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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51화 (351/687)

351화

“배그렉 교수님보다 더 무례하신 분이 가능...”

혀가 움직이는 대로 말하려던 이한은 지금 옆에 볼라디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제국 사람 대부분이 배그렉 교수님보다 더 무례할 겁니다.”

“미친 거냐?”

유미디후스가 황당해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네가 한 번 말해봐라’하는 시선으로 볼라디 교수를 쳐다볼 정도였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게 평가해주다니 고맙군.”

“하하. 당연한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

이 비뚤어진 사제(師弟)의 모습에 유미디후스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자기 스승이라고 해도 객관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됐다. 출발하자.”

유미디후스는 앞에서 마차를 불러왔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물 정령들이 끄는 마차였다.

마법사의 마차답게 문을 열자 밖에서 본 것과 다른, 넓은 내부가 펼쳐졌다.

뛰어난 물 원소 마법사답게 내부는 바다와 그 위를 굽이굽이 흐르는 강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미디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다로 걸어들어가 푹신하게 몸을 기댔다. 물이 갈라지며 노마법사의 몸을 받쳤다.

“왜 그러지?”

“저, 유미디후스 님. 그래서 그 제자 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배그렉 교수님보다 더 무례한 겁니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이한을 보자, 유미디후스는 사실 이한이 볼라디에 대해 꽤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         *         *

닐리아와 요네르는 막대사탕을 먹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인어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인어의 사탕>이 과자가게에서 가장 인기 좋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이난도. 너도 해봐.”

“싫어. 이한이 없잖아.”

“가르시아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다고.”

“왜 가는 곳마다 납치당하는 건데?”

가이난도는 투덜거리며 랫포드가 권하는 사탕을 밀어냈다.

사탕이 먹고 싶긴 했지만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꾹 참을 생각이었다.

“그건 워다나즈 님이 워낙 아는 분들이 넓고 교수님들의 총애를 받아서...”

“총애를 받으면 아껴줘야지 왜 납치를 하냐고!”

가이난도가 분한 듯 씩씩대자 다른 세 친구들은 자신도 모르게 납득했다.

‘하긴 그게 맞긴 해.’

아끼는 제자면 방학 때 푹 쉬고 즐겁게 논 다음 재충전할 기회를 줘야지 왜 자꾸 길거리에서 납치를 시도한단 말인가.

덕분에 놀려고 나왔다가 또 교수들한테 친구를 뺏긴 가이난도만 잔뜩 뾰로통해져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곧 돌아올 겁니다.”

“맞아. 가르시아 교수님께서도 이번에는 별 일 아니라고 하셨잖아.”

“흥. 그걸 어떻게 믿어. 일이 끝나면 또 멋대로 약속 바꾸고 납치할 수도 있는데.”

가이난도는 에인로가드 선배들이 들었다면 ‘저런 기특한 후배 녀석 진리를 벌써 깨달았구나’ 할 소리를 내뱉었다.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만약 그러면 구하러 가자.”

“구하러?”

요네르의 말에 가이난도는 솔깃해했다.

“응. 교수님들도 양심이 있는데 데리러 가면 보내주시겠지.”

“확실히... 게다가 도시 안이니까 눈치를 보실 거 아냐?”

가이난도의 얼굴이 밝아졌다.

에인로가드 안이라면 교수가 손가락 하나로 징벌방을 보낼 수 있었지만 여긴 학교 밖이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도시 사람들 여기 미치광이 마법사가 워다나즈 가문의 귀족을 착취하고 있습니다’라고 난리친다면 더럽고 치사해서 내보내주지 않겠는가.

가이난도의 극단적인 생각까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요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구하러 가자.”

“맞습니다. 제가 문을 따겠습니다.”

“그럼 내가 불화살을 쏴서 태우지.”

“...잠깐. 내가 구하러 가자고 했지? 싸우러 가자고 안 했지??”

요네르가 당황해하는 사이 가이난도가 비명을 질렀다.

“저, 저거!!”

“왜?”

“저 마차! 저 마차!!”

“저 마차가 뭐 어쨌는데?”

“이한이 납치당했어! 저 마차에 끌려가고 있어!”

