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57화 (357/687)

357화

“다 됐습니다.”

“뭐!?”

알시클은 깜짝 놀랐다.

유미디후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한이 정리를 끝낸 것이다.

“벌써!? 그걸 다?!”

“넌 대체 뭘 한 거냐?”

유미디후스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알시클을 쳐다보았다.

1학년 학생이 저렇게 빨리 정리할 수 있는 분량을 그냥 쌓아놓고 방치하다니.

“아, 아니... 저도 정리하려고 했었는데... 저게... 그 정리 불가능한 그런 복잡함이 있었...”

“헛소리 하지 말고 따라와라. 같이 준비하자꾸나.”

유미디후스와 알시클은 의자에 앉아 정리된 자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자료도 중요했지만 검사관에게 실험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했다.

이 중에서 최대한 가능성 높고 괜찮은 실험을 검사관한테 직접 보여줘야 했다.

“이 스물세 번째 실험이 괜찮아 보이는데.”

23번째 실험. 내가 왜 냉기 원소 마법을 시작했던 걸까? 그냥 화염 원소를 하는 게 나았나? 극한의 냉기를 형성하기 위해 주변의 열원(熱源)에 전부 마법을 걸었다. 정어리 세 상자 주문하는 거 잊지 말 것. 관측 현상: 인근에서 물체 낙하 시 느려지는 것을 확인.

‘낙서를 많이도 하셨군.’

“물체 낙하가 느려지는 걸 확인했다면 상당한 성과기도 하고.”

“그런데 그건 서리노루의 뿔이 필요한데요.”

“...그러면 이 마흔네 번째 실험은? 벽돌이 형태를 잃고 멋대로 형태 변환이 됐다는 건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결과일 텐데.”

“그런데 그건 빙한산이 필요한데요.”

“...그러게 누가 재료를 낭비하라고 했느냐!”

분노한 유미디후스가 물로 몽둥이를 만들어 알시클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알시클은 낑낑대며 변명했다.

“검사관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 실험들이 꼭 성공하란 보장도 없습니다. 실패할 때가 더 많았어요.”

“이제 곧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참 좋은 말만 하는군. 아주 잘났다.”

유미디후스는 한숨을 쉬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알시클의 곤란에 유미디후스의 책임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할 수밖에. 이 설황단은 주변의 수분을 통제해 냉기를 유지할 때 안정도를 높이려고 넣은 거겠지. 내가 맡겠다.”

“감, 감사합니다.”

“만년한설은... 냉기 원소 속성을 증폭시키려고 한 거겠지?”

“네.”

“어쩔 수 없군. 워다나즈. 네 마력을 좀 빌려도 되겠니?”

“???”

“예. 괜찮습니다.”

“?????”

이한과 유미디후스의 대화에 알시클은 당황했다.

어라?

“아니 유미디후스 님...”

“조용히 좀 하고 있어라. 알시클. 시간이 없다.”

“아니 그게...”

마법진에 배치된 만년한설은 냉기 원소의 힘을 수십 배로 증폭시키는 강력한 시약이었다.

그걸 마력으로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대충 계산해봐도 어린 1학년 학생이 감당할 양은 절대 아니었다.

‘괴롭히시는 건가?’

“빙한산은 증폭된 냉기를 고정시키기 위해 썼던 거겠지... 볼라디 배그렉.”

“예.”

유미디후스가 볼라디 배그렉을 부르자 알시클은 안심했다.

이한과 달리 저 놈은 부려먹어도 별로 안 미안했다.

“증폭은 내가 통제할 테니까 너는 워다나즈의 마력을 사용해서 고정할 수 있겠느냐?”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시클은 눈을 부릅떴다.

“유미디후스 님!! 이건 진짜 아닌...”

“조용히 시켜라. 시간 없다.”

이한의 마력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설명하기 귀찮아진 유미디후스는 볼라디 교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         *         *

“세상에! 황자 전하께서 왜 그렇게 추종자가 많으신지 알 것 같습니다!”

“후후.”

가이난도는 검사관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번개 정령 카드들은 과대평가됐다니까. 싸움을 피하고 마법사의 체력을 깎는다니. 비겁하잖아!”

“맞습니다. 저도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두 마법사 카드 애호가는 서로 카드 평가를 하며 훈훈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황자 전하께서는 무슨 덱을 사용하십니까?”

