편이라고 판단했다.

‘더 심한 욕을 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저 정도면 부여 마법사들 중에서 괜찮은 편이지.’

머저리보다 더 심한 욕을 할 수도 있었는데 머저리라고만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냥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한의 설명에 황녀는 납득한 듯 눈만 연달아 깜박였다. 상대가 말이 없자 이한은 뜻이 통했다고 판단했다.

“이해하신 것 같군요.”

“잠ㄲ...”

황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지적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 일을 시작하도록 하세.”

푸요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안쪽의 선반들과 창고, 서랍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담고 있는 물건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와르르르르!

산더미처럼 쌓인 재료들의 양에 황녀는 압도되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 중에서 공부량으로 따지면 두 손가락에 꼽히는 아덴아르트였지만 푸요가 내놓은 재료들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설마 이 재료들을 모두 둘이 손질해야 한단 말인가?

황녀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러지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속삭였다.

“시작부터 재료를 빼돌리시면 아무리 푸요 님이라 하더라도 봐주시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은 일에 집중하도록 하죠.”

“...대체 무슨 소리를...!”

언제나 흔들림 없이 황족으로서의 위엄을 유지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아덴아르트였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게 외침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         *         *

마법사들은 추구하는 마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물론 이건 편견이었다.

이한이 만난 마법사들이 대부분 다 저런 편이긴 했지만 모든 마법사들이 다 그러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푸요는 그런 쪽에 들어갔다.

작업이 시작되자 괜히 그랑덴 시 최고의 아티팩트 장인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이 어마어마한 작업량을 내놓았다.

둘이 1학년 신입생이라는 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여기 이 지팡이들을 마저 다듬어주게나.

-알겠습니다.

-다 끝났다면 상자 안에 든 광석 구슬에 발광 부여 마법을 걸어놓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일을 끝냈나보군. 잘했네. 여기 빈 스크롤들을 다시 작성해서 채워놔 주게나.

-알겠ㅅ...

대답하던 이한은 황녀가 푸요를 노려보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눈빛에는 분명 살기가 느껴졌다.

‘큰일났군.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물론 푸요가 빡빡하게 일을 시키긴 했지만 고작 3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벌써 푸요를 죽이고 싶어하기에는 일렀다.

‘황녀가 푸요한테 덤벼들다가 쫓겨나면 일은 나 혼자서 해야 한다.’

이한은 황녀를 달래기 위해 말했다.

“황녀님.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

주변에 추종자들이 줄어들어서 말수가 좀 늘어났던 황녀였지만 푸요의 공방에서 작업이 진행되자 다시 말수가 줄어들었다.

이한이 불러도 묵묵부답하며 푸요만 노려볼 뿐이었다.

“원래 부여 마법은 이런 식으로 혹독하게 배우는 편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계속 대답하지 않으려던 황녀가 고민 끝에 물었다.

목소리에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지만 이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예. 부여 마법이 익혀야 할 마법들이 워낙 많고 다뤄야 할 재료들도 많다 보니.”

사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마법들이 다 혹독해야 했지만, 황녀는 이한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 밑에서 혹독하게 수련하는 걸로 따지면 이한은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한이 저렇게 말하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알겠습니다.”

황녀는 푸요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내려 탁자 위의 재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한은 다음 작업을 재촉했다.

“이해해주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 있는 종이들에 다 마법진을 그려주십시오. 제가 마력을 부여하면서 확인하겠습니다.”

“......”

거의 이마까지 쌓인 종이더미에 모두 다 마법진을 새겨달라는 이한의 부탁에, 황녀는 생전 처음으로 막막한 절망감을 느꼈다.

“마력이...”

“마력이?”

“...마력이 부족하시지 않...”

마법진을 새기는 것도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소모하는 일이었지만, 그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확인하는 것도 만만찮게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후자는 마력 소모도 심했던 것이다.

이한을 바라보는 아덴아르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아. 제 마력 말입니까. 전 괜찮습니다. 작업하시죠.”

“......”

황녀는 종이를 깔고 각종 잉크와 가루로 마법진을 그리면서 묵묵히 생각했다.

제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처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         *         *

3일 정도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나자 푸요는 어느 정도 만족한 것 같았다.

“다들 고생했네. 급한 일은 처리가 됐군. 돌아가서 푹 쉬도록 하게. 다음에 작업할 때 부르도록 하지.”

물론 둘은 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피곤함에 하품을 참아가며 수수께끼로 나온 지팡이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반나절을 꼬박 투자하고 나서야 둘은 제법 괜찮은 지팡이를 하나 완성할 수 있었다.

황녀는 신중한 손길로 지팡이를 이한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긴장한 기색으로 기다렸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돌아가도록 ㅎ...”

쾅!

이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녀가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날아갔다.

황녀가 너무 급히 일어선 탓이었다.

“......”

황녀는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의자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황녀님도 수고하셨습니다.”

황녀는 누가 붙잡기라도 할까봐 재빨리 공방의 문을 통과해나갔다.

그걸 보자 이한은 불안해졌다.

‘다음에 안 오는 건 아니겠지.’

황녀가 안 오면 이한은 혼자서 저 일을 다 해야 했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한은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저택에 방문해서라도 데리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가는 건가?”

“!”

뒤에서 푸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한은 소름이 돋았다.

물론 아까 전에 ‘끝났으니 가서 쉬게’라고 해놓고 붙잡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부여 마법사들은 모두 다 미치광이 아닌가.

미치광이들은 원래 자기가 했던 말을 금세 까먹곤 했다.

“내가 너무 일을 많이 시켰나보군. 미안하네.”