“...!!”

“저런 말도 안 되는...!”

닐리아는 경악했다.

교수들은 괜히 교수가 아니었다.

도시 안에 있으면 추적당할 수 있으니 납치한 다음 도시 밖으로 나가 추적을 따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추운 북부 산맥에도 가끔 제국의 범죄자들이 추적을 피해 도망치곤 했는데...

‘한두번 납치해 본 솜씨가 아니야!’

“쫓아! 쫓아가야 해, 닐리아!”

“뭐? 저걸?”

“넌 그 뭐냐... 그... 그거! 그래! 긍지 높은 그림자 순찰대잖아!”

가이난도는 어지간히 급했는지 안 하던 닐리아 칭찬을 했다.

옆에서 랫포드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그림자 순찰대가 아니라면 저 마차의 흔적을 누가 쫓겠습니까!”

“...후. 어쩔 수 없군. 모두들 따라와!!”

‘지금 말려야 하나?’

요네르는 언제 말려야 하나 고민하면서 친구 셋의 뒤를 따라갔다.

*         *         *

알시클 펭에린.

유미디후스의 제자(본인은 부정했지만)이자 타칭 볼라디 교수보다 더 무례한 사람이었다.

이한은 믿기지가 않았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알시클은 얼음 마법에 흥미가 있다고 말했었지.”

“그렇군요.”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아직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물 원소 마법을 배우고 싶어 했고.”

“확실히 두 원소 마법은 다른 원소 마법들과 달리 가까운 면이 있으니까요.”

“그래. 그래서 나한테 발판이 되도록 물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더구나.”

“예. ...예?”

듣던 이한은 멈칫했다.

‘잘못 들었나?’

“뭐라고 했다고요?”

“정확히는 자신이 훗날 완성시킬 위대한 얼음 마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발판으로서의 영광을 허가해주겠다고 말했지.”

“......”

‘미친놈인가?’

이한은 당황했다.

누군가한테 마법을 배우고 싶으면 고개를 숙이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가 정상이지 ‘너한테 날 가르칠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라고 하진 않았다.

그건 가이난도도 아는 상식이었다.

“혹시 에인로가드 출신입니까?”

“아니지. 그리고 에인로가드 출신들은 의외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단다.”

“아... 하긴 그렇습니다.”

이한은 동의했다.

저런 성격으로 에인로가드에 들어갔다면 아직까지 졸업 못하고 징벌방에 갇혀 있을 수도 있었다.

예의가 없는 학생도 예의를 알려주는 가혹함이 있었던 것이다.

“당황스럽군요. 그런 사람한테 마법을 가르쳐주셨습니까?”

“재능이 없진 않았으니까... 마법의 재능이 먼저고 인성은 그 다음이니.”

‘괜히 볼라디 교수의 스승이 아니군.’

이한의 마음속에서 유미디후스의 평가가 살짝 내려갔다.

역시 옛말은 틀린 게 없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물론 내 앞에서 건방진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제압하긴 했다.”

“잘하셨습니다. 아. 그러면 혹시 과거를 반성하시고 새롭게...”

“그건 아니고.”

“......”

몇몇 사람은 아무리 맞아도 천성이 바뀌지 않는 법이었다.

그리고 지금 찾아가는 유미디후스의 제자도 그런 경우였다.

*         *         *

제국의 모든 천재들이 다 에인로가드로 들어가진 않았다.

몇몇 천재들은 여러 이유로 다른 마법학교에 들어갔고, 또 몇몇 이들은 마법학교에 들어가는 대신 독학을 선택하곤 했다.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도 그런 경우에 속했다.

마법학교에 입학하는 대신, 가문의 이름으로 스승을 초빙해 따로 배운 경우!

마법학교에 들어갔으면 성격이 어느 정도 고쳐졌겠지만 이렇게 따로 배운 이상 그러지도 못했다.

게다가 더욱 불운하게도 알시클의 재능은 객관적으로도 뛰어난 편이었다.

