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358화 (358/687)

358화

“마석은 어디까지나 대체품일 뿐 마법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마력을 마석으로 구현하려면...”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이한은 엎드린 펭귄 수인 마법사를 가리키며 유미디후스에게 말했다.

질 좋은 순수한 마력을 마석으로 구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미친 마법사가 연구과제를 자신한테 떠넘기느냐 마느냐가 훨씬 중요했다.

“펭에린 님. 정신차리십시오. 마석으로 하긴 힘들어도 어쨌든 저건 다른 방법으로 대체가 가능한 부분입니다. 대체가 불가능한 부분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 실험을 설계하고 마법을 짜올린 마법사의 두뇌입니다.”

“......”

이한은 알시클이 움찔하는 걸 분명히 보았다.

희망이 생긴 이한은 알시클의 등가죽을 붙잡고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펭에린 님! 펭에린 님이 여기서 포기하시면 펭에린 님을 보고 냉기 원소에 입문한 수많은 냉기 원소 마법사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 사람들을 모두 실망시키실 겁니까!”

“아, 아퍼! 아프다고!”

원래라면 흐뭇해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알시클은 비명을 질렀다.

이한의 힘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하여간 이 마법사들을 실망시키는...”

“알, 알겠어. 진정해. 진정하라고. 다시 생각해 볼 테니까.”

이한이 등가죽을 다시 붙잡을 것 같자 알시클은 허겁지겁 말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유미디후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공격해도 됐을 것 같군.’

*         *         *

결국 알시클은 진정하고 침착을 되찾았다.

사실 이한이 한 말이 정확하기도 했다.

마법 실험이 성공했을 때 그 공은 마법 실험의 설계를 만든 마법사에게 있지 옆에서 도운 사람들에게 있지 않았다.

극한의 냉기를 이렇게까지 구현해낸 알시클은 분명 대단한 마법사였다.

...문제는 이제까지 실패했던 실험들이 갑자기 성공한 이유가 바로 이한의 마력에 있다는 점이었다.

알시클이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원인 분석을 했다.

서리노루의 뿔, 냉옥정, 빙한산, 만년한설, 설황단 등등 각종 최고급 희귀 시약을 써도 실패했는데 왜 무식한 임기응변이 성공했는가?

“정답은 마력의 질에 있었던 거지. 아무리 각종 시약과 마법진으로 마력을 유지하려고 해도, 마법사의 마력을 직접 불어넣는 것보다는 그 순도와 질이 떨어지는 거야.”

“과연...”

알시클 앞에서 듣고 있던 이한은 문득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말씀해주시는 겁니까?”

유미디후스나 볼라디가 들으면 됐지 왜 1학년 학생인 이한이 이걸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금 성공한 마력이 어디서 나왔지?”

“저한테서 나왔습니다.”

“그럼 그 마력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

“다른 냉기 원소 마법사 모임에 나가서 공고문을 붙여야 합니까?”

“...아니. 그게 다 된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

모든 마법사들의 마력이 이한의 마력처럼 그 순도가 높고 질이 뛰어났다면 알시클이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마력을 구하기는 힘들어.”

“저런. 안타깝게 됐...”

“도와줘!”

알시클이 이한의 손을 붙잡고 늘어지려고 하자 이한은 가볍게 피했다.

하도 교수들에게 많이 당했던 만큼 알시클이 입을 여는 동안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무리입니다.”

“어째서!”

“저도 생활이 있는데 방학 내내 여기서 24시간 일하는 건 좀...”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알시클은 이한의 무시무시한 발상에 경악했다.

안 그래도 마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과로까지 하면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도 금세 쓰러질 것 아닌가.

심지어 상대는 1학년이었다.

“애초에 실험을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아. 일년에 두세번 정도일 거라고.”

“아. 그 정도밖에 안 됩니까?”

“...충분히 많은데?”

그 정도라면 신세진 것도 있으니 도와줄 수 있었다.

허락이 나오자 알시클의 얼굴이 밝아졌다. 알시클은 고개를 연신 흔들며 말했다.

“고마워! 그 대신 내 비전의 냉기 원소 마법들을 전수해주지. 언젠가 네가 내 연구과제를 이어받아도 될 만큼!”

‘별로 기쁘지 않다.’

지금도 힘든데 자기 하던 연구까지 자꾸 넘기려고 하는 알시클의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욕했다.

사악한 마법사 그 자체였다.

“예 뭐... 감사합니다.”

“잘 됐군. 바로 시작하지.”

“시간 없으니까 빨리 전수해라. 주말에는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었거든.”