“나는 흑... 크흑!?”

가이난도는 비명을 질렀다.

친구들이 양쪽에서 양발을 밟은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가이난도는 명예로운 기사 카드들을 주로 사용해요.”

“오오. 역시.”

가이난도는 ‘내가 그런 재미없는 걸 왜 해’라고 하고 싶었지만 발이 너무 아파서 외치지 못했다.

“검사관 님. 실험 준비됐습니다.”

“아. 시간이 벌써...! 죄송합니다. 대화가 너무 즐거워서...”

“괜찮습니다.”

“?”

검사관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한이 탑 안쪽에서 나오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던 것이다.

‘집중하자.’

이한은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전율했다.

지금 이 안쪽의 연구실에서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은 어떤 마법사라도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처음에는 거칠게 저항하던 알시클도 마법진의 준비가 끝나고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필사적인 얼굴로 협조에 나서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은 거 맞지? 진짜 괜찮은 거지? 안 괜찮은데 협박받아서 괜찮다고 하는 거 아니고? 정말로?”

“......”

이한은 집중하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알시클이 말을 걸어서 정신이 사나워졌다.

이한 주변의 마력 흐름이 불안정해지는 걸 느낀 볼라디 교수가 알시클의 다리를 걷어찼다. 알시클이 비명을 질렀다.

“집중하라고 했다. 알시클!”

“네, 네...”

유미디후스의 외침에 알시클은 시선을 돌렸다.

지금 유미디후스는 이한의 왼쪽에서, 볼라디 배그렉은 이한의 오른쪽에서 각자 마력을 흡수해가며 마법진에 마력을 전달하고 있었다.

만년한설이나 빙한산을 1학년 학생의 마력으로 대체한다고 했을 때는 유미디후스가 못 보던 사이 미쳐버린 건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마법진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괜찮나? 진짜 괜찮나? 아직 괜찮긴 한데. 말이 되나?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건 아닐까?’

“알시클 펭에린 님?”

“아, 아. 시작하겠습니다.”

온갖 고민을 속으로 하던 알시클은 검사관의 말에 지팡이를 흔들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연구일지가 검사관 앞에 날아왔다. 검사관은 그걸 보고 감탄했다.

“대단하십니다! 마법사들 중에 이렇게 정리해주시는 분들이 드문데.”

“당... 당연히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 일이지.”

유미디후스와 볼라디가 빤히 쳐다보자 알시클은 뺨을 붉혔다.

“관측된 현상들은... 오오! 대단합니다. 진척이 상당하군요.”

알시클은 저 현상들이 같은 실험 수십 번 해야 한 번 나올까 말까라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분명 투자자분들도 만족하실 겁니다. 어떤 현상을 보여주실 겁니까?”

“눈, 눈으로 직접 보는 게 더 나을 거 같군.”

알시클은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지금 필요한 재료를 다 빼버리고 임기응변으로 하고 있는 만큼 정확히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보여주시죠.”

“마력이여, 정해진 대로 순환하고 증폭하라. 순환하고 증폭하라. 순환하고...”

알시클이 깊고 강렬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전투 마법사들이야 빠르고 간결한 주문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사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마법사들의 목적은 마법의 완성이지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주문이 얼마나 길든 간에 정확도가 더 중요했다.

“냉기여, 부풀어라. 대가로는 만년한설이. 그 힘의 증폭이.”

‘만년한설이 있었나?’

검사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진에서 못 본 것 같은데?

“냉기여, 머물러라. 대가로는...”

콰지지지직!

연구실 마법진 중심에는 밀도 높은 마력이 압축되다 못해 공간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해골 교장이 입학하던 학생들 상대로 마력을 흩뿌려 압박하던 걸 연상시켰다.

그러나 오늘은 목적이 달랐다.

마력은 냉기로 전환되어 안의 온도를 극한에 가깝게 내리기 시작했다.

투투툭, 투툭-

“오오오!”

마법진 안에 형성된 검 형태의 고드름.

그 고드름에는 어떤 손실도 없는 순수한 마력이 부여되었다.

선명한 마력이 고드름의 검신을 타고 흐르는 모습에 검사관은 흥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부여 마법을 걸었는데도 마력 손실 하나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다니.