마법학교에 들어가지도 않고, 또 배우는 마법마다 뛰어나다고 칭찬만 들어왔으니, 스스로 오만해지고 거만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

괜히 유미디후스한테 가서 ‘내 발판 할 기회 드리겠습니다’한 게 아니었다.

물론 쳐맞긴 했지만...

어쨌든 알시클은 맞는 대가로 유미디후스에게 물 마법을 배웠고 어느 정도 성과를 얻자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연구에 몰두하고 싶은 많은 마법사들이 그러듯이 자연의 마력이 풍족한 곳에 탑을 세우고 자신만의 공방을 차린 것이다.

설산 골짜기 깊숙한 곳에 세운 탑.

교통은 최악이었지만 마법 연구를 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유미디후스 님께서는 무슨 일로 이렇게 오시는 거냐?”

알시클은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성가셔진 머리칼을 어떻게든 뒤로 넘기며 물었다.

유미디후스가 전령 역할로 보낸 물의 정령은 허공에 글자를 그렸다.

“내가 가르쳐야 할 제자가 있다고?”

물의 정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알시클을 조금 기분 좋게 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만한 마법사가 없겠지. 유미디후스 님의 마음도 이해한다.”

물의 정령이 떨떠름한 감정의 파동을 뿜어냈지만 알시클은 자신에게 도취한 탓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미디후스 같은 뛰어난 대마법사가 스승 역할로 자신을 추천하다니.

이건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좋아. 모셔오도록! 하지만 이건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내 가르침은 아주 어렵고 난해하니, 따라오지 못한다고 해서 내 잘못은 아니라고. 유미디후스 님이 데리고 온 제자가 나만큼 천재가 아닌 게 내 잘못은 아니니까!”

물의 정령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한 번 짓고 다시 돌아가 버렸다.

알시클은 골짜기를 향해 광소를 터뜨리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공에서 얼음으로 거울을 불러왔다.

“으윽. 완전 엉망이군. 빗질 좀 해야지.”

*         *         *

“의외로 순순히 허락해주시는군요.”

이한은 골짜기 앞을 막고 있는 얼음들이 길을 만드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역시 사람은 맞아야 하나?’

유미디후스한테 얼마나 잘 맞았길래 이런 부탁을 받자마자 길을 여는 걸까?

“알시클 본인도 요즘 힘들어서 그런 거지.”

“힘들다니요?”

“지금 하고 있는 마법 연구에 몇 년 동안 진척이 없거든. 제국 학회에서 소식을 들은 적이 없어.”

수많은 마법사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싶어서 심산유곡에 탑을 세우고 공방을 꾸렸지만 그 중에서 정말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마법사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터무니없는 목표와 이상에 허덕이다가 공방을 접거나, 아주 가끔은 맛이 가서 인근 영지를 지배하려고 했다.

그만큼 마법사가 마법을 연구하는 건 압박감이 큰 일이었다.

알시클처럼 자부심이 대단한 마법사라면 더더욱 압박감이 크리라.

“다른 마법사를 가르친다면 어느 정도 기분 전환도 되겠지.”

“안녕하십니까. 유미디후스 님.”

펭귄 수인 한 명이 빗질하며 안에서 걸어 나왔다.

뒤뚱뒤뚱 걸어오는 귀여운 모습에 이한은 순간 당황했다.

‘버두스 교수도 그렇고 저 사람도 그렇고 왜 미친 놈들은 다 귀여운 종족이지?’

겉으로 보면 무해하고 귀엽게 생겨서 더 악랄한 존재들이었다.

저 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았겠는가.

“처음 뵙...”

이한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알시클은 이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먼저 말해두지. 네가 내 가르침을 따라오는 건 불가능할 거다. 미리 절망하지 말라고 말해두는 거다. 알겠나?”

“......”

이한은 어이가 없었지만 화를 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인 걸 이미 알고 있는 만큼 굳이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다.’

“참고로 난 네 나이 때 벌써 3서클 마법을 익혔다. 알겠나?”

“여긴 4서클 익혔는데.”

“유미디후스 님. 말도 안 되는 농담 하지 마십시오.”

“진담이다.”

“...???”

알시클은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진실을 말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4서클 익힌 게 맞다.”

“......사실 서클이 중요한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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