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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52화 (352/687)

352화

제자의 쓰레기 같은 소리에 유미디후스는 혀를 쯧쯧 찼다.

물론 알시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알시클에게는 자신을 욕하는 소리를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저런 추한 소리를.’

물론 마법은 서클이 전부가 아니었다.

서클은 가장 간편한 단위였지 가장 정확한 단위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기가 먼저 서클 꺼내놓고 밀리니까 말을 바꾸는 저 뻔뻔함이 참...

‘저러니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겠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민망함에 흔들렸겠지만 알시클은 빙산처럼 단단했다.

바로 주제를 바꿔서 질문을 던졌다.

“서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마법의 넓이다. 나는 네 나이 때 얼음 원소 마법은 물론이고 변환 마법과 소환 마법을 익혔지. 알겠나?”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알시클.”

유미디후스는 제자를 위해 입을 열었다.

알시클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고 싶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차리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잘못했다가 알시클이 수치심에 저 빙하 절벽으로 몸이라도 던진다면 어쩐단 말인가.

그러나 알시클은 유미디후스의 말뜻을 잘못 이해했다.

“아닙니다. 유미디후스 님.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제국의 어린 마법사가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잖습니까.”

“......”

딱히 가식을 떠는 게 아니라 상대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더 놀라웠다.

‘이 정도로 마음에 상처를 받진 않을 텐데.’

에인로가드에 들어오면 저것보다 더 상처받을 일이 많았다.

“여기 워다나즈가 너보다 더 넓게 마법을 익히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알시클.”

“...거짓말하지 마세요!”

알시클은 펭귄 수인답게 짧은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러나 유미디후스가 노려보자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바꿨다.

“거,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아직 얻어맞은 기억이 몸에 생생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저보다 더 넓게 마법을 익히고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뭘 익혔는데요?”

“보자꾸나. 흑마법, 소환 마법, 환상 마법, 부여 마법, 예지 마법, 변환 마법, 치유 마법...”

“그래서 그 중에서 뭘 익혔습니까?”

알시클은 살짝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익힌 걸 말하고 있잖니.”

“...예?”

알시클은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지 몇 분 정도 가만히 서있었다.

보다 못한 이한이 속삭였다.

“저렇게 내버려둬도 됩니까?”

볼라디 교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펭귄 수인은 추위에 강하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안 얼어죽느냐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괜찮냐는 질문이었다.

다행히 유미디후스가 정리에 나섰다.

“알시클!”

“......”

“또 두들겨 맞고 싶으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멍하니 있던 펭귄 수인 마법사의 얼굴에 정신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 누가 뛰어났는지가 뭐가 중요하겠니. 중요한 건 지금 어떤 마법을 하고 있느냐일 뿐. 여기 워다나즈는 네게 냉기 원소 마법을 배우려고 온 거다.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냉기 원소 마법을 가르쳐주도록 해라.”

“하지만 어렸을 때 누가 뛰어났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

기분 좋게 넘어가려고 하는데도 굳이 발목을 잡는 알시클의 모습에 유미디후스는 은은한 분노를 눌러 참았다.

볼라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답을 내주겠다.”

“뭐지?”

“여기 워다나즈가 더 뛰어나다. 이제 됐겠지.”

“......”

“......”

불난 화염 마탑에 기름을 붓는 볼라디의 모습에 유미디후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볼라디 배그렉은 두고 올 거 그랬군.’

“나,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볼라디 배그렉,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진심으로!? 에인로가드에서 너무 과로해서 미쳐버린 거 아니냐!?”

의외로 진실을 찌르는 펭귄 수인의 모습에 이한은 살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서클도, 범위도 워다나즈가 낫잖나.”

“응... 응용! 응용 고급 속성은 다를 거다!”

알시클은 한참 고민하다가 외쳤다.

범위나 서클로는 승부할 수 없으니 마법을 응용하는 숙련도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나는 저 나이 때 물 원소의 형태 변환을 익혔다! 볼라디 배그렉!”

“...그냥 제가 졌다고 하면 안 됩니까?”

이 싸움이 지겨워진 이한이 속삭였지만 볼라디 교수는 무시하고 대답했다.

“워다나즈는 형태 변환을 통달했다.”

“지금은 회전, 증발 속성을 익히고 있고.”

“......”

두 마법사의 냉혹한 진실 공격에 알시클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는 울부짖으며 절벽 쪽으로 달려 나가려고 했다.

“말도 안 돼! 나보다 더한 천재가... 그럴 수는 없어!”

“저게 또!”

유미디후스는 물 채찍을 불러서 알시클의 발목을 붙잡아 넘어뜨린 다음 결박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유미디후스는 이한을 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알시클이 좀 감정적이지.”

‘괜찮습니다.’

“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수로 속마음이 반대로 나왔다. 유미디후스는 이해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알시클의 마탑 안은 냉기로 가득했다.

별다른 가구나 장비 하나 없는 살풍경한 모습 때문에 더욱 더 추운 느낌이었다.

에인로가드에서 봤던 공방과는 좀 다른 모습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냉기 마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짐이 적어야 합니까?”

“아니란다. 연구가 막혀서 실험비용을 대느라 안의 물건들을 팔아치운 거겠지. 마법사가 세운 마탑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야.”

마법의 끝을 보겠다고 마탑을 세운 마법사들이 괜히 맛이 가면 주변을 지배하겠다고 구는 게 아니었다.

마법 연구라는 건 그만큼 고되고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연구가 예상대로 빨리 끝나면 다행이지, 늘어지면 비용은 비용대로 늘어가고 정신은 피폐해지고 생활은 힘들어지고...

동료 마법사들한테 <연구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편지라도 오면 더욱 더 괴로워졌다.