푸요는 이한이 멈칫한 걸 눈치챘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적당히 조절해서 가르치는 법을 알지 못하네. 나 또한 이렇게 배웠거든.”

‘이런 증오의 연쇄를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데.’

이한은 푸요의 말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푸요의 밑에서 배운 사람들은 또 저런 식으로 희생자들을 만들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작업들이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네. 어떤가?”

“확실히 많이 배웠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푸요의 공방에서 작업하는 동안 정말 많이 배우긴 했다.

부여 마법을 걸기 전에 대상을 최대한 마력의 흐름에 맞춰서 손질하고 효과를 최대화하는 방법.

각종 1~2 서클 마법들을 스크롤에 새기고 물품에 부여하는 방법.

학교에서는 이론으로 짚고 넘어갔던 것들을 하나하나 직접 다 자기가 시전해야 했던 만큼 경험이 안 쌓일 수가 없었다.

원래라면 스스로의 성장에 가슴벅차하고 뿌듯해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그래. 결국 부여 마법사는 경험으로 실력이 느는 법일세.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단련하지 않으면 그 빛을 드러내기 힘들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럼 저는 이ㅁ...”

“끝나고 지팡이를 따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이한은 황녀를 먼저 보낸 걸 후회했다.

막았다면 황녀를 제물로 두고 이한은 먼저 나갈 수 있었는데.

“예.”

“연습해보는 건 좋지만 지금 수준에서는 괜찮은 지팡이를 만들기 힘들 걸세.”

“예. 알고 있습니다.”

이한의 태도에서는 일말의 오만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정도로 재능을 타고 난 마법사에게는 보기 드문 겸손함이었다.

그 모습을 본 푸요는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괜한 이야기를 했군.’

“그래. 알고 있다면 연습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지. 그런데... 그 지팡이는 혹시 나무 정령이 선물한 지팡이인가?”

“아. 맞습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학교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지팡이만 사용하도록 허락받았다.

당장 외부에서 옷가지도 갖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 지팡이라고 예외가 될 리 없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직접 구하거나 만들었다면 허락해줬다. 이한이 나무 정령의 지팡이를 쓸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에인로가드 내부의 산맥에서 떡갈나무 정령에게 받았습니다.”

“훌륭하군.”

푸요는 호의적인 미소를 지었다. 공방에서 보기 힘든 장인의 미소였다.

나무 정령 혼혈인만큼 푸요는 이한의 지팡이가 어떤 지팡이인지 예리하게 느꼈다.

정령 특유의 생명력이 주인인 마법사의 마력과 공명해 강렬하게 증폭되고 있었다.

아직 주인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저 지팡이는 몇 번이고 비범한 생명력의 편린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원소 마법 중 대지나 식물 계열을 써본 적 있나?”

“몇 번 있긴 합니다만 주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군. 치유 마법은 아직 신입생일 테니 배우지 못했을 테고.”

푸요는 치유 마법 중 생명력을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마법을 배운 적 있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생각해보니 신입생이면 아직 기본적인 치유 마법도 배우지 못했을 것 아닌가.

“좋은 지팡이일세. 지팡이에 깃든 정령도 주인을 따르는 게 느껴지는군.”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지팡이가 자네를 거부한 적이라도 있었던 건가?”

“제가 만난 정령들은 다 저를 좀 피했어서...”

“......”

푸요는 괜히 부연설명으로 이한의 상처를 헤집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지팡이 끝에 박혀 있는 원석은 무슨 보석인가? 냉기 정령? 아니, 냉기 정령치고는 좀 이상하군. 뭐지?”

푸요는 원석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점점 알쏭달쏭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입생의 지팡이인 만큼 아마 하급 냉기 정령이 아닐까 싶었는데, 기운이 거칠고 패도적인 걸 보니 정령과는 거리가 있었다.

‘냉기나 서리를 부리는 몬스터 중에 이런 몬스터가 있었나?’

“모르겠군. 혹시 알려줄 수 있겠나?”

“서리거인...”

“아하. 내가 그 생각은 하지 못했군. ...잠깐, 서리거인은 이런 식으로 징표를 주지 않을 텐데?”

“...의 왕한테 받은 돌입니다.”

“......”

*         *         *

서리거인의 왕 때문에 이한은 피곤한 와중에도 저택에 돌아가는 대신 1시간 정도 더 설명을 해야 했다.

에인로가드 안에서 일어났던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은 푸요는 가장 먼저 든 의문을 던졌다.

“왜 1학년인 자네가 서리거인의 왕과 대면해야 했던 건가?”

“...거기에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한은 화제를 돌렸다.

씁쓸해 보이는 이한의 표정에, 푸요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 돌이 냉기를 풀풀 뿌리고 있네. 지팡이 자체의 생명력이 아니었다면 조금 위험했을 수도 있었겠군...”

푸요의 말에 이한은 움찔했다.

그런 위험한 걸 그냥 박아놨단 말인가?

‘아니. 교수들은 봤으면 경고를 해줘야지 왜...?’

지금 균형 잘 맞는다고 그냥 넘어가다니 어이가 없었다.

특히 볼라디 교수 같은 경우는 가장 가까이서 봤을 텐데!

“많이 위험합니까?”

“지금은 괜찮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변에 다른 보석들을 추가해서 안전장치를 다는 게 좋겠군. 괜찮다면 내가 해주겠네. 이렇게 같이 일하게 된 것도 인연이니.”

“!”

이한은 부여 마법사의 호의에 감동했다.

‘역시 부여 마법사들은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구나!’

“가장 좋은 방법은 화염의 기운을 증폭시켜서 억누르는 건데...”

“잠,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이한은 재빨리 말했다.

지팡이에 화염의 기운을 추가하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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