볼라디 배그렉과 유미디후스의 재촉에 알시클은 투덜거렸다.

“기초 마법들과 달리 제 비전의 마법들은 빠르게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말하던 알시클은 이한을 보더니 뒷말을 바꿨다.

“...게 아니긴 한데 워다나즈 넌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안 됩니다.”

이한은 단호하게 부정했지만 세 마법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         *

<펭에린의 냉기 원소 분신>은 4서클 마법이었다.

다른 분신 마법들과 달리 겉으로 봤을 때 주인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흡사한 외관, 분신의 시야 공유, 여차할 경우 냉기 원소를 이용한 근접 공격까지.

마법의 효능을 생각해봤을 때 4서클에 있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물론 그만큼 냉기 원소 분신 마법의 난이도는 4서클 마법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이한이 몇 번 4서클 마법들을 성공해서 감각이 이상해진 거지 원래는 절대 1학년이 도전할 만한 난이도가 아니었다.

“네가 낮은 서클 냉기 원소 마법들을 잘 익히긴 했지만, 이 마법까지 빠르게 익힐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다행입니다.”

아까 말과 달리 알시클이 침착하자 이한은 안심했다.

“아. 물론 네 실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야! 너라면 직전 단계의 분신까지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 그것도 충분히 어려운 거 맞지 않습니까?”

이한은 알시클마저 볼라디 교수와 유미디후스에게 영향을 받나 싶어서 두려워졌다.

분신 계열 마법에서 가장 낮은 단계는 형태도 티가 나고 움직임이 없는 분신이었다.

이건 지금 이한이 환상 마법으로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긴 했다.

<파하이트의 하급 환상>과 <오고닌의 박무>를 시전하면 밖에서 봤을 경우 이한이 여럿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여기서 더 단계가 높아지려면 분신의 형태를 조절하고 움직임도 짜넣어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를 다 성공한 게 <펭에린의 냉기 원소 분신> 마법이었다.

즉 이 직전 단계라는 건 최소한 형태나 움직임 중 하나는 완성했다는 것.

그것만 해도 최소 3서클이었다.

“이 마법은 고서클로 시전하지 않기 위해 다른 학파의 마법들을 많이 응용했지. 그래서 더 난이도가 있는데...”

‘방금 내가 말한 건 무시하신 건가?’

“...넌 변환 마법도 부여 마법도 배우고 있다고 했지? 아주 운이 좋은 거야.”

“예...”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분신 마법을 연습할 때는 흑마법이 꽤 도움이 된다는 점이지. 언데드 소환수들은 다른 소환수들과 달리 냉기 원소 마법을 걸어줘도 불만이 없거든. 그래서 연습하기 좋은데.”

여러 분신의 움직임을 다루는 방법을 연습하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언데드 소환수들로 연습하는 것이었다.

언데드 소환수들은 불만이 적었고 냉기 원소가 걸린 무기를 쥐어주거나 냉기 원소를 몸에 둘러줘도 크게 거부하지 않았다.

이런 언데드 소환수들에게 냉기 원소 마법을 시전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건 좋은 연습이 됐다.

“저 흑마법도 배웁니다만.”

“뭐!?”

“흑마법 배운다고 했을 텐데?”

유미디후스도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히 이한이 배운 마법을 이야기할 때 흑마법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랬나? 어라? 왜 못 들은 것 같지?”

“...그, 어쨌든 흑마법의 언데드를 불러놓고 연습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괜히 흑마법사들이 안타까워질 것 같아 이한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알시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마법을 많이 걸고 직접 움직이려고 노력할수록 좋지. 혹시 언데드 소환 할 수 있어?”

“예. 스켈레톤 전사를 불러낼 수 있습니다.”

“좋지. 스켈레톤 전사. 여러 마리일수록 더 좋은데. 혹시 세 마리까지 가능할까?”

“예.”

“오! 혹시 더 가능해? 몇 마리까지?”

“아직 움직이진 못하지만 15마리까지는...”

“...???”

알시클은 여러 의미로 당황했다.

일단 불러낸 소환수가 못 움직인다는 것도 놀라웠고, 스켈레톤 전사를 15마리까지 소환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어지간한 소환 마법사도 영혼이 깨지거나 마력이 고갈되거나 뇌가 불타버릴 텐데...

“제가 좀 옛날 방식의 흑마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한이 사악한 흑마법사들에게 옛날 방식의 흑마법을 배우고 있다는 설명을 하자, 알시클은 매우 흥미로워했다.