모든 부여 마법사들이 꿈꾸는 물질이었다.

“이걸 보여주시려는 거였군요!”

“이런 말도 안 되는!!”

“???”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알시클은 검사관 옆에서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제까지 했던 어떤 실험보다 괜찮은 결과값이 나왔던 것이다.

‘대체?’

스으으으-

“저기 보십시오! 눈송이들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장난하나!”

“??!”

“내, 내가 혼자 오랫동안 마법을 탐구하다보니 병이 생겼어.”

“저... 저런.”

마력 소모 없는 현상부터 시작해서 시간 정지 현상까지.

원래는 하나 하나 짧게라도 관찰하기 위해 시약을 때려박아야 했었다.

그런데 한 번에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그것도 이렇게 몇 초를 넘기다니.

기쁘고 감동적이었지만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대체!? 대체?!!?’

짝짝짝짝짝-

검사관은 박수를 쳤다. 알시클은 이제 슬슬 두렵기까지 했다.

“설마...”

“저 안의 물방울을 보십시오! 물방울의 성질이 변하고 있습니다!”

“......”

“알시클 펭에린 님은 마법의 천재십니다! 세 가지 현상을 이렇게 길게 구현해내시다니!!”

“난... 난 아무것도 아니야.”

“겸손하시기까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난...”

*         *         *

검사관은 대흥분해서 결과를 기록했다. 세 가지 현상을 동시에, 그것도 7초나 유지시키다니.

투자자들이 본다면 ‘역시 천재는 다르구나’하며 감동의 추가 투자를 결정하고 냉기 원소 마법사 학회에서는 ‘천재가 일을 냈다’하며 감동의 견학을 결정할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위대한 업적을 해낸 천재는 끙끙 소리를 내며 안쪽에 누워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실험 때문에 너무 무리를...”

“아마 마음의 병일지도 모르겠군.”

“예?”

“아무것도 아닐세. 어쨌든 만족했다니 다행이군.”

“예! 오늘 정말 개안(開眼)했습니다. 알시클 펭에린 님이 대단한 마법사인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단한 마법사일 줄이야! 누군가 제국의 젊은 마법사들 중 누가 최고냐고 묻는다면 저는 무조건 알시클 펭에린 님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안쪽에서 알시클의 구슬픈 기침소리가 연속으로 터져나왔다. 유미디후스는 제자를 위해 검사관을 빨리 내보내기로 했다.

“그래. 고맙고. 다음에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군.”

“예! 안녕히 계십시오!”

유미디후스와 이한은 누워 있는 펭귄 수인 마법사한테 다가갔다.

알시클은 침울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이렇게 간단한 걸 이제까지...”

“간단하진 않았지. 알시클. 그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오늘 해낼 수 있었던 거 아니냐.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더 많이 헤맬 수도 있었다.”

유미디후스의 위로에도 알시클은 울음을 터뜨렸다.

“됐습니다! 냉기 원소도 제가 연구해서 불만이었을 겁니다. 저 워다나즈가 연구했으면 훨씬 더 빨리 진실을 보여줬을 텐데.”

“냉기 원소가 사람도 아니고 그게 무슨 헛소리냐.”

“일어나는 대로 냉기 원소 마법사들한테 편지 보낼 겁니다... 저는 인생을 헛살았고 제 연구는 워다나즈가 이어받을 거라고.”

“...?”

그냥 묵묵히 듣고 있던 이한은 멈칫했다.

아니 뭔?

“그게 무슨 개... 아니, 터무니없는 말씀이십니까 펭에린 님?”

내버려두면 알아서 정신차릴 거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던 이한이었지만, 이렇게 흘러가면 이야기가 달랐다.

“내 연구는 너 같은 천재가 해야 해...”

“아닙니다. 펭에린 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여기 이 마법진과 마법 준비는 다 펭에린 님이 하신 거잖습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저희는 다 된 수프에 소금 정도 뿌렸을 뿐입니다!”

“그 비유가 맞나...?”

“솔직히 이 정도 마력 불어넣는 걸 누가 못 합니까! 마석으로도 가능합니다!”

“불가능한데.”

“불가능하다.”

“......”

위로하는데 옆에서 마법적으로 옳냐 그르냐를 따지는 유미디후스와 볼라디의 모습에 이한은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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