그러다보면 이제 ‘그냥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면 안 되나? 잘 점령하면 아무한테도 안 들키지 않을까? 점령해서 마법만 완성시키면...’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으흑흑흑흑흑.”

알시클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유미디후스의 마법에 묶인 채로 마탑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 누가 보면 강도들한테 제압당한 마법사 같았다.

“나보다 더 재능 있는 마법사가 있었다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알시클. 말했잖느냐. 초반의 성취가 아니라...”

“재능 없이 노력으로 올라온 유미디후스 님은 제 마음을 모릅니다!”

“......”

“......”

유미디후스는 잠깐 이한에게 나가있으라고 손짓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교수님. 나오시죠.”

“왜지?”

“...그냥 좀 나와요.”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멱살을 잡으려다가 손목을 잡고 끌고나갔다.

그러자 안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유미디후스 님!

“들어와도 된단다.”

“예.”

이한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들어와서 섰다.

“흑흐그흑흑흑...”

“이제 많이 맞았으니 정신을 차리고 얼음 원소 마법을 가르치도록 해라.”

“으에에에에엑! 으엑! 으엑!”

평소라면 여기서 말을 들었을 알시클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충격이 컸는지 엉엉 울기만 하면서 유미디후스의 말도 무시했다.

그 모습에 유미디후스는 너무 충격을 크게 줬나 후회가 들었다.

자기 자신의 재능에 대해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알시클이었다.

요즘에 마법 연구가 막힌 만큼 스트레스가 클 텐데, 그나마 있는 자부심마저 박살이 났으니 알시클 성격에는 충격이 몇 배나 되리라.

“안 되겠구나. 다시 나가 있도록 해라.”

“...어, 또 패실 겁니까?”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이한이 알시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 문제가 패서 해결될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패는 게 아니다. 나는 마법의 가르침이란 표현을 선호하지.”

“...그게 뭐든 간에 지금은 좀 대화로 설득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워다나즈.”

유미디후스는 이한을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세상에는 때때로 대화가 안 통하는 상대가 있는 법이란다.”

말을 하면서 유미디후스는 아주 살짝 볼라디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한도 아주 살짝 볼라디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도 한 번만 제게 설득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하긴. 넌 볼라디 배그렉 밑에서도 배우고 있지.”

“...그거랑은 상관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만...”

유미디후스가 이한을 <제자 전문가> 같은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약간 신경이 쓰였다.

“펭에린 님.”

알시클은 꺼이꺼이 울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1학년 때 3서클 마법을 익혔든 4서클 마법을 익혔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다. 고나달테스 님께서도 중요한 건 마법의 서클이 아니라...”

“넌 나보다 재능이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잖아! 그렇지? 날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잖아!”

“......”

생각보다 중증인 알시클의 모습에 이한은 경악했다.

그러나 이한은 알시클보다 더 미친 사람들도 많이 상대해 온 사람.

절대 저런 도발에 흔들리지 않았다.

“펭에린 님. 저는 너무 슬픕니다.”

이한은 갑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눈시울을 붉혔다.

상대가 눈물로 나온다면 이쪽도 눈물로 나올 생각이었다.

“유미디후스 님께서 왜 저를 여기에 데리고 오신 줄 아십니까? 제가 펭에린 님에게 배워보고 싶다고 몇 번이고 간곡히 부탁드렸기 때문입니다.”

“????”

“?”

유미디후스와 볼라디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이한은 철판을 깔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몇 번이고 펭에린 님의 놀라운 업적에 대해 들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4서클 마법을 익혔는지 아십니까? 펭에린 님이 이룬 업적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다가 이루게 된 겁니다.”

“그, 그럼 그 마법도?”

“예.”

솔깃해하며 기운이 돌아온 알시클이 듣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지 않아?”

“......”

이한은 묶여 있는 알시클의 푹신한 뺨을 한 대 때릴까 망설였지만 참았다.

“그 정도는 해야 펭에린 님에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많이 배우는 것 같은데.”

“...하여간 그 정도로 존경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저를 가르쳐주시기 싫으셔서 이런 속임수나 쓰시다니.”

“속임수라니?”

알시클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물었다.

“속임수가 아니라면 알시클 님이 이런 꼴을 보여주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이러는 거겠지요.”

“...들켜버렸군!”

기운이 완전히 돌아온 알시클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유미디후스는 뻔뻔한 제자의 낯짝을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했다.

“정말 대단한걸. 내 연기를 알아채다니.”

“아무리 펭에린 님께서 연기를 하셔도, 천재가 바보 연기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좋아. 들킨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거기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 얼음 원소 마법을 좀 가르쳐주도록 할 테니까.”

알시클이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서 뒤뚱뒤뚱 안으로 걸어가자, 유미디후스는 이한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네가 볼라디 배그렉의 제자를 할 수 있는 이유를 알겠구나.”

“...제가 무슨 실수라도?”

*         *         *

알시클은 시약들을 바닥에 쫙 깔아놓더니 이한을 그 위에 올라가게 했다.

별 생각 없이 지켜보던 유미디후스는 바닥에 깔린 시약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나하나 너무 비싼 시약들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연구에 쓰려고 준비해놓은 것 같은데...?

“저래도 되나?”

“예?”

볼라디가 되묻자 유미디후스가 시약들의 가격을 지적했다.

“알시클도 연구를 해야 하는데 저런 시약들을 전부 써버리면...”

“괜찮습니다.”

“아. 재고를 확인했나? 저걸 써도 되는...”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젓더니 대답했다.

“알시클 펭에린의 일이잖습니까.”

“...잠깐! 잠깐!”

볼라디 배그렉의 말을 잠깐이라도 들은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고 후회하며, 유미디후스는 알시클을 말리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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