“그래서 다루기가 더 어렵...”

“더 연습하기 좋겠는데! 넌 정말 운이 좋아!”

“......”

이한은 알시클이 왜 유미디후스 제자인지 알 것 같았다.

‘기대를 한 내가 미친놈이지.’

*         *         *

정말 놀랍게도(유미디후스와 볼라디 교수, 그리고 알시클 모두 놀랐다) 이한은 남은 시간 동안 <펭에린의 냉기 원소 분신> 마법을 완성하지 못했다.

물론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사실, 세 마법사만 놀라워했다.

“내가 잘못 가르쳤나...?”

알시클은 살면서 처음으로 스스로의 능력에 건전한 회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걸 본 유미디후스는 감탄했다.

‘이 정도까지 바라진 않았었는데!’

“내가 잘못 가르쳐서 미안해.”

“괜찮습니다.”

“알면 됐다.”

“......”

이한은 볼라디 교수를 한 번 노려보고 다시 말했다.

“가르쳐주신 것들 잊지 않겠습니다. 돌아가서도 연습해보겠습니다.”

“빨리 완성하면 좋겠다. 다음 마법도 준비해놓을 테니까. 조금 더 어렵겠지만 괜찮을 거야.”

“...예.”

이한은 냉기 원소 마법은 좀 나중에 연습할까 고민했다.

“참. 이번 가을에 불러도 되나?”

“가을은 에인로가드 학기중이다. 알시클.”

“어... 학기가 언제까지죠?”

알시클은 유미디후스의 대답에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해봤다.

올해 끝까지 학교 안에 있으면...

“못 나오잖아요?!”

“그럼 1학년 학생이 마음대로 학교를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유미디후스의 한심하단 말에 이한은 움찔했다.

‘어떻게 아셨지?’

“제가 방문하면 안 되나요?”

“외부인이 방문하려면 고나달테스 공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겠지.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에이... 고나달테스 님 같은 대마법사가 그런 부분에서 귀찮게 할 리 없잖습니까. 너그럽게 허락해주실 겁니다.”

“?”

“?”

이한과 유미디후스는 동시에 의아해했다.

“그...”

“뭐... 열심히 해봐라. 잘 부탁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예. 방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한의 말에 알시클은 해맑게 웃었다.

“그래! 가을에 방문할게!”

“예.”

마차에 들어가 마탑을 떠나면서 이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알시클이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 괜히 눈에 깊게 남았다.

“...교장 선생님 만났다가 징벌방에 끌려가는 건 아니겠죠?”

“아마 괜찮을 거다. ...아마.”

*         *         *

디레트는 친구들과 함께 워다나즈 가문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님. 제가 좀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요... 워다나즈 가문의 1학년을 방학 때 끌고 가려고 교수님들이 길거리에서 싸웠다고 했는데, 혹시 그게 진짜일까요?”

“그게 말이 되겠냐?”

“넌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해라.”

흑마법을 배우는 디레트의 후배들은 친구를 타박했다.

“그런데 워다나즈 가문의 핏줄이 왜 흑마법을 배우려는 겁니까?”

“너 흑마법이 부끄럽냐?”

“조금...?”

“...사실 나도...”

“다들 조용히 해.”

디레트는 후배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제자들이 많은 다른 학파들과 달리, 에인로가드의 흑마법 학파는 선후배들이 서로 얼굴과 이름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좁았다.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흑마법사였다. 서로 뭉치지 않으면 더 고달파졌다.

그래서 디레트는 후배들이 시간이 될 때면 서로 모아서 소개해주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전 그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가 흑마법을 가볍게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거라구요. 들어보니 천재라서 다른 마법들도 많이 배우고 있는데, 흑마법을 자기 명성에 한 줄 올릴 구색으로 쓰는 걸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디레트의 경고에 투덜거리던 후배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흥. 흑마법을 무시하고 있을지 어떻게 알...’

“!!!”

워다나즈 가문 저택에 도착한 흑마법사들은 깜짝 놀랐다.

저택 앞뜰에 스켈레톤 전사들이 냉기가 풀풀 날리는 뼈 검을 들고 서있었던 것이다.

“...봐. 내가 뭐라고 했어.”

“흑, 흑마법에 진짜 진심이네요.”

“저 정도 되는 저택에 언데드 소환하는 사람 처음 봤어.”

“미친 거 아닌가? 청소는 어떡하려고...”

후배들은 워다나즈 가문의 신입생이 진심이라는 걸 빠르게 인정했다.

그러나 신입생이 제정신인가는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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